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선교와 강선루가 어우러지는 선암사①
승선교와 강선루가 어우러지는 선암사①
  • 장희자 기자
  • 승인 2019.10.03 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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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30일 선암사 등 한국의 전통산사 7곳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말한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 한국의 아름다운 길 대상 수상 받은 사적 507호 및 명승 제 8호
100여 종의 수종이 사시사철 꽃이 피고 지는 우거진 녹음속 산사
승선교(昇仙橋): 조상들의 건축술과 자연과의 아름다운 조화가 느껴지는 보물 제 400호

선암사는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조계산() 동쪽 기슭에 있는 사찰로 조계종 다음으로 큰 교세를 가진 태고종의 총본산이다.

선암사 가는길에 있는 참나무: 고목에 이끼가 자라서 마치 원시 밀림속에 온 기분이 느껴진다.

선암사는 542년(진흥왕 3) 아도화상(道和尙)이 비로암()으로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875년(헌강왕 원년) 도선국사()가 창건하고 신선이 내린 바위라 하여 선암사라고도 한다.

이끼가 자란 단풍나무 고목.

고려 중기로 들어서면서 선암사는 선종 9년(1092)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 크게 중창되었다. 의천은 문종의 넷째 왕자로, 출가한 뒤 국내외 여러 종파의 불교사상을 두루 익혀 천태종을 개창하였다. 선암사를 중창할 때 의천은 대각암에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선종이 의천에게 하사한 금란가사, 대각국사 영정, 의천의 부도로 전하는 대각암 부도가 선암사에 전해오고 있다.

선암사 경내까지 흐르는 계류

조선 왕조가 억불정책을 실시하기 시작한 조선 전기는 사찰들이 대단히 어려웠던 시기로, 그후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으로 사찰이 거의 불타버리다시피 한 이후 부분적으로 조금씩 중수되다가 숙종 24년(1698) 호암대사 약휴(1664~1738)에 의해 크게 중건되었는데 당시 선암사는 ‘교학의 연원’이라 할 만큼 교학이 융성하였다. 이후에도 선암사는 크고 작은 화재를 만나 여러 차례 중창 불사되었다. 영조 35년(1759) 봄 또다시 화재를 당해 계특대사가 중창 불사를 하였는데, 화재 발생이 산강수약(山强水弱)한 선암사의 지세 때문이라 하여 화재 예방을 위해 영조 37년(1761)에 산 이름을 청량산(淸凉山)으로, 절 이름을 해천사(海泉寺)로 바꾸었다. 그런데도 순조 23년(1823)에 다시 화재가 일어나자 해붕, 눌암, 익종 스님이 지휘하여 대대적으로 중창 불사를 하였으며, 이후 옛모습을 되찾아 산 이름과 절 이름을 조계산과 선암사로 원위치하였다. 현존하는 선암사의 건물 대부분은 이때 지어진 것으로 당시에는 전각 60여 동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948년 여순사건과 1950년 한국전쟁의 피해로 많은 전각이 소실되고 지금은 20여 동만이 남아 있다.

선암사 승선교 전에 있는 작은 무지개 다리

선암사로 가는 길은 원시림 같은 참나무 종류의 고목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단풍나무, 느티나무, 동백나무, 삼나무, 전나무 등이 울창하게 있어 사시사철 녹음이 우거지고, 마음속 먼지까지 깨끗이 씻어내줄 듯 맑게 흐르는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숲길은 나무들이 다채로울 뿐 아니라 포장되지 않은 흙길이어서 더욱 좋다. 주차장에서부터 이 기분 좋은 숲길을 따라 약 15분 가량 오르면 오른편 길섶으로 하늘을 찌를 듯 장대한 측백나무로 둘러싸인 부도밭이 나온다. 부도 11기와 비석 8기가 줄지어 있는데, 부도는 대부분 팔각원당형이다. 

선녀가 목욕하러 내려왔다가 하늘로 올라간다는 승선교(昇仙橋): 길입구쪽에서 촬영한 모습

다시 눈을 부릅뜬 장승을 지나 계속 큰길로 걸어 올라가면 왼편에 계곡을 가로지르는 작은 무지개다리가 나타난다. 이 다리를 건너 모퉁이길을 따라 돌면 반원형의 큰 무지개다리가 나오고, 이 다리를 밟고 건너면 길은 강선루(降仙樓)로 향한다. 두 무지개다리 중 큰 무지개다리가 보물 제400호로 지정된 승선교(昇仙橋)이다. 두 무지개다리는 대소의 차이가 있을 뿐 축조방법이나 겉모습에는 차이가 없다. 큰 무지개다리는 길이 14m 높이 7m 너비 3.5m로, 길게 다듬은 30여 개의 장대석을 연결하여 홍예석을 드리우고 홍예석 양쪽에 잡석을 쌓아 계곡 양쪽 기슭의 흙길에 연결시켰으며, 위쪽에는 흙을 덮어 길을 만들었다. 기단부는 자연암반을 그대로 이용하여 홍수에 쓸릴 염려가 없도록 하였으며, 홍예석 중간에는 이무기돌을 돌출시켜 장식적인 효과와 함께 재해를 막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선암사쪽에서 바라본 승선교 모습: 무지개 다리중 가장 자연스럽고 우아하다는 평을 듣는다.

승선교는 숙종 24년(1698) 호암대사가 축조했으며, 순조 25년(1825) 해붕스님에 의해 중수되었다. 작은 무지개다리에서 큰 무지개다리로 이어져 강선루에 이르는 길은 강선루로 직접 통하는 큰길이 생기기 전 선암사에 이르던 옛길이다. 이 길로 들어서야 비로소 반원형의 승선교가 물에 비치어 완전한 원형을 이루며, 강선루가 이 원 안에 들어앉은 듯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강선루: 선녀가 내려와 계곡에서 목욕하고 놀다가 하늘로 올라가는 선경이 떠올려지고, 그 이미지가 풍경으로 되살아난 듯하여 신비로운 풍경.

강선루는 초창 연대는 알 수 없으며 1930년에 수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측면 기둥 중의 하나가 계곡에 빠져 있는 점이 특이하다. 강선루에서 뒤를 돌아보면 굽이 흐르는 계곡물 사이로 두 다리가 크고 작게 잇달아 있어 더 운치 있다. 승선교에서 강선루에 이르는 진입 부분이 선암사의 얼굴로 손꼽힌다.

축대위의 선암사 성보박물관: 보물 4점과 도 지정 유형 문화재 5점, 불교회화, 조각, 공예품 등 약 1천 8백여점이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이 2001년 개관.

선암사는 경사지에 축대를 쌓아 여러 개의 단을 만들어 점진적으로 오르면서 각각의 단에 전각 20여 동을 밀도 있게 나누어 배치한 공간 구성이 절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었으며, 또한 일주문에서 대웅전으로 이어지는 주축 외에 여러 개의 축을 두어 각 영역군을 형성하였다는 점이 특이하다. 주축을 이루는 대웅전 영역 뒤쪽으로 원통전 영역, 응진각 영역, 각황전 영역이 있으며, 이들 영역을 이루는 여러 전각들은 조금씩 비껴나 있으면서도 이가 물린 듯 줄지어 있다. 전각과 전각 사이에는 작은 화단이 마련되어 갖가지 꽃나무가 사시사철 피고 지며 경내를 치장한다. 뿐만 아니라 전각들 대부분이 전면 증축되거나 개축되지 않고 보수가 필요한 부분들만 조금씩 손보아지며 가꾸어진 덕택에 선암사에서는 남다른 격조와 고풍스러움이 풍겨난다.

선암사 일주문: 입구쪽에서 모습,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96호

이굽이 산모퉁이를 돌며 부도밭·나무장승·승선교·강선루·삼인당·차밭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던 약 1㎞의 숲길을 지나면 일주문에 닿는다. 일주문은 측면에서 보이는 기둥이 하나라고 해서 그렇게 불린다. 선암사의 일주문은 순박한 표정의 용조각이 장식된 소맷돌이 있는 돌계단 위에 굵은 배흘림기둥 두 개가 화려한 공포를 인 모습의 다포식 단층 맞배지붕집이다. 일주문의 배흘림기둥은 곧바로 낮고 작은 담으로 이어져 있다.

출구쪽에서 일주문 모습: ‘고청량산해천사’라 적혀있다.

일주문 안쪽에 걸린 현판 기록에서는 산 이름을 청량산, 절 이름을 해천사로 바꾸었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일주문에서 계단을 오르면 곧장 범종루로 이어지며, 일주문과 종루 사이에 배치되는 천왕문·금강문·인왕문 등이 없다.

선암사 범종루: '태고총림조계산선암사' 라 적혀있다.

일주문에서 계단을 올라서 범종루를 지나면 정면으로 육조고사라 적혀있는 만세루가 보이고 우측으로는 범종각이 있으며, 아침 저녁 예불때 모든 중생의 극락왕생을 위하여 범종을 친다.

선암사 범종각: 범종루를 오르면 바로우측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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