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33)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33)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1.10.11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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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만 날아다녀 썰렁합니까? 이게 진정 잔칫집입니까?
구렁이가 휘감아 오는 듯 차갑고 징그러워 뿌리칠 판이다
죽었다던 제갈공명이 생시처럼 눈앞에 나타나자 사마중달은 졸지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장성한 아들의 나이를 볼 때 혼기가 벌써 지났건만 누구하나 거들떠보질 않아 홀아비와 마찬가지로 이가 서발이다. 사지가 멀쩡하고 정신이 초롱초롱한데도 불구 청승맞게 늙어간다. 가난을 빼고는 어디 하나 흠잡을 구석이 없지만 말이다. 게다가 사람들이 할머니라 부르건만 아직 손자, 손주는 요원한 상태다. 반쪽짜리 할머니 신세를 벗어나려면 아들을 어떻게든 해야 하다는 것이다. 부모 된 입장에서 이유 여하를 떠나 짝을 찾아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미 된 사람이 할 도리며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갖은 노력 끝에 일이 성사되면 또 어쩔 것인가? 경사를 맞는 그날, 그날도 지난 어느 해의 정월 대보름날처럼 썰렁하게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과분하게 떠들썩한 것은 떠나 몇몇 동네 사람들과 어우러져 찌짐(지짐이의 방언)이 몇 장에 동동주를 곁들인 권주가 한 자락쯤은 목청껏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골물(고생의 경상도 방언)스럽고 찌든 살림살이일망정 최소한 국수 한 그릇씩은 나누고 싶은 것은 잔칫집 주인의 인지상정, 그도 저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들어 죄다 생략해버리면 무슨 면목으로 새아기를 대할 것인가? 갓 시집 온 며느리에게서

“어머님은 그간 세상을 어떻게 살았기에 이렇게 사람들이 없어 파리만 날아다녀 썰렁합니까? 이게 진정 잔칫집입니까?”하는 반문의 약코(기)는 죽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할머니는 아들의 신혼 첫날밤을 맞아 새로 발라 깨끗한 신혼 방 창호지에 침 바른 손가락으로 들이 민 구멍이 최소한 3개 이상은 뚫어져야 남들 앞에 체면이 선다는 것이다. 그래야 백년가약으로 맺어진 신혼부부가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잘 산다고 여기고 있었다.

“신랑 신부 둘 다 숙맥 같네! 신부가 입이 다물어 질 틈 없이 저래 헤프게 웃으면 보나마나 첫 딸인데”하며 호들갑을 떨다가 신랑의 입김에 불 꺼진 방을 아쉽다는 듯, 닭 좇던 개 지붕만 쳐다보듯 바라보며

“에그~ 좋은 구경거리 놓쳤네!”하는 푸념어린 말로 아쉬워하는 동네 사람들과

“짓궂기는 본인들도 몸으로 겪을 만큼 다 겪어 봤으며 뭘 그래...! 이제는 신물이 날만도 하다만은...!”하고 은근슬쩍 달래가며 막걸리 한두 잔 정도는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할머니의 생각이 거기에 머물자 더 이상 망설일 일이 아니다 싶었다. 하찮은 초로의 눈물이래도 좋고 깨진 항아리에 사금파리 조각이라 해도 좋았다. 동네 사람들과 극적으로 화해를 하고 아들의 혼례 날 한 최소한 한 오래에 둥지를 튼 이웃끼리 만이라도 자리를 같이할 수만 있다면 더 없이 좋은 일이라 여겼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까짓 원수처럼 여겨 칼을 벼룬 다짐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여겼다.

‘불감청이면 고소원’이라 할머니는 내심 가슴이 뭉클, 환희로 가득 들어찼지만 짐짓 화를 참고 있다는 듯 표정은 엄숙하게 목소리는 낮게 깔아서 감골댁에게 아이의 상태를 물은 것이다. 하지만 감골댁의 생각은 달랐다. 아이가 배를 끌어안고 죽어가는 마당에 웬 자존심이란 말인가? 그깟 알량한 자존심 따위는 누렁이게 던져 준지 오래로 정 안되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버리고 살려달라고, 할머니의 치맛자락을 잡고 늘어질 판이었다. 손이 발이 되고, 발이 손이 되도록 빌 참이었다. 그래도 정 안된다면 인조임금이 병자호란을 맞아 삼전도에서 항복을 하는 중에 홍타이지에게 삼배고구두례(三拜九叩頭禮)를 올린 이상으로 이마를 땅에 찧어서라도 철석간장의 할머니를 데리고 갈 작정이었다. 이로 인해 이마에 흉터라도 생긴다면 자식을 위한 영광스러운 훈장이라 여기리라 마음먹은 참이었다. 헌데 감골댁의 염려와는 달리 할머니가 싱겁게 아이의 상태를 물어오자 더 이상 생각할 겨를 없이

“네~ 네! 알겠습니다. 다 말씀드려야지요! 그러니까 그게 그러니까 말이죠! 가면서 자세히 말하겠습니다. 암~ 암 죄다 말씀드려야지요...!”하는 말끝에

“고맙네! 고맙습니다”를 연발하며 한 손을 들어 소매로는 눈물을 훔치고 또 다른 한 손으로는 할머니의 손목을 덥석 잡아끌며 앞장을 선다. 사실 할머니도 썩 내키지는 않은 걸음이지만 그냥 못 본 척 한다는 것 또한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설렁 그렇더라도 마음이 떠난 탓인지 맞잡은 손까지 구렁이가 휘감아 오는 듯 차갑고 징그러워 뿌리칠 판이다. 하지만 그렇게 냉정하게 굴 수는 없다고 여겨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마지못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쯤해서 돌아설 생각도 추호도 없었다. 힘이 되던 짐이 되던 이왕지사 내친걸음에 끝까지 부딪혀 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지만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 온몸을 싸하게 감도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유계(유방)가 세운 한나라가 전한과 망할 놈의 신나라(기원후 8년~23년까지 존재한 왕망이 세운 나라)를 거쳐 후한에 이르러 멸망하자 중국은 삼국(위, 오, 촉)으로 나누어 패권을 다툰다. 그런 가운데 제갈공명의 호적수는 위나라의 사마의(중달)였다. 제갈공명이 북벌을 나섰을 때마다 자웅을 겨룬 장본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마중달은 호로곡의 전투를 비롯하여 제갈공명에게 늘 패했지만 수비 하나는 귀재였다. 길목에 웅크려 수비에만 주력하는 데는 천하의 제갈공명도 어쩔 수 없었다. 목을 몸통으로 숨긴 자라의 등을 두드리는 듯, 등을 말아 방어태세에 돌입한 고슴도치를 바라보는 격으로 속수무책이었다. 병사들을 시켜 입에 담지 못할 험담과 욕을 퍼부어도 별무신통, 소용이 없었다. 생각 끝에 최후 통첩인양 제갈공명은 화려하게 여성 옷을 지어 겁쟁이며 여자라는 취지로 보냈다. 옷을 본 주위의 장수들이 치욕에 젖어 부르르 떠는데 사마의는 옷을 어깨에 걸쳐 입으며

“이 정도가 뭐 어때서! 여성 옷을 입는다고 여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또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니고, 전쟁에 패한 것도 아니고, 땅을 빼앗긴 것도 아니데...!”하더니

“어때 어울리나”하며 유명 모델처럼 한 바퀴 빙 돌기까지 한다. 그로부터 얼마 후 제갈공명이 54세의 일기로 오장원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여성 옷을 입을 때와는 다르게, 수비로 일관하던 때와는 다르게 전군에게 총공격의 명령을 내린다. 위나라의 대군이 퇴각 중인 촉군의 뒤를 밟아 진창에 이르자 산위에서 매복 중인 촉군이 쏘는 화살이 흡사 비가 오는 듯이 퍼부어 내린다. 빗발치는 화살아래 선두에 섰던 병사들이 속절없이 쓰려지는데 그 모양새를 지켜보던 사마중달이

“제갈공명이 진짜로 죽은 모양이구나! 만약 제갈공명이 살아 있다면 선두가 아닌 중군이 매복한 깊숙이 들어갔을 때 화살을 쏘았을 것이다”하며 지휘봉을 휘둘러 재차 전군에 총공격을 내릴 찰나였다. 별안간 산위로부터 포성이 일고 촉군이 나타는 중에 수레를 탄 제갈공명이 모습을 드러낸다. 머리에는 두건을 쓰고 학 무늬의 장삼을 걸친 모습에 예의 학우선을 오른 손에 들고는 당당하게 앉아있다. 죽었다던 제갈공명이 생시처럼 눈앞에 나타나자 사마중달은 졸지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가운데 제갈공명의 옆에 서서 보좌하던 강유가 장검을 빼어 들고선

“승상께서 예서 기다린 오래다. 사마중달은 목을 길게 늘려 반역의 죄를 달게 받으라! 오늘 하늘을 대신하여 만고에 역적이자 죄인인 사마중달의 목을 잘라 천하를 태평케 하리라!”하며 일갈이다. 깜짝 놀란 사마중달은 전군에게 후퇴명령을 내리기가 무섭게 진중으로 한달음에 도망을 쳐와 서성인다. 흡사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고 무언가 뒷맛이 개운치가 않았다. 좌불안석으로 한참을 서성이는데 뒤늦게 도착한 아들 사마소가

“제갈공명은 죽은 것은 확실하답니다. 그것도 수일 전이라고 합니다”하자

“너는 그걸 어떻게 알았나!”하고 물었고 이에 사마소는

“초군 병사 두 명을 사로잡아 심문한 결과 알아낸 사실입니다”한다. 그제야 제갈공명의 술책에 옴팍 속을 것을 안 사마중달은 가슴이 꺼져라 두 주먹으로 내리치며 또 침상 위를 떼굴떼굴 구르며 소리소리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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