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어날 추억] ㊻ 흙벽돌 쌓아 초가집 짓기
[꽃 피어날 추억] ㊻ 흙벽돌 쌓아 초가집 짓기
  • 유병길 기자
  • 승인 2022.01.07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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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할아버지가 직접 흙벽돌을 찍고 서까래, 기둥, 상량 나무를 준비하였다. 흙벽돌을 쌓고 지붕을 덮을 때는 동민들이 도와주었다. 문틀을 달려고 하였는데 피난을 가라는 독촉을 받고 온 동인이 피난을 갔다가 와서 집짓기를 마무리 하였다

 

초가집
초가집의 옆면 모습이다. 유병길 기자

1950년대 봉강리(경북 상주시 외서면), 농촌에서 집을 짓는 것은 무척 많은 힘이 들었다. 사는 집은 대부분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가 결혼하시며 새집을 지어 분가하신 집이다.

식구는 많은데 방 2개로 3~4대가 살아가기가 복잡하였다. 아쉬운 대로 창고, 헛간으로 쓰던 곳에 구들장을 놓아 방을 만들어 쓰는 집도 있었고, 디딜방아를 떼어내고 방으로 개조한 집도 있었다.

 

다음의 초가집짓기 이미지 참고
흙벽돌의 모습이다. 다음의 초가집짓기 이미지 참고

 

친구 할아버지는 50년 봄에 사랑채를 지을 계획을 세웠다. 봄에 뒷산에서 찰흙을 파다가 마당에 펴고 볏짚을 작두로 썰어 넣고 물지게로 물을 져다 부어 발로 밟으며 반죽하였다. 나무로 만든 벽돌 틀에 반죽한 흙을 넣어 발로 밟아 손수 흙벽돌을 찍었다. 마당 빈 곳에 가득 찍어 두었다가 어느 정도 마르면 세워서 말리고 완전히 마르면 한곳에 쌓아 두고 다시 찍고 마르면 쌓고를 두세 달 계속하였다. 뒷마루 기둥과 대들보는 목수가 다듬었다. 둥근 통나무를 도끼로 다듬어 사각이 되게 다듬고 먹줄을 튕겨 대패질하여 기둥과 대들보, 보를 만들었다. 지붕을 덮을 서까래도 다듬었다.

저녁에 온 동민이 모여 집터를 밟으며, 큰 통나무에 줄을 달아 여러 사람이 줄을 당겨 들어 올렸다가 떨어트려 집터를 다졌다. 새끼줄을 치고 석회로 줄을 그어 방 2개 외양간, 뒤주 자리를 설계하였다. 기초가 되는 밑부분에 큰 돌과 작은 돌을 반죽한 흙을 놓으며 한 단을 쌓아 마른 다음 날부터 벽돌과 반죽한 흙으로 사방 벽을 쌓으며 집을 짓기 시작하였다. 방과 방 사이 벽도 같이 쌓으며 방문을 달 곳에는 벽돌을 쌓지 않았다. 문틀이 들어갈 만큼 쌓았을 때 위에 각목을 걸치고 그 위에도 벽돌을 쌓았다. 사면 외벽의 높이를 같이 쌓고 안쪽 방사이의 두 벽은 좁혀가면서 높이 쌓아 마지막 벽돌 위에 대들보를 올려 상량을 하였다. 대들보에는 연월일 등 상량문을 썼고 실타래에 마른명태 한 마리를 매달았다. 대들보 양쪽 끝에서 굵은 서까래를 두 개씩 사방 외벽모서리에 올렸다. 대들보에서는 양쪽 벽으로 일정 간격 서까래를 걸쳤고, 양쪽 옆면은 모서리에 걸쳐진 굵은 서까래에서 벽으로 서까래를 일정 간격으로 걸치며 못을 박아 고정 시켰다.

다음의 초가집짓기 이미지 참고
나뭇가지를 엮어 서까래위를 덮은 모습. 다음의 초가집짓기 이미지 참고

팔목 정도 굵기의 긴 나뭇가지를 발같이 엮어 서까래 위를 덮고 고정시켰다.

다음의 초가집짓기 이미지 참고
지붕에 바른 흙이 말랐을때 이엉을 올려 놓은 모습. 다음의 초가집짓기 이미지 참고

볏짚을 썰어 흙에 썩으며 물 부어 반죽한 묽은 흙을 지붕에 사다리를 놓고 한 사람씩 올라 서서 흙뭉치를 전달하여 지붕에 올려 전체를 진흙으로 발랐다. 바른 흙이 다 말랐을 때 지붕에 이엉을 올려 지붕을 이고 새끼줄을 치고 용마름을 덮었다.

문틀도 안 달고 방 구들장도 놓지 않은 상태였는데, 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우리나라를 쳐들어온 전쟁이 일어났다. 피난 가기 전날 쌀을 찧어 한 말 정도를 피난 보따리에 싸고, 남은 쌀은 사랑채 방바닥을 파고, 단지를 놓고 쌀을 넣고 단지 두껑을 덮고 흙으로 묻고 위에 들마루를 놓았다.

빨리 피난 안 가면 다 죽다는 독촉을 받고 봉강리 에서는 7월 중순 피난을 갔었다. 해평 부근에서 낙동강을 건너 며칠을 더 걸어갔다. 낙동강 근처에서는 전투가 심했다. 저녁엔 강 이쪽과 저쪽에서 심하게 총을 쏘고 붉은 불덩어리가 양쪽으로 날아가면서 큰 소리도 들렸다. 어린이들은 죽을 것 같아 잠이 오지 않았고 오들오들 떨었다.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소리를 듣고 한 달여 만에 집에 돌아왔다. 쌀 단지를 파내고 방바닥을 고르고 문틀을 끼우고 흙을 반죽하여 벽을 발랐고 말랐을 때 문종이를 바른 문을 달았다. 굴뚝을 세울 곳 벽에 구멍을 뚫고 아궁이에서 굴뚝까지 연기가 물같이 흐르도록 돌을 놓고 납작한 구들장으로 위를 다 덮었다. 반죽한 흙을 놓고 반듯하게 흙을 바르고 아궁이에서 불을 지펴 방바닥을 말렸다. 왕골자리를 깔고 잠을 자기 시작하면서 온 가족이 행복해하였다.

50년에 지었던 초가집 벽의 모습. 유병길 기자
50년에 지었던 초가집 벽과 기둥의 모습. 유병길 기자

 

왼쪽 건물이 50년에 지은 초가집인데, 73년 슬레이트로 지붕 개량을 하였다. 2013년 새 집을 지으면서 헐렸다. 유병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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