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07)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07)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3.03.13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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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주신 따뜻한 정은 이 가슴에서 아직 그대로인데 몸만 훌쩍 떠나버리면 서러워서 어이 살라고
내 지식 일인데 설사 죽을 자리라 해도 어미가 된 입장에서 가긴 가야겠지
담장조차 기와로 촘촘하게 뒤덮은 모습이 장마철 소나기에도 끄떡없어 보였다
9월 22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9월 22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이런 중요한 때에 귀밑머리 풀어 가시버시로 평생을 언약한 당신은 지금 어디에 계시나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났다는데 저승길이 뭐에 좋다고 그리도 바삐 가셨나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야속하고 미워요! 당신이 사주신 꽃신도 호미도 옆을 지키고 따뜻한 정도 이 가슴에서 아직 그대로인데 몸만 훌쩍 떠나버리면 서러워서 어이 살라고? 참말 원망스럽고 나쁜 사람이네요!”하며 돌아보는 할머니의 눈시울이 붉다. 자신도 모르게 콧물을 훌쩍이는 할머니가

“그새 불티가 날아들었나?”하며 애써 눈물을 감추려 고개를 들자 연기에 그을린 연등천장이 눈앞으로 새까맣게 달려든다. 갈비뼈처럼 얼기설기 줄지은 서까래가 어지럽고 뚫어진 군데군데를 비집은 햇살이 물줄기로 줄기줄기 떨어져 내린다. 미처 빠지지 못한 연기가 볕뉘에 기대어 살타처럼 휘감긴다. 용트림의 그 모습이 흐트러진 머리칼 인양 싶고 뒤죽박죽인 가슴속만 같아 현기증이 일 지경이다. 그 아래로 쪼그라든 호호백발의 할머니가 오도카니 앉았다. 섬섬옥수에 홍안은 어디로 갔을까? 마디마디 옹이가 박혀 갈퀴 같은 손에 얼굴로는 저승꽃이 듬성듬성 핀 파리한 백발의 노파가 홀로 남았다. 가늘게 떨리는 가녀린 어깨가 질그릇을 엎어 놓은 듯 동그랗다.

“족두리 쓰고 연지곤지 찍어 시집올 때가 눈에 그린 듯 환하고, 꽃신 싣고 마당을 돌며 춤추던 그 날이 엊그제만 같은데 언제 이 만큼의 세월을 거슬러왔는가? 발 없는 세월이 진정으로 무상하고 무상하구나! 그런 와중에 나만 또박또박 나이를 먹어 늙어가는 줄 알았더니 강보에 싸여 목숨이 경각에 달려 저승길이 오늘 내일이던 내 딸도 끝순이 저것도 그새 나이를 먹어 시집갈 때가 되었구나!”하는 할머니는 초라한 행색에 새삼 낙담하여

“어이 할꼬! 어이 할꼬! 진정 이 일을 어이할꼬? 이 핑계 저 핑계를 달아 아니 갈 수만 있다면! 진정으로 아니 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전생의 내 업이 얼마나 크고 무거웠으면 이런 황당한 일이 내게 주어진단 말인가? 남 말하기 좋아하고 속 모르는 사람들은 그 자리가 어떤 자린데 부러워할지 모르겠거니와 나는 감당을 못하리! 주체할 수도 쳐다볼 수조차 없으니 이일을 어이 할거나!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부처님도 자식 앞에는 돌아앉는다는데! 내 속으로 내지른 피붙이에 딸년의 일이라 아니 갈 수도 없으니 이 일을 어이하면 좋을꼬! 내 저~ 저것의 앞날을 생각하고 일의 매듭을 지어 짝을 지어주자면 비록 죽을 자리라 할지라도 가긴 가야 하는데! 내가 아니라면 누가 있어 이를 대신할거나! 결정할 거나! 그래도 그 자리에는 진정으로 가기 싫구나!”하는 넋두리 끝에 허공을 올려다보며 다시금 독백처럼 중얼거린다.

“저 덜떨어진 끝순이~ 저~ 저것은 이런 어미의 마음을 알기나 할까? 조금이라도 가련한 이 어미의 심정을 헤아린다면 지친 기다림이나마 끝내주면 오죽이나 좋을까? 꺼져 가는 호롱불에 심지를 돋우듯 작으나마 희망이나마 보태면 오죽이나 힘이 될까?”하고는 마지 못한 듯 몸을 일으키는 할머니다.

“그래도 어쩔거나! 그 누구의 일도 아닌 내 지식 일인데 설사 죽을 자리라 해도 어미 된 입장에서 가긴 가야겠지!”하며 체념인 듯 보따리로 손이 간다.

묵직해 보이지만 오른손으로 가볍게 들어 머리 위에다 따뱅이(‘똬리’의 방언)를 받쳐 인 할머니가 부엌을 나서기가 바쁘게 삽짝으로 향한다. 그 모습에 속없는 백구란 놈이 잘 다녀오라는 듯 인사차 두 발로 껑충껑충 뛴다. 어떻게 보면 가지 말라는 듯 치맛자락을 물고 늘어지는 듯도 하다.

세상 좋은 백구가 재롱을 피우는 삽짝으로 나선 할머니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인 양 한참을 내려다보다간 고맙다고, 알았다며 허리께를 지나 양발을 걸친 백구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길을 나선다. 총총걸음으로 고샅을 벗어난 할머니의 발걸음이 신작로를 지나 재로 향하는 지름길로 들어서서 내쳐 걷는다. 갈 길이 바쁜지 마음이 바쁜지 연신 앞만 보고 걷는다. 점차 숨이 가팔라 오건 만 머리에 인 보자기를 잡은 반대 팔을 ‘훼훼’내저으며 걸음을 재촉이다. 좌우를 살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재촉하는 할머니를 들녘에서 가을걷이에 나섰던 동네 사람들이 일일이 알아보고는 하나같이 관심을 보인다.

“할매요! 이 시간에 어디를 가세요?”물어왔지만 못 들은 척하는 할머니는 연신 앞만 보고 걷는다. 이런 경우 동네 사람들과 척을 졌을 때가 오히려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언제 어느 때 어디를 오가든 관심을 두는 사람이 없었다. 내남없이 무관심으로 일관했었다. 한데 언제부턴가 할머니의 일 거수 일투족이 동네 사람들에게는 관심의 대상이다. 때로는 성가시고 귀찮을 정도다. 궁금증을 동반한 동네 사람들의 눈초리가 찰거머리로 뒤통수에 달라붙고 있다 여겨졌다. 그런 한편으로 할머니가 떠난 집안에 들이닥친 동네 아낙들에게 휩싸인 어머니가 이런저런 변명으로 곤경에 처해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길을 가는 내내 잡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한 할머니는 점점 무거워지는 짐 보따리건만 가볍게 이고는 총총히 걷는다. 호랑이에게 쫓기는 사슴처럼 앞만 보며 내달린다.

그렇게 마냥 바쁜 줄 알았던 할머니의 발걸음은 고갯마루 바싹 밑에 이르자 재깍 멈추어 섰다. 이쯤이면 동네 사람들의 눈길이 미치지 못하리란 안도감에 길섶을 빌어서 숨을 고르는 할머니다. 그런데 할머니의 휴식은 생각보다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한갓지게 가을 소풍이라도 나왔을까? 줄지어 길을 가로지르는 개미무리에 말을 걸고, 암수가 달라붙은 메뚜기를 보고는

“그래~ 마냥 좋을 때다. 줄줄이 아들딸 많이 놓고 행복하거라!”하는 모양새가 전혀 바쁜 기색이 없어 보였다. 이후로도 고갯길을 오르는 중에 나무그루터기만 보아도 앉아 쉬고, 너럭바위만 보였다 하면 퍼질러 앉는다. 언제 어느 때 고개를 넘어갈지 기약이 없다. 쉬는 시간도 대중이 없어서 때로는 일다경을 넘어서도 한참이나 더 쉬고서도 엉덩이 무게가 천근인지 일어날 기미가 없다. 할머니가 한없이 늦장을 부린 가운데 고개 위에 올라섰을 때는 정오를 지난 태양은 벌써 서쪽 하늘을 향해 무게의 중심을 옮겨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 태평스럽게 보자기를 편편한 바위 위에 내려놓고는 팔을 휘두른다. 숨을 고른다. 그새 세상사를 잊은 듯 발아래를 내려다보는 할머니의 눈에 가을 들판이 더없이 풍요롭다. 어디선가 서늘한 바람이 불어 들자 황금 물결이 일렁거린다. 그 사이사이로 논두렁, 밭두렁이 공룡 뼈다귀처럼 허옇게 누워있다. 태양 빛을 받아 하얗게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얼마 만에 올라보는 고갯마루인가? 한때는 의원 집을, 무당집을 찾아서 뻔질나게 올랐던 길이건만 고모가 병석을 턴 이후로 한동안 뜸했던 길이다. 하지만 그간을 몸이 기억한 탓에 눈을 감아도 눈을 뜬 듯 훤하다. 발아래로 보이는 뱀 등처럼 길게 휘어진 신작로를 따라가면 의원 집을 지나 곧장 무당집이다. 금방이라도

“이 여편네의 할망구가 그새 노망이라도 났나? 어째 또 왔네! 뭘 얻어서 걸릴 게 있다고 사흘이 멀다 않고 들락거리길 들락거려! 드난살이도 아니고!”하는 막둥네의 투박스러운 말이 귀에 들리는 듯도 하다. 한동안 잊은 듯 그 억양이 오늘따라 정감이 일어서 그립다. 생각 같아서는 답답한 가슴을 풀어보고자 한달음에 달려들고만 싶었다.

정감도 잠시 눈을 돌릴 것도 없었다. 아담한 뒷산을 배경으로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이 발아래서 고요하다. 무당집을 드나들 때면 부러움에 눈길을 잡아당기던 집이다. 담장조차 기와로 촘촘하게 뒤덮은 모습이 장마철 소나기에도 끄떡없어 보였다. 초가지붕으로부터 줄줄이 새는 빗물을 온갖 그릇을 동원해서 받아내는 집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고루거각(高樓巨閣)이 담장 안에 자리하고는 앉았다. 할머니가 늘 이상향으로 마음속에 품어오던 집이다 싶어 내려다보는데 감회가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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