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76)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76)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2.08.0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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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행연습으로 보아둔 뒷산 소로 길을 통해 꽁지 빠져라 삼십육계 줄행랑이다
자나 깨나 온통 얼굴도 모르는 손자 걱정뿐이다
애먼 며느리를 불러다가 예전처럼 노예나 종처럼 부려먹을 심보예요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그 시각, 느지막하게 잠에서 깬 그녀는 시어머니 방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방안을 온통 헤집어 비녀를 포함한 금붙이 등 패물과 얼마간의 지전을 품속에 갈무리할 적에 뒷산 서방으로부터 길고도 다급한 신호가 귀전을 파고든다. 불자동차 사이렌처럼 연신 울어대는 부엉이 울음소리에 손은 떨리고 마음은 두서없이 바쁘다. 수박 겉핥기도 아니고 이럴 줄 알았다면 다음날로 계획을 미루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손을 쓴 마당에 돌이킬 수는 없었다. 할 수 없이 미리 계획한 대로 평소 눈에 익혀둔 시어머니의 방만 대충 털어서는 황급히 대문을 열고선 나선다. 예행연습으로 보아둔 뒷산 소로 길을 통해 꽁지 빠져라 삼십육계 줄행랑이다.

시어머니의 방만 해도 시간이 촉박한 판국에 전답과 집문서 등이 보관된 사랑방은 엄두를 내지 못함은 당연했다. 쇳대(‘열쇠’의 방언)도 없거니와 어디에 무엇이 보관되어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평소 찻상이라도 차려 시아버지라 받들어 사랑방을 드나들고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서 익혀두었더라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천성이 게으르고 대나무처럼 뻣뻣하여 곧은 손가락에 솜씨가 메주인 그녀의 복은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진작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그림 속의 떡이나 마찬가지다. 결과적으로 두 년 놈이 머리를 맞대 꼼꼼하게 짠 각본이 빈틈을 보인 꼴이 되었다. 최후에는 선(善)이 악(惡)을 이긴다는 논리에 따라 노리고자 노린 것은 아니지만 사건 현장으로 불같이 뛰어든 아들로 인해 사전에 올 촘촘한 그물로 정치망처럼 짠 계획이 수표가 돌아간 격이 되어 버렸다.

집안으로 보아선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아깝고 속은 쓰리지만 떠나버린 버스를 향해서 손을 흔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뒷날을 위해 지서에 들려 잃어버린 금전과 패물의 모양과 개수, 그년의 인상착의를 신고하는 것으로 사건을 일단락이다.

그렇다고 쉬 잊을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시아버지도 아들도 대단한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시어머니의 가슴앓이에 비하면 코끼리 코에 비스킷에 불과했다 겉으로는 좋다고 비실비실 웃었지만 내심은 그게 아니었다. 제 발등을 제가 찧은 격으로 그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었을 뿐 시어머니는 그저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죄는 지은대로 받는다고 며칠을 두고 방구석에 들어앉아 벙어리 냉가슴 앓듯 끙끙 앓는다. 게다가 속고 속은 중에 손자라는 명목으로 살결도 보들보들한 아기를 품에 안고 보니 방실방실 웃어 주던 그 모습이 눈앞으로 삼삼하게 밟힌다. 그렇다고 손자가 아주 없었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산 너머 물을 건너 알짜배기 며느리가 손자를 낳았질 않는가? 틀림없이 집안을 들어 유일무이의 장손을 낳았다는 소식이 동네를 들어 파다하게 떠돌고 있질 않는가?

사돈댁에 진짜 손자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가장먼저 떠오른 것이 어떻게 생겼을까? 집안내력으로 머리뒷꼭지가 도드라졌을까? 지 애비는 닮았을까? 하는 등등의 궁금증이었다. 나아가 소박을 맞은 처지로 찾아든 친정이라 오죽이나 괄시가 심했을까 싶었다. 이런저런 핑계로 눈칫밥에 마음고생 등으로 인해 몸이란 것이 대나무처럼 마른 장작처럼 빼빼 마르지나 않았을까 염려스럽다. 그 몸에 젖이라도 잘 나와야 할 텐데! 그마져도 시원찮아 내 귀한 손자가 배는 곯지 않은지, 산골이나 촌락 등지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너나없이 흙을 파먹기고 살기에 죄다 땅강아지가 된다는데...! 입는 옷도 부실해서 불알이고 고추고 간에 아랫도리를 훤하게 들어낸다는데...! 하는 이런저런 생각에 애간장이 녹아난다. 자나 깨나 온통 얼굴도 모르는 손자 걱정뿐이다. 그저 보고 싶은 마음에 며느리가 살고 있다는 방향으로 가로 놓인 높은 산을 올려다보는데 나오는 것이라곤 땅이 꺼져라 한숨뿐이다.

여건은 마련되었지만 풀어할 난제가 길을 가로 막고 있다. 난제를 풀려면 누구라도 먼저 나서야 하는데 영감도 아들도 천년바위처럼 꿈쩍을 않는다. 그렇다고 없는 양 잊어서 시어머니 자신마저 마냥 뒤로 물러나 있을 수는 없다 여겼다. 애타는 마음과는 달리 무심하게 하루하루 시간만 흘려 가는데 환장할 노릇이다. 급기야 이래서는 진정 못살 것 같아 참고 참아오던 마음이 폭발한 시어머니가 아들을 불러 어떻게 대책을 강구해 보라고 닦달을 하자

“어머니가 헌옷보따리 하나 달랑 던져놓고는 잡아 죽일 듯이 쫓아 보내고선 이제 와서 왜 그러세요! 울며불며 매달려도 칼로 옷고름을 잘라 인연을 끊고는 나보고 어떡하라 구요!”하며 오히려 원망만 가득할 뿐 좀체 나설 기미가 없어 보인다. 어쩔 수 없이 사랑방에 들어

“영감! 영감님은 어떨지 모르겠거니와 나는 이렇게는 정영 못 살아요! 영~감! 아 글쎄 우리 새 애기가 애기를 낳데요! 우리 집안의 대를 이를 귀한 손자를 낳데요!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둘 건거요! 이집 장손인 데요! 사대독자인데 그냥 내 몰라 할 거요!”하고 눈물로 채근을 하자

“그 애가 어째 우리 며느리요! 이미 소박을 놓은 처지에...! 손자라면 피가 섞여 또 모르겠거니와 하여간 임자가 저지른 일, 결자해지라고 임자가 알아서할 일이지...! 만정을 끊어 모질게 쫓아 보낼 때는 언제고...!”하며 부처님도 자식 앞에는 돌아앉는다는데 요지부동이다.

사실 사우쟁이, 아들도 부인이 낳았다는 아들을 보고 싶었다. 꿀 먹은 벙어리모양 마음속에 든 말을 차마 못했지만 일촌인 어머니보다는 무촌으로 부인이 보고 싶었다. 그저 보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다. 얼마나 야위었을까? 나를 닮기는 닮았을까? 피가 섞었다면 하다못해 발가락이라도 닮았겠지! 하고 생각을 더듬어 궁금해 했다. 눈웃음이 선선한 부인과 얼굴도 모르는 아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잠 못 드는 늦은 밤이면 밤마다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듯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밤 부엉이가 구슬프게 짝을 찾아 우는 밤이면 베갯머리를 적시는 하염없는 눈물을 주체하지를 못했다. 듣고 보는 사람만 없다면 꼭두각시를 흉내하는 어린아이처럼 한바탕 ‘엉엉’울고 싶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요구에 얼싸 좋다고 나서지 못하는 데는 그간 지은 죄도 있고 또 처음 찾았을 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장인어른에게 내뱉은 것이 발목을 잡는 통에 주저하고 하고 있었다. 또 시아버지는 시아버지 나름대로 지체 높은 양반이란 체면을 내세워 아무리 사돈지간이라지만 산촌의 농투성이 촌부에게 아쉬운 소리로 고개를 숙이기는 정영 싫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런저런 핑계로 인해 무심한 세월만 흘러가는 중이었다.

결국 몇 번의 애원과 애걸 끝에 시어머니는 마지막 남은 패물인 금가락지를 빼서는 눈물바람으로 하소연이다. 진정 그립고 보고 싶어 죽겠다고 애원이다. 제발 내 며느리 좀 데려와 달라고, 손자의 얼굴을 더도 덜도 말고 한번만 보고 죽었으면 원이 없다고 밤낮없이 졸라댔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윗대로부터 맏며느리에게만 대물림하여 오는 금가락지까지 내놓은 마당에 앞으로 모든 살림살이는 새아기에게 전적으로 맡긴다며 제발 발걸음을 해 달라고 하루같이 눈물바람이다. 하지만 아들은 철석간장으로 들은 체도 안 한다. 게다가 부인을 들어 살림을 전적으로 맡긴다는 말에는

“그럼 어머니는 이 마당에도 애먼 며느리를 불러다가 예전처럼 노예나 종처럼 부려먹을 심보예요!”하며 ‘퉁퉁’부은 얼굴로 요지부동이다. 어미의 진정어린 말에 이런저런 구실을 붙여 니미락내미락(‘오락가락’의 방언)하는 아들이다.

그 진실한 내막은 알 수 없는 시어머니는 가짜 손자 사건으로 인해 아들이 여자에게 질린 양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조강지처를 잃고 불여우의 꿈을 깨고 보니 여자란 죄다 요물이란 선입감에 사로잡혀 징글징글하다 밀어내고 있다 여겼다. 그럴수록 며느리가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시어머니는 이대로 아들이 폐인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는 없다 여겼다. 하루 속히 대책이 필요하다 여겼고 여자로 인해 생겨난 병이라 여자가 약이라 여겼다. 결국 시어머니 스스로 내린 답은 소박을 놓아 내쫓은 며느리가 돌아와야 집안이 재대로 선다는 것에 결론을 두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하루하루가 조바심으로 안달복달이다. 결국 아들이 미적거리는 일에 영감이 답이라는 결론에 무시로 사랑방에 들려서는 눈물로 애원하다가는 이러다가 귀한 아들을 잡겠다고 엄포를 놓기에 이른다. 아들이 까닭을 알 수 없는 마음의 병을 얻었다고 하소연이다. 저러다가 폐인으로 전략하면 사후 조상님을 무슨 면목으로 뵐 것이며 어떻게 책임을 질 거냐며 눈을 치켜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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