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얼 담긴 연구산 거북바위
달구벌 얼 담긴 연구산 거북바위
  • 장희자 기자
  • 승인 2019.11.19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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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관의 태평성대와 애민사상의 얼이 깃든 달구벌정신의 기원지, 서거정의 대구십경 중 하나인 제3경 귀암춘운(龜巖春雲), 달구벌 옛 조상들의 정서와 숨결을 느끼게 하는 귀중한 문화유산
과거 연귀산(連龜山)이던 제일중학교 본관건물 중앙부에 돌로 쌓아 높게 조성한 정원에 놓여 있는 거북바위

1768년(영조44년) 경상도관찰사를 지낸 이은(李溵 1722-1781)이 대구의 역사와 지리·인물·풍속 등을 기록한 대구읍지 6페이지 [산천]항목에 “연귀산은 부(府)의 남쪽으로 3리 쯤에 있다. 속칭 진산(鎭山)이라고도 한다. 건읍(建邑) 초기에 돌거북을 만들어 산등성이에 묻었다. 거북의 머리를 남쪽으로 향하게 하고 꼬리를 북쪽으로 향하게 하여 지맥을 통하게 했으므로 연귀산(連龜山)이라 한다. 성불산(成佛山, 지금의 앞산)에서 뻗어내리며 산 아래 석빙고가 있다.” 라고 하면서 대구인근의 23개 산들 중에 연귀산(連龜山)을 첫 번째로 기록하고 있다.  

제일중학교 정문에서 바라본 거북바위 주변 교정 모습: 앞에서 두번째 히말라시다나무옆에 거북바위가 놓여 있다.

연귀산(連龜山)은 대구시 중구 봉산동 230-1 대구 향교 북쪽에 있었던 산이다. 가는 길은 수성교에서 1.5㎞직진 반월당 사거리에 도착하여,  좌회전 0.5㎞직진 남문시장 교차로에 도착한다. 다시 0.3㎞직진 성산약국 사거리에 도착하여 좌회전 0.2㎞직진하면 정면에 ‘성실공업사’ 간판이 보인다. 그 뒷편으로 건물 2층정도 높이의 축대가 쌓여있고 그 위에 제일중학교가 있다.

가운데 정원에 히말라시다나무와 목서나무 사이에 거북바위가 놓여 있다.

경사진 정문도로를 20미터정도 올라가면 제일중학교 본관건물이 나타나며, 본관건물 중앙부에 본관건물과 운동장사이에 5평정도 정원을 조성해 놓았다. 정원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목서나무와 히말라야시다를 심어놓았다. 중간에 머리는 앞산을 향하고, 꼬리는 팔공산을 향한체 거북바위가 묻혀 있다.

운동장쪽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거북바위 유래가 적혀있는 표지석과 함께 나무사이에 누워 있다.

거북바위는 길이 177㎝, 높이 60㎝, 무게 1.94t 가량으로 대부분 땅에 묻혀 있고 땅 위로는 5㎝ 정도밖에 드러나지 않았다. 연한 자줏빛을 보이는 모래 질 암석인 자색(紫色) 사암에 거북 형상을 새겨 놓았다. 거북바위는 타원형을 보이며 여러 곳에 성혈(性穴, cup-mark)이 있고 윗부분에 줄홈이 가로 세로로 파여 거북등을 연상시키는데다 바위 전체의 모습이 거북이 엎드린 형상을 닮아 거북바위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용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견해가 있다

서거정의 대구 10영(十詠)중 귀암춘운(龜巖春雲)이라는 시(詩)가 적혀있는 표지석과 ‘달구벌 얼찾는 모임’ 돌거북바로놓기 표지석이 유래를 알려 주고 있다.

첫째, 지석묘(支石墓)의 용도로 대구부사(大邱部史)에 의하면 1934년 조사시에 “연귀산 정상에 여러 개의 암석이 있고 귀암(龜巖)은 그 탱석(撑石)에 해당된다.”라고 되어 있으며 또한 원래 지석묘로 이용되었던 것이 거북을 닮아 후대에 귀갑문(龜甲文)과 두부(頭部)를 새긴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정면에서 바라본 돌거북 확대사진으로 선사시대에 돌표면을 깎거나 파서 만든 성혈(性穴, cup-mark)이 보인다.

둘째, 지맥을 통하게 하기 위한 용도로 1530년에 편찬된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면  “읍을 창설할 때 돌거북을 만들어 산등성이에 남으로 머리를 두고 북으로 꼬리를 두게 묻어서 지맥(地脈)을 통하게 한 까닭에 연귀라 일컬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꼬리쪽에서 바라본 거북바위 모습으로 여러번 옮기는 과정에서 마모와 훼손이 많이 된 모습

대구읍성(1737년)에 지어진 경상감영은 당시 달서천과 대구천이 앞산의 정기를 가로막고 있어 의지할 배산(背山)이 없다. 자연의 현실적 한계를 뛰어넘어 우주를 재현하는 영험한 거북의 능력을 빌어 대구도심에 앞산의 정기를 불어넣기 위하여 앞산의 막내인 봉산(연귀산)이 대구천을 만나 산의 진행이 막히자, 조상들은 발상의 전환을 통하여 옆산의 정기를 대구천을 건너 경상감영으로 이어지도록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거북바위이다.

위에서 본모습으로 바위 윗부분에 줄홈이 가로 세로로 파여 거북등을 연상시키는데다 바위 전체의 모습이 거북이 엎드린 형상을 닮아있다.

셋째, 기우제 때 제단의 용도로 “귀산은 일명 연귀산으로 부남삼리(府南三里)에 있고 언덕 위에 돌거북을 만들어 놓은 곳은 옛날 성황당(城隍堂)이다” 라고도 하였다. 1980년대 평리의 사직단, 침산의 예제단과 함께 도시개발의 과정에서 없어질 때까지 귀암은 기우제를 지냈던 곳으로 서거정이 읊은 대구 10영(十詠)의 귀암춘운(龜巖春雲)이라는 시(詩)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귀잠은은사오잠(龜岑隱隱似鼇岑)   거북뫼 아득하며 자라산 닮았고  

운출무심역유심(雲出無心亦有心)   구름 토해냄이 무심한듯 유심한 것이  

대지생령방유망(大地生靈方有望)   온 땅의 백성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가능무의작감림(可能無意作甘霖)  가뭄에 단비 만들어 주려 함이네.

대구의 진산인 연귀산에서 기우제를 지내는 시상을 담고 있다. 봄가뭄이 심할때  기우제를 지내고 나서 비를 안고 있는 구름은 얼마나 아름답게 보였을까? 불의 기운이 강해서 비가 오지않을때 거북의 힘을 빌어 간절한 기우제를 지내면서 서거정의 시도 기도사(祈禱詞) 같은 느낌을 준다. 그 밑바탕에는 국태민안(國泰民安)의 기원(祈願)을 담고 있어 애민정신이 깃들어 있다. 

옆에서본 거북바위 모습으로 금방이라도 생명력이 되살아나서 기어다닐것 같이 생동감을 준다.

넷째, 불을 막는데 이용되었다는 설이다. 원래 화산지대여서 비슬산을 비롯한 수도산(修道山), 연귀산 등에 불이 자주 나 피해가 심했다. 불을 막는 방법의 하나로 물을 상징하는 자리에 두어 불을 막는데 이용하였다고 한다. 

연귀산터인 제일중학교에서 바라보이는 앞산(성불산)이 지척으로 가깝게 눈에 들어온다.

이같은 내력에도 불구하고 연귀산 돌거북은 문화재로 지정되기는 커녕 일제말 연귀산 자리에 대구여자상업고등학교가 들어서면서 여기저기 옮겨지는 수난을 겪다가 이 학교가 다시 대구제일여자중학교로 바뀌자 학교 서편 화단 앞에 원형 일부가 훼손되고 머리가 동쪽으로 향한 채 방치돼 있다.

거북바위 우측에 있는 2016년 12월 16일 보호수로 지정된 목서나무로 향기가 일품이다.

돌거북의 내력에 대해 알고 있는 일부 시민들이 항상 거북의 원상복구를 염원했다.

‘달구벌 얼찾는 모임’ 에서 2003. 11. 19. ‘연귀산 돌거북바로놓기’ 행사 사업 표지석

이에 ‘달구벌 얼찾는 모임’ 에서는 연귀산(連龜山) 자리에 놓였던 돌거북(石龜)을 제자리에 바로 놓는 사업을 했다. 2003년 11월 19일 오전 10시 대구제일여자중학교에서 회원들과 학계, 대구시 관계자 등 지역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연귀산 돌거북바로놓기’ 행사 사업으로 돌거북을 과거 원위치와 가장 근접할 것으로 추정되는 학교건물 가운데 화단 앞에다 머리를 남쪽 방향으로 땅에 묻고 꼬리는 팔공산 쪽으로 향하도록 하였다.

서거정의 대구십경중 하나인 귀암춘운(龜巖春雲) 시비

목민관의 국태민안(國泰民安)의 기원(祈願)과 애민정신은 3.1운동의 모태가 된 국채보상운동과 2.28학생의거를 주도하는  달구벌정신으로 피어나 연연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선조들의 대구정신이다

연귀산거북바위의 유래가 적힌 표지석

달구벌 정신의 발상지이기도 한 거북바위는 대구의 여러가지 전설을 간직한 채 오늘날까지 그 모습을 전한다. 후손에게 옛조상의 정서와 숨결을 느끼게하는 귀중한 자료다

연귀산과 거북돌의 유래와 사연들을 곁에서 말없이 지켜 본 제일중학교 교정에 심어진 고목향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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