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34)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34)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1.10.18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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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백 년 동안은 이 치욕, 이 수모를 견디어야 하겠구나
다 같이 일을 했는데 그럴 수야 없지요 나누어서 가야지요
그간의 보복이라 생각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자 등골이 오싹했다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그럼 내 눈으로 직접 본 그 제갈공명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또 시체는? 그동안 시체가 썩지 않았단 말인가? 지독한 악취를 내며 썩지 않았단 말인가?”하고 피를 토하는 듯 악에 받힌다. 다시 사마소가 답하기를

“아버님이 본 제갈공명은 목각인형이고 시체는 제갈공명, 본인의 사후대책에 대한 유지에 따라 쌀 일곱 알을 입에 물리고 발밑에다는 장명등을 밝혀 산 사람처럼 위장했다고 합니다”하고 대답이다. 그 말을 들은 사마중달은

“이를~ 이 일을 어떡한단 말인가? 후세 사람들은 오늘의 나를 들어 죽은 제갈량이 산 사마중달의 혼을 쏙 뺐구나! 손가락질을 할 것이다. 위나라 대도독으로 여성 옷을 입는 치욕까지 견디며 버터 온 것이 한 순에 물거품이구나! 앞으로 백 년 동안은 이 치욕, 이 수모를 견디어야 하겠구나!”하며 땅을 쳤다. 그로부터 현재까지 천 칠백여년이 지났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때, 그 날에 일어났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사마의의 굴욕적인 치욕을 기억하고 있다.

사마중달이 마지못해 여성을 입듯 할머니는 감골댁에게 납치되어 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밀주를 담아 맛 한번 못보고 들통이 나 항아리는 깨지고 순사의 포승줄에 두 손 꼭꼭 묶여 질질 끌려가는 초라한 아낙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꼭 목각인형의 제갈공명에 놀라 꽁지 빠지게 도망가는 사마중달 같았다.

왜?, 나는 제갈공명처럼 똑똑하지 못하고 늘 이렇게 바보처럼, 흐리멍덩하게 사는가 싶었다. 감골댁 앞에만 서면 왜 이렇게 작아지는가 싶었다. 지은 죄도 없는데 죄인처럼 쩔쩔매는가 싶었고 도마 위에 놓인 생선토막처럼 맥을 못 출까 싶었다. 앙살이라도 부리고 반항 한번 못할까 여겼다. 죄인처럼 초라한 모습으로 끌려가는 자신이 한없이 미웠고 이곳저곳에 숨어 지켜보는 동네 사람들의 눈 아래 발가벗기 듯 수치스럽다 여겨졌다.

비록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담 넘어서, 싸리바자 뒤에서, 구멍 뚫린 창호지 너머서 이 우스꽝스러운 모양새를 호시탐탐 노려 지켜보는 눈이 있다 여겼다. 먹잇감을 노리는 늑대의 눈이 도처에 숨어있다 여겼다. 내일, 아니 오늘 이 시간 이후부터 온 동네에 소문으로 파다하게 퍼질 것만 같았다. 이 창피, 이 부끄러움을 이제 와서 어떡한단 말인가? 최소한 10년, 20년은 족히 사람들의 가십거리로 입과 입을 통해 오리내릴 것만 같았다. 당체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을 것이라 여겼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되돌릴 수 있는 처지도 못되었다. 벌써 감골댁의 삽짝에 발을 들이고 있었다.

닳고 닳아 끄트머리만 조금 남은 숟가락처럼 짧은 지식으로 나는 과연 감골댁의 아들을 살릴 수가 있을까? 이렇게 나약하기는? 당연히 살릴 수 있을 거야? 못 살린다는 생각은 아예 말자! 그렇지 꼭 살려야 하는 거야! 무슨 수를 쓰든 살려야 하는 거야! 그래! 살리기만 하면 되는 거야! 꺼져가는 생명을 살렸는데 이까짓 꼴같잖은 몰골쯤은 물에 물탄 듯 묻혀 질 거야! 용하다고 사람들은 칭찬을 할 거야! 언제 그 많은 지식을...!, 대단하다고 다들 엄지를 치켜세울 거야! 손가락질 따위는 없을 거야! 하는 생각 등으로 자신을 변호하자 한결 견딜만하기도 했다.

또 한편으로는 그동안 한번이라도 친찰이란 걸 해봤다면...! 한번 쯤 예행연습이라도 있었다면 이렇게 두려워서 자신을 학대하진 않았을 것이라 여겨지기도 했다. 이는 할머니가 할머니자신을 시험하는 처녀 걸음인 때문이기도 했다.

감골댁도 오죽 답답하고 급했으면 이럴까 싶은 것이다. 호구(虎口)와 같은 내 집에 발걸음을 했을까? 싶었다. 이럴 때 일수록 아픔을 나누는 이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건 손가락질 받을 일도 창피를 당할 일도 아니라 여겼다. ‘펄 벅’여사가 마주한 경주의 어느 시골에서 만난 소달구지를 몰고 가는 농부처럼 말이다

장편소설 ‘대지’로 1993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펄 벅’여사가 경주를 방문했을 때 일이다. 서산으로 뉘엿뉘엿 해가 넘어갈 무렵 어느 시골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 어떤 농부가 소달구지를 끌고 가고 있었다. 소달구지에는 가벼운 짚단 몇 개가 실려 있었고 농부는 짚단이 가득한 지게를 지고 있었다. 누가 봐도 바보 같은 짓에 이상한 광경이다. 일반적인 상식이라면 농부는 수레에 짚단을 얹고 빈 지게를 지던지 아니면 지게조차 수레에 얹어야 한다.

‘펄 벅’여사가 어렵게 통역을 통해 이유를 묻자 농부는

“에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저도 일을 했지만 소도 오늘 하루 열심히 일을 했지 않습니까? 다 같이 일을 했는데 그럴 수야 없지요 나누어서 가야지요!”하더란다. 그 말에 감탄한 ‘펄 벅’여사는

“저 장면 하나로 한국에서 보고 싶은 걸 다 보았습니다. 농부가 소의 짐을 거들어주는 모습만으로도 한국의 위대함을 충분히 느꼈습니다”했으며 고국으로 돌아간 그녀는 이 모습이 세상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라 고백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펄 벅‘여사를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도리는 안다. 인간의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여겼다. 원수니 뭐니 하는 것도 일단 목숨부터 살리고 난 뒤의 일이라 생각한 것이다. 이는 고모의 병구완을 통해서 절실하게 깨닫고 느꼈다. 제물도 명예도 자존심도 다 버려야 하는 것이 병자를 대하는 사람의 기본 도리란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 시점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누가 뭐래도 감골댁이다. 열심 일한 소가 수레가득 짐을 얹어 가는 형국이다. 그런 감골댁의 짐을 할머니는 과거지사를 떠나 한 조각이라도 떼어서 나누고 싶었다. 그것이 병을 치료하고 못하고를 결정짓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마음가짐이라도 그렇게 나누고 싶었다.

삽짝을 나서며 감골댁이 들려준 말에 의하면 멀쩡하던 아들이 갑자기 배를 움켜쥐고는 죽겠단다. 점심 잘 먹고 냇가에서 멱까지 감고는 들까불던 아이라 더 기가 막히고 환장하겠다는 것이다. 제 할머니가 평소 때처럼

“내 손은 약손이다”주물러도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전날 같으면 ‘히히’웃으며 일어났을 것을 아예 모잽이로 누워 동그랗게 몸을 말아서 죽겠단다. 눈자위가 허옇게 돌아가고 몸뚱이는 살 맞은 뱀처럼 ‘비비배배’뒤틀어 금방이라도 죽을 듯 발버둥을 치는데 가슴이 찢어지더라는 것이다. 보는 내내 애처로워 어미 된 입장에 자리조차 지키기 못 하겠더란다. 그때 생각나는 사람은 할머니 밖에 없었다고 했다. 시어머니조차

“네 입으로 하루같이 날이면 날마다 쪼아 지은 죄가 그간 얼만데 인두겁을 쓰고 어떻게 그 집에 발걸음을 한단 말인가? 구층 지옥을 채우고도 남을 건데”하며 말렸지만 지식을 살리는 일이라 염치 불구 뛰어든 것이라 했다. 그때 할머니는

“이보게 혹 내가 못 살리더라도 날 원망하지는 말게”라고 말했다. 그러자 감골댁은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원망이라니요 가당치가 않습니다. 이렇게 만사를 제쳐두고 나서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웬수같은 나를 따라서 죽어가는 아들놈의 이마를 짚어주는 것만으로도 난 만족합니다. 아무럽요! 제 놈의 목숨이 오살을 맞은 듯 여기까지라면...!”하고는 흐느끼며 앞장서는 감골댁의 초라한 모습이 과거의 자신과 겹쳐진다. 게다가

“내가 못 살리더라도 날 원망하지는 말게”라고 한 말이 의사들이 끝순이를 진찰할 때 내민 죽더라도 책임을 묻지 못하게 못을 박는 각서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니 할머니 또한 그들과 매한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들보다 더 모질다 여겨졌다. 또 만약 치료를 못하면 감골댁은 그간의 보복이라 생각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자 등골이 오싹했다.

삶과 죽음이 자신의 손에 달렸다고 생각하자 발길을 돌리고 싶은 마음이 불쑥 일었다. 그러자 마냥 야속하게 여겨졌던 의사들의 고뇌를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책임 소재를 따지다니 나란 인간이 모질어도 이렇게 모질 수가 있는가 싶었다. 그렇다고 달리 에둘러서 위로할 마땅한 말이 머릿속에 언뜻 떠오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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