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어날 추억] ㊽ 설날의 풍속
[꽃 피어날 추억] ㊽ 설날의 풍속
  • 유병길 기자
  • 승인 2022.01.26 17: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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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 가까워지면 집 청소하였고, 옷과 이불을 세탁하였고, 제수를 준비하고 머리 깎고 목욕을 하는 등 무척 바빴다.
설 차례를 모시고 나면 보름까지는 일 안하고 놀면서 자주 못 보는 친척에 인사를 다녔다.
새옷 새 신을 신고 맛있는 음식 많이 먹는 설이 아이들에게는 행복이었다.
설 차례상 사진
떡국 설 차례상 사진. 다음 이미지 참고

1950년대 봉강리(경북 상주시 외서면)에서는 설이 가까워지면 집을 깨끗하게 청소하였고, 옷과 이불을 세탁하였고, 제수를 준비하고 머리 깎고 목욕을 하는 등 새해맞이 준비에 무척 바빠지기 시작하였다.

방안의 벽에 벽지를 바른 집은 거의 없었다. 낙서로 더러워진 벽은 황토물을 진하게 하여 볏짚으로 만든 솔로 벽에 바르면 깨끗하여졌다. 나중에는 신문, 아이들 책으로 바르다가 시장에서 산 벽지로 방안 벽을 깨끗하게 바르기 시작하였다.

청년들은 이발관에서 머리를 깎았고, 선비는 상투를 틀었고, 노인들과 어린아이 학생들은 이발 기계(바리캉)로 박박 머리를 깎았고, 여학생들은 목에 책보를 두르고 어머니, 고모가 가위로 단발머리로 잘라주었다, 처녀들은 머리를 길게 땋고 댕기를 달았고,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은 비녀를 찔렸다.

놋그릇
밥 국 반찬을 담는 놋그릇의  모습이다. 유병길 기자

놋그릇은 닦기가 힘이 들어 자주는 못 닦고 매년 설이 가까워지면 한 번씩 닦았다. 기와 조각을 잘게 빻아 고운 가루를 쳐서 짚에 묻혀서 놋그릇을 닦으면 얼굴이 비칠 정도의 윤기가 났다. 겨울에는 놋그릇을 사용하였고, 여름에는 도자기로 만든 사기그릇을 사용하였다. 놋그릇은 깨어질 염려는 없지만 무거웠다.

뻥튀기
뻥튀기 기계의 모습이다. 유병길 기자

한 달 전부터 동네마다 찾아다니며 “탕” “탕” 뻥튀기를 튀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설음식 준비를 위하여 먼저 엿을 만들었고 유과를 만들었다. 쌀, 콩, 참깨, 땅콩 등을 뻥튀기하여 녹인 엿과 버무려 홍두깨로 얇게 밀어 칼로 자르면 강정이 되었다. 집에서 볶아 만든 콩강정은 딱딱하여 씹기는 힘들지만 고소한 맛은 있었다.

다듬이질 하는 모습이다.
다듬이질 하는 아낙의 모습이다. 상주 100년사 참고 

옷을 빨아서 손질할 때 집 집마다 골목마다 ‘똑딱’ ‘똑딱’ 퍼지는 방망이 소리는 정겨웠다. 아이들에게는 새 옷을 만들어 주었고 새 검정고무신도 사 주었다.

술밥(고두밥)을 찌고 누룩가루를 일정 비율로 섞어, 단지에 넣고 물을 부어 술도 집에서 만들었다. 4~5일 후에 술이 다 되면 용수(싸리로 만든 둥글고 긴 통)를 단지에 박아 제주로 사용할 청주를 뜨고, 남은 술은 체로 걸렀다. 설 전에는 술 조사가 잘 안 나왔기 때문에 술을 담가서 설에 쓸 수 있었다.

고드름
처마에 달린 고드름. 다음 이미지 참고

그때는 눈이 많이 내렸다. 낮에 눈이 녹으면 초가지붕에는 고드름이 달리고 길이 질퍽하고 미끄러웠지만, 설은 어린애들한테는 기다려지는 즐거운 명절이었다.

설 2~3일 전에는 콩을 불려 맷돌에 갈아서 두부를 만들었고, 메밀을 갈아 솥에 끓어 메밀묵도 만들었다.

가래떡
가래떡의 모습이다. 다음 이미지 참고

쌀가루를 빻아 집에서 시루에 찌고 떡메로 쳐서 암반에 놓고 손으로 가늘고 길게 밀어서 가래떡을 만들어 두었다가 마르면 칼로 썰어 떡국 떡을 만들었다. 가래떡을 납작하게 눌러서 절편도 만들었다. 설 전날(섣달그믐날)은 무척 바빴다.

찹쌀을 쪄서 떡메를 쳐서 암반에 놓고 길게 밀어 칼로 잘라 복은 콩가루를 묻혀 인절미도 만들고, 쌀가루 한 층 콩가루나 팥 한 층을 반복하여 놓고 쪄서 시루떡도 만들었다.

솥뚜껑
솥뚜껑을 뒤집어 걸고 전을 구웠다, 유병길 기자

마당 구석이나 부엌바닥에 솥뚜껑을 뒤집어 걸고 마른 솔가지로 불을 피우며 배추 전, 파 부추 무전, 생선 전, 고구마 전을 구웠다. 그때는 상품으로 만들어서 파는 것이 별로 없었고, 있더라도 돈이 없어 각 가정에서 만들어 사용하였기 때문에 한 달 전부터 바빴다.

가마솥
부엌의 큰 밥솥. 유병길 기자

시골에는 목욕탕이 없어서 저녁 소죽을 퍼주고 가마솥을 깨끗이 씻어 물을 부었다가 잔불에 물이 따뜻하면 아이들은 솥에 들어가서 씻었다. 섣달그믐날 저녁엔 부엌의 큰 솥에 물을 끓여서 큰 통에 물을 담아 작은방에서, 부엌에서 한 해의 묶은 때를 씻고 새해맞이 준비를 하였다. 

“섣달그믐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말이 있었다. 작은고모가 여동생 눈썹에 쌀가루를 묻혀놓고 아침에 눈썹 세었다고 놀리던 기억도 난다.

복조리
복조리를 기둥에 걸어두고 사용하였다. 복조리 백과 참고

복조리를 설날 이른 아침 벽에 걸었다. 조리는 쌀을 이는 기구인데 그해의 행복을 쌀알과 같이 조리로 일어 얻는다는 믿음에서 생겨난 풍속이다. 설전에 산 복조리를 대청 기둥에 걸어두고 하나씩 사용하면 1년 동안 복이 들어 온다고 집마다 복조리를 사서 걸어 두었다.

설날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조부모님, 부모님께 세배하였다. 그때는 세뱃돈은 없었고 덕담을 받았다. 성씨별로 종손 집에 친척들이 다 모여서 떡국으로 차례를 모시고 떡국과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종손 집에서 차례를 모시고 다음 항렬의 할아버지 집을 차례로 다니며 데 여섯 집 차례를 지내다 보면 저녁때가 되었다. 차례가 끝나면 아이들은 친구들끼리 모여 동네 어른들 집을 찾아다니며 세배를 드리면,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 좋았다. 그때는 굶는 것을 밥 먹듯 하였기에 배불리 먹는 것이 제일 행복하였다.

설날부터 대보름까지는 가마니 짜던 일도 그만두고 친척집 처가 외가에 인사를 다녔다. 몇 사람만 모이면 편을 갈라  ‘모야’ ‘개야’ 소리치며 윷놀이하였다. 윷놀이는 삼국시대부터 성행하였던 놀이로 추측된다. 윷의 종류는 가락윷, 장작윷, 밤윷, 종지윷, 은행윷, 콩윷 등이 있었다.

연날리기
연날리기의 모습. 다음 연 이미지 참고

아이들은 형들과 같이 사각연, 가오리연 등을 직접 만들어 동네 앞들에서 연을 날리고, 썰매를 타고 제기를 차고 자치기를 하면서 놀았다. 설전에 틈틈이 모여서 연습한 농악대는 이튿날부터 집집마다 찾아 다니며 지신을 밟아주었다. 주인은 소반에 쌀이나 돈을 내 놓았다. 쌀과 돈을 모아 동네 기금을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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