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71)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71)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2.07.04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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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주기 위한 쇼라 할지라도 사위를 위하는 척 액션을 취해야 할 것 같다
옷 보따리가 안사돈의 손에 들렸다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성공이다
눈에 익은 듯 반지를 본 처녀는 금세 얼굴이 노랗게 변한다.
9월 22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9월 22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영감이 한편으로 생각하니 부자지간에 미리 각본을 짜서 보라는 듯 쇼를 하는 기분도 들었다. 설령 그렇더라도 이대로 가만히 손을 놓고 있다가는 후일 관계가 원만해지면 사위에게 책도 잡힐 듯싶다. 별일도 아닌 것에도 뒤끝이 있어서는 마음을 모질게 먹어 딸내미를 구박을 할까 두렵다. 비록 보여주기 위한 쇼라 할지라도 사위를 위하는 척 액션을 취해야 할 것 같아

“사~돈~ 이보시요 사돈 요~ 손찌검 보다는 말로 하심이...! 어지간하면 노여움을 가라앉혀 이쯤에서 그만하심이...!”하는 영감은 결국 사위의 귀싸대기를 계기로 그간 철석같이 굳었던 마음이 뜨끈한 물에 든 눈덩이처럼 흔적 없이 녹아진다. 반면 사윈지 아들인지는 입방정으로 무심코 내뱉은 말이 씨가 되어 지은 죄가 엄청난 것을 알고는 고개를 들지 못해 끓어 엎드려서는

“아버님 소자는 맞아도 쌉니다. 불민한 소자가 다 잘못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제 정신이 아니었는가? 봅니다. 이 못난 사위가...! 장인어른께는 천벌을 받은 짓을...! 죄송합니다. 입이 있으되 무어라 변명할 말이 없습니다”하고 연신 머리를 조아려 방바닥에 이마를 붙였다.

그 점에 대해서 사돈은 영감에게 백배사죄를 하고난 후 가마꾼을 불러 준비해온 음식을 두고 안으로 기별을 청하여 안사돈에게 전한다. 그리고 이렇게 경우 없이 찾아온 것에 대해서도 안사돈에게 다시 한 번 더 머리를 숙여 사과를 한 후, 준비한 음식을 들어 사족처럼 안날저녁 급하게 장만하느라 맛이 어떨지 모르겠다며 다시 머리를 조아린다.

그로부터 꿀 먹은 벙어리 모양으로 일다경이나 지났을까? 준비해온 음식과 곁들어 장모자리가 짧은 시간동안, 이웃의 아낙네들을 동원하여 장만한 음식으로 영감을 불러서 한 상 가득하게 차려서는 늦은 점심이라 내온다. 사돈은 이때야 말로 며느리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절효의 기회라 여겨 방문 밖을 이리저리 기웃거렸지만 하사였다. 그때 사돈은 보고자 하는 며느리는 그림자조차 흔적 없고 사돈 내외가 꾸역꾸역 차려내는 점심상을 보건데 일이 틀어져도 단단히 틀어졌다 여겼다.

문득 집에서 학수고대, 목을 길게 늘여 기다리고 있을 마누라의 얼굴이 애달프다. 우야든지 불뚝하는 성질머리를 죽여 때리면 맞고 나무라며 머리를 조아려서라도 데리고 오라는 며느린데 돌아가는 형세가 얼굴조차 못보고 돌아가야 할 판국이다. 실망한 사돈은 그렇다 치더라도 낙담한 마누라의 얼굴을 생각건대 고개가 절로 떨구어진다. 진즉에 나서지 못한 자신이!, 평소 안부를 등한시한 날들을 뒤로 불쑥 찾아든 스스로가 부끄럽다. 촌부로 농투성이로 얕보던 지난날이 들켜버린 양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앉은자리에서 재차 의복을 매만지며 천장을 올려다보는 사돈은 첫 새벽 길을 재촉하면서 깃든 시장기를 은연중 잊은 지도 오래다. 씨앗 싸움으로 동네 창피를 당할지언정 정이 안 되면 핏줄을 핑계로 손자만이라도 도리를 내보고자 마음을 먹어보지만 그마져도 싶지가 않아 보인다.

“찬은 변변찮지만 많이 잡수십시오!”하고 영감이 권하는 점심상이 달갑지가 않다. 그렇다고 이대로 표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처음 혼담이 오갈 때의 마음으로, 하심으로 돌아가 최선을 다하리라 마음을 다잡는 사돈은 가마꾼을 불러 미리 준비한 두툼한 보자기를 전달 받았다. 상차림이 끝나 방을 나가려는 안사돈을 두고 겸연쩍고 무안한 표정으로 며느리와 손자가 갈아입을 옷이라며 은근슬쩍 밥상머리 아래로 밀어 놓고는 슬금슬금 눈치를 살핀다.

옷 보따리를 본 장모자리가 마지못한 듯 영감의 눈치를 힐끔힐끔 살피는데 영감은 아무 말이 없다. 쓰다 달다 무표정의 영감의 면상을 뒤로 장모자리가 옷 보따리를 품에 안아 지싯지싯 안방으로 자취를 감추는 뒤로 사돈은 의아한 표정으로 안도의 한숨이다. 송곳 끝도 아니 들어갈 참이면 거들떠보지도 안 할 옷 보따리가 안사돈의 손에 들렸다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성공이라 생각한 때문이다.

어색한 분위기 속의 이 모두가 꿈결만 같다. 사돈이 사돈 나름대로 온갖 셈으로 머리가 복잡하다면 영감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형편없이 돌아가는 집안 꼬락서니만 아니라면, 딸내미의 인생에 걸린 일이 아니라면, 외손자의 장래를 결정짓는 일이 아니라면 이렇게 마음이 조급하지도 가슴이 애타지는 않으리라!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야 하는지! 이런 경우 어떻게 처신을 해야 바른 처신인지! 오늘부로 두문불출로 방구석만 지키는 딸내미를 저 가마에 태우기는 태워야 하는데 속으로는 작은 실수로 인해 일이 된 통 틀어질까 싶어 심장이 쫄깃쫄깃하여 안달이다. 사돈은 이 애타는 마음을 알까?

일별 밥술을 뜨는 사돈의 눈치를 살피는데 벙어리 냉가슴 모양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게다가 사돈의 밥그릇은 차린 찬이 시원찮아선지 처음이나 지금이나 여전해서 더 불안스럽다. 할 수 없이 주인 된 입장에서 사돈의 시원찮은 젓가락질을 들어 누차 권하는 중에 점심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를 모르게 상을 물리고는 뻘쭘하게 자리만 지키고 앉았다. 그렇게 천장만 쳐다보고 앉았는데 마지막 용기를 낸 듯, 물 한 모금을 입에 머금은 듯 조심스럽게, 모기만한 목소리로 영감을 향해

“저~기! 사~돈! 우리손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요? 웬만하면 할비 된 입장에서 손자 녀석의 얼굴이라도 한번 볼 수는 없는지요?”하고 영감의 눈치를 보아 지나가는 말처럼 청을 넣는다. 사돈의 청에 영감이라고 망설일 이유가 딱히 없었다. 가는 소리를 용케도 알아들은 영감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여부가 있을 리 없지요! 하며 오히려 불감청이면 고소원이라고, 딸 가진 죄인이라고, 영감은 이제야 바라고 학수고대하던 대로 일 제대로 돌아가는가 싶어 굳었던 마음이 한결 누구려진다. 이는 꽁한 마음에, 아집으로 인해 지난번 같은 일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마음속 깊숙한 곳으로부터 자리 잡은 때문이기도 했다. 영감이 기렸다는 듯

“이보시게 임자! 가~는? 아니지 얼라 에미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가? 사돈께서 좀 보자고 하시는구먼! 어지간하면 좀 데리고 나오시게!”하며 안방을 향해 급하게 부르는데 이미 준비하고 기다렸다는 듯 그새 새 옷으로 곱게 차려 입은 딸내미가 외손자를 품에 안고는 고개를 숙여 다소곳하게 방으로 든다. 장모자리를 앞세워 뒤를 따라 사뿐사뿐 방으로 든 딸내미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한창 달달한 꿈결을 달리는 아기를 엄마에게 맡기고는 시아버지를 향해

“아버님 그간 기체 후 일향 만강 하셨는지요?”하며 두 손을 가지런하게 모아 이마까지 올리더니 나부죽이 큰절을 올린다. 그런 다음 제 서방을 향해서도 큰절을 올릴 적에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끓어 엎드려 나 죽었네! 하고 방바닥에 이마를 붙여 있던 빌어먹을 사위가 다리를 절룩거리며 일어나 엉거주춤 맞절이다. 그렇게 맞절이 끝나자 사돈이 며느리를 향해

“오냐! 그새 많이 야위었구나! 이 시애비가 너의 든든한 방패막이가 못되어 이날 이때까지 몸 고생, 마음고생만 모질게 시켰구나! 그런 처지에 시애비라 불쑥 찾아 들어 핼쑥한 네 얼굴을 대하고 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고 그저 미안키만 하구나! 온전치 못한 저 녀석을 서방이라고 만나 네가 덤터기로 고생만 하는구나!”하더니 품속을 뒤적거려 손수건으로 고이 싼 누리끼리한 색깔의 반지 하나를 꺼낸다. 한눈에 보아도 묵지해 보이는 것이 금덩이가 상당해 보이는 반지다. 눈에 익은 듯 반지를 본 처녀는 금세 얼굴이 노랗게 변하여

“아버님 혹시 어머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요? 혹 그새 돌아가시기라도...!”하며 말을 더듬어 두 눈 가득히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곧장 떨어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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