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12)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12)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3.04.17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커멓게 멍든 가슴을 칼로 그어서는 속속들이 속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람의 형상이라서 사람이라 할 뿐 차마 눈을 뜨고는 볼 수가 없는 지경이다
치마만 둘러서 여자 형상만 데려온다면 두세 말 않고서 짝을 지어 주리라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혼례란 말에 알레르기 반응의 아들이 말없이 집을 뜨자 집안은 발칵 뒤집혀 초상집만 같다. 그뿐만 아니라 탈도 많고 이유도 가지가지인 문중의 행세깨나 한다는 어르신들이 단체로 들고 일어났다. 시 오촌은 물론 사돈의 팔촌까지 나서서는 한마디씩 보탠다. 장마철 청개구리처럼 떼로 몰려다니며 잊을 만하면 긁어 부스럼으로 험담이다. 만사 일이란 순리대로 풀어야만 문제가 없지 평소에도 그랬듯이 마님의 아집에 욱하는 막무가내가 문제란다. 혼기를 넘긴 아들 두고 몽달귀신으로 늙혀 죽일 참이냐며 종부, 종손 타령의 극성은 어디로 가고 죽어 지하에 계신 조상님을 무슨 면목으로 뵐 거냐며 집 나간 아들을 두고 모든 죄란 죄는 어미인 마님이 뒤집어썼다. 아들을 둔 어미로서 남들처럼 며느리를 보고자 함인데 그것도 욕심이라면 욕심이었나! 졸지에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도 아니고, 이 가슴 답답함을 어디에 가서 하소연할까? 버선목 뒤집듯 뒤집어 속 시원히 풀어나 볼거나! 할 수만 있다며 시커멓게 멍든 가슴을 칼로 그어 속속들이 속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가운데 먼데 있는 친척들은 그렇더라도 당장 눈앞이 문제였다.

조석으로 얼굴을 대하는 영감으로부터 오만가지 원망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야 했다. 소를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강제로 물을 먹일 수는 없다고 괜한 욕심이 아들을 잡은 격이라며 날이면 날마다 나무란다. 어미와 아들이란 혈연은 허울뿐으로 멀쩡한 아들을 이유도 불분명하게 사지로 내몬 매정한 모정으로 치부되어 정체성은 물론 자존심이고 뭐고 간에 삶 자체가 처참하게 뭉그러졌다.

다음 날로부터 마님은 귀머거리 시늉에 침묵으로 일관이다. 일구월심으로 아들이 무사하게 돌아오기만 부처님께 축원들일 뿐이다. 아침저녁으로 정화수를 장독대에 올려 축원하는 마님은 다시는 혼사의 ‘혼(婚)’자도 입에 담지 않겠노라며 오로지 아들의 무사 귀환만 빌고 또 빌었다. 마님의 간절한 마음이 아들과 텔레파시로 통했을까? 근 일여 년 만에 아들이 집으로 돌아왔다. 유난히 춥고 지루하던 겨울을 지난 어느 화창한 봄날이었던가? 평소 출입이라곤 거의 없는 대문이 삐걱하고 열리는가 싶더니 행랑어멈의

“에구머니나! 이게 누구십니까? 도련님이 아니 십니까? 그동안 어디에 계셨습니까? 도련님이 달랑 편지 한 장을 남겨 말없이 떠난 뒤로 마님께서는 매일같이 눈물 바람으로 사셨습니다”하더니 호들갑으로 마님을 불러

“마~님! 아~ 마님! 어서 나와 보세요! 도련님이~ 도련님이 오셨습니다. 도련님이!”하는데 마님이 방안에 앉아 혹시 헛것을 들었나 싶어 귀를 씻어 듣다가는 반가움에 혼이 빠져 방문을 한껏 열어젖혀 맨발로 달려 나와서는 다짜고짜 양팔을 활짝 벌렸다. 막무가내 덥석 껴안고는

“아이고~ 이놈의 자식아 내가 왔구나! 매정하고 무정한 내가 오늘에서야 왔구나! 죽은 줄로만 알았던 생떼 같은 내 자식이 용케도 살아서 돌아왔네! 잊지 않고 어미를 찾아서 왔어!”하고는 펑펑 울더니

“너는 어쩌면 그렇게도 무정하고 박정하더나! 그 날수에 아비가 죽었나! 어미가 죽었나! 궁금치도 않던!”하고는 얼굴을 쓰다듬고 몸 이곳저곳을 어루만지다가는 목이 메는지 꺼이꺼이 울먹거리다간

“한데 이게 다 무슨 꼴이니? 이게 사람이냐 귀신이야! 어째 내 모습이 이 모양 이 꼴이고? 늘푼수(‘늘품’의 방언)라곤 하나 없는 너이기에 짐작은 했다만 이게 다 무슨 꼴이고? 살아 돌아와 천만다행이기는 하다만 사람의 형상이라 사람이지 인귀상반(人鬼相半), 네 꼬락서니가 귀신과 다를 바가 없구나! 이 어미의 괜한 욕심이 멀쩡한 아들을 사지로 몰아서는 생으로 잡았구나!”하고는 횡설수설 중얼거리더니 제풀에 까무룩 정신 줄을 놓는다.

마님의 통곡대로 집으로 돌아온 아들의 몰골은 상거지나 다름이 없었다. 낯선 객지를 부평초처럼 떠돌아다니길 근 일여 년, 빈 털털이 형편에 한량노름을 못 버려 탕아로 놀아나다가 매타작을 당했는지, 북풍한설을 지나면서 풍찬노숙의 나날이 극심했는지 몸이라고 부지해온 모양새가 나무젓가락처럼 빼빼 말라서 목불인견이다. 겨우 거죽만 남은 모습이 사람의 형상이라서 사람이라 할 뿐 차마 눈을 뜨고는 볼 수가 없는 지경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장가라는 말에 질색팔색인 본인 스스로 장가를 입에 담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었었다. 서왕모의 천년 묵은 도화주를 훔쳐 먹은 월하노인이 취중에 참한 규수와 아들의 손목을 인연의 붉은 실로 묶어 주길 학수고대하여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부터 마님은 해바라기꽃이 되었다. 이제나저제나 아들의 입만 쳐다보는 가련한 신세다.

그러던 올봄의 어느 날이었던가? 해거름 무렵에 어디를 어떻게 갔다 왔는지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나타난 아들이 대뜸 장가를 들고 싶단다. 뜬금없은 아들의 말에 반가움은 둘째로 깜짝 놀란 마님이 재물은? 집안의 내력은? 부모는 어떻고? 양친은 건재하고? 어디에 살고? 색시의 나이는 몇 살이고? 인물은 어떻고? 하고는 속사포처럼 조목조목 따져서 물었지만 죄다 모른다며 머리를 가로젓는다. 아는 것이라곤 얼굴이 하얗고 몸매가 가냘프다는 것만 기억에 있단다. 답답한 마음에 남산에 올라 서울 사는 김 서방을 찾는 것도 아니고, 나룻배를 타고 각주구검(刻舟求劍), 한강에 빠트린 바늘 찾기도 아니고 그렇게 뜬구름 잡듯 해서야 어떻게 장가를 갈 수나 있겠냐며 다그치자 마지못한 듯

“어머님! 저기 저~ 오늘 우연히 재를 넘어갔습니다. 친구랑 바람이나 쐬고자 이리저리 다니는 중에 운명처럼 시냇가서 빨래하는 처녀 네 다섯을 봤네요! 처음 보는 장면이라 신기해서 빤히 보고 있자니 다들 돌아보잖아요! 한데 그 중 어느 한 처녀를 보는데 무닥지 가슴이 뛰고 심장이 벌렁거리잖아요! 이건 숙명으로 단박에 이 여자가 내 색시다 싶게 가슴에 쏙 들어오데요!”하며 그 처녀에게 장가를 들고 싶단다. 마님이 아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황당하기 그지없다. 아무리 한미한 집안의 여식이라 할지라도 그 집안에서는 누구 없이 금지옥엽의 귀한 딸이다. 그런 까닭에 아무리 권세가 높고 가진 자라 할지라도 일방적으로 혼례를 결정하여 진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보기에는 처녀로 보일지라도 아기가 딸린 애 엄마일 수도 있고, 정혼을 하여 혼례 날짜를 잡은 규수일 지도 모른다. 나아가 아무리 탐나는 신랑 자리라 할지라도 처녀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 또한 억지를 부린다고 해서 아니 되는 것이 혼사다. 답답한 마음에

“아니~ 그 나이에도 철딱서니 없는 이것아! 네가 한사코 혼사를 물린 것처럼 그 처녀 또한 그 지경이면 어떡할거나! 게다가 보기에는 동안으로 그렇게 보여도 유부녀 일수도, 이미 혼처가 정해진 처녀인지도 알 수 없잖느냐! 내 놈이 색마도 아니고 무작정 욕심만을 고집한다고 그게 어디 될 법한 일이더냐?”하고 나무라고 난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인가 다시

“어머니 제가 다시 알아봤는데 그 처녀에게는 지금껏 혼담이 오간 적이 없답니다. 사는 곳은 산 너머 초가서 편모슬하에 오라버니 내외와 조카인 철수란 꼬맹이와 함께 산다고 하네요!”하더니 지금 당장에라도 중매쟁이를 보내란다. 미적거리다 떠난 버스를 잡으려 손을 흔들 듯, 날아가 버린 꿩의 꽁무니를 보고 한숨짓는 포수처럼 다른 곳으로 정혼을 하기 전에 미리 손을 쓰란다. 그럼 이제부터는 긴 방황을 끝내고는 마음을 잡겠단다. 착실하고 말 잘 듣는 아들이 되겠단다. 마님이 그 말은 듣는데 착한 아들은 그렇다 치고 장가를 간다는 말에 들뜬 기분 한편으로 아들이 말하는 며느리자리가 가당찮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