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09)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09)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3.03.27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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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엄마 무닥지 머리가 아파! 아랫배도 묵직하게 아프고, 하늘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아!
미간으로 잔주름을 잔잔하게 잡아가며 머리끝까지 뒤집어 써버린다
칠성님 전에 빌고 또 빌어서 겨우 살려 놓았더니만 어미 앞에서 그게 할 소리니!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등치는 말 만해서, 사주단자를 받아 놓은 마당에 낼 모래면 시집갈 년이 저리도 덜렁거리니 원!, 조신하지 못하게!”하며 혀를 차다가는 무언가 이상하다 싶어 방으로 들어가 보니 그새 고모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할머니가 들어오건 말건 벽 쪽을 향해 돌아누웠다. 입으로는 연신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이불 귀를 잡아당겨 머리를 덮어간다. 그 모습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할머니는 뭔가 잔소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접고는

“애~ 끝순아 어디가 어떻게 아픈 게냐?”하고 물었지만 연신 끙끙거릴 뿐이다. 귀를 막은 듯 묵묵부답이다. 습관처럼 이불 귀만 꾸역꾸역 끌어당겨서 덮는다. 급기야 열 발가락이 이불 밑으로 삐죽하게 내밀어도 연신 잡아당긴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할머니가

“이불 귀만 찢어지게 잡아당기지 말고 어디가 아프면 어디가 아프다고 말을 해야 약을 달이든 말든 하지! 머리? 배? 어디가 아픈지 말을 해봐라!”하고 은근하게 채근을 하자 만사가 귀찮다는 듯 기어드는 목소리로

“응~ 엄마 무닥지 머리가 아파! 아랫배도 묵직하게 아프고, 하늘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아! 근래에 없이 이렇게 아픈 것으로 보아 이제는 내가 진짜로 죽으러나 봐!”

“죽기는 이 년아! 말이 씨가 된다고 방정맞게 어미 앞에서 그 무슨 불효막심한 말본새고? 이 어미가 있는 한 너는 죽을 수가 없는기라! 그러니까 너는 아무 걱정을 말아라! 그런데 왜? 어디서 상한 음식이라도 먹어 배탈이라도 났니? 무닥지 왜 그래? 어째서 머리와 배가 그리도 아플까?”

“그러게~ 나도 몰라! 왜 이렇게 아픈지! 어제까지는 어째어째 간신히 목숨을 부지해서 살았는데! 오늘을 못 넘겨 진짜로 죽으려나 봐! 엄마 나 죽는 게 싫어! 어둠이 무서워! 차가운 건 더 싫어! 내가 무얼 잘못했다고 저승사자는 벌써 잡아 간데! 아직은 한참이나 더 살고 싶은데! 생명을 요만큼 주신 하나님이 때려 주고 싶도록 미워!”

“그럼 그~럼 더 살아야지~ 이 엄마가 죽고도 한정 없이 더 살아야지! 그리고 누가 너보고 오늘을 못 넘겨 죽는데~ 죽을라치면 이 어미가 먼저 죽어야지, 아직 나이도 새파란 네가 죽기는 왜 죽어!”

“아니야 엄마~ 나는 원래 병치레에 약골로 태어났잖아!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죽을라치면 백약이 무효지만 살려고 치면 물 한 방울도 명약이라고 이 엄마가 어떻게든 낫게 할 테니까 어디가 아픈지 아픈 곳을 더 소상하게 말해보아라!”

“응~ 엄마 그러니까 그게 피가 나! 죽지 않을 거라면 어째서 피가 날까? 엄마~ 나 피가 나! 무닥지 피가 나! 죽을병이 아니라면 어째서 머리가 빙글빙글 돌아 어지럽고 무닥지 피가 날 수가 있을까?”하고 횡설수설하는 고모는 꽁꽁 말아서 뒤집어썼던 이불을 제쳐 배시시 얼굴을 내미는데 울 밑으로 곱게 핀 봉숭아의 연분홍 꽃잎처럼 화사하다. 그 모습에 다소 안심이 된 할머니가 손을 내밀어 이마를 짚어가며

“넘어지지도 않고, 가시에 찔리지도 않고, 칼에 베이지도 않았는데 피가 난단 말이지!”

“응~ 무닥지 난다니까?”하는데 그제야 이상한 생각 든 할머니가 혹시나 하고

“너 사타구니 안쪽에서!”하고 말끝을 흐리는데 고모는 어떻게 알았냐는 듯 별빛으로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눈을 깜박거려 할머니를 빤히 쳐다보는데 얼굴이라곤 늦가을 농익은 홍시처럼 벌겋다. 그도 잠시 큰 죄라도 지은 듯, 부끄럽다는 듯 기어드는 목소리로

“응~ 엄마! 남들에게 말하기도 부끄럽고 동네 창피하게 대관절 이것이 무슨 일인지 몰라! 하필이면 왜 그곳에서!”하고는 이불 귀를 힘껏 당긴다. 분통처럼 새하얀 미간으로 잔주름을 잔잔하게 잡아가며 머리끝까지 뒤집어 써버린다. 순간 할머니는 이불속에든 고모를 이불과 함께 덥석 껴안으며

“이 못된 것아 기왕에 할 것이면 달포만 앞당겨서 할 것이지! 아니면 반삭이라도 빨랐다면 마음고생이나마 덜었을걸! 너는 저승으로부터 점지받을 때 이 에미의 속을 까맣게 태우려 작정하고 딸이 되어 네게로 왔니? 어째 하는 일마다 한 발짝씩 늦어 이렇게 에미의 속을 태우느나! 애간장을 녹이느나! 못난 것!”하는 원망스러운 투정도 잠시

“오~ 냐! 오냐! 장하구나! 내 딸아, 그러면 그렇지! 하늘도 진정 무심치 않았던 모양이구나! 나무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하고는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오늘에서야 어미가 그토록 목이 빠지게 너를 통해 보고자 기다리고 기다리던 보름달을 보는구나! 이제는 문제없다. 어디다 내놓아도 꿀리게 없다. 너도 오늘에야 이 어미처럼 진짜로 여자가 되었구나! 새싹이 움을 틔우듯 어미가 될 준비를 몸이 알아서 하고 있구나!”하며 처연하게 앉았는데 감격에 겨운 눈물이 양 볼을 타고 흐른다.

할머니가 단숨에 고갯마루에 올라서서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내딛지 못한 것도 다 그 때문이었다. 몸만 그럴싸하게 여자를 흉내 낸 고모를 두고 할머니는 그 어디에도 떳떳할 수가 없었다. 양심상 그럴 수가 없었다. 진정 몸만 그럴싸하게 여자를 흉내 낸 것이라면 ‘웃방애기’도 오감 타 여겼다. 사기 결혼을 떠나 딸의 행복을 바란다고, 어미란 괜한 욕심으로 인해 멀쩡한 집안의 대를 끊을 수는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렇게 일찍 단정하여 포기하기에는 고모의 나이가 혼기를 조금 지났을 뿐 아직은 어렸다. 따라서 진득하게 기다려볼 만하다 여겼다. 그런 까닭에 할머니는 하루하루를 도박하는 심정으로 기다려 온 터였다. 그런 할머니의 기대를 고모는 저버리지 않았다.

이날은 위해 진즉부터 준비한 무명천으로 만든 기저귀를 농으로부터 꺼내고 해열과 두통에 좋다는, 생리에 좋다는 약을 달여서 먹인 할머니는 여자의 몸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했다. 이어서 너는 몸이 그래서 그런지 또래들 보다 늦었지만 그나마 얼마나 다행이냐며 이런 일은 친구에게, 옥자에게 물어보든가 아니면 내 올케언니에게 물었으면 될 것을 하고 등을 쓸어 두 번 세 번 장하다고 했다. 고모도 할머니의 말에 반신반의로 고개를 갸우뚱, 짜증 섞인 말에

“다 큰 어른이 돼서 이게 다 뭐야! 코-찔찔이(‘코흘리개’의 방언)얼라 맨크로 다 큰 지지바가 오줌싸게도 아니고 귀찮고 불편스럽게 기저귀나 차고! 엄마 이럴 바에는 차라리 나를 머스마로 낳아주질 않고서! 여자란 게 일도 편하고 좋은 줄로만 알았더니만 구질구질하게 뭐 이래!”하고 투덜거리자 할머니가

“이년의 가시나가 자발스럽게 못 하는 소리가 없어! 동네의 누구보다 인물 좋게 낳아주고 꼴까닥 숨이 넘어가는 것을 칠성님 전에 빌고 또 빌어서 겨우 살려 놓았더니만 어미 앞에서 그게 할 소리니!”하며 곱게 눈을 흘긴다. 그날을 넘긴 다음 날에 고모가 옥자를 만나 물었을 때
“에~게게! 넌 여태까지 그게 없었어!”하는 옥자 자신은 열네 살인가? 열다섯 살 때부터 있었다고 하는 데는 고개를 끄덕하여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의 새벽을 맞아 할머니와 어머니는 음식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전에 없이 할머니는 손바람을 내고 있었다. 덩달아 어머니도 신이 났다. 음식준비 간간이 할머니는 왜 꾀병처럼 앓아누웠는지를 시작으로 고모의 때늦은 달거리까지 세세하게 들려준다. 그런 한편으로 고모를 두고 어머니에게 손윗사람으로 잘 보살펴 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어머니는 할머니의 말씀에 어찌 그런 일에 여부가 있을 수 있습니까? 하는 반문으로 마음껏 솜씨를 부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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