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36)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36)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1.11.01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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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타구니 사이로 노리끼리한 물기가 반원을 그리며 널찍하게 번져난다
그 맨 뒤쪽으로 고개를 땅바닥으로 쳐 박은 녀석이 따른다
덕도 없는 남의 소를 무닥지 키우기는 왜 키워요!”하고 쏘아 붙였다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손목과 다리까지 잘려야 끝난다는 결론에 그는 한쪽 구석으로 몰렸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사기도박 같은 것은 애시 당초 모른다고 비루먹을 강아지모양으로 두 손 싹싹 빌며 살려달라고 애원에 애걸 해보지만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 불행하게도 그에게 있어서 샤일록의 음흉한 흉계를 간파해서 무위로 만들어버렸던 더 이상의 지혜로운 포셔는 없었다.

사기도박꾼들은 일을 빨리 마치려는 듯 구석에 쳐 박아 놓은 검은색 가방을 당겨서는 지퍼를 ‘짜르르’연다. 가로질러 굳게 다물었던 가방이 입을 열자 손을 집어넣는 사기도박꾼은 ‘철거덕! 철커덕’거려 칼, 손도끼, 톱과 함께 두툼한 솜뭉치를 주섬주섬 꺼낸다. 돈의 노예로 전락한 소시오패스에 사로잡힌 그들의 기계적인 행동이다. 희끄무레한 방바닥으로 펼쳐지는 그것들은 흡사 저승사자의 손이랑 망토자락으로 같다. 그때 죽음을 목전에 둔 듯 그는 생 똥을 싸질러 속내의에 묻히고 노란오줌을 지렸는지 사타구니 사이로 노리끼리한 물기가 반원을 그리며 널찍하게 번져난다.

뜻밖의 사태에 그의 친구들도 아연실색이다. 걷잡을 수 없는 현실 앞에 다들 죽을상이다. 그를 배반했던 친구들은 생각 밖으로 흘러가는 상황에 눈앞이 캄캄했다. 그간 미운정이 있는 듯도 해서 겁이나 주려는 의도가 이렇게 친구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일이 커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돈 몇 푼에 눈이 홀려 지난 세월동안 볼 것, 못 볼 것 다 보면서 자란 친구를 이렇게 허망하게 잃을 수는 없었다. 긴박한 와중에도 서로서로 은밀한 눈치 교환이 이뤄진다. 그리고 그 중 제법 담이 크다는 녀석이 뒷간을 핑계로 방문을 나섰다.

마침내 교도소의 철창같이 굳게 닫혔던 방문이 열린 것이다. 이 순간을 놓칠세라 어둡고 칙칙한 분위에 감싸였던 담배연기조차 이런 분위가 싫다며 밖으로 빠져나가려고 몸을 비튼다. 하지만 곧장 닫히는 문을 피하려다 문지방에 이마를 들이박고는 아래로 꼬꾸라진다. 다시 제자리로 향하는 연기들마저도 아프다고, 무섭다고, 살려달라며 서로 부둥켜안고는 몸부림이다.

이 정도에 무너질 정도로 심약한 사기도박꾼들이 아니다. 이쯤에 멈출 일이라면 애당초 시작도 안했을 것이다. 사기도박꾼도 간이 부을 대로 부을 만큼 부어 산전수전 다 겪은 터였다. 칼을 들어서 못 본 척 칼날의 예리함 정도를 손끝으로 검사하는 그들은 은근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비록 부축이지는 못하지만 닫쳐진 방문을 향해 알 듯 모를 듯 미소를 짓는다. 속으로 은근히 바라는 바이기도 했다.

결국 숨이 턱까지 차오른 그의 친구로부터 긴박하게 연락을 접한 그의 부모가 전면에 나선다. 사기도박꾼의 주된 목적은 오로지 돈이다. 그들의 요구대로 부모의 전 재산을 담보로 녀석은 간신히 지옥문턱으로부터 풀려난다. 마름까지 두어 소작인을 관리할 정도로 부자소리를 듣고 있지만 철딱서니 없는 못난 아들을 둔 덕에 졸지에 알거지가 되었다. 창피하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고는 동네 사람들과는 함께 살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생각 끝에 배냇소주인은 조상대대로 살아온 마을을 떠나기로 하고 이불 보따리와 옷 보따리 등으로 간단하게 짐을 꾸린다. 대충 짐이 꾸려지자 배냇소주인은 지게에다 꾸려 지고 앞장을 서고 그 뒤로 식구들이 줄줄이 따른다. 그 맨 뒤쪽으로 고개를 땅바닥으로 쳐 박은 녀석이 따른다. 담을 너머서 그를 따르는 눈길이 있었건만 묵묵히 앞만 보고 걷는다.

그의 초라한 어깨를 쫓아가는 눈길에는 서글픔과 절망이 서려 있었다. 서로 죽고는 못산다며 어깨동무로 골목을 누벼오던 깨복쟁이(발가벗은 사람이란 뜻으로 불알친구의 전남 사투리)친구를 배신한 혹독한 대가가 그들 앞에 놓여있을 뿐인 때문이다. 재산가가 가끔 베풀어주던 공술은 이제 더 이상은 없는 것이다. 술집주모를 불러 “여기 맛있는 고기 한 접시!”하고 떨어오던 객기도 바람처럼 허공으로 흩어져가는 느낌이다. 군내 나는 쉰 김치에 막걸리 한 사발도 이제는 오감타 싶은 것이다. 배신자의 앞길에 놓인 것이라곤 동네에서 어쩌다 술판이라도 벌일라 치면 친구를 팔아먹은 그 구린 앞으로, 그 시커먼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술이 달게 넘어가느냐는 비아냥거림 밖에 없는 것이다. 한순간 돈에 눈이 멀고 친구를 질투하여 배신한 그들이 발 뻗고 누울 곳은 집구석의 어두컴컴한 골방을 빼고는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그것조차 식구들의 눈치를 봐야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런 경우 떠나가는 편이 오히려 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앞선다. ‘끽’소리 한번 못 내고 돌아서는 그들의 어깨 위로 어둠이 덕지덕지 장막을 내린다.

전쟁도 없건만 피란민이 되어 쫓겨 가는 형상으로 떠가가는 고향 땅, 정든 이웃과 작별의 인사 한마디 나누지 못한 채 달도 별도 숨어버린 야밤을 기해 길을 나선다. 옷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동네를 발아래로 재를 넘는다.

이제는 불알친구라 내세울 처지도 아니다. 그렇다고 원수지간도 아니다. 어정쩡하게 변질되어버린 관계! 며 칠만 못 보아도 서로 얼싸 안던 관계가 서로 안보 것이 속이 편한지라 더 슬픈 것이다.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할 없음에 더 울고 싶다. 훗날이 더 암담하여 그는 고개를 못 들어 땅만 보고 걷는다. 몽유병자처럼 터덜터덜 걷는 그를 아버지가 불러도 귀가 닫힌 듯 했고, 어머니가 불러도 청맹과니다. 동생이 어깨를 잡아 흔들어도 파리가 앉은 듯 손으로 털고는 마냥 걷기만 한다. 돌아올 고향을 잃어버린 그는 그저 어둠이 좋아 가족들 앞을 내쳐 어둠 속으로 묻혀간다. ‘타박타박’걷는 발걸음이 잦아들어 그림자처럼 어둠에 묻힌다.

비록 미완으로 끝났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한때 나마 소를 장만한다는 꿈에 부풀었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 시절 해가 기우는 저녁이면 할아버지는 늘 소죽솥 앞을 지켰다. 소죽솥 앞에 쪼그려 앉은 할아버지는 맨다리(‘삭정이’의 방언)를 딱딱 꺾어서 불을 지폈다. 그때마다 소죽솥으로 김이 올랐다. 이윽고 불이 사그라져 잉걸불로 변해갈 때면 할아버지는 감자도 구웠고, 고구마도 구웠다. 또 가을철이면 새벽녘에 주워온 알밤에 낮으로 칼집을 내어 구웠다. 회색빛으로 사그라지는 재를 뒤집어 쓴 알밤이 ‘타닥타닥’하는 울음소리를 낼 때면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불려 옆에 앉히고는

“임자 이것 보시게! 알밤이 아주 제대로 익었네! 노릇노릇 맛나게 익었네 그려! 식기 전에 어~ 여! 맛이나 보시게!”하고는 껍질과 보풀까지 벗긴 노란알밤을 손에다 꼭 쥐어 주었다. 미쳐 식지 않은 노란알밤은 할머니의 손안에서 따뜻했다. 꼭 할아버지의 팔딱거려 뛰는 심장이, 따뜻한 가슴이 손안에 가득하게 든 듯 했다. 그 마음이 따사로워 가슴이 울렁울렁, 새색시 시절의 다정했던 어느 한때처럼 할아버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픈 마음이 울컥하여 솟는다. 얼마나 다정한 한때였던가? 소죽솥 앞에서 같이 맡았던 구수하게 풀이 익어가는 냄새가 코끝을 감치자 할머니는 불현듯 할아버지를 저승으로부터 소환한 모양이었다.

야밤을 맞아 배냇소가 끌려가자 할아버지는 배냇소주인의 어리석음을 탓해서

“미련한 사람 같으니 못이기는 척 감춰두었다가 낭중에 좀 잠잠해지면 소와 송아지를 죄다 팔아서 살림 밑천이나 하질 않고...!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아무려면 내가 내 배만 불리자고, 내 재산만 불리고자고 어찌 송아지를 탐낼까?”하고 아쉬움을 나타냈고 그 말에 할머니는

“자선사업가도 아니고 물러 빠져서는, 내 집 농사일도 미쳐 다 못 쳐내 밭이랑 마다 풀이 한 짐 이구만! 일복이 터졌어요! 이문도, 덕도 없는 남의 소를 무닥지(할 일 없이)키우기는 왜 키워요!”하고 쏘아 붙였다.

그 일이 있고 난 얼마 후 사기도박꾼은 일방 타진되었다. 위협만 주자고 노름밑천이 모자란 부분만큼 돈으로 환산하여 걸게 한 손목이다, 하지만 객기가 도졌는지, 정신이 헤까닥 했는지 그도 아니면 잠시 잠깐 귀신에 덮어 쓰인 탓일까? 그들은 자기네들끼리 모여서 머리를 맞대어 희희낙락, 실행에 옮기는 우를 저지르고 만다. 그렇게 사람의 신체 일부분을 실제로 훼손한 일이 문제가 된 것이다. 매스컴을 타고 신문을 통해 그들의 만행이 세상에 알려졌다.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른 것이 빌미를 제공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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