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06)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06)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3.03.06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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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만 버린다고 거들떠보지도 않고 거름더미에 던진다 해도 무어라 원망도 못 하리!
어째서 그 곱던 신발이 이 모양에 이 꼬락서니일까?
오늘 이렇게 꺼내 보니 그 화려했던 꽃신도 할머니의 나이만큼 늙어 보였다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아니다 아니야 에미야~ 너는 고마 미안해할 것도 없다. 내 에미라도 있어 부지불식간 얼마나 힘이 되고 든든한지 모르겠구나!”하는 할머니는 지금부터는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는 오롯이 자신만의 일이라 밀어내고는 주섬주섬 보따리를 싼다. 어디서 얻어 왔는지 제법 튼실한 대나무상자 밑으로부터 차곡차곡 음식을 챙겨 넣는다. 그 위로 매파가 가지고 왔다는 사주단자를 올려서는

“사는 게 어째서 이리도 초라하고 비루할꼬? 염치없이 넙죽넙죽 받을 때는 좋아라고 입이 헤벌쭉 벌어지고, 기름진 고깃덩이가 맛나다고, 비린 생선은 입에 살살 녹는다고 입을 모으더니, 이따위 것도 음석 나부랭이라고!, 남의 살이라곤 눈을 씻고도 못 찾아 양념에도 못 미치고! 극성의 벌레가 파먹어 죄다 구멍이 숭숭한 푸성귀를 소 풀 뜯듯 뜯어 아무리 솜씨를 부리고 정성을 기울인 들 무엇하리! 그래 보았자 온통 풀떼기뿐인걸! 입맛만 버린다고 거들떠보지도 않고 거름더미에 던진다 해도 무어라 원망도 못 하리! 개밥이라 해도 오감 타 말을 못 하리!”하며 단단하게 싸서 묶다가는 쓸쓸하게 내려다본다. 삶에 지쳐 고단함이 잔뜩 배어나는 얼굴이다. 한참을 처연하게 바라보다간

“애당초 수중에 지닌 재물이라곤 일전 한 푼이 없어도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며 위안으로 살았건만 막상 내 일이고 내 딸년의 일로 발등에 떨어진 불처럼 닥치고 보니 이렇게 큰 죄인 줄은 미처 몰랐구나! 그저 죽고 없는 듯 쥐구멍에 머리를 박아 숨고 싶은 심정이구먼! 그렇다고 향후 일이 순조로워 사돈지간이 될지도 모르는데! 나무관세음보살! 자리가 자리인 만큼 초면에 예의상 빈손으로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벼룩도 낯짝이 있다는데!”하며 부뚜막에 엉덩이를 걸쳐 땅이 꺼지게 한숨이다.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인양 그저 보자기만 가만가만 쓰다듬으며 앉았다. 그렇게 무람없이 얼마나 앉았을까? 이내 마음을 굳힌 듯 떨리는 손길을 조심스럽게 내밀다가는 제풀에 움찔 주저앉으며 내려다보는 무명치마저고리가 후줄근하다.

지난밤 무쇠다리미에 잉걸불을 함뿍 담고 화롯불에 인두를 달구어 정성껏 다린 치마폭이 그새 잔주름으로 자글자글 일그러져 보인다. 색깔마저 회색으로 빛이 바랬는지 희미하다. 이런 초라한 행색으로 초면에 떳떳이 갈 수나 있을까? 평소 동네 아낙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릴 때는 자랑으로 우쭐했지만 참으로 볼품이 없어 보인다. 지금에 이르러 다시 볼 때 날품팔이 아낙네도 이보다는 나으리라 싶다. 종년의 옷차림에도 못 미친다는 생각에

“이런 꼬락서니를 보고 마님은 우리 집안을 얼마나 하찮게 여기실까? 그 꼴에 뻔뻔도 하여라! 철면피도 유분수지 그 행색에 무슨 사위를 보겠다며 나섰을까? 하며 주제에 부수도 모른다며 얼마나 업신여길까? 안 봐도 훤하지! 그놈의 집구석이 그러면 그렇지 면 전서 비아냥으로 얼마나 비웃을 거냐! 상거지를 본 듯 보자마자 돌아앉아 버리면 이일을 어이 할거나! 어쩔거나! 어찌할거나! 이 모양, 이 꼬락서니에 아니 갈 수만 있다면 오죽이나 좋으렸만!”하는 한탄 중에 시선이 꽃신에 머무는데 그마저도 마뜩잖아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옷이고 꽃신이고 간에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든다. 행여 먼지라도 묻어 그럴까 싶어 꽃신의 코를 정성 들여 문지르는 손끝이 가늘게 떨리지만 소용없다. 아무리 정성을 들여 닦아도 여전히 그 모양에 그 꼬락서니라 더 서글픈 표정이다. 자신도 모르게 침을 발라 문질러 보아도 좀체 나아질 기미가 없다.

“어째서 그 곱던 신발마저 이 모양에 이 꼬락서니일까? 이리도 볼품이 없어졌을까?”하는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꽃신을 사 오던 날을 떠올리고 있었다.

5일 장을 다녀오신 할아버지를 보는 할머니의 눈길에는 안날 밤의 독기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삽짝을 들어서는 할아버지에게 건네는 말에도 퉁명스럽기가 짝이 없어

“뭘 살 것이 그리도 있다고, 처녀가 아기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고, 되지도 않은 핑계를 달아 꾸역꾸역 장이라 갔다 오는지! 없는 형편에 무닥지 길에 돈만 깔아 없애고, 물 쓰듯 돈만 쓰다 오는지!”하면서도 장보따리가 한정 없이 궁금한 할머니다. 이리저리 눈치를 보다가

“보따리가 불룩한 걸 보니 그새 많이도 샀네!”하더니 기어이 보따리를 차지하여

“이건 명태고 요건 호미고!”하며 일일이 살펴 가더니

“호미~ 그러면 그렇지! 저 미깔스러운 저이는 나보고 일평생을 이 웬수같은 호미로 흙이나 파먹고 살라 사 왔나 보네! 한 자루도 아니고 그것도 두 자루씩이나 사 오다니 이 노릇을 어이할꼬? 하기야 신랑 복 없고 일복 많은 년은 죽으나 사나 흙이 파먹고 살아야지 어쩔거나! 어이구 내 팔자야!”하며 찬찬히 살펴 구시렁거리다가는 어느 순간 신문지로 둘둘 말은 종이뭉치를 찾아 들고는 조심스럽게 풀다간 무얼 발견했는지 날아갈 듯 펄쩍 뛰며

“어머나 이게 다 뭣~꼬! 이게 그~ 성주댁이 싣고는 어깨를 우쭐우쭐 동네 아낙들 죄다 불러모아 뽐내던 그 꽃신인 갑네! 어머나 예쁘기도 해라~ 그런데 여기에 수놓은 꽃은 무슨 꽃인데 요리도 앙증맞고 어여쁠거나! 이 꽃이 그 말로만 들어오던 계절의 여왕이라던 장미꽃인가? 당나라 태종 이세민이 선덕여왕에게 선물했다던 부귀영화의 상징인 모란꽃인가? 참말로 예쁘게도 피웠네! 진짜로 당신이 나를 주려고 사 오신 거예요! 여~ 여보 고마워요!”하며 남들이 보든 말든 양팔을 활짝 벌려 할아버지의 겨드랑께로 손을 집어넣어 함뿍 껴안았다. 기쁨에 겨워 얼굴을 비벼다가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어 안겼다. 안날의 일은 까맣게 잊고서 양손으로 꽃신을 거머쥐고는 마냥 코맹맹이 소리로 애교를 떨었다. 아침나절의 새침데기가 맞나 싶고 조금 전까지 장보따리에 화풀이하던 할머니가 만나 싶을 정도로 애굣덩어리로 똘똘 뭉친 몸짓이다.

안날 저녁 밥상을 물리는 중에 작은 다툼이 있었다. 언성을 높이는 것으로 끝날 것 같았던 부부 싸움이 끝내는 할아버지의 손찌검으로까지 이어졌다. 손찌검을 당한 할머니는 억울한 중에 슬픔에 휩싸였다. 하지만 남존여비 사상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흔한 일이라 자존심을 내세워 반항할 처지도 못 되었다. 그런 까닭에 몸짓으로 속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최선으로 장으로 길 떠나는 할아버지를 즐거이 배웅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냉랭한 이별 중에 꽃신이라니! 할머니는 당장에 꽃신을 싣고는 할아버지의 눈앞서 모델 아닌 모델이 되어 나비처럼 나풀나풀 마당 가장자리를 빙빙 돌았다. 마당을 도는 중간중간 다리를 뻗어보는 등 귀염을 떨다가는 이내 벗어들고는 가슴에 함초롬히 품었다. 양 볼에 번갈아 비비다가는 할아버지에게 새치름하게 미소를 띄웠다. 그리고는 타인의 손을 탈까 싶어 옥석을 다루듯 마른행주로 두 번 세 번에 걸쳐 닦아 시렁 가장 높은 곳에 올려 고이 간직해온 터였다. 그리고는 아주 특별한 날이 아니면 신지 않는 가운데 애지중지했던 꽃신이다. 한데 오늘 이렇게 꺼내 보니 그 화려했던 꽃신도 할머니의 나이만큼 늙어 보였다. 세월의 때가 덕지덕지 내려앉아 빛이 바랬다. 재차 손으로 문질러 가다가는 뜻 모르게 빙그레 웃으며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꽃 같은 시절이 있긴 있었구나! 복 없는 삶이 늘 그러했듯 어제처럼 오늘이 고되고 힘든 줄로만 알았더니 축복을 받은 듯 아름다운 날이 있긴 있었구나!”하는 할머니는 과거를 훑어서 기억이 머물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지난 과거를 되새김질로 살아간다고, 꽃신을 들고 저녁 반찬에 미안해하던 때를 떠올리려 얼굴 가득 행복한 미소 짓는다. 그런 와중에 옆자리에 할아버지가 앉은 모양으로 손을 내밀어 보다가는 슬그머니 접으며 비 맞은 중처럼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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