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74)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74)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2.07.25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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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서를 쓰라면 손가락을 깨무는 시늉이라도 할 걸 그랬다 싶었다
국을 뜨는데 급기야 눈물방울이 국솥으로 방울방울 떨어진다
아무래도 며느리와 연관이 있어 보인다는 언질에 더욱 마음이 불안하다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빈 가마를 대하는 시어머니는 낙심천만이다. 멀쩡하던 땅이 꺼지는 듯, 우주를 유영하던 혜성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손자도 보고 싶고 며느리도 보고 싶은데 빈 가마라니! 비 맞은 꺼벙이처럼 추레한 모습으로 쓸쓸하게 돌아서는 아들을 불러 세워

“내 며느리는? 내 손자는?”하고 물었을 때 아들은

“이게 다 엄마 때문이야!”하며 원망스러운 눈길로 쳐다본다. 그 말에 묻고 싶은 말을 잊어버려 한참이나 멍하게 서있던 시어머니가 제정신이 돌아왔을 때

“가~ 가! 다시 오기 싫다던?”

“...!”

“네~ 장인장모가 감싸 안아 안 보내 던다던?”

“...!”

“만나 얼굴은 보았니?”하고 시시콜콜 물었지만 꿀 먹을 벙어리처럼 마냥 입을 봉한 아들의 태도에 화가 난 시어머니가 급기야

“야~ 이놈의 새끼야! 네 새끼 놈의 얼굴은 보기나 했니? 가~ 가! 살아 있기나 하든?”하고 역정으로 물었지만 아들은 실어증에라도 걸린 듯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난생 처음 오냐오냐 하던 어머니로부터 험한 말을 들었지만 입을 열수가 없었다. 답답하기는 아들도 마찬가지다. 처갓집에서 있었던 일들을 곧이곧대로 어머니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사실을 안다면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가 실망한 어머니의 매질에 살아남지를 않을 것만 같다. 왜 그랬는지 뒤늦게 후회가 막심하다. 빈 가마로 고개를 넘을 때서야 비로써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제 발로 친정으로 가든, 소박을 맞아 친정으로 가든 잘 잘못을 떠나 무조건 남자가 빌어야 한다는 사실이 왜 그때서야 생각났을까? 입에 발린 말일지언 정 앞으로 절대 이런 일이 없을 거라며 각서라도 쓰라면 써야한다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 혈서를 쓰라면 손가락을 깨무는 시늉이라도 할 걸 그랬다 싶었다.

고갯마루에서 내려다보는 동네가 평화롭기만 하다. 저곳에 내 부인이, 내 아들이 숨 쉬고 있다는 생각에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올망졸망한 굴뚝마다 저녁밥 짓는 연기를 말아 올리고 있다. 가마솥에서 몸집을 부풀리는 호빵 같은 초가지붕이 점점이 들어박힌 모습이 그림만 같다. 저녁 햇살을 비겨 맞는 노란색 물결이 꿈결만 같다. 용트림으로 하늘로 머리는 푸는 푸른 연기의 그늘을 밑은 동네 개들이 뒹굴어 난장질이다. 문득 서쪽하늘로 얼굴을 드러내는 개밥바라기가 서럽게도 아름답다. 처연한 얼굴위로 밤이 내려앉는다. 때아니게 눈 주위로 밤이슬이 송골송골 매달린다.

어머니의 그늘진 얼굴에서, 실망하고 낙담한 얼굴을 대하는 아들은 고개를 들 수도 한마디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며느리를 맞는다는 들뜬 기분에 준비를 했는지 부엌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고깃국냄새가 미각을 자극하기 보다는 가슴을 짓눌러 온다. 갖은 양념에 정성을 들인 고깃국이건만 주인을 잃고 보니 허무맹랑할 뿐이다.

시어머니와 아들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잠시잠깐이나마 대화를 나누는 것도 어떻게 보면 호사다. 어느 때부터 시어머니의 뒤통수가 따갑다. 무수한 바늘이 날아들어 꽂히는 기분이다. 그 사실은 아들의 눈동자에서 확연하다. 언제부터인가 며느리의 방문은 열었고 상체를 문지방에 기대어 표독스러운 눈동자로 노려보는 모습이 아들의 눈동자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겁을 집어 먹은 아들도 더 이상 자리본전이 어려운지 슬금슬금 뒷걸음질로 물러나고 있다. 못 본 척 시어머니도 느릿느릿 부엌으로 향한다.

열 서너 발걸음의 길고 긴 부엌행이다.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게 부엌으로 들어선 시어머니가 이제는 됐다. 하는 안도감에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는데 등 뒤로 방문 닫히는 소리가 지축을 울리는 천둥소리만 같다. 까딱 잘못했으면 부엌바닥으로 자지러질 판이다. 시장을 보아 올 때부터 예사롭지 않은 눈초리였다. 이 판국에 멋모르고 며느리가 가마를 타고 왔다면 그 자리에서 귀싸대기라도 올려붙여 쫓아낼 기세였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시어머니가 혼잣말로

“오냐 그래 잘 안 왔다. 험한 꼬락서니를 안 당할 참이면 생각 잘 했다”하고 중얼거리며 익숙한 손길로 늦은 저녁상을 꾸역꾸역 차린다. 밥을 푸고 반찬을 접시에 담고 마지막으로 국을 뜨는데 급기야 눈물방울이 국솥으로 방울방울 떨어진다.

“오늘 이후 나 혼자서 어이할꼬! 외롭고 고단해서 어이할꼬? 그래! 이 모두가 네 말대로 이 어미 때문인데 누굴 원망할꼬!”하고 옷고름을 접어 눈두덩을 훔치는 시어머니는

“재수 없는 년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재만 남은 아궁이에서 나는 연기가 왜 이리도 맵다더냐?”하더니 부엌바닥을 향해 ‘팽’하니 코를 푼다. 원통하고 애절한 마음을 달래려는 심산만 같다.

그날로 마음에 병을 얻은 시어머니는 생으로 병이나 나흘간이나 앓아누웠다. 하지만 시어머니에게는 그마져도 호강으로 언제까지나 자리보전으로 일관할 수는 없었다. 나흘 만에 겨우 정신을 차려 일어나보니 집안은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다. 무엇하나 제자리에 붙어 온전한 것이 없다. 집안 구석구석으로 온통 거미줄에 먼지투성이다. 미열로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동분서주, 대충 정리를 하고보니 몸이 아픈 것을 둘째고 이제 손자인지 며느리인지 죄다 꼴도 보기가 싫다. 저런 근본도 모르는 인간 같잖은 계집년을 집구석으로 끓어 들이다니...! 덤으로 삼대독자로 귀하게만 여기던 아들마저 어미의 등골을 갈아먹는 각다귀로, 원수만 같아 보인다.

그 와중에 친척 집에 잔치가 있다는 연락이 왔다. 가까운 피붙이로 집안 식구 모두가 참석해야 하는 자리다. 한데 누구보다 앞장서서 서둘러할 며느리는 몸이 아프다는 구실아래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아랫목으로 드러누워 버린다. 어제까지만 해도 ‘하하하 호호’멀쩡했는데 친척 집 잔치라는 소리에 방문을 닫아걸고는 곧장 죽어간다는 듯 앓는 소리다. 할 수 없이 손자와 며느리는 남겨 놓은 채 집안 식구 모두가 집을 나섰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잔치 집에 앉아 있어도 무언가 꺼림칙하여 마음이 편치가 않다. 음식을 먹는데 입으로 들어가는 건지 코로 먹는 건지도 모르겠거니와 먹는 음식마저 그 맛이 그 맛이다. 떡 맛도 밥맛 같고, 밥맛도 떡 맛 같다. 몸은 비록 잔칫집에 있지만 정신은 온통 떠나온 집에 쏠린 탓이다.

동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근자 며칠 전부터 낯선 사내 하나가 집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며느리와 연관이 있어 보인다는 언질에 더욱 마음이 불안하다. 그때 아들이 다가와 아무래도 집에 가봐야 할 것 같다며 귀띔이다. 평소 같으면 이유를 물어 봄직도 하지만 그저 빨리 가보라며 손짓으로 재촉이다.

아들도 모처럼 만에 친척들을 만난 자리에서 몇 순배의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자연스럽게 애기를 안고 집을 찾아든 여인에 관한 대목에 이르렀다. 아들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풍문에 의해 친척들 간에는 이미 여인과 아기의 내력이 관심의 초점인 된 상태였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다는 듯 중인환시, 귀는 쫑긋 세우고는 한마디라도 놓치면 큰일이나 날 것처럼 상체까지 깊숙하게 숙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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