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어날 추억] ㉟ 명품 상주 곶감의 명성
[꽃 피어날 추억] ㉟ 명품 상주 곶감의 명성
  • 유병길 기자
  • 승인 2021.10.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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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집집마다 몇접씩 곶감을 만들었지만, 요즘은 대량의 곶감을 생산하는 농가가
노약자들의 감나무 밭을 사서 곶감을 생산하여 판매하고 전국적으로 상주 곶감의 명성이 높다.
임금님께 진상하던 상주 곶감의 명성과 역사는 외남면 소은리의
하늘 아래 첫 감나무(540년)가 증명해 주는 것 같다.
유재호 씨의 곶감타래. 유병길 기자
유재호 씨의 곶감 타래. 유병길 기자

봉강리(경북 상주시 외서면)에서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곶감 농사를 하였다.

1959년생인 유재호(63)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취직하고 퇴직할 때까지 주말에는 혼자 농사를 짓는 어머니를 도와드리며 곶감을 깎아 말리는 방법을 익혔다.

2016년 조그마한 건조장을 짓고 누나 매형의 힘을 빌려 곶감 농사를 시작하였다. 주말에는 곶감 일을 하다, 퇴직하고 전념하게 되었다. 몇 년 곶감을 생산하다 보니 건물 옆에 지은 건조장이 협소하고 바람이 잘 통하지 않아 곰팡이 피해가 있었다.

마을 뒤 제일 높은 곳에 부지를 확보하여 건조장을 확장 신축하여 감 타래에 처음 깎은 감을 달았다.

예전에는 감나무에 올라가서 대나무 장대에 끼워 돌려서 하나하나 땄지만, 요즘은 작은 나무는 밑에 모기장 망이나 매트를 깔고 흔들어서 쉽게 감을 따거나, 감 따기 전용 장대의 길이를 조절하며 감을 끼워 돌려서 쉽게 딴다.

감 꼭지를 제거하고 감을 깎는 모습이다. 유병길 기자
감 꼭지를 제거하고 감을 깎는 모습이다. 유병길 기자

딴 감을 상자에 넣어 가져오면 선별기기로 크고 작은 것을 가린다. 예전에는 작을 칼로 하나하나 깎았지만, 요즘은 감을 깎는 기계가 성능이 좋아 잘 깎는 사람은 하루에  6,000~6,500개를 깎고, 보통 사람도 5,000개는 깎는다. 꼭지를 따는 곳에 감을 대면 꼭지가 잘리고, 깎는 기계에 끼우면 감이 돌면서 칼날에 껍질이 다 깎이면 에어가 깎은 감을 앞으로 팍 밀어낸다.

깎은 감을 행거에 끼운다. 유병길 기자
깎은 감을 행거에 끼운다. 유병길 기자
곶감 걸이를 대차의 걸이에 연결하는 유재호 씨. 유병길 기자
행거에 끼운 곶감 걸이를 대차의 걸이에 연결하는 유재호 씨. 유병길 기자
어제 오후에 다시 단 곶감타래. 유병길 기자
어제보다 오른쪽에 더 달린 곶감 타래이 모습이다. 유병길 기자

깎은 감이 모이면 옮겨서 꼭지에 헹거를 끼워 곶감 걸이에 10개씩 끼워 대차에 연결한다. 대차에 가득 차면 감 타래 밑으로 밀고 가서 사다리차 위에 올라간 사람에게 올려주면 감 타래에 연결하여 단다. 긴 가을장마와 감나무에 발생된  병으로 인하여 감이 많이 떨어졌다. 지금 달린 감 타래 밑으로 한 단을 더 달아야 하는데 못 채울 것 같단다.

밖에서 본 감 건조장의 모습이다. 유병길 기자
밖에서 본 곶감 건조장의 모습이다. 유병길 기자

 

감나무에 올라가서 장대로 감을 따던 모습이다. 유병길 기자
감나무에 올라가서 장대로 감을 따던 모습이다. 유병길 기자

옛날에는 벼 베기 작업이 끝나면 긴 줄을 허리에 묶고 감나무에 올라가서 끈에 묶인 다래끼 줄을 당겨 올렸다. 대나무 장대를 들고 감이 달린 가지 하나하나를 장대 끝에 끼워 옆으로 틀어 감 가지를 꺾어서 땄다. 다래끼에 가득 되면 줄을 잡고 땅에 내려서 큰 그릇에 비우고 다시 올려서 따고 종일 감을 따면 팔다리 온몸이 아팠지만, 어른들은 나무 위에 올라가서 감을 땄다. 어두워져서 더 감을 딸 수 없으면 딴 감을 지게에 지고 머리에 이고 집으로 왔다. 저녁에는 감꼭지를 떼고 감을 깎았다.

칼로 감을 깎던 모습이다. 유병길 기자
옛날에 칼로 감을 깎던 모습이다. 유병길 기자

 

감나무가 없는 아줌마들이 작은 칼과 소쿠리를 들고 왔다. 아주머니들은 밤늦도록 감을 깎아 주고 감 껍질을 얻어갔다. 감 껍질을 말려두면 겨울에 깎인 부분에 하얀 분이 나는데 입에 넣어 씹으면 단맛이 나기 때문에 배가 고파서 많이 먹었다. 감을 따다가 깨어지거나 상처가 나서 곶감을 만들 수 없는 감은 얇게 썰어 감또개(감말랭이)로 말려서 먹었다.

깎은 감을 싸리나무에 끼우는 모습.  mbc거름꽃(1993년) 참고
깎은 감을 싸리나무에 끼우는 모습.  mbc드라마 '거름꽃'(1993년) 참고

깎은 감을 미리 준비한 싸리나무에 10개씩 끼웠다가 이튿날 아침에 감 타래에 내려놓은 두 줄의 새끼줄에 10개씩 끼운 꼬치 양쪽을 끼워서 말렸다. 길게 늘어진 새끼줄에 꼬치가 가득 걸려서 발갛게 색깔이 변하여 갈 때는 붉게 물들어 떨어지는 감잎과 초가지붕이 조화를 이루어 한 폭의 동양화를 감상하는 것 같았다.

곶감의 색깔이 검붉은색으로 변하고 겉이 쪼글쪼글하게 말라가면 속은 말랑말랑하고 당도가 높아져서 맛이 있었다. 아이들이 학교 갔다가 집에 와서 배가 고프면 몰래 곶감 꼬치에서 두세 개씩 빼 먹었다.

곶감이 마르면 곶감 타래에서 감 꼬치를 방안에 운반하여, 한 꼬치의 곶감 열 개를 보기 좋게 손질을 하고, 양쪽 끝의 싸리 대를 꽃 모양이 나도록 잘랐다. 적당한 길이의 칡넝쿨 두 줄을 상 위에 놓고 곶감 꼬치 다섯 개를 옆으로 놓고, 위에 짚으로 만든 납작한 사각 뭉치를 양쪽에 놓는다. 그 위에 꼬치 다섯 개를 놓고 칡넝쿨로 양쪽을 묶으면 직사각형의 목침과 같은 곶감 한 접(곶감 100개)이 완성되었다. 곶감 100 접을 한 동이라고 하였다. 한 동 정도를 하여도 힘이 들었는데, 감나무가 많은 집은 열 동을 하는 집도 있었다. 곶감을 접을 보관하면 곶감에 하얗게 분이 나고 더 달았다. 상주 장날마다 접 단위로 판매를 하였다.

깎은 감을 싸리나무에 끼워 말리다 빼면, 곶감에 구멍이 뚫려 보기도 좋지 않았고, 구멍에 파란 곰팡이가 피어 유해 논란이 생기게 되었다. 70년대 후반부터는 감꼭지를 조금 길게 잘라 노끈을 묶어 감 타래에 달아 말렸다.

집집이 한 마리씩 키우던 한우가 영농의 기계화로 농가에선 자치를 감추고, 몇십 마리에서 몇백 마리를 키우는 축산농가에서 한우를 대량으로 키우듯, 곶감 역시 그렇게 바뀌었다. 곶감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농가에서 노동력이 없는 농가의 감나무를 사서 몇 접씩 감을 깎는 농가는 없어졌다. 감을 딸 때 깨어지지 않게 감나무 밑에 모기장 망을 치고 매트를 깔고 감을 땄다. 곶감 대농가는 저온 창고에 생감을 보관하면서, 감을 기계로 깎아 주는 아주머니들을 아침저녁 출퇴근시키며 감을 깎았다.

재호 씨는 누나와 한 명의 아주머니를 고용하여 감을 깎으며 감의 꼭지에 행거를 끼워 감 타래에 달고 말려서 10~12동의 곶감을 생산 상주 곶감 상표로 포장하여 전국으로 판매하였다.

전에는 다목적 숙성 건조기로도 . 유병길 기자
 다목적 숙성 건조기 사진이다. 유병길 기자

재호 씨는 매년 2대의 건조기로도 곶감을 말렸으나, 올해는 감이 적어 건조기를 놀리고 있다.

단단하게 마른 곶감보다 감을 깎은 후 40~50일 정도되면 말랑말랑하고 당도가 높은 것을 선호하게 되어 덜 마른 곶감을 손질하고 포장하여 냉동실에 보관하였다가 판매하고 있다. 곶감을 샀거나 선물 받은 가정에서도 냉동실에 보관하였다가 먹으면, 맛있는 곶감을 먹을 수 있다.

상주에서 많이 재배되는 둥시 감은 씨가 알맞게 들어있어 곶감을 만들어도 크기가 줄지 않아 곶감 만드는 감으로 아주 적당하다. 곶감 가격이 비싸다고 하는데, 노동력과 자재비가 많이 들고 곶감을 말릴 때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비싸다고만 할 수가 없다.

반건조 상주 곶감 사진. 유재호 씨 제공
포장된 반건조 상주 곶감 사진.  유재호 씨 제공

옛날부터 상주 곶감은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려 지금까지 그 명성이 높아 상주시민의 소득을 높여주었다. 상주 곶감의 명성을 지키려면 곶감을 생산하는 모든 농가가 노력하여야 상주 곶감의 명성을 대대로 이어 갈 것이다.

상주시 외남면 소은1리에 540년(동네에서 내려오는 구전은 750여 년)된 하늘 아래 첫 감나무(상주시 보호수 제05-08-02호 지정)가 지금도 매년 2,000~3,000개의 많은 감을 달고 자라고 있다.(김영주 씨 제공) 나무 둘레가 3m 높이가 10여m인데 가운데가 썩어 두 갈래로 나뉘어 있다. 밑 부분에는 접을 붙인 형태가 남아있는 것을 보면 그 옛날에도 고염나무에 접목하여 감나무를 키운 조상님들의 지혜를 엿볼 수가 있다. 이 감나무를 관리하는 김영주 씨도 퇴직하고 곶감을 생산 판매하고 있다.

임금님께 진상하던 상주 곶감의 명성과 역사를 하늘 아래 첫 감나무가 증명해 주는 것 같다.

<국립산림과학원 DNA검사로 수령 540여 년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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