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65)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65)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2.05.23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귀싸대기가 얼얼하도록 맞았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찰거머리처럼 붙어 있느냐며 새파랗게 눈총이다
어째 요렇게 앙증맞고 귀여운 것이 세상에 나왔을까 싶었다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시집오기 전 친정아버지는 이유여하를 불문, 처녀가 눈물방울이라도 보일라치면 여자가 방정맞게 찔찔 짠다고 나무랐다. 그럴 때면 아버지가 한편으로 야속하기도 했지만 참을 수가 있었다. 또래의 머스마자식이 불식간 치맛자락을 들치는 등 부끄럽고 서러운 일을 당했어도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훔치며 속으로 삼킬 수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심정으로는 아버지에게 못난 딸이란 지청구를 들어도 당체 멈출 수가 없을 것만 같다. 차라리 재수 없는 년이라고 머리끄덩이를 들리고, 귀싸대기가 얼얼하도록 맞았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눈앞으로 별똥별이 번쩍하고 지나가도록 오지게 맞았으면 속이라도 시원하리라 여겼다.

기막힌 현실을 앞에 두고 시작된 울음이라 그런가? 터진 봇물처럼 눈물을 어째서 그리도 많은가 싶었다. 몸이란 게 몸이 아니라 눈물주머니만 같다. 흘리고 흘려도 한정이 없이 흘러나온다. 오지랖에서 넘쳐 홍수로 흘러내린 눈물이 앙가슴 위 적삼을 적시고도 남아돌아 아랫배에서 흥건하다. 언제 어느 때나 멈춰질까? 어둠이 이불이 되어 대지를 뒤덮어 자장가를 부르고 뒷산 부엉이가 잠들 무렵에 이르자 화수분만 같았던 물통도 어지간히 바닥을 보였는가? 찔끔찔끔 지지랑물이 되에 방울방울로 아롱진다. 눈물이 마를 즈음 문득 엉덩이가 따갑고 저리다.

솜을 겹겹이 누벼 푹신한 방석을 두고 어째서 가시방석이라 하는지!, 멀쩡한 하늘이 어째서 내려앉았다 하는지 현재의 처지를 들어 그 이유를 그제야 알 것만 같다. 안달이 난 표정으로 따갑기만 한 엉덩이를 들썩여 얼마를 더 앉아 있었는지를 모른다. 어느 순간 불도 켜지 않은 방안으로 희미한 달빛이 문틈을 헤집고는 새어들어 가로로 길게 드러누웠다. 오도카니 앉았던 처녀가 문득 생각이 난 듯 방문에 귀를 기우려보지만 문밖은 쥐 죽은 듯 고요하다. 밤을 빌어 짝을 찾는 풀벌레 소리만 요란하다. 허무한 마음에 방문을 열자 달빛이 얼굴로 끼얹듯 앞뒤를 다투어 밀려든다. 뒤로 보이는 하늘로 별빛만 이리 반짝, 저리 번쩍하여 요란하다. 눈물바람의 처녀의 마음도 모르고 제각각 아름다움을 시샘하듯 휘황찬란하다.

서늘한 밤공기가 처녀의 가슴으로 밀려와 이슬로 맺히는가 싶더니 서리가 되어 엉기성기 엉킨다.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짓무르다 못해 찢겨진 가슴을 온통 난도질이다. 한기를 느껴 부르르 떠는데 어느새 얼음으로 변했는지 산산이 부서진 유리처럼 사금파리조각으로 부스스 흘러내린다. 추운 것도 잠시, 멀쩡한 인생이 여기에 이르러 기어이 끝나는가 싶어 현기증이 일어 어지럽다. 잘라진 무 토막처럼 삶의 한 자락이 잘라진 처녀의 머리 위로 하얗게 밤이 지난다.

주인이 배가 부르면 종도 덩달아 배가 부른가? 아무도 저녁을 먹었나? 하고 묻지 않아서 그런가? 더 서글픈 밤이 흘러 어느새 동녘하늘이 불그스레하다. 구겨진 삶에도 아침을 맞아 태양은 간밤의 슬픈 이야기를 뒤로 하고 변함없이 밝기만 하다.

예상은 했지만 다음날부터 시부모의 태도가 확연하게 달라지기 시작한다. 전에 없이 희멀겋게 들어내 보이는 눈자위로 시무꼬투리 같은 억센 가시가 깃들어 보인다. 정이 넘치던 서글서글한 눈매는 어디로 가고 감히 쳐다보기조차 무서워 볼 때마다 가슴이 섬뜩섬뜩하다. 게다가 앙숙지간으로 지낼 땐 뒷모습조차 보기 힘들었던 동네 처녀의 부모가 화해의 술잔을 나눈 뒤로부터는 뻔질나게 들락거리다. 그때마다 아직도 찰거머리처럼 붙어 있느냐며 새파랗게 눈총이다. 눈치가 없으면 코치라도 있어야지 나무라는 표정이다. 딸의 행복을 위해 악역을 차처하고 나선 모양이다. 어지간하면 이쯤에서 물러나지 하고 윽박지르는 듯도 싶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새벽별이 총총한 날, 처녀는 눈물바람으로 옷 보따리를 하나를 꾸렸다. 미련이 남는 듯 방안을 휘 둘러본 뒤 방문을 열어 마당을 가로지르는데 등 뒤로부터

“인자 떠나가나 봅니다. 에고 불쌍한 것!”하는 말에 이어

“미안하구나! 이게 어찌 너의 죄겠느냐! 사후 내세가 있다면 그때는 아들 잘못 둔 죄로 군말 않고 우리내외가 네 발끝에 엎드려 죄 닦음을 할까보다”하며 언제까지나 내다보고 있더란다. 그 밤으로 친정으로 돌아온 처녀는 ‘못 된 놈’을 입에 달고 살았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토막으로 잘라진 옷고름에서 완전한 독립을 선언 받은 처녀는 다른 살 길을 은근하게 알아가는 중이었다. 그즈음 또 다른 처녀는 방구석에서 배가 고파 울어 보채는 아기를 안아 넘칠 듯 퉁퉁 불은 젖을 물리고는 맥을 놓고 앉아있었다. 소박을 맞은 사연이야 도찐개찐으로 별반 차이가 없다지만 현재의 처지에서 금명하게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아이를 놓고 나자 축복보다는 삶의 무게만 나날이 더해간다. 시시때때로 맞이하는 친정부모의 한숨이 처녀의 가슴을 천근의 무게로 짓누른다. 천진난만해야할 아기마저 은근슬쩍 눈치를 보는 낌새가 역력하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다정하게 안아주기는커녕 볼 때마다

“에이~고! 저~ 불쌍한 것을 저걸 어떡할거나! 아비 없는 자슥, 저걸 어쩌면 좋을 거나!”하며 한숨을 짓다보니 슬슬 멀리하는 기색이 한눈에 또렷하다. 축생도 싫고 좋음을 눈치 것, 직감으로 느끼는데 하물며 사람새낀데 어찌 못 느낄까? 비록 어리다지만 만물에 영장이라는 인간이라는데 피부로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쩌다 외할머니라고 품에 안아 둥개둥개 어를라치면 얼굴은 벌써 처녀를 향해 있다. 마뜩찮은 표정이 만면에 가득하다. 주리가 틀리는 듯 몸을 뒤틀고 뻗대어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듯 얼굴 근육이 실룩거린다. 속 모르고

“어린놈이 버르장머리 없이 귀엽다고 한번 안아 주려했더니 제 아비를 닮아서 그런지 행실머리가 개차반이네!”하는데 옆에서 듣는 처녀는 억장이 무너진다. 친정으로 쫒아 보낸 것만 해도 밉기가 한량없는데다가 그 날수록 찾지 않은 사위가 못마땅하다 보니 급기야 개차반이란다. 그 와중에 품 안서 버둥거리는 외손자의 실룩거리는 입을 보고는

“못난 놈의 자슥! 엣~다 외할미가 그렇게 탐탐치가 않튼?”하며 던지든 아기를 건네곤 심통이라도 난 듯 휭하니 방을 나가버린다. 한바탕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기분이다. 만약 친정어머니의 등판이 빨래판이라면 양잿물을 듬뿍 푼 거친 옷감으로 팍팍 치대고 싶은 심정이다. 기분 같아서는 너덜너덜, 헤질 때까지 박박 문지르고 싶다.

“왜? 괜한 아이에게 화풀이야! 밉고 못난 딸내미를 지어 박더라도 박을 것이지!”하고 울컥하는 울분으로 인해 입에서 가시가 돋는 그런 날이면 처녀는 품 안에 든 아기를 내려다보며

“이것아 너는 어째하여 이 세상에 나와 팔자에도 없는 설움을 받고 사느냐! 태어나기도 전에 아비에게 버림 받은 이 세상이 무어야 좋아 경칩 날 개구리 나오듯 불쑥 튀어 나왔느냐! 누구를 찾아서 울기는 또 왜 그렇게 떠나가라 우느냐? 무엇이 그리도 좋아 ‘까르르 카~득! 까~득’웃기는 대책 없이 웃느냐? 이 기막힌 나는 어떡하라고! 이 어미는 앞으로 어떡하라고, 그렇더라도 이 어미가 내어주는 젖일랑 배부르게 먹고, 병치렐랑 말고 무럭무럭 자라 거라!”하며 의미 없는 하루하루를, 까닭 없이 죽이고 있었다.

그즈음 어머니는 애기를 본다는 핑계로 틈틈이 그 집을 드나들고 있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마주하는 애기가 사랑스럽고 귀여웠다고 했다. 어미의 가엾은 처지를 잊은 듯 천사처럼 방긋방긋 웃는 모습이 꼭 인형 같이 깜찍해 보였다고 했다. 또 처녀가 아낌없이 내어주는 젖을 빨아 먹는 모습이 더 없이 사랑스러웠다고 했다. 마음이 동해 고사리 같은 오목조목한 손을 잡을 때는 괜스레 가슴이 쿵덕거리기까지 했다고 했다. 어째 요렇게 앙증맞고 귀여운 것이 세상에 나왔을까 싶었다. 하지만 모자지간의 현재의 처지를 헤아려볼 때 아기를 갖는다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후일 시집을 갔을 때 아기를 갖는 것에 대해 신중을 기하리라 홀로 생각했다고 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