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장진영 '마음만 먹으면'
[장서 산책] 장진영 '마음만 먹으면'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3.07.24 1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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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표정한 얼굴 안에서 조금씩 조용히 소용돌이치는 세계

《마음만 먹으면》은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이다. 가로 117mm, 세로 183mm 크기의 양장본, 125쪽으로 되어 있다. 작가인 장진영은 2019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세 편의 소설(곤희, 마음만 먹으면, 새끼돼지)와 한 편의 에세이(한들), 해설로 이루어져 있다.

1. 곤희

'나'는 단독이 되어 처음 내린 판결을 듣고 자살한 여자를 조문하기 위해 연인인 선배와 함께 상가에 간다. 조문을 마치고 간 식당에서 선배는 부장의 부탁이라면서 '곤희'를 이틀간 맡아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묻는다.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곤희는 열아홉의 소녀로 부장이 후원하는 천주교 기반 보육원에서 자랐다. 다음 날 오후 4시에 곤희가 도착했다. 나는 곤희가 살 집을 보러 가는 차 안에서 곤희가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튿날 아침 곤희가 자란 보육원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곤희가 아이를 원해서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음 날 곤희는 새 거처로 떠나고 나는 부장의 시험을 무사히 통과했다고 생각한다.

2. 마음만 먹으면

거식증에 걸려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어린 시절의 '나'는 잉어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인공호수로 가는 길에 공중전화 부스 안에 서서 종일 통화하던 피자언니가 "피자 먹을래?"라고 묻는 말에 "아니오."라고 대답한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병원에서는 보조금을 받기 위해 피자언니를 공중전화 박스에서 떼어낸다. 성인이 되어 딸을 키우고 있는 '나'는 딸이 넘어졌다가 일어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과거로부터 발을 떼어 앞으로 내딛는다.

3. 새끼돼지

남편, 딸 수빈과 살고 있는 '나'는 사촌인 순철 오빠가 베트남 여성인 호아와 결혼해서 낳은 사촌조카 하엘을 맡게 된다. 남편은 하엘과 야구를 하면서 돈독하게 지내고, 딸은 하엘을 왕자님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좋아한다. 하엘은 행동거지를 극도로 조심하면서 지내다가, 순철의 장애인 신분을 박탈하고 호아를 때린 '나'의 사촌형부 집으로 떠난다. 하엘은 사촌형부를 죽이고 베트남으로 떠나겠다고 말한다.

기자는 세 편의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이 소설들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주제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문학평론가 인아영이 쓴 해설 '위험한 소설'을 읽고 나서야 조금 이해가 되었지만, 이야기가 분명하지 않는 모호한 소설이라는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이를테면, 보육원의 개 꼬막이 목줄에 걸린 채로 움직이는 모습과 연인인 선배와 나누는 폭력적인 섹스가 교차되는 장면이 압권이라고 하는데, 기자는 전혀 깨닫지 못했다. 소설을 읽고 그 의미를 꼭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해설'의 마지막 문단은 작가의 소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장진영의 소설에는 평면적인 것이 없다. 겉으로 보이는 선의와 믿음 아래에는 잔인하고 냉정한 조건이 불안하게 넘실대고, 조용한 긴장감의 이면에는 폭력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곤희'에서는 젊은 여성 판사와 보육원에서 자란 곤희, '마음만 먹으면'에서는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나'와 피자언니, 그리고 '나'의 가족들, '새끼돼지'에서는 베트남 혼혈아인 중학교 3학년 사촌조카 하엘과 그를 잠시 맡고 있는 '나', 남편, 딸 수빈의 관계가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것도 그래서다.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삶의 미세한 균열은 어떻게 증폭되는가. 장진영의 소설은 그 위험한 순간들을 불투명하게 감추듯 드러낸다. 그 불투명함이 오히려 이 인물들을 투명하게 반사한다는 것이 이상하고도 매혹적인 일이다."(124~1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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