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느끼다] 권나현의 '봄바람 난 년들'
[시를 느끼다] 권나현의 '봄바람 난 년들'
  • 권정숙 기자
  • 승인 2023.03.15 10:0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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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매화 픽사베이
홍매화 픽사베이

 

봄바람 난 년들 // 권나현

 

 

보소!

자네도 들었는가?

기어이 아랫말 매화년이

바람이 났다네

 

고추당초보다

매운 겨울살이를

잘 견딘다 싶더만

남녘에서 온

수상한 바람넘이

귓가에 속삭댕께

안 넘어갈 재주가 있당가?

 

아이고~

말도 마소!

어디 매화년 뿐이것소

봄에 피는 꽃년들은

모조리 궁딩이를

들썩대는디

 

아랫말은

난리가 났당께요

키만 삐쩡큰 목련부터

대그빡 피도 안마른

제비꽃 년들까정

난리도 아녀라

 

워매 워매~

쩌그

진달래 년 주딩이 좀보소?

삘겋게 루즈까정 칠했네

워째야 쓰까이~

 

참말로 수상한 시절이여

여그 저그 온 천지가

난리도 아니구만

 

그려~

워쩔 수 없제

잡는다고 되것어

말린다고 되것어

암만 고것이

자연의 순리라고 안혀라

 

보소

시방 이라고

있을 때가 아니랑께

바람난 꽃년들

밴질밴질한

낮짝이라도

귀경할라믄

 

우리도 싸게

나가 보드라고

     

 

                       입술 [2018 들뫼]

제비꽃 픽사베이
제비꽃 픽사베이

 

권나현 시인은 경북 영주 출생이다. 2016년 한국문학정신 가을호 신인문학상 수상으로 등단했다. 2017년 펜타임즈 올해의 인물상. 2018년 한국문학정신 여성작가 위원장, 2018년 들뫼문학 동인 편집 주간, 2018년 들뫼문학상을 수상하였고, 한국문학정신 정회원, 한국문학정신문예대학 아카데미 회원, 한국문학정신 시 분과 회원이며 시집으로는 ‘입술’(들뫼)이 있다.

이 詩는 직유와 은유를 적당히 섞어가며 잘 버무려서 난해하지 않고 재미있다. 모든 꽃들과 바람마저 의인화 시킨 재미있는 작품이다. 누가 일찍이 봄꽃들을 바람난 년들로 만들었든가. 훈풍인 봄바람까지 꽃들을 꼬드기는 수상한 바람넘이라고 싸잡아 매도하고 있다.

특히 경상도 출신인데도 불구하고 전라도 사투리를 이렇게 감칠맛 나고 맛깔스럽게 구사하는지 놀랍기만 하다. 처음 詩를 대했을 때 작가가 당연히 전라도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다.

오랜 습작 시간을 가졌는지는 몰라도 등단 시기로 보면 그리 오래 되지는 않은 것 같다. 허기야 시간이 무슨 상관이랴. 단 한 편의 詩로 천재성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시인이 있는가 하면 몇 십 년을 시에 매달리어도 공감대를 얻기가 힘든 시인도 있지 아니한가.

각설하고 시로 스며들어보자. 이 詩는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재미있는 詩이니 그냥 재미있게 읽어도 좋다. 그러나 이왕에 詩를 소개하는 바이니 함께 행간의 의미도 찾아보면서 즐겨 보았으면 한다.

첫 행부터 단도직입적으로 보소! 하고 불쑥 치고 들어온다. 남의 말 좋아하는 아낙네들의 말투다. 아랫말 매화년이 바람났다고 소문을 퍼트리며 사실인지 확인해 보는 것이다. 물론 매화년이란 사람이 아니고 매화꽃을 말함이다. 2연에서 고추당초보다 매운 겨울살이란 사람의 시집살이를 빗대어 말함이 아니던가. 남녘에서 온 수상한 바람넘이란 봄바람을 말하는 것일 테고.

3연에서부터 5연까지는 바람난 년이 하나가 아니라고 확장시켜 나간다. 키만 뻐쩡 큰 목련부터 키 작다고 대그빡에 피도 안 말랐다고 하는 제비꽃까지 바람난 대열에 가세시킨다. 진달래는 색깔이 곱다고 주딩이에 삘겋게 루즈까지 칠했다고 디스하고 있다. 게다가 시절까지 수상하다면서 하늘에까지 책임 전가를 시키고 있다.

드디어 7연에서는 잡는다고 될 것도 아니고 말린다고 될 것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라면서 마음을 접고 있다. 그리고 8연과 마지막 연에서는 오히려 동참할 의지마저 엿보인다. 어서 가서 구경하자는 건 그 대열에 합류해 함께 즐겨보자는 의미로 읽힌다.

이런 게 바로 풍자와 해학과 골계미가 있는 멋진 詩가 아닌가 생각된다. 권나현 시인의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필자의 생각에는 정말 깜찍 발랄하여 어떤 현대 詩보다 독자들에게 어필되는 詩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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