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일 감옥에서 일생을 마치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라 여겼다.
진지왕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소문이 오히려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이보게 지금까지는 뭐 그렇게 지냈다 치고 이제부터는 허물없이 지내보세! 밥도 함께 먹고, 주전부리도 같이 나누고, 그래 그렇게 지내보세! 내가 살면 이제 얼마나 살겠나!” 애원에 친구가 되었다. 시어머니가 행랑어멈과 손을 잡고 보니 고모의 일거수일투족은 부처님의 손바닥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행랑어멈과 행랑아범은 부부지간이다. 알려고 하지 않아도 절로 알게 된다. 베갯머리 송사란 이래서 좋고도 무서운 것이다. 그간 시어머니가 이렇다 저렇다 말은 안 해도 속으로 기뻐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며느리가 대신하고 있다 여긴 때문이다.
그간 시어머니는 재물이 있으면 권세가 따라오고 명예가 절로 생긴다 여겼다. 소작인들을 모아놓고 한마디, 한마디 하는 말이 권위와 위엄을 갖춘 말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것은 호가호위(狐假虎威)로, 재물에 편승한 입에 발린 말이란 것을 뒤늦게야 확연하게 깨닫게 된 것이다.
“예~ 예 그러문입소! 마님의 말씀이 다 옳습니다. 지당하십니다” 했던 그 모든 말들은 목구멍이 포도청으로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쳐야만 하는 맞장구로 허황한 메아리란 걸 알았다. 이는 시어머니 자신이 여전히 까막눈으로 일자무식이란 것이다. 그런 자신이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조리 있고, 사리에 맞는 말을 했나 싶다. 돌이켜 보는데 얼굴이 화끈하다. 입으로 지은 죄업이 산더미 같다.
그에 비해 고모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있다. 사주팔자라는 것도 결연한 의지 앞에서는 한낱 휴짓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 것이다. 좋은 옷에 기름진 반찬으로 적당히 살다가 삼신할미가 점지해준 자식들이나 슬하에 건사하여 큰소리 내며 살면 그만 인줄 알았다. 병치레에 무식한 며느리가 들어올 때는 최소한 그렇게만 살아도 다행이라 여겼다. 또 그렇게 사는 데 도움이 되라고, 보탬이 되라고 무당과 영감이 사주팔자를 짚어서 참아달라는 줄 알았다. 한데 지금에 이르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사람이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독학으로 글을 깨우치는 것도 그렇고 소작인들이나 동네 사람들을 대하는 심성은 진심에서 우러난다. 하물며 동냥나온 거지들에게조차 따뜻하게 말을 건네고는
“배고프지! 가만있거라 보자! 어디 먹을 것이 있는가 찾아보자!” 부엌을 뒤져서 아낌없이 내어준다. 어느 날은 시어미가 내 먹거리조차 다 내주면 어떻게 할 거냐며 나무랐지만
“죄송합니다. 어머님!” 머리를 조아리고는 천성이라 그런지 변함이 없다. 지주댁의 마님이라 생색을 내는 법이 없다. 재물이 많다고 뻐기는 법이 없다. 우쭐우쭐 나서는 법은 더더욱 없다. 게다가 암암리에 이웃을 돕고 있다. 그러던 중 문득 무언가가 번개처럼 머릿속으로 떠오른 듯 혼잣말이다.
“영감님~ 애당초부터 그랬군요! 그런 뜻으로 그랬군요! 이제야 영감님의 깊은 뜻을 깨닫다니!” 후회로 가슴을 치는 마님은 영감이 그토록 명당 터를 고집한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처음 영감이 명당을 고집할 때만 해도
“이만치 잘 먹고, 잘 살다 가면 오감 치! 죽어서까지 영화를 누리려 하다니!” 욕심이 과하다고 속으로 비웃었다. 눈만 뜨면, 날이면 날마다 명당 터만 고집인 영감을 보고는 미움이 도져 그저 빨리 죽기를 바랐다. 한데 아들의 달라진 점이나 며느리의 임신을 보고는 영감 혼자만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았다. 뭇사람들로부터 평판이 어떻게 났는지 모르겠거니와 어머니로서 아들을 냉정하게 바라볼 때 장래가 없어 보였다. 후일 감옥에서 일생을 마치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라 여겼다. 그렇다고 달리 방법이 없다. 아무리 부모고, 아버지라고 할지라도 머리가 다 굵은 아들을 두고는 어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이를 따져 매를 들기에도 한참이나 늦었다. 따따부따 따지는 꾸지람에는 실없다며 불같이 자리를 박차 일어나는데 일삼아 불러 앉힐 수도 없다. 잔소리로 가타부타 일깨우기에도 더없이 늦었다. 그저 어느 순간 스스로 깨달아 인간이 되길 바랄 뿐이었다. 그런 가운데 영감은 마지막 수단으로 명당을 빌어서 가문의 번영을 염원했던 모양이다. 그 와중에 며느리 입장으로 고모가 끼어들어서 일사천리, 수월하게 해결을 본 것이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처신을 해야만 하는가? 영감님의 저승 창고와 내 저승 창고를 어떻게 한다. 우리 가족의 저승 창고를! 이러한 사실을 두고 시어머니는 몇 날 몇일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그즈음 방으로 돌아온 고모는 표식 없는 배를 쓸며
“고맙구나! 내 아가야! 네가 내게로 와서 이 어미는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시방부터 내 너를 세상의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어미가 될 거야!”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 한편으로 여자란 화려한 허울을 홀연히 벗어던져 어머니란 이름으로 새로 태어나고자 마음을 다잡는다. 후일 아기가 태어난 뒤에라도 남들이 아름답다고 부러움을 사는 미모가 걸리적거리면 단연코 버리리라 다짐이다. 옛날 중국 양나라 때의 지고지순한 어떤 여인처럼 말이다.
고대 중국 양나라에 얼굴이 아름답기로 경국지색에 견줄만한 여인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남편과 자식이 있는 몸이라 뭇 사내들은 언감생심, 청혼은 꿈도 못 꾸고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족했다. 그러던 어느 날 멀쩡하던 남편이 거짓말처럼 죽어버린다. 이를 기다렸다는 듯 사방팔방에서 청혼이 물밀 듯이 쇄도했다.
금은보화, 많은 재물을 준다. 있는 본처는 내쫓는다. 평생을 들어 손가락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게 해주겠는 등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어 청혼했다. 하지만 여인은 철석간장으로 꿈쩍 않는다. 작은 고을에서 나날이 일어나는 청혼문제는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가듯 어느 순간 구중궁궐에까지 흘러들어 나라님까지 알게 되었다. 소문을 세세하게 전해 들은 나라님은
“여자가 예뻐 보았자 그 여자가 그 여자지! 그 나물에 그 밥이라 여자는 그저 여자겠지!” 시큰둥하게 여겼다. 하지만 귀에 따갑게 들려오는 소문은 그게 아니었다. 결국에 나라님도 호기심을 못 이겨 여인을 찾기에 이른다.
작은 고을에 이르자 여인의 집을 물을 필요도, 별도로 찾을 이유가 없었다. 꽃을 찾는 벌 나비처럼 여인을 찾는 사내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곳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마침내 여인의 집에 당도하여 여인의 얼굴을 한번 보는 순간 나라님은 감탄해 마지않았다. 세상에 저렇게 아름다운 여인도 있단 말인가? 한눈에 여인의 미색에 빠져들고 말았다. 처음에는 후궁이나 비빈 자리를 들먹여 얼렁뚱땅 데리고 가려던 마음이 일순에 변하여 대뜸 왕후 자리를 들먹인다. 나라님이 부지불식간에 왕후 자리까지 거론하는 것으로 보아 대단한 미모의 여인임에는 틀림없었던 모양이다. 신라 제25대 진지왕 때의 도화랑에 견줄만한 미모를 지녔던 모양이다.
진지왕 때 신라 왕경인 서라벌에 도화랑이란 여인이 살았다. 그녀의 미모 또한 특별하다며 소문으로 떠도는 중에 진지왕의 귀에까지 흘러들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진지왕은 신하들에게 분부하여 궁으로 불러들였다. 궁으로 들어 사뿐사뿐 대전을 걸어오는 도화랑을 보는 진지왕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소문이 오히려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그때 도화랑을 맞은 진지왕은 이대로 궁에서 같이 살자고 했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그대의 가정에는 평생을 들어 풍족하게 먹고 살만큼의 재물을 보내겠다고 했다. 그대의 남편을 위해서는 그대의 미모에는 못 미치지만 아리땁고 현숙한 여인을 보내주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진지왕이 제시한 조건을 들은 도화랑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임금님이시어 소녀는 이미 부부연을 맺은 낭군과 평생을 같이 하기로 머리를 올려 언약하였사옵니다. 한데 오늘에 이르러 부귀영화에 눈이 멀어 백년해로의 언약을 파기할 수는 없사옵니다. 지아비를 두고 진정 그럴 수는 없사옵니다. 게다가 이일 그 지경에 이르면 임금님 또한 후대에 이르러 호색한 왕이라 지칭되어 정적(政績)에 누가 될까 두렵사옵니다. 부디 하해와 같은 어심을 내려 통촉하시옵소서!” 머리를 조아리는데 전연 틀린 말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진지왕도 미련이 남아
“그럼 그대 남편의 사후라면 어떻게 나한테도 여지가 있겠는가?” 묻는데 도화랑도 딱히 핑곗거리가 없어 한참을 생각 끝에 떠듬떠듬 말을 잇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