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 창] 속세의 권력과 권위
[인문의 창] 속세의 권력과 권위
  • 장기성 기자
  • 승인 2021.10.26 10:00
  • 댓글 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풀은 바람이 불어야 눕는다. 그런데 의롭지 못한 자들은 바람이 불기도 전에 자기가 먼저 알아서 누워 버린다. 권력자에 돌아누울 수 있는 성철 스님의 권위가 오늘따라 그리워지는 하루다
성철 스님(1912-1993)은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에서 태어났다. 1967년 해인총림(海印叢林) 초대 방장(方丈)이 되었고 1981년 대한불교조계종 제7대 종정(宗正)에 취임하였다. 1993년 11월 4일 세수 81세로 열반에 들었다. 매일신문DB
성철 스님(1912-1993)은 경상남도 산청군에서 태어났다. 1967년 해인총림(海印叢林) 초대 방장(方丈)이 되었고 1981년 대한불교조계종 제7대 종정(宗正)에 취임하였다. 1993년 11월 4일 세수 81세로 열반에 들었다. 우리나라 역대 고승 가운데 사리가 나온 분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다. 성철 종정 다비식에서 200여과(顆)에 달하는 사리가 나왔다고 발표됐다. 이 숫자는 석가모니 이래 가장 많은 사리라고 알려져있다. 매일신문DB

1977년 12월 17일 구마고속도로 개통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이 귀경길에 해인사(海印寺)를 들를 예정이었다. 수행원들이 대통령의 의중을 받들어 방장(方丈)인 성철 스님의 영접을 요청했다. 해인사 주지 스님과 맏상좌인 천제 스님이 성철 스님이 기거하는 백련암(白蓮庵)으로 황급히 뛰어갔다. 백련암은 해인사 암자 가운데 가장 높고 가파른 곳에 위치하여, 대웅전(大雄殿)에서 불과 800미터 떨어져 있지만 30여분은 족히 걸린다. 도착하자마자 주지 스님이 큰 스님에게 다급하게 청했다. "대통령께서 오시니 스님이 큰절까지 내려와 영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성철 스님은 한참 주지의 얼굴만 쳐다보다가 돌아앉았다. "나는 산에 사는 중인데, 대통령 만날 일이 없다 아이가. 세상에선 대통령이 어른이지만 절에 오면 방장이 어른이므로 부처님께 3배(三拜)를 안 할 바에야 만나지 않는 게 낫다". 주지 스님과 천제 스님은 애원하듯 성철 스님을 설득하려 애를 썼으나 성철 스님은 끝내 큰절로 내려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주지 스님이 나서서 대통령에게 감히 3배를 요청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황망한 일이 생긴 것이다. 성철스님이 신도들에게는 3배가 아니라 3천배를 요구해왔으니 이 청이 그렇게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결국 박정희 대통령은 방장 대신 주지 스님의 안내를 받으며 사명대사((泗溟大師)가 열반한 홍제암(弘濟庵)을 둘러보고 돌아갔다.

성철 스님이 박대통령을 영접하지 않은 일을 두고 산내에서도 평가가 엇갈렸다. 한쪽은 “성철 스님이 박대통령을 영접해 한마디만 했으면 퇴락해가던 해인사를 일신하는 큰 지원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을 토로했으나, 다른 한쪽은 “성철 스님이 선승들의 권위을 지켜주었다”는 찬사였다. 선승들의 큰 스님으로서 세속의 최고 권력을 가벼이 봄으로써 산중의 권위와 자존심을 지켜냈다는 것이다. 주로 선방에서 수행 중이던 선승들이 절대적 지지를 보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해인사 범종각 법고. 위키백과
해인사 범종각 법고. 범종각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는 부처님의 佛音이요 法音으로서 교화의 상징이다. 위키백과

성철 스님에 대한 이런 일화도 있다. 성철 스님은 훗날 금융사기사건으로 구속된 ‘큰손’인 장영자·이철희씨 부부를 만나주기만 하면 그들 부부가 한국 불교사찰을 모두 책임져 줄 것이라는 일부 스님들의 권유에도 만나주지 않았다. 3천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철 스님은 찾아오는 신도들에게 3천배를 시키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내 얼굴 보여주려고 3천배 하라는 게 아니라, 절에 왔으면 부처님을 먼저 보라는 거지, 나 보라고 하는 게 아니야. 내가 뭐 잘났다고. 그래서 내가 맨날 나 찾아오지 말고 부처님을 찾아가라고 말하는 것이지. 나를 찾아와봐야 아무 이익이 없어. 그래도 사람들이 찾아오는 거라. 그래서 그 기회를 이용해 부처님께 절하라 카는 거지."

성철 스님은 돈 많은 신도들에게 굽신 거리고, 가난한 신도들을 낮춰보는 일부 스님들을 자주 꾸짖기도 했다. "중이 신도를 대하는데 사람은 안보고, 돈과 지위만 본단 말이야. 그래서 나는 일주문(一注門)에 들어올 때는 돈 보따리와 계급장은 소용없으니 대문밖에 걸어놓고 알몸만 들어오라고 하지. 사람만 들어오라 이거야. 들어와 부처님을 뵙고 가라 이거지." 이런 원칙은 성철 스님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지켜졌다.

기원 전 338년 케로네아 전투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마케도니아는 그리스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리스의 여러 도시국가 지도자들은 코린트에서 모임을 갖고 알렉산더(Alexander, BC 356-323)를 페르시아 출정군의 총사령관으로 선출했다. 그런 그에게 수많은 정치가, 학자, 예술가들이 찾아와 아첨성 인사와 충성을 맹세했다.

코린트는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연결해주는 길목에 있었던 관계로 전술적인 요충지였을 뿐 아니라, 솜씨 좋은 화가와 조각가들이 모여드는 장소였다. 당시 전 세계의 정신적인 요람이자 중심지였다. 코린트의 시키온에 디오게네스(Diogenes)라는 철학자가 살고 있었다. 견유학파(cynics)였던 그는 이 세상에서 행복이 필요한 모든 것을 자기 내부에서 찾았으며 금욕적 생활을 스스로 자처하였다. 그의 삶은 단순함과 정직함의 미덕 그리고 인간이 만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얼마나 적은지 보여주는 표본이 됐다. 따라서 디오게네스는 되는 대로 아무것이나 먹으며 아무데서나 잠을 잤다. 심지어 그는 키벨레 신전에서 큰 항아리를 하나 얻어, 그 통속에서 기거했다.

디오게네스. 위키백과
디오게네스(Diogenes)가 내세운 삶의 첫번째 행동강령은 행복에 필요한 모든 것을 자기 내부에서 찾는 능력, 곧 자족이다. 2번째 강령인 '자긍심'은 '그 자체로 해롭지 않은 행동이라 해도 모든 상황에서 허용될 수는 없다'는 인습을 무시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밖에도 디오게네스는 악과 기만을 폭로하고 개혁을 감행하는 비타협적 열정, 즉 '과단성'을 덧붙인다. 마지막 강령인 도덕적 탁월성은 조직훈련이나 금욕생활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위키백과

그는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조롱했다. 심지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까지도 그에게는 대수로운 존재가 아니었다. 이렇듯 그는 온갖 허식을 거부했다. 알렉산더 대왕은 이런 디오게네스가 시키온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온갖 권력자, 학자, 예술가들이 앞 다투어 알렉산더에게 눈도장을 찍으려 했기 때문에, 그도 자신의 눈앞에 나타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디오게네스는 끝내 오지 않았다. 몸이 단 것은, 오히려 알렉산더였다. 알렉산더가 직접 디오게네스를 만나러 가야했다. 알렉산더 대왕의 행렬이 다가오는 것을 본 디오게네스는 통속에서 몸을 약간 비스듬히 일으켰을 뿐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디오게네스에게 진중하게 물었다. 대왕은 평소처럼 권위주의적 대왕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적 면모를 보이면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면서 진중하게 그에게 말을 걸었다.

대왕: 디오게네스, 당신 앞에 서 있는 나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요.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부탁하시오. 내가 당신에게 그것을 줄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소. 무엇이든 말해보시오.

철학자: 한 가지 있긴 한데.....

대왕: 그게 뭔가?

철학자: 햇볕을 가리지 않게 조금만 비켜주시오. 당신 때문에 그늘이 지는구려.

철학자는 이렇게 말하고 돌아누웠다. 퇴짜를 맡고 돌아오는 길에 알렉산더는 수행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내가 알렉산더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 현실은 어떤가? 이런 말이 있다. ‘풀은 바람이 불어야 눕는다. 그런데 의롭지 못한 자들은 바람이 불기도 전에 자기가 먼저 알아서 누워 버린다.’ 라는 말이 있다. 현재나 미래 권력에 눈치를 보며 아양을 떠는 꾼들을 지칭하는 말일 것이다. 정의를 찬양하는 사람은 많지만, ‘일신(一身)의 안녕’을 위해 정의를 저버리기 일쑤다. 의롭지 못한 자들은 정의를 부인하고 위정자들은 정의를 교묘히 숨긴다. 교활한 자들은 그럴듯한 정의를 추상화하고 그렇게 하여 위정자와의 충돌을 교묘히 피한다. 그러나 올곧은 사람들은 어떤 종류의 속임수도 배신과 불의로 간주한다. 일신의 안녕을 위해 바람도 불기 전에 ‘누워버릴 것이 아니라, 권력자에 돌아누울 수 있는’ 성철 스님과 디오게네스의 권위가 오늘따라 그리워지는 하루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