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어날 추억] ㊼ 혼자 집을 지킨 개
[꽃 피어날 추억] ㊼ 혼자 집을 지킨 개
  • 유병길 기자
  • 승인 2022.01.19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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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집 피난길을 따라 가지 못한 개(워리)는 왕겨 가마니 뒤에 숨겨둔 쌀겨를 파먹으며 한 달을 버티며 집을 지켰다. 피난길에 돌아온 주인을 만났으나 인민군 총에 맞아 죽었다
짓다가 피난 갔던 초가집, 방안에 왕겨, 살겨 가마니가 집을 지켰다. 출처: Pixabay
짓다가 피난 갔던 초가집, 방안에 왕겨, 살겨 가마니가 집을 지켰다. 출처: Pixabay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우리나라를 쳐들어온 전쟁이 일어나 흙벽돌을 쌓아 초가집을 짓던 친구 집과 동네 60여 가구가 7월 중순 피난을 갔었다.

친구는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둘과 같이 피난을 갔다. 어머니가 여동생을 낳은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아 피난은 못 가고 아버지와 같이 외갓집으로 갔었다.

낙동강을 건너 해평 부근 낙동강 바닥에서 잠을 자는데 근처에서는 전투가 심했다. 저녁엔 강 이쪽과 저쪽에서 심하게 총을 쏘고 붉은 불덩어리가 양쪽으로 날라가고 큰 폭음도 들렸다. 어린 마음에 죽을 것 같아 잠이 오지 않아 오들오들 떨었다.

얼마를 지났을 때 어른들이 인민군이 도망갔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5~9세 아이들도 다리가 아파서 부모나 고모, 삼촌들한테 업어 달라고 조른 기억이 있다.

길거리에는 피를 흘린 미군과 인민군이 누워있었는데 어른들이 죽었다고 하였다. 재를 넘어오는데 넘어진 군용트럭도 있었다.

상주시가지에 들어오니 폭탄을 맞아 많이 불에 탔으며 연기가 나는 곳도 많았다. 피난을 가기 전 친구 집에는 몇 년 전부터 키우든 큰 개가 있었다. 피난길 한 달여 만에 집에 오면서 친구가 “우리 워리는 굶어 죽었을 것이야”라고 말을 했었다. 동네 입구에 들어서니 친구 집 워리가 꼬리를 흔들며 친구 가족을 반겨 주었다. 친구가 워리를 안아주자 꼬리를 치며 너무 좋아했다.

우리나라 토종 개의 모습이다. 출처: Pixabay
우리나라 토종 개의 모습이다. 출처: Pixabay

피난 갔다 오는 동민들이 “굶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게 신기하다”고 하였다.

가족이 피난길을 떠날 때 따라오지 못했던 워리는 혼자 남게 되었다.

어제 낮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워리는 먹을 것을 찾아다니다 짓다만 초가집 골방 구석 왕겨 가마니 뒤에서 고소한 쌀겨 냄새를 찾게 되었다. 왕겨 가마니와 가마니 사이로 고개를 넣어 쌀겨 가마니에 구멍을 뚫고 쌀겨를 먹게 되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워리는 배가 고프면 쌀겨를 먹고 목이 마르면 냇가에서 물을 마시며 하루하루 보내게 되었을 것이다. 쥐들도 찾아와서 쌀겨를 몰래 먹었는데, 워리가 오면 도망가기 바빴다.

벼가 패고
벼가 패고있는 모습. 유병길 기자
목화
목화꽃과 다래의 모습. 유병길 기자

 

무궁화
활짝핀 무궁화. 유병길 기자

새매 동네는 폭격 피해가 없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들판의 벼는 이삭이 한창 패고, 고추도 붉게 익었고, 목화꽃도 피고 다래도 많이 달렸다. 석류도 익어가고 울타리옆 무궁화꽃도 많이 피었다. 

뒷산 골짝에는 인민군 패잔병이 남아 있다가 밤이 되면 동네에 내려와서 먹을 것 빼앗아 갔다. 저녁을 먹으면서 아버지가 할아버지께 말을 하였다.

“아버지 인민군이 내일 우리 개를 잡아먹자 하는데 어쩌지요?” “개는 잡아가라 하고 너는 인민군을 제발 만나지 마라” 

아침 점심 저녁 식사할 때 워리는 항상 큰방 마루 앞에 앉아 있다가 남은 음식 찌꺼기를 얻어먹었다. 그 이야기가 있은 후 워리가 없어졌다고 친구가 걱정하였다. 삼 일째 되는 날 냇가에서 혼자 놀고 있는 워리를 인민군이 총을 쏴서 잡아갔다는 소문을 들었다. 피란 가지 않고 혼자 집을 지킨 개가 너무 불쌍해서 친구 가족이 많이 울었다. 6.25사변이 일어나기 전해에 워리 엄마는 개장수에게 팔러 갔다. 그때도 친구는 많이 울었는데 워리까지 총에 맞아 죽은 것이다. 

그때는 가을일이 끝나면 어른들은 집에서 키우던 개는 팔고 남의 개를 사다가 잡아서 먹었다. 가마솥에 고와서 항아리에 담아두고 조금씩 떠다가 어른에게 데워드렸다. 내년에 일하기 위하여 겨울에 몸보신하였다.

50년 경인년 범띠해에 태어났던 친구 여동생도 일흔셋 할머니가 되었다. 워리가 총에 맞아 죽은 후 친구는 팔십이 될 때까지 한 번도 개를 키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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