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66)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66)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2.05.30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리움으로 가득 찬 가슴을 부여안고는 몸부림치고 있었다
심각한 얼굴로 지켜보는 가운데 장인과 사위가 살벌하게 대치하고 섰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씨암탉을 잡아 잔치라도 벌일 줄 알았던 모양이다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시집에서 꺼리는 낌새가 모기눈물만치라도 비친다면 아기는 어림없다 생각했다. 어쩌다 임신이라도 된다면 간장을 대접 째 마시고, 둔덕을 뛰어내리고, 언덕을 굴러 없애버리라 다짐했다. 천륜에 역행하고 모진 어미란 손가락질은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 여겼다. 부모도 안 계시는 마당에 오라비의 근심걱정을 조금이라도 들어주는 길은 오직 그 길 뿐이라 여겼다. 이는 어머니 자신의 행복도 행복이려니와 오라비와 올케언니에게 더 이상은 짐은 되기 싫은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린 마음에도 모정이 동해선지 어머니의 눈에도 천진난만한 아기의 모습은 더 없이 귀엽게 각인되고 있었다. 후일 어떠한 고난과 역경을 뚫고서라도 아기만큼은 꼭 낳아보고 싶은 솔직한 심정은 감출 수가 없어

“언니! 언니야! 나 한번 안아 봐도 돼?”하고는 은근슬쩍 강보를 잡아당기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렇게 무심한 세월 속에 끝이 없어 보일 것 같았던 겨울은 어느 한순간 물러가고 봄은 제 알아 찾아들어 만물을 소생시키고 있었다. 꽃을 피우는 등 부산하게 봄을 단장하고 있었다. 양지바른 곳으로부터 봄볕을 빌은 쑥이 헤벌쭉 고개를 내밀고 파릇파릇 연두색으로 단장을 마친 냉이가 우후죽순모양 돋아나고 있었다. 에메랄드빛 하늘 아래로는 온갖 새들이 날아다니며 청아한 목소리로 지저귀고 있었다. 해토머리가 지나 얼음이 풀린 시냇가로는 겨우내 찌들은 이불을 빨래하는 아낙들로 왁자지껄하게 들썩인다. 봄은 정녕 축복의 계절임에 틀림이 없어 보였다.

세상만물이 봄의 축복에 젖어들었건만 소박맞은 두 처녀만이 계절이 가져다주는 해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어두침침한 방안서 미련으로 얼룩져 그리움으로 가득 찬 가슴을 부여안고는 몸부림치고 있었다. 노예처럼, 종처럼 살림살이에 시달리고 있었다. 몸은 그런대로 적응을 했건만 마음속은 아직도 겨울이 한창인 것이다. 찬바람이 몸속 구석구석을 에이어 추운 것이다. 찬바람 속에 홀로선 나목이 되어 외로운 가슴으로 떨 때는 누구라도 찾아와 말을 붙여주면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어머니도 그 마음을 헤아려 틈만 났다하면 찾아들어 말동무를 자처하고 있었다. 후일 언젠가는 가야할 시집을 생각하며 아기 문제를 나름대로 고민하면서도 귀여움에 반해 어르는 재미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던 그 날도 어머니는 나생이(냉이의 방언)를 캔다는 핑계를 달아 들녘으로 나오는 길에 앞산을 바라보고는 시선을 고정 시켰다. 좀처럼 사람의 그림자라곤 비치지 않은 앞산을 돌아드는 모퉁이로 가마를 앞세운 사내 하나가 구름 위를 걸어오는 듯 넘실넘실 길을 재촉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째 저 길에 가마가?”하며 누구를 찾아 어느 집으로 향하는 가마일까? 하는 궁금증이 일은 어머니는 나생이 캐기를 잊어버리곤 망부석이 되어 바라다보는데 바람을 탄 구름처럼 눈앞으로 다가든다. 고샅을 돌아드는 모양새가 곧장 아기울음소리가 비치기 시작하는 곳이다. 순간 겁을 집어먹은 듯 화들짝 놀라 양지바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 앉아 호미로 땅을 긁으며 곁눈질로 흘끔거린다. 누굴까? 하는 의문도 잠시 사태의 추이를 보건데 아기의 아버지이자, 아기엄마의 신랑이자, 그 집의 사위가 틀림없어 보였다. 갑자기 가슴이 쿵덕거리는 어머니는 손에 일이 잡힐 리가 없었다. 눈은 사팔뜨기모양 빙그르르 돌아 아기울음소리가 새어나오는 삽짝으로 향하고, 귀는 산토끼처럼 쫑긋하게 세운다. 그마져도 마음에 차질 않아 까치발로 키를 키워 담장을 힐끔거려 넘겨다본다.

그즈음 가마는 삽짝에서 멈추어 섰고, 가마를 이끈 사내는 마당 한가운데를 중심으로 노여움에 파르르한 수염을 쓰다듬는 처녀의 아버지와 정면으로 맞닥뜨리고 있었다. 그 즈음 처녀 아버지의 모양새를 볼라치면 지게작대기를 장검처럼 짚고선 모습이 흡사 전쟁터를 사수하는 장군과도 같았다. 수만 적병을 맞아 긴 칼을 집고서서 수비를 전담하고 하고 있는 장수와도 같아 얼굴가득 비장미가 서려보였다.

“내 놈이 어딜 감히!”하고 내 뱉는 말조차 위엄서리고 서슬이 시퍼렇다.

하지만 가마꾼의 앞잡이로 나선 사내도 여간내기가 않은지 만만치가 않았다. 그 정도는 이미 각오를 하고, 예상을 했다는 듯 고개를 빳빳이 쳐들어 장인을 바라보고 있다. 살벌한 분위기 속에 장인과 사위가 벌이는 전쟁 아닌 전쟁에 바깥이 제법 소란스러웠나 보다. 안방 방문이 허리 병이라도 도진 할멈이 일어서는 소리로 삐그덕 열리더니 장모와 사내의 마누라, 처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아래위로 빠끔히 얼굴을 내민다. 모녀가 숨을 죽이고 반쯤 열린 문에 상체를 기대어 심각한 얼굴로 지켜보는 가운데 장인과 사위가 살벌하게 대치하고 섰다.

하긴 낙엽 한 잎만 떨어져도 누가 왔나 방문을 여는 판국에 어찌 아니 그러겠는가? 장모자리는 영감과 사위가 원만히 해결해서 암탉이나 한 마리 잡고 내친걸음에 딸내미를 치워 데려 갔으면 했고, 처녀는 이 지옥 같은 친정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하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고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사태는 그렇게 만만히 보이지가 않았다. 장인과 사위가 대치한 분위기가 십 년 만에 만난 원수가 외나무다리를 눈앞에 두고 만난 듯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아 보였다.

이정도면 어느 한쪽이 굽히고 들어야 사태가 진정되고 해결의 기미가 보일 것임에도 둘의 뻗대기가 골짜기를 경계로 마주한 선돌 같다. 장인은 장인 나름대로 처갓집 무서움을 알아야 한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고, 사위는 사위 나름대로 촌구석의 무지렁이 집안이라 얕잡아보는 기색이 역력해 보인다.

장인자리도 어지간하면 한발 물러서서 날이면 날마다 방구석에서 질질 짜대는 딸내미를 짐짝 치우듯 딸려 보내버리고 싶었다. 평생 끼고 살 것도 아닌데 굳이 붙잡아 둘 필요는 없다 여겼다. 게다가 시집의 핏줄까지 싸질러 놓은 마당에 오히려 잘된 일이라 쾌재를 부를 지경이었다. 어서 데리고 가라고 등을 떠밀어도 시원찮을 판국이었다. 한데 사위라고 찾아온 작자가 영 탐탐치가 않다. 당장에 무릎아래 끓어서

“이유를 불문곡직 이 놈이 다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는 따님을 꽃을 본 듯 아껴서 잘 살겠습니다”하고 입에 발린 소리일망정 속 시원하게 내뱉고 빌어도 시원찮은 판국에 고개는 빳빳이 쳐들고 인사조차 하는 둥 마는 둥이다. 생각 같아서는 목구멍을 가래(흙을 파서 갈아엎거나 퍼내는 데 쓰는 기구)로 싹싹 긁은 가래침이라도 능글맞은 얼굴에 한바탕 뱉고 싶다. 꾹꾹 눌러 참자니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다. 나아가 그동안 터부시를 당한 설움은 그렇다 치더라도 못이기는 척 딸내미를 따려 보내기에는 뒷맛이 영 고약해 보인다.

그런 장인과는 달리 사위는 사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속으로 우기고 있었다. 인사는

“그간 평안 하셨어요?”하고 묻는 것으로 끝이라 여겼다. 대처에서 먹물께나 먹은 한량이 좁아터진 첩첩산중의 산골에 들어와 ‘기체 일후 만강’등으로 쓸데없이 고개를 숙일 필요는 없다고 여겨 대충 얼버무린 것이다. 시집에 죄를 진 탓에 소박을 맞아 친정으로 쫓겨 온 마누라를 데리고 가고자 가마를 몰고 왔으면 감지덕지 덥석 엎어져야 체면이 선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맙고도! 고맙네! 아~ 이 사람아! 그간 뭘 한다고 이제 사 오는가?”하고 한 달음에 달려 나와 얼싸안듯 맞고, 통통하게 살이 오른 씨암탉을 잡아 잔치라도 벌일 줄 알았던 모양이다. 한데 예상했던 것과는 영 딴판이라 당황스럽다. 그렇더라도 나이가 한참이나 연배인 선배나 선생님을 만났다 생각하고 덥석 엎어 졌더라면 쉽게 해결 될 일을

“저~ 이대로 돌아가도 후회 없지요!”하고 버티다간

“아버지의 엄명에, 어머니가 한사코 등을 떠미는 통에 못이기는 척 오기는 왔지만 저도요 썩 내키지는 않았습니다. 정 그리 나온다면 안 온 셈치고 이대로 돌아갑니다. 후회하지 마이소!”하고는 양지 바른 담벼락 밑에서 엽연초를 말아서 한참 맛있게 피우는 가마꾼을 독촉하여 쌩하니 돌아가 버린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