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70)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70)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2.06.27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런 저런 일 등을 많이 경험해 본 사람이 아무래도 노련했다
어쩌면 과일 서리를 나갔다가 주인에게 붙잡힌 끝에 꿇어앉아 비는 형국이다
“나도 일자무식에 까막눈이지만 저라고 어찌 그만한 기본을 모르겠습니까?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첫눈이라도 올려나 희끔한 하늘아래에서 마주한 두 사람이 뜨악한 표정으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사람은 불행 중 다행이란 생각에 놀랐고, 또 한 사람은 ‘어째 또 왔을까?’하여 놀랐다. 너무 의외라 둘은 왕방울 만하게 뜬 눈만 꿈쩍이며 장승처럼 마주하고 섰다. 어색하기가 이를 데 없는 두 사람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마주서서 한다는 인사말이

“어~ 어서 오~오...! 어떻게...! 여기까지 귀한 걸음을!”하며 우물쭈물 말을 더듬을 때 상대라고 별반 다르지가 않아

“그간 바깥사돈께서도 안녕 하셨나요! ....!”하며 양손을 맞잡아 비비며 무안을 감추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래도 지금껏 대처에서 이런 저런 일 등을 많이 경험해 본 사람이 아무래도 노련했다. 어색한 사태를 재빨리 수습하여

“사돈 이 얼마 만에 뵙습니까? 그동안 차일피일로 미루다보니...!, 자주 연락드리지 못해 소원했던 점 깊이 사죄드립니다. 게다가 뜻하지 않게 금지옥엽으로 귀하신 따님께 크나큰 죄를 짖다보니...!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얼굴 내밀기가 면구스럽기도 하고...! 그렇더라도 이렇게 밖에만 세워 놓으실 작정입니까?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시려면...!”하며 은근하게 방으로 청하기를 재촉이다. 영감도 들어보니 영 틀린 말도 아닌 것 같고 또 주인 된 입장으로, 사람의 도리를 따져서라도 응당 그래야만 하는 것이라 여겼다, 게다가 아직은 사돈지간으로 완전한 남남이 아닌 다음에야 마땅히 방으로 청하는 것이 도리라 여겨

“기별도 없이 불쑥 찾아드니...! 그저 경황이 없다보니...! 손님 대접이 두 서 없어 어설픕니다. 누추하지만 이리로 방으로 드시지요!”하며 뚱한 듯 못마땅한 표정으로 사랑방을 가리켜 손짓으로 청한다.

그 뒤를 사위란 녀석이 주춤주춤 따르자

“이런 변변찮은 놈 같으니! 네 놈이 어딜 감히! 너는 예서 꼼짝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라!”하며 사돈은 아들을 호통을 쳐서 저지하고는 사랑방으로 드는데 영감은 지난날 사위의 말본새를 생각한다면 쳐다보기도 싫은 얼굴이지만 그래도 내 사윈데 싶은지 괜스레 가슴이 뜨끔하다. 이윽고 사랑방에 들어 큰절로 인사를 마친 사돈이 사랑방을 들어 면면을 찬찬히 둘러보는데

서너 명이 운신하기에 적당한 크기의 방안은 대체적으로 단출하면서도 소박해 보여도 갖출 것은 그런대로 갖추고 있었다. 윗목으로는 언제부터 터전으로 자리를 잡았는지 작고 앙증맞아 보이는 앉은뱅이책상이 수줍은 듯 앉아있었다. 또 책상 위로는 송판으로 대충 만들어 보이는 책꽂이 몸을 맡긴 빛바랜 토정비결을 비롯하여 책력 등등의 몇 권의 책들이 가지런했다. 그 옆으로는 한눈에도 낡아빠져 군데군데를 기운 이부자리가 앉은뱅이책상과 나란히, 군 내무반 관물대 아래의 군용 담요 모양 차곡차곡 개어져 있다. 벽으로 눈을 옮기자 몇 년을 묵었는지 누리끼리한 신문벽지 위로 파리똥이 서너 군데에 점점으로 얼룩진 달력이 마꾸리(‘걸이’의 방언)에 몸을 걸쳐서 매달렸다. 그 옆으로 못질에 의지한 횃대 위로는 나들이옷으로 보이는 두루마기 등의 옷들이 두 서너 벌 걸렸다.

옷마다 수년은 족히 입어선지 손때가 반들반들 묻어 보인다. 켜켜이 쌓인 세월동안 빨고 빨아 선지 죄다 회색빛 일색이고 후줄근하여 풀이 죽었다. 보물찾기를 하는 듯,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 방안을 죽 둘러보는데 비록 사랑방이란 명목아래 구색은 갖추었다지만 값나가는 그 무엇 하나가 보일 질 않는다. 한미한 촌구석의 살림살이를 한눈으로도 능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설령 도둑이 든다 해도 오히려 보태주고 갈 형편이다. 그 외에는 대체로 정갈한 가운데 방바닥은 방금 빗질을 마친 듯 티끌 한 점 없이 깨끗했다.

조용하고 숙연한 방안 분위기와는 달리 대치한 두 사람의 모습은 보기에도 딱해 보였고 한편으로는 이상야릇해 보이기도 했다. 주도권을 잡으려는 것도 아니고, 잘잘못을 따지려는 분위기도 아니다. 채권 채무 관계가 있어보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승리감에 도치한 오왕 부차와 패배한 월왕 구천이 함께 탄 오월동주의 극과극의 생태도 아니다. 그저 소소한 행동에도 책을 잡힐까 지극히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어쩌면 과일 서리를 나갔다가 주인에게 붙잡힌 끝에 꿇어앉아 비는 형국이다. 부부가 더 없는 관계로 안락하다면 만나자마자 웃음바다로 지붕이 들썩거릴 테지만 형편이 그렇지 못하다보니 사이가 남들보다 못해 한껏 눈치만 보고는 경계하여 고개를 돌린 형국이다.

무안을 감추고자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방바닥을 내려다보다가 앉은자리에서 손바닥으로 슬슬 방바닥을 쓸어 간다. 그때 사돈은 티끌 한 점 없는 방바닥을 보건데 소박을 맞아 친정으로 쫓겨 온 며느리의 솜씨라는 것을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었다. 평소에도 손놀림이 야무져서 빈틈없이 부지런 했던 며느리다. 잠시도 방바닥에 엉덩이를 붙여 지근덕대어 눌려 앉아있는 법을 모르던 며느리다. 그런데 지금 그 며느리는 어디에 있는 걸까?

“아버님 진지 드이소!”하며 살갑게 말을 붙이고는 부끄럽다는 듯 사블사블 미소 지을 땐 더 없이 사랑스럽고 귀여웠던 며느리다. 한데 그런 며느리를 어째서 쫓아 보냈단 말인가? 뭘 그렇게 잘못 하고 또 무슨 죄를 그리도 많이 지었다고 스스로에게 반문하는데 까닭이 없다보니 그저 마주한 사돈의 얼굴을 바로보기가 죄스럽다. 하지만 마냥 이렇게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옷차림새로 보아 주객이 전도된 느낌으로 바짓가랑이로 진흙이 희끗희끗 묻은 주인장과 달리 능라의 정장차림의 객이건만 인사가 끝나 본론으로 들어감에 먼저 사돈이

“오늘 이렇게 결례를 무릅쓰고 사돈댁을 찾아 뵌 것은...! 단도직입 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사돈의 따님이자 제 며느리와 함께 손자를 데리고 가기 위함입니다. 그간 마음의 상처와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음을 어찌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자고로 부부란 하늘이 천륜으로 맺어준 인연이라 생으로 갈라놓을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리하와 비록 늦었지만 이렇게 걸음 하여 늙은 것이 사죄를 겸해서 간곡히 청을 드리는 겁니다.”하며 눈치를 보는데

“사돈 말씀이 백 번 옳지요! 그건 오히려 당연하고 지당한 말씀이지요! 하지만 댁의 아드님도 알다시피 이제 제 딸은 이미 제 후실이자 첩이라 사돈의 간곡한 청에 흔쾌히 응해 드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하오니 이대로 곧장 돌아가심이 좋을 듯합니다”하는데 듣는 사돈은 당체 무슨 말인 지를 알아듣지 못해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경우 없는 말씀입니까? 어떻게 아버지가 딸을 후실, 아니지 첩으로 삼을 수가 있습니까? 이는 천륜에 어긋나는 일로 침을 뱉고 손가락질은 당연지사, 옛 법에도 없을 뿐더러 도덕을 떠나 법으로도 처벌을 받을 일이지요! 그럼 우리 손자는...!”하며 기가 차다는 듯 천장을 올려다보는데 영감이 쐐기를 박듯

“나도 일자무식에 까막눈이지만 저라고 어찌 그만한 기본을 모르겠습니까? 저도 그 정도는 압니다. 하지만 이는 댁의 아드님이 간곡히 원하는 일이라 어쩔 수 없이 일이 그렇게 되어버렸네요! 귀 댁 아드님이 내 딸과는 부부지연의 연을 끊었다면서 간곡하게 청하기에...! 좌우간 그 뜻을 따를 수밖에 없다보니 일이 이렇게 요상스럽게 되어버렸네요! 하니 이제 제 딸은 제 후실로, 또 딸이 낳은 아이는 자동으로 이놈의 이들이 되는 게지요!”하는데 듣는 사돈은 들을수록 기가 막혀

“가당찮은 일입니다. 좀 알아듣게 쉽게 내력을 들려 줄 수는 없겠습니까?”하며 영감을 빤히 쳐다본다. 이에 영감은 아들을 불러서 물어보라 했고, 그때까지도 마당에 서서 줄곧 대기 중인 아들을 불러 사건의 전말을 전해들은 사돈은 노발대발, 영감이 보는 앞에서 아들의 귀싸대기를 왕복으로 ‘철썩, 철썩’하여 후려갈기며 일갈하기를

“이제 보니 네 놈은 개돼지만도 못하구나! 축생도 아비어미를 가리 것만 너는 어찌하여 축생에도 못 들어 미물에도 못 미친단 말인가? 내가 지금껏 너를 그렇게 가르치더냐! 여태껏 입으로 들어간 쌀과 찬이 아깝구나! 입은 옷이 부끄럽구나! 도대체 글은 머리로 안 읽고 그간 어디로 무엇으로 읽었다더냐?”하며 부들부들 떠는데 지켜보는 영감은 자신이 뺨을 후려쳐서 맞는 듯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더 이상 버티다가는 사위를 아예 때려잡을 성 싶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