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67)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67)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2.06.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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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는 하늘이 노래선지 급기야 정신머리를 놓고는 까무러져 버린다
죄다 아래위가 없고 예의범절이라곤 쥐꼬리만큼도 없는가 싶기도 하다
장승과도 같아 꼬집고 뺨을 후려치듯 내 갈겨도 꿈쩍을 않는다
9월 22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9월 22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원숭이도 아닌 인간의 탈을 쓴 다음에야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한조각 미련 없이 삽짝을 나서는 사위의 뒷모습을 보는 영감은 황당하기가 그지없다. 가마를 앞세워 왔다면 분명 딸내미를 데리고 가고자 함인데 빈가마로 가버리는 경우는 무슨 경우란 말인가? 아비로써 아들을 데리고 가고자 왔음에도 잘못 왔다는 듯 냉정하게 돌아서 버린다. 소박맞은 마누라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명색이 아비란 입장에서 자식새끼의 얼굴 한번 보지 않고 어떻게 그냥 갈수가 있단 말인가? 눈코입이 재대로 붙었는지 어찌 확인이 없단 말인가? 영감보다 더 황당한 이는 처녀였다. 시종일관 두 눈은 부릅뜨고 사태의 추이를 보건데 처녀는 하늘이 내려앉은 기분이다. 대들보가 썩은 초가지붕이 폭삭 내려앉듯 방바닥으로 허물어진 처녀는 하늘이 노래선지 급기야 정신머리를 놓고는 까무러져 버린다.

하늘아래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단 말인가? 설령 사위의 태도가 마음에 거슬린다 할지라도 그냥 돌려보내는 아버지는 무엇이란 말인가? 근 일 년을 지나 겨우 만났지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손 한번 잡아주지 않는 남편이란 작자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잘잘못을 떠나 삽짝은 나서는 남편이란 작자의 뒷모습을 용서할 수가 없을 것만 같다. 마음을 지우는 지우개가 있다면 깨끗하게 지워 물로써 티끌하나 남기지 않고 씻어버리고 싶다. 평생을 두고 아버지를 원망할 것만 같다. 난생처음 아버지란 튼튼한 버팀목이 종잇장처럼 얇아 보인다.

문득 조용하던 방안에서 이기가 운다. 한창 오수에 빠졌을 시간인데도 언제 어느 시에 깼는지 목청을 돋우어 운다. 아버지라고 왔다가 얼굴도 보고 않고 떠난 사실을 안다는 듯 설움에 겨워 운다. 어머니와의 재회도 없이 그냥 떠난다고 투정을 부리는 모양으로 꺼이꺼이 운다. 불쌍한 우리 모자의 인생은 앞으로 어떡하라고 항변이라도 하는 듯 목청을 높인다. 우는 아기보다 더 기막힌 처녀의 눈동자는 힘을 잃었다. 세상이 새까맣게 변한 눈에서 나오는 것이라곤 하염없는 눈물뿐이다. 늦가을 밤송이처럼 벌어진 입에서 나오는 것이라곤 긴 한숨뿐이다. 어느 결에 우는 아기를 끌어안는 처녀가 허망한 표정으로 맥을 놓고 앉았다. 아기의 얼굴로 방울방울 눈물이 떨어져 내린다. 우는 아기의 입으로 짭조름하게 흘러들어간다.

그때까지도 안방 문설주에 기대어 사태의 추이를 초조하게 지켜보던 장모자리는 일머리가 전여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자 애달픈 심정에 발을 동동 구른다. 무심하게 돌아가는 사위의 어깨를 보건데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다. 이 노릇을 어떡할거나! 딸내미의 불행을 두고 어미로써 더 이상 손을 놓고 지켜볼 수만 없는 노릇이다. 이대로 돌아가 버리면 내 딸은, 그럼 내 딸은, 혹까지 붙어버린 내 딸의 운명은? 하는 생각으로 맨발로 화들짝 쫓아 나와 고샅을 쌀쌀맞게 돌아가는 사위와 가마꾼을 향해

“이보게 그냥 가면 어떡하나! 내 딸은! 자네 마누라는! 자네 피붙이라도 데리고 가야지! 좀 섭섭해도 눌러 참아 데리고 가야지!”하며 삽짝을 나서는데 벌써 가마꾼의 머리가 돌담 모퉁이를 돌아갔는지 그림자조차 사려서 흔적이 없다. 한 입만 남은 달달한 아이스크림을 두고

“형아~ 한 입만! 형아 한 입만!”하는 동생의 애달픈 마음을 뒤로하고 한입에 홀랑 털어 넣은 듯, 매정한 형의 입을 바라보며 빈 입을 다시는 동생처럼 허무맹랑하다. 싹퉁-바가지에 밴댕이 소갈머리 같은 사위가 야속하기만 하다. 머리 검고 대가리에 먹물 든 것들은 죄다 아래위가 없고 예의범절이라곤 쥐꼬리만큼도 없는가 싶다.

눈을 돌려 집안을 보자 빌어먹을 영감탱이는 양손을 포개 뒷짐을 진 채 빈 하늘만 쳐다보며 헛기침을 하고 섰다. 길 섶을 지키고 선 장승처럼 멀대만 희멀겋다. 그 옆으로 언제 방을 나왔는지 무명치마저고리에 강보에 쌓인 외손자를 안은 딸애미가 눈물을 훌쩍이며 섰다. 이 기막힌 상황에 나오는 것이라곤 한숨과 눈물뿐이다. 속에서 천불이 ‘활활’타오르는 느낌이다. 찌그러져가는 초가삼간에 시집이라고 와서 이제껏 큰소리 한번 낸 적 없이 늙어가는 장모자리건만

“이 미련하고 아둔한 영감탱이야 이를 이 지경으로 만들면 어떡하잔 말입니까?”하고 작정을 한 듯 침을 튀겨 내뱉는다. 마누라의 불같은 타박이건만 영감이라고 딱히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라 묵묵부답이다. 턱도 없는 말조차 순종을 미덕으로 여태껏 살아온 마누라에게 처음으로 가시 박힌 타박을 들었건만 무어라 반박할 말이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 마누라의 눈길을 피한 눈앞으로 외손자를 품에 안고는 눈물콧물을 훌쩍이는 딸내미의 초라한 몰골이 들어온다. 어디에다 눈길을 둘까? 졸지에 방향을 잃어버린 눈길이 발끝으로 떨어지는가 싶더니 제자리곰뱅이 모양으로 자꾸만 땅만 후벼 판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게다가

“그렇게 남 주기 아까운 딸내미, 그 잘난 딸내민데 아까워서 시집은 어째 보내어요! 평생을 끼고 사이소! 저기 저 아기도 장인 아들이라면 서요! 그 잘난 딸내미를 첩 삼아, 후실 삼아 데리고 살던가 말든가 마음대로 하이소!”하는 말도 안 되는 악담을 사위로부터 듣고 난 뒤라 더욱 기가 막히고 코까지 막힐 지경이었다. 어째 딸내미의 앞날을 생각해서 한 말들이 이렇게나 와전이 되어 부메랑으로 되돌아온단 말인고! 떨구어진 고개가 자꾸만 아래로 쳐 박힌다.

그날 이후 장인자리는 집안에서 능지처참에 처해질 만큼의 대역 죄인이 되고 말았다. 그 어디에 말을 붙일 곳도 하소연할 곳도 없다. 마누라는 마누라대로 눈만 마주치면 딸내미의 장래를 망친 영감탱이라고 하얗게 눈을 부라려 앙살이다. 딸내미는 딸내미 나름대로 죽든 살든 왜 그냥 내버려 두질 않았냐며 거위 입으로 삐죽이 내밀어 따따부따 원망뿐이다.

집이라고 발붙이기가 겁났다. 삼시 세끼를 하루같이 젓가락으로 밥알을 세듯 깨작거리다가는 밥술을 놓기가 무섭게 논밭은 찾아 나선다. 그나마 일에 미쳐 지내 것이 속편하다 싶어 논밭을 유배지처럼, 피신처라 생각하고는 찾는다. 그렇다고 속에서 들불처럼 치미는 울화를 삭여 지내기에는 턱도 없다 여겼다. 이 답답한 마음을 누가 있어 알아줄까?

그날 이후 영감은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찾는 날이 많아졌다. 답답한 속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보니 친구로 사귄 술잔이 점차 늘어나는 것은 당연지사다. 사람이 술과 매에는 장사가 없다고 했다. 그렇게 한잔 두잔 늘어나는 술이 결국 사람을 잡고야 만다. ‘1+1=2’라는 수학의 공식처럼 어김이 없었다. 이는 술꾼들이 맞는 정해진 운명과도 같은 길이었다. 그리고 그날은 예상보다 일찍 찾아왔다.

영감이 술을 친구로 삼아 탐 한지 반삭이 채 못 된 어느 날 오후 새참 무렵이었다. 영감이 술청에 쓰러졌다는 기별이 집으로 날아들었다. 이 무슨 날벼락인가 싶은 마누라가 달려가 보니 영감은 봉당마루 벽에 비스듬하게 기대서는 인사불성이다. 흡사 썩어 넘어진 장승과도 같아 꼬집고 뺨을 후려치듯 내 갈겨도 꿈쩍을 않는다. 아녀자의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엄두를 낼 수가 없어 동네 젊은이의 등을 빌려서 사랑에 방에다 눕혀놓고 보니 농익은 홍시 냄새가 방안 가득하여 달달하게 등청이다. 세상사 시름을 죄다 잊은 듯 편안하게 누운 영감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한편으로는 불쌍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천하에 밉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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