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72)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72)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2.07.11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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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친정에서 뭘 배웠기에~’하는 통속적인 핀잔도 듣지 않았다
색안경이 끼어 버린 시어머니의 눈에는 처녀의 장래나 안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낙엽을 방바닥으로, 하늘을 이불로 삼아 자는 잠이 이렇게 달달할까 싶었다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아~ 이 가락지 때문에 뭔가 오해를 해서 그러는구나! 네가 지금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그런 일은 없다. 네 시어머니는 두 눈 시퍼렇게 멀쩡하게 살아 있다. 이 가락지는 네 시어미가 그간 너에게 지은 죄를 모두 잊어서 사하고는 하시라도 빨리, 지금 당장이라도 집으로 돌아와 달라는 간곡한 청이 담긴 마음의 징표니라! 이후부터는 네가 우리 집안의 종부로써 대소사를 전적으로 맡아 달라는 뜻이기도 하다”하며 넌지시 건넨다. 시아버지로부터 금가락지를 건네 받아든 처녀는 가만히 어루만지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싶어 멍한 표정으로 영감 옆으로 고요히 앉았다.

거기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었다. 처녀가 시집을 간 대처에서의 시집살이는 그럭저럭 무난했다. 밥을 굶는 경우도 없었고, 시어머니에게 못 배우고 못났다고 꿀밤을 맞는 경우도 없었다. ‘도대체 친정에서 뭘 배웠기에~’하는 통속적인 핀잔도 듣지 않을 만큼 옹골차게 살았다. 이는 처녀가 워낙에 눈치가 있고 부지런한 때문이었다. 나아가 처녀는 시어머니가 시키는 일 외에도 종부로써 일머리를 알아 가지런하게 쳐 나가고 있었다. 그런 부지런함 때문에 시어머니로부터 가끔은 뜻하지 않은 칭찬도 들었다. 신랑 역시 그런 색시가 예쁘고 사랑스러웠던지 그간 그렇게 좋아하던 술을 끊고는 집안에 머물러 앉아 책장을 넘기는 날이 많아지고 있었다. 그 평화로운 가정의 행복을 깬 것은 어느 한 여인이 등장으로 인해 서다.

겨울 추위가 한창이던 어느 날,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보니 얼굴로는 뽀얗게 분을 바르고, 입술로는 연지벌레를 씹은 듯 빨갛게 칠을 했으며 녹의홍상으로 곱게 차려 입은 낯모르는 여인이 칭얼대는 아기를 안고 서있었다. 그때 그 여인은 집안으로 들어오기가 무섭게 자신이 안고 있는 아기야 말로 이 집의 진정한 장손이라고 했다. 그 여인의 한마디에 행복에 겨워 조용하던 집안이 순식간에 발칵 뒤집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난데없는 여인이 근본도 모르는 아기를 안고 나타나 삼대독자의 아들로 사대독자라는 데는 말문이 막힐 따름이었다. 급하게 아들을 불러 내력을 묻자 아들은 금년 초를 들어 그 여인과 몇 번의 잠자리를 같이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뭔가가 미심쩍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결국 아들이 뭉그적거리는 중에 그 여인의 아들이 손자로 인정되었고 여인은 혼례를 생략한 며느리가 되었다. 엄연하게 초례청을 마주하여 백년가약을 맺은 처녀가 맏며느리로 있음에도 그 여인은 불문곡직 맏며느리를 자처한다. 처녀가 모질고 독했으면 머리채를 들어 한바탕 싸움이라도 했을 법도 했지만 순진해서 그런지 고개를 숙여 가재처럼 뒷걸음질만 칠뿐이다.

그러는 동안 시어머니는 손자의 재롱과 입안의 혀처럼 구는 그 여인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날이 갈수록 시어머니와 그 여인은 고부지간으로 의기투합이다. 반면 처녀는 졸지에 콩쥐의 신세로 전락하여 온갖 궂은일을 도맡는다. 심지어 그 여인의 바느질은 당연지사로 서답(‘개짐’의 방언으로 여자가 월경 때 샅에 차던 헝겊으로 일명 생리대다)빨래까지 빨아 받치는 지경에 이른다. 아예 몸종이라고 해도 하나 이상할 게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러다보니 처녀는 이제 이 집에서 하녀의 신세보다 못해 조만간 사라져야 할 사람으로 치부되고 있었다. 게다가 시어머니조차 손자를 안긴 보드랍고 야들야들한 며느리가 필요했지 무식하고 투박한 며느리는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미 소박을 놓아야 한다는 색안경이 끼어 버린 시어머니의 눈에는 처녀의 장래나 안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구박은 한겨울로 치닫는 날씨보다 더 매서워 날로 심해 갔다. 못된 년은 피 맛을 본 거머리처럼 처녀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일일이 트집을 잡아 들쑤셨다. 시어머니라고 이에 못지않아 못된 년이 자리를 비웠다 싶으면 귀신처럼 나타나서 사사건건 간섭하려 들었다.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하루하루다. 그 와중에 남편은 말 그대로 남의 편, 한술 더 떠서 반찬 투정 등으로 타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으로 초를 친다. 하지만 처녀는 촌구석에 자란 탓에 잡초처럼 생명력이 끈질겨 포기를 몰랐다. 시어머니와 못된 년이 한편이 되어 아무리 구박을 해도 요지부동으로 견디어낸다. 그렇다고 강도가 낮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날이 가면 갈수록 집요하고도 치밀하게 파고들어 괴롭히고 있었다. 콩쥐가 밭 매고 물을 길러 독을 채울 때 두꺼비 등으로부터 이렇게 저렇게 도움을 받았다면 처녀는 일일이 몸으로 때워야 했다. 엄동설한이나 삼복더위를 핑계로 요행을 바랄 수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니에게 불려간 처녀는 불 관리를 책임지라는 엉뚱한 일거리를 지시 받는다. 부싯돌을 두들겨 불을 피우는 시기를 지나 어느 집이나 할 것 없이 성냥이 있어 불 걱정이 없는 마당에 뜬금없이 불 관리라니!, 처녀는 시어머니의 뜬금없는 불관리란 소리를 들었을 때 자신의 최후가 다가옴을 즉감했다. 그렇다고 그 어디에도 하소연할 데가 없었다. 이미 이웃한 모든 사람은 시어머니의 입김아래 처녀와 얼굴을 마주치는 것조차 꺼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과는 짐작한 그대로 뻔 했다. 처음 이삼 일간은 무난하게 넘어 갔다. 저녁 늦게까지 불을 피우고 난 후 재를 포근히 덮어서 자장가를 부르듯 토닥토닥 관리를 하자 별 탈이 없었다. 하지만 오 일 째를 맞아 새벽 참에 부엌에 들린 처녀는 기암을 했다. 이미 예상한바 그대로 아궁이가 온통 파헤쳐져 있다. 당연히 불씨가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눈앞은 캄캄하고 울음조차 목이 메어 훌쩍거려 앉았는데 기다렸다는 듯 시어머니가 헌옷 보따리 하나를 마당가로 내던지며 불문곡직 집을 나가란다. 울며불며 매달려도 소용이 없었다. 집을 통째로 말아먹을 년이며 거덜을 낸 년이라며 나가란다. 불 관리 하나만 보아도 ‘명약관화’명징하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두 번 다시 내 집에 발을 들일 생각 말고 나가란다. 어디에 가서 목을 매달아 죽던지 말든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란다. 모질다, 모질다고 해도 그렇게 모질 수가 없었다. 그렇게 처녀는 시집의 대문을 향후를 기약 없이 나섰다.

대문을 나서자 봄바람은 왜 그렇게 차갑던지 봄바람이 훈훈하단 말을 다 거짓말 같았다. 옷깃을 여미고 여미어도 목 언저리께로 바람 길이 숭숭하다. 늙은이에게 대문 밖이 저승이라면 며느리에게 있어서 시댁의 대문 밖이 바로 지옥이었다. 아무리 둘러보고 머리를 굴려 연구를 해봐도 갈 데라곤 머릿속으로 딱히 떠오는 곳이 없다. 갈 곳 없는 여인이 헌옷 보따리를 하나를 가슴에 품은 초라한 몰골을 보건데 한눈에도 소박맞은 차림이다. 지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힐끔거려 안쓰럽다는 표정을 짓는데 불식간 사람들이 무서워진다.

뭇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뙈기논의 논둑을 타고, 화전의 밭둑을 넘어 산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발걸음은 친정으로 향해간다. 소박을 맞은 대부분의 며느리들이 걷던 길을 은연중 처녀도 걷고 있었다. 처녀가 길을 가는 중에 배가 고프면 봇도랑 물로 허기를 달래고, 찔레의 새순을 꺾어서 씹어가며, 시냇물로 주린 배를 채웠다. 배가 고파서라기보다 훤한 대낮이 남세스러워 마냥 발걸음을 늘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중 어느 산기슭 바위 밑 양지바른 곳에 들자 잠시 쉬어 갈만 했다. 태양은 이미 정오를 지나 서산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가는 중이었다. 딱히 할 일도 없는 처녀는 따스함에 몸을 뉜다는 것이 까무룩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꿀맛 같은 단잠이다. 이렇게 행복에 겨운 단잠을 자도 되는가 싶을 정도로 심연의 잠에 빠졌다. 왈왕 구천이 장작더미를 침대로 자듯 와신상담도 아니고 낙엽을 방바닥으로, 하늘을 이불로 삼아 자는 잠이 이렇게 달달할까 싶었다.

간혹 피곤에 지쳐 부뚜막 아래에서 부지깽이를 들고 잠이 들 때보다 더 아늑하다. 당시는 눈을 뜨면 하루하루가 지옥 같아 눈을 뜨기가 겁났지만 밤을 빌어 산천이 포근하게 감싸 안아 마냥 포근하다. 유성을 헤아리는 구름무리가 조각조각으로 피아노건반인양 G선상의 아리아를 두들겨 자장가로 화음을 조절하는 밤이다. 모두가 내 편만 같아 심신이 마냥 노곤하여 시간을 잊었다. 얼마나 잤을까? 귓전으로 봄이 오는 소리가 계곡의 여울로 아롱지고, 바람이 돌리는 지구의 자전축이 하모니를 이뤄 세상사를 귓전에 한아름 부어다 놓는다. 사씨 부인의 남정행보다는 싶고 꿈이 있다고,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따뜻한 말로 위로를 건네는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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