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각과 한평생 김우섭 명장
서각과 한평생 김우섭 명장
  • 장희자 기자
  • 승인 2019.10.21 21:1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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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청 본관(안민관) 등 5개소 현판 제작, 경북도청 관풍루 등 현판 제작,
장인정신 실천이 문화의 보존과 계승이며 삶의 보람, 끌과 망치로 나무에 불어 넣는 혼,
2016년 4월 19일 우리나라 ‘편액’ 유네스코 아시아ㆍ태평양기록유산 등재,
자신이 운영하는 목공방에서 충효당(忠孝堂)에 대해 설명하는 김우섭 장인(匠人)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목판 인쇄 기술이 뛰어났으며 신라시대에는 경주 불국사(佛國寺)의 석가탑(釋迦塔)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국보 제126호)은 서기 751년 이전에 간행된 세계 최고의 현존하는 목판 인쇄본임이 밝혀져 그 가치가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고려시대에는 해인사(海印寺)에 소장된 국보 제52호인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통해 불교의 융성과 더불어 경판 인쇄가 얼마나 활발했던가를 알수 있다. 이후 일본강점기 사진술과 인쇄술의 도입으로 전통적인 목판인쇄는 급속히 사라지게 되었다.

안동 도청신청사 서편 원당지 연못옆에 세워진 관풍루(觀風樓)에 김우섭 장인이 새긴 현판이 달려있다.
김우섭 장인이 조각한 관풍루(觀風樓)기문

현대에 들어 급속한 산업화의 영향으로 점차 한옥은 사라지고 아파트문화가 형성되면서 서각(書刻)은 관심 밖으로 밀려나 사찰과 고궁의 현판(懸板), 주련(柱聯), 편액(篇額) 그리고 비각(碑刻) 및 서(書)의 한 행위로 우리의 생활 속에서 명맥을 유지하여 오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 물질문명 만능주의가 팽배해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 조상들의 우수한 전통 문화예술의 전승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김우섭(64) 서각 명장의 공방을 찾았다.

김우섭 장인이 조각한 안민관(安民館) 현판이 안동 경북도청 신청사 본관에 달려 있는 모습.

시간을 내어 주셔셔 감사합니다. 서각(書刻)이란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본능적(本能的)으로 자신의 의지나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파거나 새기는 행위를 해왔습니다. 각자(刻字)는 나무나 돌 등 각종 재료에 글자를 새기는 것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표현된 글자를 새긴다는 뜻으로 서각(書刻)이라고도 하며 각자(刻字)를 하는 장인(匠人)을 각자장(刻字匠) 또는 각수(刻手)라고 합니다.

묵계서원(默溪書院)에 대하여 설명하는 김우섭 장인(匠人)

우리나라에는 언제부터 서각이 발전하게 되었습니까?

서각은 삶의 자취를 남기고자 노력했던 인류의 역사와 함께 발전하여 왔으며, 이후 문자가 발명되면서 그림 대신에 문자를 새기는 방법으로 인간의 역사를 기록하게 되었고, 더불어 서각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고대인들의 면 새김과 선 새김의 방법을 사용한 국보 제285호로 지정된 울산 반구대 암각화(巖刻畵), 청동기나 철기시대의 명문(銘文), 고구려 광개토대왕비를 비롯한 유적비에 새겨진 문자들은 서각(書刻)의 기원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9세기 후반기인 신라 말기부터 목판인쇄물이 널리 보급되어 마침내 시문(詩文)등 일반 학술서까지 간행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신라시대의 목판인쇄술을 계승하여 사찰을 중심으로 경전이나 고승의 시, 문집 및 저술 간행이 성행하면서 목판인쇄의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새김이 정교하고, 각법 또한 탁월하여 고려시대 불경 경판들이 가장 뛰어난 조판(雕版)의 정화라 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배불정책에 의하여 사찰경제가 많은 핍박을 받았지만 고려시대의 목판인쇄가 그대로 전래되어 판각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내려오면서 점차 각자의 새김은 초기에 비해 그 정교함이 매우 떨어져 퇴화현상을 나타내었으며, 뿐만 아니라 금속활자의 발달은 목판각자의 퇴화를 촉진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김우섭 장인이 경산시 하양읍 한사리에 운영하는 예당목공방(藝堂木工房) 정면 모습

서각은 어떤 순서로 진행 되는가요?

먼저 치목(治木)이라고 하여 그 쓰임새에 맞는 나무를 정하고 고르는 일이며, 주로 자작나무, 은행나무를 쓰는데 큰 현판은 요즘 그 대부분이 수입목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나무가 정해지면 바닷물에 담그고 건조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는 온도나 습도의 변화에 나무의 형태가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며, 이 과정이 끝나면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표면을 대패로 민 후 그 위에 글씨를 늘여놓는데, 이를 배자(配字)라고 하는데 특히 반서각에서는 매우 중요한 작업입니다. 나무의 공간에 글씨의 배열이 정확한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하며, 다음에 각자(刻字)에 들어갑니다. 한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고도의 정밀을 요하는 이 작업은 칼과 끌, 망치 등으로 작업이 이루어지며, 때에 따라 칼을 쓰기도 하고, 때로는 끌이나 정에 망치를 때려 글을 새겨 넣기도 하는데 이는 바로 글씨의 맛과 특징을 고려해서 선택합니다.

동편(측면)에서 바라본 예당목공방(藝堂木工房) 모습

작업을 할때 어떤 도구를 사용 하시나요?

각자에 필요한 도구는 크게 나무를 다듬을 때 필요한 도구로는 그무개, 곡자와 조합자, , 대패와 각자를 할 때 필요한 도구로는 평칼, 굽은 평칼, 삼각칼, 둥근칼, , 함지박칼, 때리는 칼, 다듬는 칼, 각자용 망치, 조임쇠 등으로 나누어집니다.

김우섭 장인이 고교시절 처음 조각한 안동 하회탈 모습

작업할때 사용하는 재료는 어떤 종류가 있나요?

각자를 할 때 쓰이는 재료로는 나무가 주로 쓰이는데, 나무는 재질이 아름답고 재료 구입이 쉬우며, 작품을 한 번 만들면 영구적으로 보존이 가능한 점 때문에 선호되어 왔습니다. 목공예에서는 빛깔과 무늬가 진하고 선명한 나무를 선호하지만, 각을 할 때는 글씨가 죽기 때문에 그런 나무는 피하며, 감나무의 경우 목공예에서는 좋은 나무이지만, 각자를 할때에는 검은색 대문에 글씨가 죽으므로 글씨가 생명인 정서각에서는 쓰지 않으며, 정서각이나 반서각 모두 검은 빛깔의 나무를 사용하는 것을 꺼립니다. 그리고 나무의 무늬는 각할 때 대칭이 되는 것이 나중에 보기 좋기 때문에, 무늬의 균형을 잡아 주어야 합니다. 또한 무늬에 따라서 각이 죽는 경우도 있어 잔글씨는 가급적이면 무늬목에 각을 하지 않고, 무늬목을 원할 경우에는 각을 하기 전에 무늬를 약간 죽입니다. 일반적으로 각자에 많이 쓰이는 나무는 소나무, 잣나무, 주목(朱木)과 비자나무, 감나무, 은행나무와 호두나무, 배나무와 대추나무, 느타나무와 오동나무, 참죽나무, 고로쇠나무와 단풍나무, 박달나무와 자작나무, 벚나무와 피나무, 후박나무와 버드나무, 밤나무와 향나무, 아카시아 등이 사용됩니다.

김우섭 장인이 30대중반에 조각한 사자상(길이 180㎝, 높이 70㎝)

지금까지 서각을 하면서 가장보람 있었던 때는 언제인가요?

경상북도청이 대구직할시 북구 복현동에서 경북 안동시 풍천면 도청대로 455번지로 이전한 후에 도청 신청사 건물이 한옥 모델로 설계가 되자 현판제작을 할것이란 소문을 듣고 1년 정도 출입을 하면서 공을 들였으나 마지막에 입찰방식으로 변경되면서 저는 입찰조건이 되지 않아 실망하고 있었는데 입찰을 받은 건축업자 측에서 저를 찾아와서 공사를 맡겨서 제가 경북도청부지내 안민관, 여민관, 홍익관, 동락관, 경화문 현판제작과 경북도청 상량문, 이전기문, 관풍루, 보국정 현판, 기문, 시문 등도 제작하게 된 공로로 2017년 12월 31일 김관용 경북도지사로 부터 청사환경개선 공로로 표창패를 받았을 때가 가장 보람있는 일이었습니다.

경북도청 현판등을 제작하고 난후 받은경상북도지사 표창패

▶ 여러 매체에서 관심을 가졌을 것 같은데요.   

 2018년 1월 16일 안동 KBS 김동욱 기자〈기록의 가치 ‘편액’〉 주제로 특집 다큐에 출연하였으며 그 공로로 담당 기자는 문화ㆍ스포츠부문에 제31회 한국방송카메라기자상을 수상하였습니다.  ‘편액’ 은 건물의 출입구와 처마사이에 글씨를 새겨 걸어 둔 나무판으로써 단순히 건물의 용도를 표시하는 역할 뿐만 아니라 선비들의 정신과 가치관, 자연관, 인생관 등을 담고 있는 소중한 기록유산입니다. ‘편액’ 은 아시아태평양 기록유산에 등재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기록유산의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것을 시청자들에게 널리 알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 2019년 4월 3일 KBS 뉴스광장 영상에도 출연하였고, 안동 MBC〈유교현판〉에도 출연하였습니다.     

영양군 영양읍 현리에 있는 영산서원을 2018년 6월 19일 복원하면서 김우섭 장인이 제작한 현판

지금까지 서각한 주요 작품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세계유교문화축전조직위원회 목판제작, 대구 달서구 인흥서원 명심보감 목판모각 제작, 밀양 표충사 국보목판 보수작업, 삼국유사 목판 판각시연 평가회, 퇴계선생 좌우명 목판제작, 군위군 삼국유사목판도감소 현판, 주련 외 17점 제작, 훈민정음해례본 목판 복각 각수 시연 평가회, 한국국학진흥원 서울 액스코 전시품 제작, 호치민 경주세계문화엑스포문화교류 현장 체험후 베트남 국립박물관에영구보존으로 지정된 목판 제작, 한국국학진흥원 현판제작(안동 )병산서원, 만대루, 고산서원, 사빈서원, 호계서원, (영양)영산서원, (선산)금호서원, 문산서원 (구미)갈뫼루, 기문, (청송)찬경루 이 밖에도 1,000점 이상 현판(편액), 기문, 시문, 복원모각 제작하였습니다.

안동 장애인복지관 목공예 지도교사 활동시 받은 공로패

지금까지 주요 활동 사항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한국미협회원, 안동 장애인종합복지관지도교사, 영남지역 장애인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 한양공예예술협회 초대작가, 자랑스런 한국문화대상조직위원회 서각명장(2014-02-02호), 2017년 충남에서 한국매죽헌서화협회 서각부문 입선·특선, 한국문학정신 장인상, 2017년 12월 31일 경상북도지사 표창, 2018년 2월 9일 평창동계올림픽성공기원 세계미술축전 우수작가상  등을 받았습니다. 

언제부터 서각을 하게 됐는지 계기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1955년 안동시 신세동에서 9남매중 막내로 태어나서 안동시내에 있는 고등학교 재학 당시 화회탈에 전문적 지식과 관심이 많으시는 주상찬 선생님을 존경하면서 취미활동으로 같이 화회탈 만들기를 하던중 조각에 대하여 재능이 있다는 것을 선생님으로부터 인정받은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조각을 배우다가  20살이 되어 군대에 갔다 와서, 다시 서울 한국조각연구소에서 수출용 사자, 호랑이 입체조각, 메달, 펜던트 작품 만들어 일본 수출하면서 8년 동안 기술 전수받으면서 일하던 중, 매형의 소개로 하양에 내려와서 당시 경산시 하양읍 금락리 소재 신혼예식장(현재 하양농협 옆 ) 건물내에 있는 가게에서 목재를 다듬어 대형 샹들리에 장식물을 제작하는 일을 하던중 결혼을 하고 나서 7년 동안 가게를 운영하다가, 대구시 동구 불로동으로 이사를 가서 8년 동안 운영하다가, 1991년 안동시 장애인복지관 목공예 지도교사로 근무하다가, 다시 2008년 현재의 자리인 경산시 하양읍 교리길 1번지에 와서 현재까지 예당목공방(藝堂木工房)을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안동시 길안면(吉安面) 묵계리(默溪里)에 있는 조선시대의 서원, 1980년 6월 17일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9호로 지정,

앞으로 계획이나 포부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안동시와 한국국학진흥원은 2015년 10월 31일 189개 문중과 서원에서 기탁한 550점의 편액을 유네스코 아시아ㆍ태평양기록유산으로 등재를 신청했으며2016년 4월 19일 등재가 확정되었습니다. 한석봉이 직접 쓴 도산서원 편액부터 극한의 예술미를 보여주는 다양한 서체로 16세기 이후 400년에 걸친 편액이 총망라돼 있으며, 앞으로 우리 서각인이 앞장서서 전국민들에게 홍보하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수 있도록 힘을 결집하여 이루어내고 싶습니다.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에 있는 이장발(李長發, 1574~1592)의 충효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재사(齋舍),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6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