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아래 첫동네, 지리산 와운마을 천년송을 찾아서
하늘아래 첫동네, 지리산 와운마을 천년송을 찾아서
  • 장희자 기자
  • 승인 2020.11.0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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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800m 산자락에 우뚝 솟은 소나무
정이품송 닮은 천연기념물 424호 '지리산 천년송'.
천년송은 마을의 수호신, 지리산 명소 중 하나
마을 어귀 부부송은 삶의 애환을 부부애로 극복함
지리산자락 800m 언덕의 천년송 . 장희자 기자

학교 뒷산 산책하다, 반성하는 자세로,
눈발 뒤집어 쓴 소나무, 그 아래에서
오늘 나는 한 사람을 용서하고
내려왔다. 내가 내 품격을 위해서
너를 포기하는 것이 아닌,
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것이
나를 이렇게 휘어지게 할지라도.
제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이 지표(地表) 위에서 가장 기품있는
건목(建木); 소나무, 머리에 눈을 털며
잠시 진저리친다.                           (소나무에 대한 예배,   황지우)

'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것이 나를 이렇게 휘어지게 할지라도'가 가슴에 엉겨븥는다. 

천년송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와운(臥雲)마을은 우리나라 국립공원 1호로 지정된 지리산국립공원의 북동쪽 자락인 전북 남원시 산내면 부운리 355번지 일대에 있는 마을로, 지리산국립공원전북사무소에서는 동남쪽으로 3㎞정도 떨어져 있다. 해발 800m에 위치하고 있어 구름도 누워 갈 정도로 높고 험한 곳이라는 뜻에서 와운(臥雲)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동남단 산간 대분지에 위치하여 내륙성 기후대에 속하므로 대체적으로 온화한 기후를 보이며, 겨울철에는 대륙성 고기압의 영향으로 추운날이 많고 여름철에는 아열대 저기압 및 지리산의 영향으로 비가 많이 오는 지역에 속한다.

언덕 위쪽에서 아래로 바라본 천년송의 모습으로 수세가 왕성하다. 장희자 기자

와운마을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반산리, 미동, 와운리, 하부운리, 개선리가 병합되어 부운리에 편입되었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595년경 영광 정 씨와 김녕 김 씨가 국난을 피하기 위해 깊은 산과 계곡을 찾아 다니다가 공기가 맑고 산세가 좋아 피난처로는 최적지라 생각하여 안심하고 이곳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6.25전쟁이 일어난후 1951년 지리산이 빨치산의 소굴이 되자 전 주민이 피난 이주하였다가 1954년 수복과 함께 다시 입주했다. 1977년 지리산 전적비 및 기념관을 개관하였으며,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기암절벽과 깨끗한 물, 계곡, 수목 등이 알려지면서 관광지로서 각광 받기 시작했다. 1995년 민박사업을 비롯 휴양촌을 가꾸기 위하여 마을 내 주택개량 사업을 활발히 전개하여 관광 휴양촌을 가꾸기 시작했다. 2009년께 도로가 연결되면서, 하나둘씩 관광객이 찾기 시작해 입소문을 탄 뒤 이제는 지리산의 최고 명소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특히 이 마을에는 지리산 명선봉에서 영원령으로 흘러내리는 동서로 뻗은 마을 뒷동산 능선의 가운데에 천연기념물 제424호인 지리산 천년송(할매소나무)이 있다.   우산을 펼쳐 놓은 듯한 반송으로 두 가지가 대등하게 잘 조화되어 있다.   그리고 속리산 정이품송을 닮아서 수형이 아름다우며, 애틋한 전설을 가진 유서 깊은 노 거목으로 희귀성과 민속적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테크로드 초입에서 올라다본 천년송과 와운마을이, 알룩달룩 가을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깊어가고 있다. 장희자 기자

와운교를 건너면 바로 계곡옆에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바위 위에는 분재형 명품소나무 2그루가 다정하다. 하트모양 팻말과 함께 부부송이라 적혀 있다.  흙 한 줌 없는 바위 틈에 뿌리를 드러내고도  파란 잎을 피워내고 있다. 탐방객들의 기도가 줄줄이 이어진다. 척박한 환경속에서도 녹록지 않은 삶의 무게를 부부애로 꿋꿋하게 극복한다. 이곳에서 와운마을까지는 0.7㎞ 정도인데 하천변을 따라 마을길이 있고 테크로드길도 조성해 놓았다. 

오르막길을 따라 와운마을 안내센터 앞에 도착하면 천년송에 대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천년송가는길’ 상호의 식당옆 테크로드 언덕길을 따라 0.2㎞정도를 올라가면 천년송이 있다.  마을 안길쪽에도 2곳이 더 있다. 언덕길을 오르면 「지리산 천년송 와운명품마을」이라 적힌 홍보성 목재문이 나타나는데 이곳에서 탐방객들이 기념촬영을 하느라 분주하다.

 두터운 용비늘 모양의 나무껍질이 오랜세월의 연륜을 말해주는 듯하다.  수령이 500여년으로 추정되는 이 소나무는 높이 20m, 가슴높이의 둘레 4.3m, 수관폭은 동서방향 18m, 남북방향 24.2m이며, 수세도 기운차고 왕성하다.

천년송이 있는 산자락에서 와운마을을 내려다 본 모습으로, 단풍이 농익은 심산유곡의 모습이다. 장희자 기자

위쪽으로 20m 지점에는 할매소나무보다 좀 더 작은 할아시(할아버지)소나무 한 그루가 더 있으며,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초사흗날에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마을주민들이 ‘당산제’를 지낸다. 주민에 의해 당산제의 제관으로 선발된 사람은 섣달 그믐날부터 외부 출입을 삼가고 뒷산 너머의 계곡(일명 산지쏘)에서 목욕재계하고 옷 3벌을 마련, 근신해야 한다.

이 마을은 지리산국립공원 해발 800m의 고지대에 위치하면서 천년송과 주변 산세가 뛰어나는 등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어 2015년 지리산국립공원 내 마을 중 처음으로 국립공원 명품마을 조성지로 선정됐다.

2016년에는 안내센터 신축, 상업 및 주거환경 개선, 랜드마크 설치 등 명품 시설 기반 중심의 탐방 인프라를 구축했다. 2017년 차 없는 마을, 홈페이지 개발, 특화음식 개발 등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맞춤형 특화사업을 중점 추진하여 그해 6월 29일 명품마을 준공식을 거행했다.  와운 명품마을은 현재 14가구에 33명의 주민이 래방객을 상대로 숙소(10개)와 식당(7개)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리산 최초로 명품마을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는 부부송은 결코 녹록치 않은 우리의 현실을 부부애로 꿋꿋하게 극복해 나가는 분신처럼 느껴진다. 장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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