[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16)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16)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3.05.15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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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입에 풀칠만 하면 이승에서의 삶으로 족한 거야!
하찮은 것들이 한 치 앞, 제 앞길도 모르는 것들이 어째 남의 앞길을 알까?
그 고비만 요행히 잘 넘기면 아들딸이 여러 남매로 집안에 생기가 충만하겠습니다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나는 여차저차, 겨우겨우 대는 이었는데!” 하고 속으로 읊조리는 마님은 가엽다는 생각에 위로차 힘을 내라고 여인의 등이라도 쓸어주고 싶은데 무당이

“자~ 이 부적 두 장을 가져가 한 장은 불에 태워 그 재를 물에 타서 마시고, 한 장은 가슴에 고이 품고 살아! 건성으로 하면 소용이 없어! 가슴속 저 밑으로부터 우러나는 심성으로 정성을 다해 그러면 또 몰라! 자네의 지극정성에 감복해 찔러도 바늘도 안 들어갈 철석간장의 삼신할미가 돌아앉을지도!”

“예~ 신녀님 그럼 이 부적 값은?” 하며 허리춤을 끄르는데

“몇 푼 안 돼! 오늘은 그냥 가~ 후일 태기가 서면 그때 가서 곱으로 내놓던지 말던 지!” 하며 일간 필경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며 젊은 아낙네를 돌려보낸다.

마주 앉아 손수건을 손에 꼭 쥔 할머니가 가만히 듣고 있노라니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는 무당이란 생각이 들었다. 늘 입버릇처럼

“내 좁은 그릇에 재물은 무슨 재물! 재물, 나는 그딴 거는 몰라! 그저 입에 풀칠만 하면 이승에서의 삶으로 족한 거야!” 하고 이유 없는 금전은 천금이라도 싫다는 그 괴팍한 성격만큼이나 향후 싹수 있어 보이는 사람에게는 복채가 후했다. 반면 향후 비전 없다 싶으면 철저하게 복채를 계산했다. 그마저도 생각보다 많다 싶으면 ‘웬~걸! 그 형편에 손은 커서 이렇게나 후해!’하며 수고비 외에는 잔돈을 거스른 무당이다. 그런 무당이 젊은 여인을 두고 후일을 장담하여 말했다면 그 여인은 필경 자식을 보리라는 확신이 섰다고 볼 수 있다. 집으로 돌아간 여인네가 후일 태기가 선다면 십중팔구 고맙다며 다시 무당을 찾을 것이다. 간혹 함흥차사를 무색게 하는 매정한 사람들도 더러더러 있다지만 십 중 여덟아홉은 다시 찾았다. 그렇게 다시 찾은 사람들 대부분이 복채는 복채고 얼마간의 정성도 함께 올리는 것을 할머니는 누누이 보아온 터였다.

과거지사를 통해 지켜본 무당의 신기는 거의 정확했다. 그런 무당의 신통방통함에 이끌려 고모가 병석에 누워있는 동안 온갖 구박에도 무당의 곁을 쉬 떠나지 못해 서성거렸는지도 모른다. 그 신통방통함 덕택에 고모의 생명을 건졌는지도 모른다 생각하는 할머니다.

여인이 고개를 주억거려 떠나고 난 뒤 무당과 마님이 마주하고 앉았다. 처음 보는 얼굴이라 그런지 마님의 얼굴을 한참이나 뚫어지게 살펴보던 무당이

“이런~ 이런 이제 뵈니 귀하고도 귀한 분께서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런 누추한 곳으로 어려운 걸음을 하셨을까요? 삽짝으로 대나무를 꽂은 집은 순박한 사람들의 정신을 홀리고, 미신이나 들먹거리는 곳이라 여겨 출입할 분은 진정 아니실 것 같은데! 무슨 기막힌 사연이 있길래 개백정이나 다름없는, 저희같이 하찮고도 천한 무당집을 다 찾았을까요?” 묻는데 자신을 한없이 비꼬는 것 같아 마님은 문득 정신이 아득하다. 무당이라 척 보면 삼천리인가? 아닌 게 아니라 마님은 길을 오는 내내 마음속으로 천하고 천한 무당까지 찾다니 하고 질펀하게 푸념을 늘려오던 참이었다. 빌어먹을 아들놈 같으니 하고 마음속으로 불만이 가득했다. 한데 그 사실을 무당은 어떻게 알았을까? 속마음까지 들켜버렸다는 생각에 뚜렷하게 대꾸할 말이 없어

“예~ 그것이, 저~ 저 그것이!”하며 말끝을 흐리는데

“마님 연세에 속되게 무당은 찾는 데는 달리 이유가 있겠습니까? 자녀들의 혼사 문제가 대부분이지요! 사주풀이라던가 궁합, 그렇지요? 쌍방 간에 살이 끼었다며, 집안의 균형이 마음에 차지도, 문벌이 기울었다며 찾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하는데 마님은 기함할 노릇이다. 지금껏 하찮은 것들이 한 치 앞, 제 앞길도 모르는 것들이 어째 남의 앞길을 알까? 하고 얕잡아보던 마음이 일순간 사라지는 기분이다. 새삼 자세를 바로잡은 마님이 말을 더듬어

“예~ 예~ 그~ 그것이!” 하는데 무당이

“하긴 마님 생각처럼 다 믿을 건 아니지요! 살인이나, 조선 19대 왕, 숙종 때의 장희빈이 무당 막내의 사주에 따라 인현왕후를 방자, 죽기를 죽기 살기로 기원하는 등 남을 해코지하고 저주하는 등의 사주만 하지 않는다면 또 영 멀리할 것도 아니지요! 가장 좋은 방법은 참고해서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이지요! 그나저나 내 가만히 보는데 마님의 미간으로부터 푸른색이 은은하게 감도는 것으로 보아 필경 말 못 할 근심이 있기는 있나 봅니다. 어디 무슨 근심 걱정으로 인해 이토록 어려운 걸음을 하셨는지 하나하나 차근차근 풀어나 봅시다” 하더니 가슴께로 불쑥 손을 내지른다. 무당은 벌써 마님이 품 안으로부터 무언가를 갈무리해 온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무당이 내민 손길 앞에 마님은 반쯤 혼이 나간 표정으로 품 안으로부터 아들의 사주가 적힌 종이뭉치를 꺼내어 조심스럽게 건네자

“자~ 그럼 이제부터 마님께서는 아들에 대해 무엇이 그리도 궁금하신가 어디 한번 그 내력을 찬찬히 살펴나 볼까요?” 하는 무당은 마님과의 사이를 두고 가로지른 탁자 위로 활짝 펼쳐서는 한참을 들여다보다가는

“그래요? 마님께선 아들의 사주에 대해 무엇이 젤로 궁금한가요?” 하고 물어올 때

“예~ 저는 그저 저의 아들놈이 언제 어느 때나 참한 규수를 만나 장가를 들 수가 있을런지요? 천생의 배필은 언제나 만날 수가 있을런지요?” 하고 묻자 무당이 말하기를

“뭐~ 이 사주대로라면 아들은 벌써 배필을 만났구먼! 문제는 마님이구먼! 마님이 갈피를 못 잡고 있구먼요! 한데 말입니다. 내 한마디 조언 차 말씀을 드리자면 이 둘은 천생연분으로 뗄 레야 뗄 수가 없어요! 만약 양가 집안 사정을 핑계로 억지로 떼어 놓는다면 분명 불행이 몰려올 거요! 화(和)와 정기가 넘쳐흐르는 집안으로는 어떤 악마나 화(禍)도 불침이지요! 한데 세상 이치를 거슬러 눈앞의 작은 이익을 좇아 욕심으로 얼룩진다면 그들의 놀이터가 되기가 십상이지요! 그건 묻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요! 근데 신혼 초가 어른어른한 것이 고생스럽겠습니다. 마님의 무한한 인내가 필요하겠습니다. 그 고비만 요행히 잘 넘기면 아들딸이 여러 남매로 집안에 생기가 충만하겠습니다” 하더니 천장을 올려다보며 한참이나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가 싶더니 몸을 돌려 뒤쪽 서류뭉치를 한참이나 뒤적거려

“그래 이거야! 이게 여기에 있었구먼!” 하더니 또 다른 사주가 적힌 종이를 찾아 아들의 사주와 나란히 놓고는 갑자을축병인정묘무진기사경오신미! 하고 중얼거리더니 부지런히 손가락 마디마디를 꼽는다. 쌀과 엽전을 던져 모양새를 살피는 등 부산을 떨다간

“어쩜 이렇게도 배필일까? 월하노인이 얼마나 천년 묵은 도화주를 탐했는지 정신을 잃은 모양, 취중에 엮었는지 어쨌는지 이둘 선남선녀를 들어 인연의 끈을 겹겹이, 단단히도 묶어놓았네!” 하고 중얼거리더니 조심스럽게

“혹시 지금 혼담이 오가는 색시가 어디에 살며 누구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묻는데 벌~커덕 방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지금 밖에 손님이 오셨는데요!” 하고 수발을 드는 여인이 조심스럽게 무당의 의중을 묻자

“오늘은 귀한 손님이 계신 관계로 안 된다고 말씀을 올려 다음날 보잔다고 전해라!” 하는데 무당은 마님을 마지막 손님으로 더는 받지 않겠다는 의도를 확고하게 나타내고 있었다.

조용히 마님의 입을 주시하여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할머니가 생각할 때 무당이 보이는 전형적인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다. 무당은 조금이라도 신기가 필요한 손님이 들면 복채를 떠나 하루 한 손님으로도 족했다. 그리고 그날은 손님이 돌아가기가 무섭게 방문을 걸어 잠그고는 잠에 빠지기 일쑤였다. 무당의 축객령으로 보아 마님과의 대화가 끝나면 무당은 분명 잠에 취하리라 여겼다. 한데 무당이 어렵게 찾아서 펼쳤다는 그 사주는 과연 누구의 사주일까? 갑자기 할머니의 가슴이 까닭 없이 요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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