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 창] 바우하우스, 디자인 혁명의 아이콘
[인문의 창] 바우하우스, 디자인 혁명의 아이콘
  • 장기성 기자
  • 승인 2023.03.15 15:3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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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하우스(Bauhaus)는 대량생산의 산업화시대에 접어들자, ‘디자인’이라는 분야를 세상에 탄생시켰다. 21세기는 그야말로 ‘디자인’의 시대이다. 첨단기술의 집약인 스마트폰도 성능만으로는 경쟁할 수 없으며, 일상의 생활공간은 물론이고 식탁 위의 음식도 ‘조형적 아름다움’을 무시할 수 없다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1883~1969)는 근대 건축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독일의 건축가이다.근대 건축의 4대 거장에는 라이트,코르뷔지에,로에,그로피우스를 꼽는다. 바우하우스의 창립자이고, 1919년부터 1928년까지 초대 학교장을 지냈다. 그 후 하바드 대학의 교수직으로 있으며 인터내셔날 건축의 주창자이기도하다. 위키백과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1883~1969)는 근대 건축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독일의 건축가이다. 근대 건축의 4대 거장에는 라이트,코르뷔지에, 로에, 그로피우스를 꼽는다. 바우하우스의 창립자이고, 1919년부터 1928년까지 초대 학교장을 지냈다. 그 후 하버드 대학의 교수직으로 있으며 인터내셔날 건축의 주창자이기도하다. 위키백과

현대사회에서 ‘디자인’은 혁신(革新)이라는 말로 표현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미국의 애플사와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다자인 혁신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사실 애플사의 디자인은 독일의 조형예술대학에 빚을 지고 있고, 이 학교의 이념적 모체는 ‘바우하우스(Bauhaus)'다. 바우하우스는 미술역사에서 볼 때 엄청난 거인(巨人)에 가깝다. 현대의 거의 모든 다자인 분야는 바우하우스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난쟁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대체 바우하우스란 무엇이기에 지금 인터넷 검색창에 그 낱말을 치기만 하면 잡다한 상호명칭으로 넘쳐나는 걸까.

바우하우스는 1919년에 독일 바이마르에 설립되었으며 1933년 나치에 의해 강제 폐교되기까지 약 14년간 존속된 새로운 형태의 예술교육기관이었다. 이름부터 특이한 바우하우스는 분명 기존의 학교와는 다른 교육이념과 교육과정을 갖고 출발한 그야말로 새로운 교육시스템이었다. 바우하우스는 교육기관이라기보다는 이념공동체, 전위적(前衛的) 미술운동단체에 가깝다. 21세기는 그야말로 ‘디자인’의 시대이다. 첨단기술의 집약인 스마트폰도 성능만으로는 경쟁할 수 없으며, 일상의 생활공간은 물론이고 식탁 위의 음식도 ‘조형적 아름다움’을 무시할 수 없다. 넥타이나 스커트를 구입할 때도 질긴 수명보다는 디자인에 꽂히기 마련이니 말이다. 더욱이 산업적 측면에서 디자인은 국가경쟁력의 요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디자인은 순수예술에 실용성을 접목시킨 응용예술이다. 이는 자본주의, 산업화, 기계화를 바탕으로 한 생산성 증대, 생활수준의 향상 그리고 새로운 예술 소비자 계층과 취향변화에 따라 생겨난 ‘예술의 민주화 현상’과 다름 아니다.

사빈스키(Xanti Schwinsky,1904-1979)는 바우하우스에서 그로피우스와 같이 활동한 화가였는데, 그 당시 첨단 기기였던 올리베티(Olivetti)타자기를 1936년에 그가 새롭게 디자인하여 세상에 내놓자 불티나게 팔렸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타자기가 되었다. 성능보단 디자인이 중요한 이유다. 위키피디아
사빈스키(Xanti Schwinsky,1904-1979)는 바우하우스에서 그로피우스와 같이 활동한 화가였는데, 그 당시 첨단 기기였던 올리베티(Olivetti) 타자기를 1936년에 그가 새롭게 디자인하여 세상에 내놓자 불티나게 팔렸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타자기가 되었다. 성능보단 디자인이 중요한 이유다. 위키피디아

여기서는 바우하우스라는 교육기관의 설립취지와 교육이념을 세세히 들여다봄으로써 오늘날 디자인분야에서 선구자역할을 어떻게 또 왜 톡톡히 누리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독일의 ‘바우하우스’는 오늘날 디자인과 응용예술 관련 교육기관의 모체(母體)로도 평가된다. 불과 몇 년 전에 100주년을 맞은 ‘바우하우스’는 1919년 그로피우스(Gropius, 1883-1969)가 바이마르 시(市) 당국의 제안을 받아 설립한 조형예술대학으로 이론 수업과 실기 수업을 병행하며 실제 작품제작을 통해 독창적 예술과 교육 이념을 실현했다는 점에서, 전통적 아카데미 교육에 대한 도전(挑戰)으로 읽히는 진보적 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그로피우스에 의해 기획된 예술과 수공예, 예술과 기술, 이론과 실기의 통합운영을 시도한 ‘바우하우스’의 프로젝트는 현대 예술교육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인 기술과 기계문명에 대해, 예술이 어떻게 대응해야하는 지를 예리하게 간파한 듯하다. 이것은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보다 발전된 기계문명을 마주한 현재 우리의 기대와 우려에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그는 ‘바우하우스’가 예술과 기술의 통합을 통해 변증법적 사유를 추구했을 뿐 아니라, 동시에 반(反)아카데미 예술을 창출하려 했으며, ‘바우하우스’의 이념과 활동이 사회적 욕구와 실천에 밀접하게 연계시키려 애썼다.

1936년 사빈스키가 디자인한 올리베티 타자기를 신문광고에 홍보하기시작하였다. 위키백과.
1936년 사빈스키가 디자인한 올리베티 타자기를 신문광고에 홍보하기 시작하였다. 위키백과.

1차 세계대전과 더불어 독일제국의 몰락은 니체가 주장했던 ‘모든 가치의 전도’가 현실이 되는 구체적 시점이었고, ‘바우하우스’는 바로 이 혁명적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탄생했다. 특히 산업화와 기계화에 직면하여 ‘바우하우스’가 취한 태도는 예술의 시대적 소명을 정확하게 예단했다는 점이다. 객관성과 주관성, 구조와 행위, 사회와 개인을 통합시킴으로써 칸트적 미학 전통과 마르크스주의적 사회학을 극복하면서 그 대안으로 새로운 예술이념을 구현한 걸로 평가된다. ‘바우하우스’는 그 자체가 예술과 문화의 하위 장(場)으로서 독창적 이념과 역사를 가지며 상대적 자율성을 가질 뿐만 아니라, 정통성을 둘러싼 장(場) 내·외 연구자들 간에 논쟁의 공간을 허용했다는 점이 예사롭지 않다. 이러한 내부논쟁이야말로 창의성을 제고하는데 필수적 과정이라 그는 생각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파울 클레(Klee)는 1920년에, 바실리 칸딘스키(Kandinsky)는 1922년 초에 형태교육과정에 교수로 임용되어 전설적인 모더니즘 예술가로 함께 활동했다.

새로운 시대의 예술이 추구하는 유토피아적 이상을 실천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바우하우스’는 정치적, 경제적 부침으로 인해 설립 14년 만에 공식적으로 문을 닫아야 했다. 그러나 ‘바우하우스’의 파급력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든 오늘날 AI(인공지능)는 일반 생산 분야뿐만 아니라 음악, 문학, 조형예술 등 모든 예술 분야에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즉 인간만의 능력이라 여겨왔던 상상력과 창의성의 가치가 위협받고 있는 시대에 기술과 예술의 통합이라 할 수 있는 ‘바우하우스’는 기계와 산업 그리고 예술이 공생할 수 있다는 유토피아를 기대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바우하우스는 1925년까지는 바이마르에 본거지를 두었다가 1932년에는 데사우로 옮겼고 베를린에서 문을 닫았다. 위의 건물은 데사우(Dessau)시절의 본관 건물이다. 위키피디아
바우하우스는 1925년까지는 바이마르에 본거지를 두었다가 1932년에는 데사우로 옮겼고 베를린에서 문을 닫았다. 위의 건물은 데사우(Dessau)시절의 본관 건물이다. 위키피디아

그 결과 바우하우스는 독일 뿐 아니라 유럽 각지에 모더니즘 예술의 씨를 뿌렸고 많은 건축가와 미술가, 조각가, 공예가, 사진가, 무대 연출가 등을 배출했다. 이들 중 많은 예술가들은 2차 대전 전후 동안 히틀러를 피해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유럽을 올려다보던 문화 2류 국가였던 미국의 문화를 세계를 선도하는 위상으로 만들어주었다. 바우하우스의 덕분이다.

아무튼 ‘바우하우스’는 예술과 건축, 디자인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함에 틀림없다. 단순히 과거의 박제(剝製)로 남은 것이 아니라 오늘날 일상에서도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디자인관련 대학의 교과 내용 중 많은 부분은 100년 전 바우하우스 프로그램에 빚을 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바우하우스에서 생산된 전등, 벽지, 가구와 같은 산업제품들, 활자서체의 배열을 뜻하는 타이포그래피(typography)는 현대 그래픽 디자인의 본류(本流)가 된지 오래다.

불과 14년 밖에 존속하지 못한 독일의 한 디자인학교인 바우하우스가 지구촌 모든 사람의 일상을 세련되고 스마트한 삶으로 영위할 수 있게 한 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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