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08)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08)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3.03.20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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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감히 ‘웃방애기’라니!”하고 패악이라도 부리고 싶었다
엄마 안 되겠다. 엄마 병은 엄마 잘 잘 아니까 엄마 약방문이라도 좀 알려줘~
그때 어디서 어떻게 놀다가 왔는지 삽짝을 비실비실 들어서는 고모다
9월 22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9월 22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저런 부잣집에서 무엇이 아쉬워서 이러는 걸까? 가진 재물이 99, 바닷물은 메워도 사람 욕심은 채울 수 없다고 일백에 하나가 모자라서일까? 그 깐 일 백이 뭐라고, 초가삼간에 겨우겨우 깃들어 버러지처럼 사는 사람들의 불쌍한 삶을 탐할거나! 그 하나가 심심풀이용 장난질에 불과하다면 이승의 생이 너무나 가엽다 여겨졌다. 남가일몽도 아니고 고대광실의 집이 높고도 높다 여겨 꿈조차 한번 꾼 적이 없건만 어쩌자고 매파를 보내고 사주단자를 보내 온통 마음을 흔들어 놓는가 싶었다. 생각 같아서는 한걸음에 달려들어 이판사판, 드잡이질에 따따부따 묻고 따지고 싶었다.

“이 사주단자의 진짜 주인은 누구입니까? 내 귀한 딸이 그렇게도 하찮게 보였습니까? 어딜 감히 ‘웃방애기’라니!”하고 패악이라도 부리고 싶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한없이 망설이고 있다. 그러다가 진짜 그 집 도련님의 사주라면 하는 생각에 몸서리치고 있었다. 슬금슬금 뒷걸음을 치는 할머니는 큰길을 피해 산 쪽으로 난 소로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때 이르게 떨어진 낙엽이 발밑에서 아프다 바스락거리는 자락길을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고갯마루로부터 10여 미터쯤에 이르러 보자기를 내려놓은 할머니는 다시 너럭바위를 찾아서 공허한 눈길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앉았다. 하늘가로 뭉게구름이 흐르는 가운데 저만치로 우뚝 선 산밤나무는 그새 밤송이를 거지반 떨어뜨려 빈 가지가 날씬날씬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뒤늦게 알밤을 찾아든 다람쥐와 청솔모가 속이 빈 밤송이만 앞발로 굴리다가는 아쉬움에 멈칫멈칫 뒤돌아보며 숲속으로 몸을 사린다.

어느덧 시간은 오시를 지나 미시로 접어든 지도 한참이다. 그제야 할머니는 몸을 일으키는가 싶더니 큰길로 내려서서는 저 멀리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기와집을 일별하고는 왔던 길을 되돌아선다.

까칠한 밤송이만 자발없이 앞발로 굴리리다 간 다람쥐처럼, 청솔모처럼 맥이 풀려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허탈했다. 작정하고 떠난 걸음에 길에서 허비한 반나절이란 시간이 부질없어 보였다. 잠시 숨을 고른 뒤 사주단자를 본래의 자리에 갈무리하고는 어머니를 불러 음식이 든 보자기를 내주며 묻지도 따지지도, 아무 말 말고 재량껏 처리하란다. 보자기를 전해 받는 어머니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도로 삼킨다.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애써 억누른다. 의문의 부호를 단 많은 단어와 문장들이 가슴께서 모래 알갱이처럼 떠돌아다닌다. 하지만 반나절 사이에 한층 늙어버린 할머니의 얼굴을 대하고는 그 어떤 말도 되새김질로 꺼낼 수가 없었다. 지친 듯, 꿈을 잃어버린 듯 허망한 눈동자 앞에 안절부절 못하는 어머니를 향해 할머니는 정 핑계가 어렵다면 무당집에서 얻어 왔노라 이르고는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자리에 누워 버린다. 별수 없이 어머니는 할머니의 말씀에 따라 모처럼 만에 들린 무당집에서 때아닌 내림굿을 맞아 얻어온 음식이라며 영천댁을 비롯한 동네 아낙네들을 불러 나눠 먹는 것으로 일단락이다.

할머니의 자리보전은 근 삼일간이나 계속되었다. 고모의 혼사 문제로 음식까지 한껏 장만해간 시어머니가 아무런 말도 없이 앓아눕자 어머니의 근심은 대단했다. 젖을 보채 배가 고프다 칭얼거리는 아들 따위는 일 없다는 듯 내치고는 때때마다 미음을 쓴다며 분주하다. 환절기를 맞아 날로 싸늘해져 가는 기온으로 인해 때 이르게 찾아든 고뿔이 몸에 깃들어서 도졌나 싶어 수시로 군불을 지피는 등 부산을 떤다. 고모마저 이때만큼은 앓아누운 할머니가 걱정되는지

“엄마 아파! 엄마 많이 아파! 엄마 죽을 만큼 머리가 아파? 엄마 죽을 만큼 배가 아파? 엄마 어디가 많이 아파? 엄마 머리 아니면 배야?”하며 머리맡에 앉아서는 제법 간병인 흉내를 내다간

“엄마~ 진짜로 죽을 정도는 아니지? 엄마 진짜로 죽으면 안 돼 알았지! 엄마 엄마가 죽으면 나는! 엄마 안 되겠다. 엄마 병은 엄마 잘 잘 아니까 엄마 약방문이라도 좀 알려줘~ 그럼 내가 엄마가 빨리 낳게 탕약 이나마 정성껏 다려보게!하며 말마다 엄마라 찾아 쫑알거리는 고모가 기특하여

“오냐! 이것아! 탕약은 무슨 탕약, 내가 너를 두고 어찌 죽을 수나 있을까? 네 간호 덕택에 이제는 괜찮다. 나~ 다 낳았다”하는 할머니는 더 이상 앓아누워 있을 수도 없다 여겼다. 이는 몸에 깃든 병이 아니라 마음에 깃든 병인 때문이기도 했다. 또 아침과 저녁이 없이 수시로 병문안이라 찾아오는 감골댁을 비롯한 동네 아낙들의

“철수엄마 철수할머니의 병세는 좀 어떠세요? 차도는 좀 있어요?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아니고 그 정정하시던 어른이 갑자기 왜 그래요?”

“그러게요! 모처럼 무당집에서 무리를 하셨나봐요! 감기몸살이란 밖에는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그저 앓아누우셔서 저도 철수아비도 일도 손에 안 잡히고 걱정이에요!”

“걱정이야 우리도 피차일반, 어서 기력을 회복하셔야 할 터인데!”하는 근심 어린 소리가 자꾸만 등을 떠민다. 게다가 천덕꾸러기로 전락하여 울어 보채는 손자 때문에도 마음이 동한다. 결국에 어머니를 불러

“에~미야 너는 어째서 내 금쪽같은 손자를! 대관절 무슨 연유로 내 똥강아지는 시시때때로 울리고 그래 쌌노! 이래 가지고야 아픈들 어디 한 번이라도 마음 편하게 아파나 보겠나!”하는 꾸지람 속에 언제 아팠냐는 듯 자리를 턴다.

“예~ 어머님 저가 다 잘못했어요!”하는 어머니는 할머니의 꾸지람이 오히려 반가웠다. 어머니도 이미 할머니의 병이 마음의 병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하고 있었다. 고모의 혼사 문제가 틀어져도 단단히 틀어 졌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지레짐작으로 입에 담을 일은 아니었기에 하루빨리 시어머니가 기력을 회복하여 전날로 돌아가길 바랄 뿐이었다. 어머니의 염원이 통했을까? 할머니는 생각보다 쉽게 문밖출입에 나섰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무엇이 틀어지고 무엇이 꼬여 마음에 병을 얻었을까? 어머니는 마음속으로 한없이 궁금하게 여겼다. 하지만 병석을 털고 난 뒤로도 무언으로 일관하는 시어머니의 입만 궁금증으로 쳐다볼 뿐이다. 당신께서 입을 열기 전까지는 지근덕(조금 끈덕지고 짓궂게 들러붙다. 의 북한어)하게 기다려보는 도리밖에 없다 여겨 숨죽여 기다릴 뿐이었다.

가을은 너 나 없이 바쁜 계절이다. 고양이 발이라도 빌리고 싶고, 일에 쫓겨 발등에 오줌을 누고도 허리춤을 다잡아야 하는 계절이다. 할머니도 일에 휩쓸리다 보니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풀지 못한 숙제로 인해 마음은 늘 무거웠고 고모를 대할 때면 긴 한숨이 습관처럼 뒤를 따랐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고모는 자신을 보기가 무섭게 길게 한숨 짓는 할머니를 보고

“엄마는 당최 왜 그래! 왜 나만 보면 맨~ 날 천 날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라 한숨이 한숨이고 기분 나쁘게!”하고 쫑알거리자

“답답해서 그런다. 이것아 내 너만 보면 가슴 위에 방굿돌(‘바윗돌’의 방언)을 얹어 놓은 듯 숨이 막혀 그런다. 어미가 되어 하나뿐인 딸내미의 앞날을 생각하자니 억장이 무너지는 듯 가슴이 먹먹해서 그런다”하며 지청구 같은 구박이다. 그러다 보니 지난날과는 달리 고모는 매양 할머니의 눈치를 보아 슬금슬금 피해 다니고 있었다.

그날도 할머니는 만사를 잊은 모양 앞마당에서 부지깽이로 콩대를 토닥토닥 두들기고 앉았다. 도리깨로 펑펑 털면 쉬운 걸 알지만 힘에 부쳐 그저 토닥거리는 중이다. 그때 어디서 어떻게 놀다가 왔는지 삽짝을 비실비실 들어서는 고모다. 콩 타작하는 할머니의 눈치를 힐끔힐끔 흘겨 피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숙여서는 쓰다 달다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할머니가 비 맞은 고양이 모양 추레한 고모의 꼬락서니를 보며 한숨 끝에 섬돌을 보니 얼마나 정신없이 들어갔는지 신발짝이라곤 한쪽은 섬돌 위에, 다른 한쪽은 섬돌 아래에 삐딱하게 엎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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