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윤길수 '운명, 책을 탐하다'
[장서 산책] 윤길수 '운명, 책을 탐하다'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3.08.08 1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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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서가의 탐서 생활 50년의 기록

저자 윤길수는 1952년 충남 논산의 산골마을 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1965년 숙부가 계신 서울에 올라와 한성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군에 입대했다. 1970년 만기 전역 후 사회에 진출하여 ‘정직과 성실’을 좌우명으로 삼고, 삼진궁천전자부품(주), (주)동우데타판, 한국이콜렙(주)에서 근무를 하다 정년을 맞이했다. 퇴직 후에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하여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학창시절 운명처럼 헌책방에서 정지용 시인의 시편을 접하고 책에 빠져들어 ‘한 권의 책이 세상을 구하고 나를 구원해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50여 년의 탐서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1992년 대한출판문화협회로부터 모범장서가상을 수상했고, 그 무렵 어렵게 구한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매문사, 1925)이 근대문학 유물로는 처음으로 등록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했다. 저서로는 그간 모은 장서를 정리하여 『윤길수책』(도서출판b, 2011)을 펴냈고, 동인지 『맥』, 문예지 『문학선』에 6년간 서지 관련 글을 발표해왔다.

목차는 ‘1부 내 인생을 바꾼 책 이야기 1. 지상의 책을 찾아서 2. 수집가와 장서가 3. 최초 문화재가 된 시집 『진달래꽃』 4. 내가 만난, 세상에서 아름다운 책 5. 조선 최고의 무용가와 음악가 6. 일제강점기 영화소설과 박누월 7. 조선을 사랑한 이방인들 2부 내가 아끼는 한국문학 작가와 그 책들 8. 한국문학의 남상(濫觴) 9. 희귀본, 한정본 시집 10. 책과의 인연 11. 1930년대 동인지 문학 12. 한국문학의 금서 13. 백석의 삶과 문학, ∥에필로그∥나의 책방 순례, 참고문헌’으로 되어 있다.

1. 장서가

수집가와 장서가는 어떻게 다를까. 제일 큰 차이점은 수집의 순수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일반수집가 중에는 상당수가 수익을 목적으로 책을 모으는 사람들이 많다. 예를 들자면 서점주인도 수집가일 수 있고 속칭 ‘나까마’라는 중간상인도 수집가다. 고물상도 수집가고 리어카꾼도 수집가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책을 팔아서 이익을 남기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장서가는 어떠한가. 장서가의 사전적 정의는 책을 깊숙이 간직해 두는 사람을 말한다. 책을 사서 간직하지 않고 되판다면 그를 장서가라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오랜 세월 책을 모으면서 이것을 지켜 온 사람이다.

장서 목록집을 출간하고 나서 가끔 사람들로부터 그 책들을 다 읽어봤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참으로 싱거운 질문이라 생각하지만 나는 서슴없이 읽지 못했다고 대답한다. 장서가는 책을 읽기 위해서만 모으지는 않는다. 물론 구입한 책을 읽어도 좋고 그냥 꽂아 놔도 무방하다. 그러나 나는 2만 권에 가까운 장서를 모르고 산 책은 거의 없다. 장서가는 어떤 책이든 그 가치를 평가할 줄 아는 안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장서가 중에 애서가가 아닌 사람은 없다. 끼니 걱정보다 책 살 걱정을 먼저 하는 사람이 장서가다. 장서가가 가장 행복할 때는 애타게 찾던 책을 손에 넣는 순간이다. 그러나 그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장서가로서 부끄러운 일은 책의 판본을 모르는 것이고 책을 훼손하거나 방치하는 일일 것이다.(45~47쪽)

2. 좋은 책을 구하려면

좋은 책을 구하는 방법을 몇 가지 소개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서점(헌책방) 주인과 신뢰를 쌓으라는 것이다. 서점 주인은 나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책값을 깎거나 외상을 해서도 안 되고 가격을 물어봤으면 사야 되고, 사지 않을 거면 물어 볼 필요가 없다. 값만 물어보고 사지 않는 사람들을 서점 주인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서점에 갔을 때는 필요한 책이 없어도 한 권의 책이라도 들고 나오는 것이 좋다. 특히 명절을 앞두고 서점에 가는 것이 꺼려진다. 그것은 책을 사지 않고 나오게 될 경우 주인에게 미안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거의 어김없이 명절 전에 서점 순례를 했다. 이럴 때는 서점 주인도 반가울 수밖에 없다. 또한 더러는 이런 때 대목을 보기 위해 맡겨둔 귀중본을 만날 수도 있다.

다음으로는 책에 대한 지식이 서점 주인보다 우선해야 한다. 도서목록 등 서지에 대한 공부를 통해서 책을 보는 안목을 넓혀야 한다. 뛰어난 수집가는 앞을 내다보고 남들이 사지 않는 책에 투자하는 사람들이다. 책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으면 서점 주인도 모르는 책이 있어서 적당한 가격에 좋은 책을 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책이 나왔을 경우 망설이지 말고 즉시 구입하라는 것이다. 한 번 놓친 책은 다시 만나기 어렵고 두고두고 후회하게 된다. 서점에 귀한 책이 들어오면 주인은 내놓고 팔지 않는다. 당연히 자기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에게 은밀히 연락하게 마련이다. 이때 연락을 받고 갔을 경우 본인이 없는 책이라면 사주는 것이 도리이다.(55~56쪽)

3. 아름다운 것들은 나를 구원할 수 있다

오랜 세월 책을 수집하면서 느낀 것은 책은 읽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만난 책들은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 등 오감을 지니고 있었다. 김동인의 창작집 『감자』에서는 토속적인 아름다움을 느꼈고, 김동석의 수필집 『해변의 시』를 읽으면서 월미도 앞바다의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춘원 문학의 정수를 담은 자선 문집 『인생의 향기』를 읽으면서 진한 감동을 맛보았고, 두툴한 한지로 인쇄된 미당의 『화사집』을 넘기면서 만수향을 맡았다. 그리고 손아귀에 쏙 들어오는 최남선의 시조집 『백팔번뇌』를 어루만지며 아득한 고전의 향수를 느낄 수 있었다.

세상에는 많은 사물들이 존재하는데 왜 하필이면 내가 책에 빠져들었는지 모르겠다. 유년기 막연하게나마 눈을 뜨게 된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이 외로웠던 소년시절 나를 자연스럽게 책의 길로 이끌어준 것 같다. 분명한 사실은 작가들이 남겨놓은 아름다운 창조물들이 외롭고 힘든 인생길에서 나를 구원해주었다는 것이다. 신이 인간에게 시한부 생명을 부여했지만, 인간이 살면서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고 창조할 수만 있다면 인간은 영원히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지금 아주 행복하니까 말이다.(152쪽)

'책의 날'은 고려대장경 완성일(10.11.)을 기념해 1987년에 출판계에서 제정한 날이다. 기자는 2016년 10월 1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된 제30회 책의 날 시상식에서 '모범장서가상 대상'을 받았다. 그 당시의 장서는 9,749권이었다. 기자의 최종목표는 도서관 운영이었다. 그래서 책을 모을 때 어느 한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총류에서 역사까지 고루 수집했다. 2021년 1만 5천 권 이상의 책으로 '장서산책작은도서관'을 설립했고, 현재 1만 6천여 권의 책을 보유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가 역사적 가치가 높은 국문학 분야의 책을 많이 수집한 것에 비하면, 기자의 장서는 보잘것없다. 그러나 평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서 장서가로서의 보람을 느낀다. 도서관에 갈 때마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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