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40)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40)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1.11.29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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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배불러 세상에 내지른 자식들의 앞길을 열어주고 싶다
얼핏 돌아본 삽짝으로 웬 아낙네가 허겁지겁 들어서고 있었다
뼈와 살을 나누듯 젖을 물리고 진자리 마른자리는 또 어째서 골랐나 싶다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야~ 이늠의 자슥아 설령 미친년이라 할지라도 어미는 어민데 어미를 면전에서 대놓고 그렇게 비웃지만 말고 속 시원하게 말을 해라!”하고 소리치고 싶다. 또 한편으로는 동네 사람들이 둘레둘레 모여 앉아 무어라 수군거려 험담을 늘여 놓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속에 든 말을 함부로 내뱉을 수 없는 할머니는 또 속으로

“이놈의 시키야! 그만 희죽거리고 네 어미의 삐에로모양 우스꽝스러운 꼬락서니의 모양새 좀 어디 들어보자!”하는 말이 목구멍을 튀어 오를 듯 치솟는 것을 억지로 눌러 참는 할머니다. 차마 아들로부터 그런 험악한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어떻게 아들로부터 차마 하지 못할 에미의 숭(흉)을 보라고 할 수 있을까? 가슴이 허허로워 밤하늘로 향하는 눈길이 자연스럽게 고모가 쥐 죽은 듯 드러누운 방문을 찾는다. 평화롭고도 고요하다. 가물거리는 호롱불이 마당을 향한 장지문의 누리끼리하게 퇴색된 창호지를 불그스레하게 물들이고 있다.

“그새 잠이 들었나! 근심 걱정 없이 먹고, 자고, 싸고 사는 너는 전생에 무슨 복을 지었더냐?”어느새 할머니의 눈가로 미리내('은하수'의 방언)를 벗어나 떨어져 내린 별 몇 개가 깃들어 반짝인다.

할머니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오늘같이 생을 포기하고 싶은 적은 없었다. ‘자살’이란 단어가 지금처럼 가슴을 저민 적이 없었다. 내 한 몸 죽어져서 끝날 일이라면 깊은 산을 찾아 고려장을 치르듯, 명이 다한 고목처럼 쓰러지면 그만이란 생각이 들었다. 혼자 그렇게 스러지면 되리라 여겼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직 생의 한가운데에 서있다. 아래로는 슬하에 아들 딸, 두 명의 자식들이 하루같이 할머니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위로는 조상들이 하늘에서 굽어보고 있다. 비록 내 목숨이건만 내 목숨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내 배불러 세상에 내지른 자식들의 앞길을 열어주고 조상님들께, 특히나 먼저 간 지아비이자 할아버지의 두 손 꼭 잡은 당부를 져버릴 수가 없었다. 그 명세 그 다짐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뜨겁게 들끓고 있는 것이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길이 불그스레한 창호지에 머문다. 음지가 양지되고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는데...! 지지리도 못난 저년 저것은 언제나 자리를 훌훌 털어 일어날까? 언제 어느 날을 맞아 저 방문이 활짝 열리고 따듯한 햇볕을 맞이할까?

저 인간 같잖아 애물단지 같은 딸년만 아니라면...! 이렇게 서럽게 살 바에는 차라리 모녀가 서로 부둥켜안고 저 아래쪽 처녀물귀신이 산다는 소(沼)에나 뛰어들까 싶은 것이다. 치마를 거꾸로 뒤집어쓰고 인당수에 뛰어든 심청이가 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차마 그렇게 할 수는 없다. 효녀가 아니어서도 공양미삼백석을 내건 청나라 상인들이 없어서도 아니다. 이제까지 어떻게 살아온 삶인데 싶기도 하고 또 생으로 목숨 줄을 끊고 나면 삼대에 걸쳐 화가 미친다는 무당의 말이 떠오른 때문이기도 했다. 게다가 귀신의 심보는 죄다 가살궂다고 했다. 죽은 할머니의 한 많은 혼령의 가살궂은 짓으로 후일 태어날 손자손녀가 짓지도 않은 업에 시달리게 할 수는 없다 여겼다.

그렇더라도 비웃음을 짓는 듯 희죽거리는 아들이 정영 안 미울 수는 없었다. 재차 먹다 만 고구마를 실실거리는 면상에 던지고 싶은 심정뿐이다. 울화를 꾹꾹 눌러 참는 할머니가 고구마란 생각에 미치자 갑자기 가슴이 터질 듯 답답하다. 할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꺼~ 억! 꺽!’하는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앙가슴을 부서져라 주먹을 쥐어 탕탕 두드린다. 밤고구마라 그런지, 팍팍하게 삶은 고구마라 그런지 목이 콱콱 잠겨온다. 딱히 고구마 때문은 아니었다. 고구마는 일종의 핑계로 답답한 마음을 풀 길이 없다 보니 스스로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는 중이다. 가슴 위로 커다란 돌덩이를 내려놓은 듯 답답하다. 압슬형을 당하는 죄인처럼 가슴이 천근처럼 무겁다.

“언제는 안 그랬나! 까짓 것 될 대로 되라지 뭐!”하는 할머니는 차라리 맹물이나 먹고 속을 차리자 싶어 물을 뜨려 무릎을 세워 막 일어서려다 못 볼 걸 본 듯 털썩 주저앉는다. 그때 할머니가 얼핏 돌아본 삽짝으로 웬 아낙네가 허겁지겁 들어서고 있었다. 눈가를 적신 눈물 때문인지 그저 사람의 형체만 흐릿하다. 별빛에 비쳐 형상만 어른어른하여 누굴까? 하는 할머니는 내 집에 일 년을 가도 조용하던 사람의 발걸음이 근자에 참 잦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의 생각과는 달리 빠른 걸음을 놀려 삽짝 안으로 냉큼 들어서는 아낙의 손에는 작은 광주리가 들여 있었다. 점점 가까워지자 한 눈에도 할머니는 그 아낙이 감골댁임을 알아보았다. 문득 할머니는 진료 후 약방문을 말로써 일러준 아이의 뒤 소식이 궁금하기도 하여 내심 반갑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감골댁이 지금껏 해온 행동거지로 미루어 짐작컨대 또 무엇을 꼬치꼬치 염탐하여 태산처럼 부풀러 평지 풍파를 일으킬까 싶어 두려운 마음도 없잖아 일고 있었다. 따라서 날강도를 본 듯 허옇게 송곳니를 드러내어 옹골차게 짖는 누렁이처럼 할머니의 말에도 가시가 박혀 입안서 뱅글뱅글 도는 ‘아이는?’ 하는 말을 꿀꺽 삼키고는

“이 늦은 시간에 감골댁이 어떻게 내 집 엘? 괴물이 산다는 내 집에 자네가 또 어인 일인가? 나는 더 이상 자네랑 볼일이 없는데! 할 이바구(이야기의 방언)가 없는데...!”하며 쌜쭉한 표정으로 아예 돌아 앉아 버린다. 얼굴을 마주하여 보기도 싫고, 말은 섞기도 싫다는 뜻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 단호한 할머니의 태도에 전날 같으면

“누구는 어떻고...! 언제는 내가 끝순네가 보고 싶다던, 흥~ 벌 꼴이야!”하며 뒤도 안 돌아보았을 감골댁이 할머니의 토라진 뒷모습에 개의치 않다는 듯 싱글싱글 웃기까지 하며

“성~님! 벌써 저녁을 잡셔 버렸네! 서둘러 나선다는 것이 한발 늦었어라! 그렇더라도 요것 한번 드셔 보세요! 방금 삶아서 아직은 따끈따끈 합니다”하며 일 없다는 듯 엉덩이를 쑥 들이밀어 자리에 걸터앉는다. 감골댁의 하는 양으로 보아 할머니가 무슨 험악한 말로 쫓아내더라도 꿋꿋하게 버틸 기세다. 축객령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만면에 웃음꽃을 피운 감골댁이 내려놓은 광주리 안에는 삶은 감자와 옥수수가 가지런하게 들어있었다. 감골댁의 말대로 방금 삶은 건지 지금까지 짙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나마 김이 오르고 있었다. 그 중 옥수수 하나를 집어 든 감골댁이 토라져 돌아앉은 할머니는 도외시하여

“올 농사는 좀 어때?”하고 아버지에게 말을 붙인다.

“논밭에서 일할 때는 멀리서 보아 잘 모르겠더니만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헌헌장부네! 어쩜 어머니를 닮아 기생오라비처럼 훤칠하게 잘 생겼나 그래! 내가 다 홀딱 반하겠네! 다 늙은 동네 아지메가 주책이지 호호호!”하고 웃는데

아버지가 무언가 말을 할 듯 말 듯 입술이 달싹달싹하는데 할머니의 고개가 절로 꺾인다. 아린 가슴에 눈두덩이(눈언저리의 두두룩한 곳)가 가을 낙엽이 불그스레하게 물이 들 듯 절로 붉어지는 느낌이다. 울컥하는 노여움에 없는 수염이 있는 양 턱이 절로 떨리고 급기야 눈가로는 그렁그렁하게 눈물까지 고인다.

어쩌면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어머니와 척을 진 사람이라면 아들 된 입장이라면 당연히 같은 배를 탄 듯 척을 져야 하 질 않는가? 그것이 한 솥 밥을 먹고 사는 가족의 도리가 아니던가? 둘 중 하나는 똥오줌도 못 가리는 병자라 하더라도 멀쩡한 넘조차 저 모양 저 꼬라지니 살맛을 잃는다. 무릇 아들이라면 조건 없이 어미 편에 서야지 늙은 여인네의 불여우 짓 같은 눈웃음에 헤까닥 넘어가다니 천하에 못 쓸 놈 같으니...! 옛 이야기에 따르면 부모의 원수라면 10년을 벼려 칼을 간다는데 이 무슨 황당한 경우란 말인가? 설령 위아래 엄연하여 감골댁의 귀싸다귀에 손찌검은 못한다 할지라도 어찌 말을 섞으려 한단 말인가? 그것도 헤실헤실 헤픈 웃음기 흘려가며 말이다. 당연히 원수로 여겨야 하는 데도 말이다. 세상이치가 그러할 진데...! 헌데 아들의 얼굴에는 전혀 그런 기미가 보이질 보인다. 지금껏 무얼 바라고 키웠나 싶다. 슬하에 육남매를 낳아 사남매를 저승길에 앞장세운 어미지만 아들 하나를 붙잡기 위해서 그동안 얼마나 노심초사 했던가? 신행 오는 날 부득불 우겨 가마를 돌려 아들 낳은 집을 찾은 끝에 금줄에서 빼낸 붉은 고추를 장롱 깊숙이 갈무리도 했고, 부처님 코가 좋다고 해서 야밤에 쥐새끼처럼 살금살금 산을 오르질 않는가? 100일을 맞아서는 흰떡 100개를 만들어서 평생에 복을 지어 받으라고 오는 사람 가는 사람 가리질 않고 나누어 주질 않았던가? 저 홀로 큰 것 같지만 아비어미의 정성이 없이 어찌 지놈이 세상에 있을까? 야속한 놈 같으니...!, 뼈와 살을 나누듯 젖을 물리고 진자리 마른자리는 또 어째서 골랐나 싶은 것이다. 어미가 지금껏 어떤 수모와 모멸감에 젖어 왔는데 싶은 것이다. 동네 사람들로부터 어떤 멸시를 받아왔는데 싶은 것이다. 헌데 그 주동자이자 당사자인 감골댁과 아무런 꺼림 낌 없이 말을 섞으려하다니...! 자식은 품 안에 있을 때 자식이라 하더니 옛말하나 틀림이 없어 보였다. 머리가 굵어지다 보니 지놈도 이제 머리 검은 인간이라고 어미를 업신여기다니! 저걸 자식이라 낳고는 그 비싼 미역국을 먹고 무슨 큰일을 했다고 뜨끈한 방구석에 처박혀서는 시중을 받아가며 몸을 지졌나 싶다. 가슴을 치밀어 오른 분기가 머리 꼭대기에서 폭발 직전이다. 하지만 지옥문을 지키고 선 나찰 같은 감골댁이 버티고 있는 앞이라 함부로 할 수가 없어 더 간장이 녹아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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