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68)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68)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2.06.13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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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배기(‘막걸리’의 방언)한 주전만 시키고 보니 안주라 내온 것이 꼴불견으로 가관이다
팔딱거리는 숨결마저 없었다면 그야말로 오늘이라도 초상을 치를 판이다
밥 한번 제대로 먹으라고 빈 말이라도 한마디 못 건넨 자신이 더 미웠던 것이다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영감이 술청에서 생각보다 이른 날에 정신 줄을 놓은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소설 삼국지에 등장하는 관우와 장비를 비롯하여 많은 장수들이 말술을, 항아리를 통째로 단숨에 비운다지만 그들의 술안주 면면을 살펴보면 특급 중에도 VIP급의 최상급이다. 소를 잡고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구워 먹은 덕분에 두주불사(斗酒不辭), 부어라 마셔라 노래를 불러도 견디어 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비해 영감의 술상에 올라온 술안주는 안주라 하기 에는 초라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딸내미 혼수 비용으로 진 빚도 빚이려니와 호주머니가 날이면 날마다 날파리(‘하루살이’의 방언)가 날아다는 듯 가볍다. 그렇다고 들끓는 화를 누그러뜨리려면 아니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딱한 형편에 맞추어 달랑 탁배기(‘막걸리’의 방언)한 주전만 시키고 보니 안주라 내온 것이 꼴불견으로 가관이다.

늦은 감은 있지만 따지고 보면 안주라도 썩 괜찮았다면 그 날 수에 쓰러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헌데 영감은 일 년이 가도록 소기국물은 언감생심으로 뭇사람들이 돼지비계라며 푸대접으로 무시하지만 그마져도 두서너 번이 오감타. 사정이 이러할 진데 영감의 술상에 안주라 오른 것이라곤 기껏해야 군둥내(‘군내’의 방언)가 물씬 풍기는 김치쪼가리 서너 개가 전부다. 엽전 깨나 쩔렁거린다면 안주도 제멋대로 골라 기름진 안주로 먹겠지만 호주머니마다 먼지만 풀썩, 빈 털털이 주제에 어디 가당키나 하겠나! 그마져도 동네에서 이웃사촌으로 안면이 있다 보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매번 그런 행운이 따르는 것도 아니다. 행여 주모가 제 멋에 겨워 심통이라도 난 그런 날이면 비틀어지고 말라빠진 김치마저 아깝다 싶은지 삐딱한 상위로 짝이 맞지 않은 젓가락 한 매와 술 한 주전자가 전부다. 또 어디에서 뺨을 맞았는지 화풀이 삼아 술상을 엎을 듯 내오는 그런 날이면 적선으로 내주는 왕소금을 찍는 것으로 안주를 대신이다.

하지만 그동안 영감이 쳐한 현실의 자세한 내막을 알 리 없는 장모자리는 술청에서 세상 편하게 엎어지고 자빠져서 늘어져버린 영감의 꼬락서니만 남들 보기에 부끄럽단다. 저 인간이 내 남편이고 소박맞은 딸내미의 아비인가 싶다. 길을 가다 개똥을 밟은 모양 진즉에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려 버린다. 다시 보기 싫을 만큼 천하에 꼴불견이라 기어이

“뭘 잘했다고 천 날 만날 술만 퍼 마시길 마셔요! 이기지도 못하는 술을...! 내 그렇게 펴 마실 적에 오늘이 올 줄 진즉에 알아 봤소! 그리고 이 웬수같은 영감탱이야! 그렇게 펴 마셨으면 곱게 집으로 돌아와 나 죽었네! 하고 지성으로 잠이나 잘 것이지 이게 무슨 경우 없는 꼬라지란 말이요!”하고 입에 게거품을 물어 나무랄 대로 나무라다가는 성질대로 장지문을 왈칵 밀치자 부서질 듯 ‘와장창’열린다. 열린 문을 통해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든다. 벌겋게 달았던 얼굴로 끼얹는 서늘한 바람 때문인지 불같이 일었던 부아는 점차 잦아들지만 가슴 한구석은 여전히 꽉 막힌 듯 답답하다. 참다 참다가 기어이 앙가슴을 풀어헤쳐 손부채로 활활 부치는데 코끝으로 지린내가 찌릿하게 풍겨온다. 문득 생각나는 바가 있어 돌아다보니 영감이 누운 자리 아래로 반원으로 둥그렇게 그려가며 노랑물이 질퍽하게 흘러나온다.

술을 먹은 개라더니 별 꼬락서니를 다 본다 싶은 생각에 연신 영감을 흔들어보지만 나는 통나무요! 요지부동이다. 새삼 부아가 치밀어 올라 양손으로 번갈아 뺨을 후려치고 허벅지를 대꼬챙이로 찌를 듯 꼬집어보지만 송장처럼 꿈쩍을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아랫도리고 윗도리고 간에 홀라당 벗겨 알몸을 만든다. 하지만 영감은 여전히 나 죽었네! 하고 나무토막처럼 미동도 없이 뻣뻣하기만 하다. 미움이 쌓여 수치를 주고 무안을 주고자 홀라당 벗긴 몸이건만 마누라의 눈에 때 아니게 이슬이 고인다. 얼굴이야 늘 보아 골 깊은 주름이 가득하여 곰삭았다는 것을 진즉에 알았지만 대명천지, 밝은 대낮에 영감의 몸을 실재로 대하고 보니 초라하기가 이를 데 없다.

중매쟁이의 말만 믿고 얼굴 한번 못 보고 팔려오듯 시집을 와서 어느 정도 정이 들었을 적에 얼굴을 파묻어 사랑을 나누던 그 튼튼했던 가슴살을 다 어디로 갔을까? 지금에서야 가만히 내려다보노라니 갈비뼈만 앙상하다. 바람이 걸리지 않은 그물처럼 ‘숭숭’뚫어져 보인다. 뱃가죽이라고 다를까? 일평생을 농투성이로 처자식을 먹여 살린다고 험한 세상을 동분서주로 살다보니 등짝에 달라붙은 듯 홀쭉한 것이 온통 주름투성이다. 푹 꺼져 내려앉은 뱃가죽 위로 팔딱거리는 숨결마저 없었다면 그야말로 오늘이라도 초상을 치를 판이다.

점차 눈길이 아래로 내려오는데 불같이 치솟던 부아는 어디로 가고 꾸역꾸역 울음보가 터진다. 자신도 모르게 옷소매로 눈가를 훔친다. 언제 어느 때 이렇게 여위다 못해 곰삭아 버렸을까? 차돌처럼 튼튼했던 그 많던 근육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사시사철 농사일로 햇볕에 그슬리다보니 사지란 것이 이집트 피라미드 아래에 깃든 미라처럼 거무튀튀한 것이 빼빼 말라 비틀어져 앙상하다. 저 부실한 다리로 어떻게 들로 산으로 다녔을까 싶다. 저 부실하고 뼈만 남은 팔목으로 쟁기질을, 낫질을, 호미질에 농사일을 어떻게 했을까 싶다. 가족이란 울타리가 아니었다면 있을 수 없다 여겼다. 게다가 딸자식의 생명을 가져다준 그 실했던 물건마저 사타구니 아래로 맥없이 쳐져서 늘어졌다. 가을철 싸리나무로 엉기성기 엮은 채반 위에서 까맣게 말라가는 무말랭이처럼 쪼글쪼글한 것이 볼품이 없다. 떨어지지 않으려 기어이 붙어 있는 형세다. 고춧가루를 털어내고자 물로 씻어낸 희멀건 오그락지와 다를 바 없다. 가위로 잘라 길에 던져보았자 개도 안 물어갈 물건처럼 쓸모없이 보이는데 또 설움이 가슴 저 밑으로부터 울컥한다. 이대로 술기운에 밀려 덜컥 죽어버리면 어떡하나 싶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기분이다.

문득 영감의 죽는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하고 가슴이 덜컹하고 내려앉은 기분이다. 죽음이 가엽고 사랑이 떠나가서가 아니다. 논밭에서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농작물을 어이 할꼬 싶은 것이다. 가을걷이는 뉘가 있어 할거나 싶다. 내 한입도 버거운데 불청객보양 보태버린 딸내미의 입이, 외손자의 입이 가슴을 짓누른다. 이 집 저 집을 들어 진 빚은 또 어떻게 하란 말인가? 줄잡아 수년은 허리띠를 줄라 메고선 갚고자 했는데 이대로 죽어버리면 나 혼자 어이하란 말인가 싶다. 이대로 영감이 생명줄을 놓으면 남은 사람은 어떻게 살란 말인가 싶다. 혼자 남아 빚에 쪼들리고 시달리다 쓸쓸하고 초라하게 죽으란 말인가? 죽은 자의 명복은, 연민의 정은 어디로 가고 제 살 길만 생각하다니 갑자기 더 없는 속물이란 생각이 든다. 남들을 빌어 어째 그럴 수가 있나 싶어 흉을 보았지만 오히려 더하다 싶다. 게다가 한 이불을 덮고 사는 마당에 어제 어느 때부터 영감이 삶의 도구로 변했는가 싶다. 이기적인 마누라를 피해 스스로 저승길을 택하지나 않을까 두렵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느 순간부터 잠든 아이처럼 영감의 숨결이 고르다는 것이다.

문득 안방을 건너다보는데 그동안 미워도 가엽다는 생각에 두둔하고 나섰던 딸내미가 원수처럼 여겨진다. 제 아비가 이 모양, 이 지경에 이를 때까지 시집만, 인간모양새만 갖춘 지 서방만 찾는 딸년이 내 뱃속에서 나온 피붙인가 싶다. 출가외인이라지만 너무 한다 싶었다. 이 모두가 저 아둔한 딸내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자 당장이라도 시집으로 돌아가라고 고래고래 소리치고 싶다. 꼴도 보기 싫으니 어디라도 좋으니 나가버리라고 소리치고 싶다. 하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다. 딸년의 죄도 죄려니와 나날이 남기는 밥그릇을 두고 그동안 밥 한번 제대로 먹으라고 빈 말이라도 한마디 못 건넨 자신이 더 미웠던 것이다.

기왕지사 벌어져버린 기막힌 사항을 두고 이제 와서 어쩔 것이냐! 끓어오르는 설움과 부아를 눌러 잠재우고는 방을 치워 걸레질이다. 미우나 고우나 백년해로해야할 내 영감인데 싶은지 영감의 몸을 구석구석 깨끗한 물수건으로 찬찬히 닦는다. 닦는 중에 다리목 팔목을 잡다간 또 눈물 바람이다. 살점이라곤 찾아볼 길 없이 뼈마디만 조각조각 잡힌다. 보름상간에 얼마나 심신이 고달프고 아팠으면 이처럼 골았는가 싶었다. 모녀가 밤낮으로 달달 볶아서 긁어대는 바가지 때문에 한이 가슴으로 올라 곡기는 끊고는 몸에 해로운 술을 탐해서란 생각에 더 서럽다. 대충 자리를 보아 방을 나서는 마누라는 무슨 생각에선지 이웃한 호명댁을 찾았다. 마침 집에 있던 호명댁을 보고 다행이다 싶은 장모자리가

“호명댁아~ 집에 혹 마른 명태가 있으면 한 마리만 꿔 주게!”하자 호명댁이 뜨악한 표정으로 이유를 물어보려다 참는 듯 입만 달싹달싹, 표정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바깥양반의 술병을 이미 예상하고 있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날 수에 술판이라니 견뎌 낼 장사가 없다 여기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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