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60)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60)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2.04.18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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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은 뭐 도토리 키 재기로 그럭저럭 비슷비슷 합니다
다된 밥에 재를 뿌리듯 일이 틀어질까 두려운 것이었다
문지방 아래다 엎어놓은 바가지가 깨어져 산산조각으로 흩어진다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그즈음 감골댁은 감골댁 나름대로 바쁜 나날은 보내고 있었다. 지난 날 할머니에게, 아버지에게 스치듯 던진 말에 책임을 지고자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었다. 마침내 감골댁이 기울인 그간의 노력이 결실을 보아 아버지가 장가를 들게 되었다. 감골댁으로부터 재 넘어, 산 넘어, 물을 건너고 또 산을 넘고 강을 건너서 두메산골에 참한 색시가 있다는 말은 전해들은 할머니는 감골댁의 두 손을 부여잡고는

“동~상! 고맙네! 고마워!”하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나이 고하를 떠나 노총각인 아들의 혼사가 성사된다는 데 이보다 더 기쁜 일 어디에 있을까? 청하지 않아도 그저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 색시 나이는? 양친은? 집안은? 인물은”하는 할머니의 속사포 같은 물음에

“아이참 성~님은! 그걸 그렇게 한 참에 다 물으면 나는 어떡하라고요! 그러니까 성~님 그게! 나이는 신랑보다 5살 아래고, 양친은 어릴 적에 병으로 조실부모하고 현재 오라버니 집에 얹어 산 다네요! 집안은 뭐 도토리 키 재기로 그럭저럭 비슷비슷 합니다”하고 감골댁은 우물쭈물 거리다가

“생김새는 전체적으로 수더분하고 인물은 남들에 비해 그렇게 빠지지는 않은 모양으로 키는 나랑 비슷하다고 하네요!”하는 말끝을 송구스럽다는 듯 손을 맞잡아 비빈다. 좀 더 그럴싸한 조건의 처녀를 못 구했다는 자격지심에 미안해하는 표정이다.

“이 사람아 그라믄 딱 이지! 지금의 내 처지에 어째 더운 밥 찬 밥 가릴 처지인가? 그라고 여자가 뺀지리하게 잘 생기도 안 좋은 기라! 그저 남들에 비해 크게 안 빠지고 수더분하면 그만 인기라! 최곤기라! 우리라고 숟가락 몽디(‘몽둥이’의 방언)하나, 젓가락 짝짝이 하나, 뭐하나 재대로 내세울게 있어야지...! 어쨌거나 성사만 시켜주게! 근데 어디서 그런 참한 처자를 구했나! 그래! 감골댁 자네 능력이야 내 익히 알고 있지만 참말 용하기도 하네!”하며 재차 감골댁의 양손을 잡아 어루만지며 일이 잘못되어 틀어질까 당부에 당부를 거듭하는 할머니다.

감골댁이 그 차진 입으로 무얼 얼마나 부풀려 거짓말을 했든 안 했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또 인륜지대사인 혼사에 양념처럼 거짓말이 섞여 드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당년지사다. 도가 지나치지만 않으면 오히려 윤활유 역할이다.

소설 ‘맹진사댁 경사’에서도 김 판서 아들 미언은 절름발이라는 거짓소문을 내어 한 성깔에 도도한 맹 진사의 딸을 피해 목표한 예쁘고 마음씨 착한 계집종과 성혼을 했다질 않는가? 할머니 입장에서 촌구석은 차제하고 재물이 분에 넘치게 많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답이 많은 것도 아니다. 게다가 신랑자리라 해야 혼기를 놓친 늙은 노총각에 가진 것이라곤 불알 두 쪽이 전부다. 어디 그 뿐인가? 시누이자리는 태어나는 날부터 시난고난 앓아누웠다가 이제야 겨우 깨어나 겉치레만 사람 형상을 하고 있다. 천지 분간을 못해 철딱서니 없이 싸돌아다니기만 한다.

신랑자리가 성실한 것 빼고는 무엇 하나 떳떳하게 내놓을 것이라곤 없는 처지다. 성실, 어느 집 아들인들 어머니 된 입장에서 볼 때 성실하지 아니한 아들이 어디 있다든가? 성실하다는 것도 어미로서 마음이 든든하다고 자랑일 뿐 딱히 들어 내놓고 자랑할 조건도 아니다. 그런 한미한 집안에 멀쩡한 처녀가 시집을 오다는 자체가 감지덕지다. 지병만 없고 사지 육신만 말짱하면 되는 것이다. 조실부모 했다는 말이 좀 꺼림칙했지만 참하고 음전하다니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신부자리가 더 세세하게 알아 마음을 바꿔 먹기 전에 작수성례에 당장이라도 집으로 들이고 싶은 것이 할머니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괜히 이것저것 따지고 들다가 다된 밥에 재를 뿌리듯 일이 틀어질까 두려운 것이다. 그러자 할머니가 감골댁에 매달리는 마음은 더욱 간절하기만 했다. 그때만큼은 동네 사람들도 제각각 나서서 큰일 했다며 감골댁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워 할머니의 어깨에 힘을 싣는 과 동시에

“확실하게 책임지게!”하며 한 입으로 두말을 못하게 감골댁을 두고 아예 쐐기를 박는다. 그래보았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못을 박는다.

“틀림 없제! 틀림없어야 한 데이!”하는 다짐에 인감도장을 눌러 찍듯이 다짐을 받는다.

마침내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러 아버지가 어머니를 맞으러 먼 길을 떠났다. 하룻밤이 지나자 할머니는 안절부절 못해 연신 삽짝을 들락날락한다. 보다 못한 감골댁이

“성~님! 어련히 알아서 안 올까봐 그러슈! 걱정 마세요 꼭 올 사람입니다. 내 안 오면 열 손가락 손가락마다 장을 찌집니다”하며 할머니를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축대에 올라앉은 청솔댁조차

“아~ 이 사람아 좀 그만 들락날락거리게! 눈앞으로 파리가 나는 것도 아니고 머리채 허연 할망구가 왔다리~ 갔다리, 당체 정신머리가 혼란스러워 설랑! 아~ 시집오려고 머리 올려 약속한 처자가 가긴 어딜 가겠나! 갈 데라 곤 시집밖에 더 있는 감!”하고 달래도

“그래도 그렇지! 이럴 때 영감이라도 있으면 오죽 좋으련만 저승길이 뭐에 급하다고...!”하면서도 눈은 연신 동구 밖으로 향해 있다. 이렇게 할머니가 조바심을 내는 데는 가진 조건이 너무 허접스럽다보니 자격지심이 시시 때때로 동해 갈필을 못 잡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혼사에 대한 모든 준비는 감골댁과 영천댁, 김천댁 그리고 성주댁이 수고를 아끼지 않은 덕분에 근자에 이르러 이웃 동네를 통틀어 보기 드물게 푸짐하게 상이 차려지고 있었다. 게다가 성주댁이 영천댁을 조수로 삼아 온갖 기교를 부린 음식상은 임금님의 수랏상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산해진미로 가득하다. 따라서 할머니는 부엌일 일체를 나 몰라라 성주댁을 필두로 동네 아낙네들에게 일임하여 맡긴 상태였다.

그 한가한 시간을 할머니는 오롯이 가마를 타고 올 어머니를 기다리는데 투자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할머니의 시간은 더욱 지겹기만 하고 더디 흐른다. 그런 할머니의 조바심을 익히 헤아리듯 어머니를 태운 꽃가마는 예정보다 한시진이나 일찍이 동네 어귀에 다다르고 있었다. 동구 밖에 다다른 꽃가마가 잠시 숨을 고르는 듯 멈추는가 싶더니 이내 고샅으로 건들건들 들어서자 할머니는 입은 함지박하게 벌어져 다물어 질 줄 몰랐다. 그런 가운데 할머니가 새벽녘에 빗자루로 깨끗하게 쓸고는 황토를 곱게 뿌린 위로 가마꾼들이 구름 위를 걷는 듯 미끄러져 들어온다. 이윽고 가마가 삽짝으로 썩 들어서자 할머니는 더 안절부절 못해

“꽃가마가 오기는 왔는데 인자 나는 우짜면 좋노! 우짜야 쓸까? 우리 귀한 며늘아가가 왔는데 우짜야 쓸까?”하며 치맛자락으로 마당을 쓸 듯 오락가락이다. 보다 못한 청솔댁이

“아~ 그만 좀 나 댕기게나! 절차대로 차근차근 맞으면 되지! 웬 호들갑은...!”하는 핀잔 끝에 가마에서 내린 어머니가 감골댁과 김천댁의 부축을 받아 문지방을 넘는다. 어머니가 조심조심 문지방을 넘자마자 철퍼덕하고 문지방 아래다 엎어놓은 바가지가 깨어져 산산조각으로 흩어진다. 이어 절차에 따라 방 윗목으로 큰상을 마주하여 정좌한 할머니를 향해 어머니가 처음 올리는 절을 맞아

“그래 잘 왔다. 잘 왔어! 내 한시라도 빨리 네가 보고 싶어 눈이 빠지는 줄 알았다. 그래 며눌아가야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이 했제!”하고 치하 후 층층이 상 위에 쌓인 대추와 밤을 한 움큼 집어서는

“옛~다 며눌아가야! 이거 하나라도 흘리지 말고 치마폭에 몽땅 품었다가 아들 딸 생기는 대로 쑥쑥 낳고는 너랑 내 신랑이랑, 하여간 우리 네 식구 알콩달콩 깨가 쏟아지게 한번 잘 살아보자”하고 덕담을 마친 할머니는 늘어진 어머니의 치마폭에다 훌쩍 던져 넣는다. 그날 밤 할머니의 소원대로 신방의 창호지에는 침이 발린 구멍이 3개를 지나 5개나 뚫렸다. 동네 사람들이 축하한다며 건네는 술잔을 맛을 보는 할머니는 진짜로 맛나다며 입 꼬리가 귀에 걸리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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