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41)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41)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1.12.06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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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종을 겨우 2년이란 짧은 왕 노릇에 자식까지 보지 못하는 폐인으로 만들지 않았던가
그 두꺼비 같은 손바닥에 한방 맞으면...! 워~메! 끔찍스러운 것~
왕소군이나 초요갱 같은 인물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무난하고 수더분한 이쁜 처자로 함 알아봐 줄께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니 아들까지 동네 사람들과 척을 지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풍년 아이는 배곯아 죽고, 흉년 아이는 배 터져 죽는다고 지금껏 허리띠를 졸라 매고 물 배를 채운 까닭은 오로지 자식의 앞날을 위함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제 와서 자식의 앞길을 막아서다니...! 참 못난 어미란 생각이 들었다. 이 모두가 할머니 자신의 잘못 임에도 자식의 행동을 탓하다니 어미로써 염치가 없단 생각이 들었다. 또 달리 생각하면 할머니는 할머니 스스로가 만든 옥에 갇혀 살아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동네 사람들의 눈치를 스스로 읽어 회피해 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언제 어울림을 위해 가슴을 뒤집어 마음을 낸 적이 있었던가? 쥐꼬리만큼이라도 동네 사람들의 아픔을 내일처럼 여겨 어루만져 준 적이 있었던가? 정을 담은 음식상 한번 차려내어 하찮은 변명조차 한마디 한 적이 있었던가? 할머니를 이 지경으로 만든 감골댁을 찾아 머리채를 쥔 적이 있었던가? 그저 동네 사람들이 왕따를 만들어 온다 싶어지자 지레짐작 겁을 먹고는 스스로 의원 집과 무당 집을 도피처로 드나들지 않았던가? 적극적으로 할머니 자신을 변호 한번 하지 않고 늘 하늘을 원망하고 자신을 비관하며 살아오지 않았나 싶었다. 적극적으로 살아오지 않는 삶이 너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얼마나 다행인가? 아들마저 어미가 걸어온 길을 밟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한시름 놓는다. 또 따지고 보면 어미의 그런 욕심이 자식의 앞날을 망치는 경우가 허다한데 저렇게 어울림이 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이만하니 다행이다 싶은 할머니가 속으로

“그래 지지리 못난 이 어미는 이렇게 밖에 살지 못하더라도 너 만은 부디 이 어미처럼 살지 말거라!”일러 주고 싶었다. 그 한 예로 악녀로 소문난 장희빈만 해도 그렇다. 아들을 어미의 삶에 끓어 들이는 바람에 경종을 겨우 2년이란 짧은 왕 노릇에 자식까지 보지 못하는 폐인으로 만들지 않았던가? 그 뿐만 아니라 집안을 요절내고 주위의 애꿎은 사람들까지 덤으로 죽이 질 않았던가? 할머니는 만약 장희빈처럼 할머니의 욕심만 채우고자 아집을 피운다면 종내는 아들의 인생을 망쳐버린다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장가를 들기는커녕 이가 서 말을 넘어 빈대까지 들끓는 초가에서 남매가 한을 안고 죽으리란 생각에 이른 것이다. 이는 장희빈이 막판에 몰리자 아들을 방패막이로 삼고자 붙잡고 들어지는 과정에서 낭심(남성의 성기를 완곡하게 이르는 말)을 심하게 잡는 통에 성불구자로 만든 것과 무엇이 다르랴 싶었다. 다과상을 차려내어 분위기를 돋우는 것은 고사하고 어미란 생색을 내어 질투를 하고 있다니 안될 일이다 싶어진다. 나아가 할머니가

“이늠의 자슥아 어미의 원수와 말을 섞는 것도 모자라 뭐가 좋다고 희희낙락 이빨을 보여...! 천하에 몹쓸 불효자 같으니!”하고 몰아세운다면 어미로써 자식을 볼모로 삼은 장희빈과 무엇이 다를까 싶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좁아터진 소갈머리란 생각이 든다. 헌데 할머니가 아버지의 행동을 넌지시 건너 다 보건 데 말을 할 듯 말 듯 입술만 달싹거리는데 절로 속이 터진다. 복장이 터져나갈 지경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버지의 답답하고 굼뜬 행동에 감골댁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촌구석 치고는 훤칠한 인물이 아깝다. 이런 몹쓸 촌년들 같으니! 닭 중에는 봉황이라고 이런 인물을 몰라보다니...! 죄다 눈이 삔 모양인 갑네! 늦었지만 얼른 장가도 들고 아기도 가져야지! 이제 어머니를 반쪽 할머니가 아닌 진짜 할머니로 만들어 들여야지! 어때 이 아줌마가 이리저리 다리를 놓아 알아보고 주선 한번 해볼거나?”하는데 아버지는 비록 감골댁의 입에 발린 소리라도 귀에 듣기가 좋아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리는지 양쪽 볼을 번갈아 손부채질이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마냥 귀여운 듯 바라보던 감골댁이 손에 든 옥수수를 아버지의 턱밑으로 내밀어

“자~ 잘 익었는지 또 맛이 있을까 모르겠네! 그렇더라도 맛이라도 함 바 봐!”하고 건네곤

“혹 잘못 되더라도 뺨은 때리지 말아줘! 그 두꺼비 같은 손바닥에 한방 맞으면...! 워~메! 끔찍스러운 것~ 사양 할래, 대신 나도 잘되면 녹의홍상에 한복이 한 벌이라지만 눈 딱 감고 사양할게! 근께 우리 쌤쌤이 하자! 어때!”하며 아버지의 의사를 묻는 듯 넌지시 바라다보는데 아버지는

“장가는 무슨...! 내처지에 가당키나 한가요?”하고 쑥스럽다는 듯 옥수수를 받아 든 반대쪽 손으로 뒷머리를 비듬이 떨어지는 줄 모르고 긁적인다.

아버지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감골댁 아주머니의 호의에 답을 하자니 할머니가 마음에 걸린다. 답을 하자니 그렇고 또 가만히 있자니 바보 멍청이가 된 기분이다. 간혹 아기를 안고 나타나는 친구들을 볼 때면 장가를 들고 싶은 마음이 어찌 없었겠는가? 알콩달콩 사는 모습이 어찌 부럽질 아니했던가? “여보~ 여보”하는 귀에 착착 감기듯 부르는 소리가 가슴에 메아리로 남아 멀쩡한 밤잠을 빼앗은 적이 어디 하루 이틀인가? 헌데 상대는 어머니와 원수지간인 감골댁 아주머니다. 어머니의 앞이 아니라면 벌써 답을 했을 아버지다.

“감사합니다. 그러 문요! 어디 촌구석으로 시집올 색시 감이 있다 던 가요? 제 처지에 양귀비를 찾고 황진이를 찾아 인물을 따질까요? 곰보는 어떻고 째보는 또 어떻습니까? 뼈대를 따져 가문을 따질까요? 나아가 처갓집의 재물을 따질까요? 여자면 되지요! 치마만 두르면 되지요! 감지덕지요 뭘!”하고 되물었을 것이다. 헌데 어머니의 모습이 붕어 입을 꿰뚫은 미늘처럼 마음에 걸린다. 좋기는 좋은데 어머니 앞이라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저 타는 속이 답답하여 왜? 왜요? 어머니는 다른 사람도 아닌 감골댁과 하필 척을 졌습니까? 묻고 싶고 따지고 싶다. 그저 이 상황이 안타깝고 할머니가 야속하기만 하다. 이렇게 우물쭈물하다가 영영 기회를 놓치는가 싶어 뭉그적거리는데 감골댁은 이미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독백을 하듯

“처지가 어때서! 몸 튼튼하제...! 한눈팔지 않고 농사 잘 짓지, 이만하면 어느 처자가 마다할까? 내 신경 좀 써 볼게? 속는 셈치고 한번 기대해봐! 비록 왕소군이나 초요갱 같은 인물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무난하고 수더분한 이쁜 처자로 함 알아봐 줄께!”하고 빙그레 웃는 감골댁이다. 그제야 아버지는 할머니의 눈치를 슬쩍 흘겨서 조심스럽게

“그라믄야 저야 좋지요! 아주머니께서 저를 이쁘게만 보아 그렇게 알아봐 준다면 더 없이 좋지만은?”하고 말끝을 흐린 아버지는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곧장 자리를 뜬다. 그 모습에 할머니의 가슴에도 춘풍이 깃든 듯 꽁하던 마음이 한결 누그러진다. 게다가 노총각인 아버지를 향해 장가를 들먹이고 또 색시 감을 알아본다는 데는 할머니도 더 이상 어쩌지 못해 그간의 세월을 망각의 시간으로 여겨 훌쩍 뛰어 넘은 듯

“우리 아들 색시자리를 알아 봐 준다고....! 감골댁, 그~기 참말인가? 진정 감골댁이 그리만 해준다면 내 더 이상 소원이 없겠네! 그렇게 감골댁이 인정을 내서 저 눔아를 위해 힘을 써준다면 나는 더할 나위 없이 고맙네만...!”하며 몸을 돌려 감골댁을 정면으로 바라보다 은근하게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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