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62)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62)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2.05.02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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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마저 일찍이 잠자리를 찾은 탓으로 별빛 많이 초롱초롱 빛나던 밤이었다
더 이상 화려하게 펼쳐지는 장밋빛 미래는 같은 것은 꿈조차 꿀 수가 없었다
이제 그 애는 내 자식이다. 아들이면 남동생이고 딸이라면 너에게는 여동생이란 말이다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잔치분위기에 휩싸여 왁자지껄하기를 2~3일, 그렇게 동네를 발칵 뒤집고 떠나간 시집이건만 처녀 둘은 거의 같은 시기에 도토리 키 재기로 한 달 여를 앞뒤로 나란히 재를 넘어왔다. 허름한 보따리 하나씩을 가슴에 껴 앉고는 패잔병처럼 풀이 죽어왔다. 밤을 빌은 도둑고양이처럼 어둠을 틈타서 친정으로 숨어들었다. 소박을 맞아 갈 곳이 없다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나마 홀로된 처지에 기댈 곳이라곤 아비어미 밖에 없다 여긴 것이다. 하늘조차 서러웠던지 초승달마저 일찍이 잠자리를 찾은 탓으로 별빛 많이 초롱초롱 빛나던 밤이었다. 어둠이 사위를 온통 집어삼킨 새벽녘에 소리 소문 없이 살금살금 스며들었다. 마파람처럼 은근슬쩍 숨어든다고 해서 들어나지 않을 일은 아니었다. 부푼 풍선이 터지듯, 주머니에 든 송곳처럼 들어나기 마련이었다.

새벽녘을 빌어 어미는 이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 인고, 고무신짝으로 땅바닥을 치며 슬피 울었고, 아비는 여자가 시집을 갔으면 시집 귀신이 될 것이지 어째 기어들어 왔냐고, 시집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나는요 시집 귀신이요! 내 가족과 내 집을 두고 환한 대낮에 이런 유분수가 있습니까? 불문곡직 나가라면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하고 앙살이라도 부려보고 그도 저도 씨알이 먹히지 않는다 싶으면 부엌칼을 물어 죽어버리지 않고, 양귀비가 비단 천에 액살로 죽듯, 대들보에 광목천을 걸지 않고 어째 왔냐고 지게작대기를, 부지깽이를 휘두르며 길길이 날뛰는데 귀와 눈이 멀쩡한 동네 사람이 어찌 모를까? 조반상을 받기도 전에 벌써 온 동네로 소문이 자자하게 퍼졌다.

남의 일 같이 않다는 생각에 밥상머리에 앉은 동네 사람들은 묘 터를, 집터를, 조상을 들먹이며 안타까움을 내타내는 것으로 어쩔 방도가 없었다. 가깝고 먼 친척들이 겪는 안타까움을 들어 자신이 겪는 듯 신세 한탄하는 것이 고작이다. 막상 일이 그렇게 벌어지고 보니 어느 한 처녀라도 다시 시댁으로 들어갔으면 하고 마음속으로 바랄뿐이었다.

동네는 소박맞은 처녀 둘로 인해 소금을 뒤집어 쓴 김장배추처럼 풀이 죽었고 쥐 죽은 듯 조용해져 버렸다. 춘분을 코앞에 둔 계절의 분위기가 엄동설한처럼 싸늘하게 얼어붙어 버린다. 다를 입 조심하라고 나라님이 엄하게 함구령을 내린 듯 ‘쉬쉬’싸한 분위기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어쩔 것인가? 못난 딸을 둔 죄로 양쪽 집안의 부모들은 답답한 마음에 가슴만 칠뿐이다. 순박한 산골 사람들인지라 딸을 앞장 세워 재를 넘을 용기조차 없었다. 그렇다고 마음마저 그럴까? 그저 시시때때로 동네를 가로막은 재를 바라다보며 하마나, 하마나 기다리다가 땅이 꺼져라 한 숨 짓는 것은 인지상정이었다. 그런 한편으로 죽은 듯이 쳐 박혀 지내다가 그럴싸한 후처 자리가 나서면 두 말 없이 집을 나가라며 윽박지를 뿐이었다. 그때마다 소박을 맞아 쫓겨 온 주제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그녀들은 얼굴을 양 무릎 사이에 묻고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졸지에 죄인이 된 그녀들은 더 이상 어리광을 부리던 사랑스러운 딸이 아니었다.

시집을 가기 전에는 애교만점에 사랑스럽고 예쁜 딸이라 투정도 부렸고 심술도 부렸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역모집안의 여인들처럼 관노나 노비로 전락한 듯 밥벌이를 해야 하는 일꾼에 불과할 뿐이었다. 더 이상 화려하게 펼쳐지는 장밋빛 미래는 같은 것은 꿈조차 꿀 수가 없었다. 물론 백마 탄 왕자의 꿈같은 상상은 더 이상 엄감생심이었다. 시집에서 다시 찾지 않는 한 그녀들 앞에는 오로지 고된 일과 험한 세상살이가 눈앞에 펼쳐질 뿐이었다. 어쩌다 자식새끼들을 올망졸망 거느려 손에 손을 다정하게 잡고 천정 나들이 길에 나선 동네의 언니를, 동생을 한없이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 썩을 년아~ 왜? 부럽냐! 그러게 좀 잘 하들 않고!”하는 어미의 한 끓는 말에는 닭똥 같은 눈물을 삼키며 어두컴컴한 방으로 꾸역꾸역 기어 들어가는 것이 고작이다. 입이 있어 밥을 먹고, 귀가 있어 듣고, 눈이 있어 보고, 코가 있어 숨을 쉴 뿐이지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닌 삶이 되어버렸다. 아버지의 말처럼 진즉에 시집의 뒷산에 올라 목을 매지 못한 자신의 행동이 뒤늦게 후회로 남는다. 게다가 남남이 되었건만 밤이면 밤마다 생각나는 지랄 맞은 신랑의 품속은 어찌하여 그렇게 따뜻하여 그리울까? 부엉이가 우는 새벽녘이면 가슴을 저미는 듯 생각날까? 뜬 눈으로 지새는 밤에 눈물이 베갯머리를 축축하게 적시는 날이 늘어만 간다.

그렇게 가슴시린 밤이면 청상과부들이 왜 송곳을 찾고, 바늘을 찾고, 엽전을 찾고, 다듬이질로 밤을 지새우는지를 알았던 것이다. 이심전심이라고 청상과부들이 새벽녘을 빌어 차디찬 냉수가 차다 않고 뒤집어쓰는 심정을 백 번 헤아리고도 남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 청순을 떨어대던 청순가련형의 여자가 질색팔색 하던 남자 품에 안기자 더없이 행복한 미소를 보내는 이유를 가슴으로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젠 그런 날들이 요원해 보인다. 그렇다고 영영 잊을 수도 지울 수도 없다. 남자가, 원수 같은 서방이 서럽게 그리운 밤이 지난 그런 날이면 그녀들은 더욱 일에 미쳤다. 일에 미치는 그 시간만큼은 생각이란 욕정의 굴레에서 벗어 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느 누가 손만 뻗쳐오면 뒤도 안 돌아보고 뛰쳐나가리라 다짐하는 것이다. 어느 순간 친정이 창살 없는 감옥살이라 여긴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한 처녀가 입덧을 했다. 이는 전혀 뜻밖이었다. 입덧을 계기로 둘의 운명은 얄궂게 엇갈려 버린다. 동네에서도 이 기막힌 사실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어떤 사람은 임신한 처녀의 손을 들었고, 또 어떤 사람은 홀몸인 처녀의 손을 들었다. 처녀 둘도 스스로 자신의 처지를 비교해 볼 때 아무래도 홀몸인 처녀가 더 비전이 있다 여겼다. 소박을 맞아 친정으로 쫓겨 온 주제에 혹까지 붙여서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다. 애물단지를 달아서는 뛰지도 걷기도 힘들다 여긴 것이다. 홀몸이라야 어디로든 가고 싶을 때 미련 없이 훌훌 털고 떠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행복을 위해 혼인한 사실을 숨겨 처녀의 몸이라 속이기도 싶다 여긴 것이다.

임신한 처녀의 집안에서는 아닌 게 아니라 난리가 난 셈이다. 소박하다면 소박하고 대범하다면 대범한 거짓말로 위장할 희망마저 가뭇없이 사라져버렸다 생각한 때문이었다. 그런 자신의 처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지지리 궁상으로 안방에다 진을 친 딸내미를 보건데 아비도 어미도 그저 나온다는 것은 한숨뿐이다. 저걸, 저 쓸모없는 딸년의 앞날을 앞으로 어떡할 거냐고! 처지도 모르고 철딱서니 없이 어째서 임신을 했냐는 것이다. 임신을 사람이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겠냐마는, 당연히 축복받을 일이 것만 하늘을 우러러 원망스럽단다. 답답한 마음에 어미가 은근히

“그 애기를 어찌 안 되겠냐?”하고 의중을 떠볼 때 처녀는

“엄마는 무슨 그런 천벌 받을 소리를, 그게 외할머니가 할 소리예요!”하고 펄쩍 뛴다. 말도 못 꺼내게 한다. 그런 가운데 나날이 배가 불러온다. 보름달처럼 불러오는 배 만큼 가슴속은 저리다 못해 아리다. 시간이 흘러 그럴싸한 자리가 나서면 작수성례에 물건 치우듯 치울 작정이었는데 이제 그 작은 희망의 불씨마저도 없어진 까닭에 더 아픈 것이다. 결국 생각 끝에 아비가 처녀를 불러 앉힌 끝에 작심을 한 듯

“이제 그 애는 내 자식이다. 아들이면 남동생이고 딸이라면 너에게는 여동생이란 말이다”하고 말한 아비는 다 타버려 재만 가득한 장죽의 대꼬바리(담배통의 방언)로 놋재떨이가 깨어져라 두들긴다. 처녀가 무언가 말을 하기는 해야 하는데 놋재떨이의 울림에 한껏 주눅이 들다보니 얼른 주워 삼켜버린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 앞에 처녀는 무슨 말을 하려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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