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18)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18)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3.05.29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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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 터는 곧 땅이라는 생각에 할머니는 그 많은 땅을 가지고도 아직도 욕심에 모자라 더 사들이는가 싶었다
가문을 위하고 집안의 안녕을 위한 일이라는 데에는 마님 자신은 없는 셈으로 다짐이다
찻잔서 여태껏 하얗게 김이 서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방금 다려서 준비한 것으로 보였다
9월 22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9월 22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그도 잠시 빙의라도 된 듯 할머니가 코로 먹는지 입으로 먹는지도 모르게 수저를 놀리는데 밥이고 반찬이고 죄다 입안서 살살 녹는다. 할머니 생애에 이렇게 거한 한상차림은 처음이란 생각에 취한 나머지 과식은 금물이라는 생각에 그저 맛보는 수준이다. 게다가 이 음식, 저 음식을 뒤적이다 보면 좋은 음식을 죄다 버린다 여겨 나물 반찬에만 젓가락이 간다. 보다 못한 마님이 굴비를 뜯고 송이버섯 무침을 숟가락에 올리는 바람에 사양도 못 하는 처지다. 따라서 맛만 보려고 한 의도를 비웃어 한껏 배가 부르게 먹어버린 할머니다. 할머니가 더는 어렵다며 손사래를 치는 것으로 점심이 끝났을 무렵이다. 문밖으로부터

“임자 나 여기저기로 두루두루 둘러서 터 좀 보고 오겠네!”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걸걸하고 굵직한 성량으로 짐작하는데 바깥 영감님으로 보였다. 한데 터를 보다니 무슨 터! 터는 곧 땅이라는 생각에 할머니는 그 많은 땅을 가지고도 욕심에 모자라는가 싶었다. 그런 한편으로 이름난 부자는 하늘이 낸다고, 생각하는 바가 범인과는 다르다고 하더니 틀림없다 싶었다.

“예~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지난번처럼 몸살 나지 않게 천천히 다녀오시고요!”

“그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되는가! 꽁무니를 따라다니다 보면 무리도 하고 그렇지! 그나저나 예의범절에 어긋나지 않게 성심으로 대접하시게!” 하는 말을 끝으로 발걸음 소리가 점차 멀어져간다. 그와 함께 점심상이 나가고 행랑어멈이 다과상이 들인다. 눈앞으로 덩그런 다과상을 보는 할머니는 온종일 이렇게 먹고 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잣집인 만큼 먹고 입는 걱정은 없을 것이라 여겼다. 나아가 손과 발에 굳은살이 덕지덕지 붙지 않아 좋고, 작열하는 뙤약볕 아래 물집이 잡히지 않아 좋고, 살갗이 벌겋게 타서 허물이 벗어지지 않아 좋고, 주근깨가 늘어나지 않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리여리 가냘픈 몸매에 세상 물정을 몰라 천방지축인 고모의 시집 자리로는 이 이상 없다 여겼다. 이제 오해도 웬만큼 풀렸다는 생각이 들자 할머니는 슬금슬금 욕심이 일기 시작했다. 그새 딜레마에서 빠져나온 모양으로 아무려면 관세음보살님이 내 자식처럼 새로이 주신 목숨인데 어련하겠나 여기고 있었다. 문득 이런저런 잡다한 계산으로 할머니의 머릿속이 복잡하다,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은 어린 사슴처럼 생각에 젖어 있을 때다.

“차 식겠습니다. 식기 전에 드시고 과자도 하나 맛보세요!” 하고 은근하게 권해오는 마님이

“이 마당에 무얼 숨기고 자시고 하겠습니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인물 여부를 떠나서 나도 댁의 따님이 온전하게 마음에 찬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과거지사를 차치하고 이런 말을 하는 지금도 솔직히 마찬가지입니다. 나란 여자도 따지고 보면 소견 좁고 소갈머리 없는 촌구석 아낙네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나라고 별수가 있겠습니까? 집안에 걸맞게 번듯한 며느리를 볼 수만 있다면 이 인연의 끈을 잘라 버리고 싶습니다. 그 소년처럼 생으로 끊어 내고 싶은 마음이 어찌 없겠습니까? 하지만 그리하면 그 죄가 다 어디로 가겠습니까? 나야 몇 년을 더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지만 내 아들은 아니지 않습니까? 어린 계집아이의 얼굴을 난도질한 그 소년처럼 어미가 저지른 죄업을 고스란히 물려받을 게 아닙니까? 평생을 마음의 빚으로 갚으며 죄인으로 살아가게 할 수는 없잖습니까?” 하더니 한숨을 푹 쉬는데 할머니는 온몸이 절로 부들거려 앉은자리가 가시방석만 같다. 약을 주고 병을 준다더니 이 무슨 청천벽력같은 소리란 말인가? 등줄기로 식은땀이 줄줄이 흘러 골을 이룬다. 너무나 놀란 나머지 섬뜩한 가슴을 쓸어내리는 할머니는 욕지기가 올라 점심으로 달게 먹은 음식물을 죄다 토할 지경이다. 쿵덕거리는 가슴을 급하게 쓸어내려

“예~ 예 마~님! 예~ 설령 그렇더라도 저의 못나고 미거한, 지지리 궁상인 이 늙은이를 못났다 꾸짖고 나무라시더라도 딸자식 만은 꽃을 본 듯 어여삐 여기셔서! 그저 하회와 같은 은혜를!”

“예~ 예 마땅히 그래야지요! 지금에 이르러 이제 어찌하겠습니까? 당연히 그래야지요! 말이 그렇다뿐이지 다른 뜻은 결코 없습니다. 장차 내 며느리를 내가 이뻐해야지 밉상이라 여겨 내가 이뻐하지 않는데 누가 나서서 알뜰살뜰 이뻐하겠습니까? 안사돈께서는 그 점은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는 마님도 이참에 할머니에게 확답을 받아 확실하게 결정을 짓고 싶었다. 자식을 위해 바보가 되고, 눈이 멀고, 매병(呆病 : 치매 등 정신병의 하나)에 걸린 노망난 노친네(노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가 된다 해도 달게 받아들이라 다짐이다. 이 모두가 가문을 위하고 집안의 안녕을 위한 일이라는 데에는 마님 자신은 없는 셈으로 다짐이다. 아들의 행복을 위한 일에 축복은 못하더라도 해방은 놓을 수는 없다 여겼다. 무당이 당부한 대로 따를 작정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인내할 수 있다 여기고 있었다. 그러자 문득 생각나는 바가 있어서

“어떻게 안사돈께서는 이대로 진정 사주단자를 물리실 의향인지요?” 하고 물어올 때 화들짝 잠에서 깬 듯 놀란 할머니가 ‘훼~훼!’격하게 손을 내저으며

“아니지요! 아니지요! 다 오해로 인해 빚어진 일! 마님의 의향에 전적으로 따르겠습니다. 그저 이 늙은이는 감지덕지합니다!” 하고는 습관처럼 하염없이 머리를 조아려 이마를 방바닥으로 처박는다.

“예~ 안사돈께서 이렇게 선뜻 허락해 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 또한 후일 그 아이가 외간 사내와 배꼽만 마주치지 않는다면 결단코 내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내 이 자리에서 장래의 시어미니자리로서 굳게 언약을 드립니다”

“예~ 예 마님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너무 미욱하고 못난 딸이라 저희는 그저 마님께서 하회와 같은 은혜를 베풀어주시길 머리를 조아리고 엎드려 간절히 바라올 뿐입니다.” 하고 ‘하회와 같은 은혜’만 앵무새처럼 되풀이다.

“원 천만에 말씀을! 그런데 어째 이러실까? 그만하시고 그럼 이쯤에서 안사돈~, 살아생전 우리 둘이 언제 어느 때나 얼굴을 마주하여 만나겠습니까?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어렵게 만난 김에 함께 혼례 날짜나 잡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하고 의향을 물어오는데 할머니는 망설일 일이 아니다 싶어

“예~ 감사합니다. 전적으로 마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한데 어디에서?”

“달리 아는 곳이 없다면 한때 안사돈께서 다녔다는 그 청신녀(淸信女) 집으로 가는 것이!” 하는데 할머니로서는 이 또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 길로 마님과 할머니는 어깨를 나란히 무당집을 찾았다.

무당집 대문에는 예나 지금이나 하늘을 꿰뚫을 듯 높다란 대나무가 꼿꼿하게 섰다. 꼭대기쯤으로 하여 오방색 천 조각이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성큼 들어서는 마당으로는 방금 빗질을 했는지 깨끗한 중에 빗질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한껏 정갈하여 보는 것만으로도 극히 조심스럽다. 마당 가득히 빗살무늬처럼 펼쳐진 가지런한 빗질 자국을 흩트릴까 하여 죄인처럼 마당 가장자리를 에두르는 마님과 할머니다. 간혹 깨금발에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간다. 담장 밑에서 잠자는 고양이를 행여 깨울까 싶어 살금살금 소리를 죽여 들어서는데

“밖에 두 분께서는 무엇을 망설여 그리도 꾸물거리고 계시는지요? 왔으면 얼렁얼렁 들어오시질 않고요!” 하는데 할머니는 과거의 어느 날에 고모의 신상 차 왔을 때가 불현듯 떠올랐다. 그때를 돌이켜 생각하는데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당은 깨끗했고 손님은 없었다. 더는 망설일 것이 없다 싶은 할머니와 마님이 방으로 들자 무당은 다과상을 마주하고 있었다. 다과상에는 이미 석 잔의 찻잔이 올라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덩그런 찻잔서 여태껏 하얗게 김이 서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방금 다려서 준비한 것으로 보였다. 이윽고 할머니와 마님이 나란히 자리하여 앉자 무당이 지긋하게 감았던 눈을 떠서는

“마님! 전생을 들어 우리 둘 사이에도 인연이란 끈으로 어지간히 얽혀서 깊은 모양입니다. 뵙고자 하자니 근자에 자주 뵙는 것 같습니다. 한데 마님께서는 어떻게 그간 생각을 좀 해보셨습니까?” 하는 무당은 차 들기를 권하여 마님 앞으로 찻잔을 밀어 놓는데 손길이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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