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조차 붉어라, 지리산 피아골계곡
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조차 붉어라, 지리산 피아골계곡
  • 장희자 기자
  • 승인 2020.10.26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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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 조식 선생이 직전계곡 삼홍소 경치를 보고 극찬한 피아골 계곡
지리산 10경중 2경에 해당하는 담소와 폭포들이 단풍과 어우러진 절경지
직전마을에서 삼홍소까지 연주담, 통일소, 삼홍교, 구계포교 등 피아골 백미
연곡사 국보 제53호 동 승탑, 국보 제54호 북 승탑, 보물 4점 등 문화재 관람

흰 구름 맑은 내는 골골이 잠겼는데
가을에 붉은 단풍 봄꽃보다 고와라 
천공(天公)이 나를 위해 뫼빛을 꾸몄으니
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조차 붉어라 (삼홍소(三紅沼)  남명 조식)

위 시는 남명 조식이 지리산 피아골 직전계곡 삼홍소(三紅沼) 경치를 보고 예찬하여 읊은 시다.  남명 조식(1501∼1572)선생은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이면서 영남학파의 거두로서 선생이 남긴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피아골의 최고 단풍명소 삼홍소(三紅沼)의 이름이 유래했다. 온 산이 붉게 물들어 산홍(山紅)이고, 단풍이 맑은 담소에 비쳐 수홍(水紅)이며, 그 계곡에 든 사람까지 붉게 물들어 보인다 해서 인홍(人紅)이라고 했다. 산과 물과 사람, 이 셋이 삼홍(三紅)을 이뤘다는 뜻이다.

남명 조식선생이 극찬한 피아골 산홍, 수홍, 인홍의 절경지 삼홍소 계곡의 모습. 장희자 기자

피아골 계곡은 지리산 봉우리인 반야봉 기슭에서 발원한 물과 노고단 기슭에서 발원한 물이 질매재에서 만나 계곡을 이루다가 내동리에서 연곡천을 형성하여 섬진강에 흘러든다. 임걸령에서 연곡사에 이르는 16에 걸친 깊고 푸른 골짜기로 광활한 원시림과 맑은 물, 삼홍소(三紅沼)를 비롯한 담소(潭沼)와 폭포 등이 어울려 절경을 이룬다.

피아골이란 이름의 유래는 임진왜란때 경상도와 전라도의 길목인 천연요새 석주관에서 칠의사가 이끄는 승병과 의병들이 왜병과 맞서 싸우다가 모두 숨졌는데 이때 의병들의 피가 내를 이루며 흘렀다 하여 피내골로 부르다가 피아골로 전환되었다는 설과, 6.25전쟁 직후에 지리산 피아골일대에서 적군과 아군, 피아(彼我)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여 졌으며, 그후 1955년도에 발표된 이강천(李康天) 감독의 피아골 영화가 상영되면서 일반대중에게 피아골로 불리어 졌다는 등의 여러가지설이 전한다.

그 중에서 옛날 이곳에 살던 화전민들이나, 연곡사에 머물며 수행하던 수백명의 승려가 식량이 부족하게 되자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는 오곡중 하나인 피(기장)을 많이 심어서 피밭골이라 불리던 것이 점차 변화되어 피아골로 불리게 되었으며, 이곳 마을이름을 피 직(稷), 밭 전(田)자를 써서 직전리(稷田里)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볼때 이런 주장을 뒷받침 해 준다

한국 문학 소재로도 자주 등장하는데, 소설가 조정래는 「태백산맥」에서 역사적으로 비극의 현장이였던 피아골과 피아골 단풍의 아름다움을 연관시켜 ‘피아골의 단풍이 그리도 핏빛으로 고운 것은 먼 옛날부터 그 골짜기에서 수없이 죽어간 사람들의 원혼이 그렇게 피어나는 것’이라 했다. 또 지리산 시인 이현규는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에서 ‘피아골과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고 했다.

피아골 계곡의 백미인 직전마을 입구에서 삼홍소까지 계곡 입구에 있는 개울폭포 주변의 수려한 경관. 장희자 기자

피아골계곡 가는길은 연곡천이 섬진강과 합류하는 외곡삼거리에서 연곡사까지는 8㎞정도로 도보로는 2시간이 걸리나 자동차로는 1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연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의 말사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연기조사가 창건하였으며, 신라 말기부터 고려 초기까지는 수선도량으로 이름이 높았던 사찰이었다. 그 뒤 임진왜란 때에 왜병에 의하여 전소된 뒤 태능이 중창하였다.

1907년 의병장 고광순(高光洵)이 당시 광양만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 정규군을 격퇴하기 위하여 의병을 일으켜 연곡사로 집결시켰다. 이때 그 정보를 입수한 일본군에 의하여 고광순과 의병들은 모두 순절하였고, 절은 왜병들에 의하여 방화를 당하였다. 그 뒤 1942년에 다시 중건을 하였으나 6·25전쟁 때 피아골 전투로 다시 폐사가 된 뒤로 1981년에 새 대웅전을 준공, 1983년에 대적광전과 관음전, 1995년에는 일주문을 세웠고, 1996년에는 종각과 수각을 지어 오늘에 이른다.

이 절에는 국보 제53호인 동 승탑 (東僧塔), 국보 제54호인 북 승탑 (北僧塔), 보물 제151호인 삼층석탑과 보물 제152호인 현각선사탑비(玄覺禪師塔碑), 보물 제153호인 동 승탑비 (東僧塔碑), 보물 제154호인 소요대사탑 (逍遙大師塔) 등 많은 문화재들이 있다.

연곡사에서 직전마을까지는 1.2㎞거리지만 도로가 협소하여 단풍철이면 연곡사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가야 한다. 마을입구에 버스종점이 있어 노고단이나 임걸령 산행하는 등산객들은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한다. 직전마을에서 삼홍소까지는 피아골 계곡의 백미로 표고막터까지는 계곡을 따라 편안한 임도길이 펼쳐져 있으며 거리도 1.0㎞정도 밖에 되지 않아서 가족간, 시니어세대들도 쉽게 접근할수 있다.

삼홍소에서 바라본 삼홍교와 단풍이 어우러진 모습은 풍경 삼매경에 빠지게 한다. 장희자

임도가 끝나는 표고막터에 도착하여, 계곡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연주담, 통일소, 삼홍소 등풍광들이 이어지는데,  여기서부터 삼홍소까지 1.5㎞ 산길구간을 비탈진 경사면을 오르락내리락 해야 하지만, 아름드리 편백나무 숲길도 있고,  산길 양편으로 조릿대 나무들이 늘어서 있어 지루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계곡쪽으로 커다란 바위군락들이 층계를 이루면서 만들어내는 폭포수의 맑은 물소리와 단풍나무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가다보면 어느새 눈앞에 계곡을 가로지르는 삼홍교 철재다리가 나타난다.

계곡에서 삼홍교를 올려다보는 풍광도 아름답지만, 삼홍교 중간에서 계곡쪽을 바라보는 주변경관과 임걸령 산쪽을 바라보는 경치도 일품이다. 삼홍교에서 계곡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니 드디어 남명 조식선생이 주변풍광에 감탄하여 삼홍소 시를 읊던 그 장소가 나타났다.  계곡물이 흐르면서 수천년 어루만지고 스치듯 빗어내고 조각하여 만든 기묘한 모양의 자연암석과 소(沼)에 떨어지는 하얀 폭포수가 단풍나무와 어울리면서 만들어내는 풍광을 보고 나니, 남명 조식 선생이 ‘피아골 단풍을 보지 않고는 단풍을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 고 말한 심경이 가슴에 닿는다 

삼홍소에서 구계포교, 선녀교, 신선교를 지나 1.5㎞거리 피아골 대피소에 도착하여,   피아골 삼거리에서 불로교를 지나면 2.0㎞ 피아골삼거리에 도착한다. 여기서 0.5㎞를 더 걸으면 임걸령이다

삼홍교에서 올라온 계곡쪽을 바라본 모습으로 단풍들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장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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