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31)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31)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1.09.27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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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렇게 많은 흉계를 품었을까 싶을 정도로 달변가에 모사꾼이었다
묵사발을 만들 듯 땅바닥에 패대기치고 싶은 것이다
최소한 그때만큼 눈가를 적시는 눈물 만큼은 진실이 가득해 보였다
9월 22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9월 22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아니 저기 저 여편네가 누군가?”하고 당황하는 할머니는 못 볼 걸 본 듯 제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다 여겼다. 눈을 씻고 보는데 할머니와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을 만큼 천하에 상극이자 이웃한 감골댁이다. 할머니가 잘못 봤나 싶어 재차 눈을 씻고는

“저 베라 쳐 먹을 여편네가 어떻게 내 집엘...!”하는데 감골댁은 벌써 눈앞까지 와서 거친 숨을 몰아쉬다간 한 박자 숨을 고른 뒤 대뜸

“다행이네! 다행이다. 참 말 다행이다. 난 또 산에 약초 캐러 갔으면 어떡하나 걱정 했네! 들에 지심 잡으러 갔으면 어떡하나 걱정 했네! 여차저차 집을 비웠으면 어떡하나 걱정 했네”하며 사색이 되어 숨을 할딱거린다. 할머니는 사람이 그리웠지만 그렇다고 감골댁은 아니었다. 치맛바람의 주인공이자 문제의 여인인 감골댁은 결코 아니었다. 할머니가 동네 사람들과 척을 진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가 감골댁의 농간 때문이다. 감골댁은 생긴 것과는 반대로 입이 거칠고 모질었다. 잘 훈련된 사냥개처럼 한번 물면 놓을 줄 모르는 사람 사냥꾼이었다. 누렁이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모질고 끈질겼다. 개로 치자면 불독(English bulldog)이라고나 할까? 미모로 치자면 가름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반듯하고 뚜렷한 것이 전형적인 미인 형이다. 그런 미모를 지닌 감골댁의 가슴속에는 능구렁이와 독 지네가 가득해 보였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흉계를 품었을까 싶을 정도로 달변가에 모사꾼이었다.

어느 소설가는 여자는 모두가 요물이라고 했다. 그 중 예쁜 여자일수록 가슴에 악독한 흉계가 가득한 요물이라고 했다. 마지막까지 이간질로 사람들을 척을 지게 만든 이 어미만 봐도 그렇잖니! 죽음을 목전에 둔 어미가 예쁜 여자를 들어 아들에게 훈계하여 가르치듯 한 말이 소설이 아닌 현실인가 싶었다. 가녀린 풀잎처럼, 요조숙녀를 연상케 하는 모습의 감골댁이 어쩌다가 한마디를 주워들으면 고목나무처럼 무성하게 가지를 치고 잎을 달았다. 아주 치졸하고 저질적으로 발전해 가는 것이었다. 그녀의 현란한 말주변에 당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알아서 스스로 몸을 사리는 것이 상책일 뿐이었다.

애당초 진실 여부는 가릴 필요가 없었고 또 그런 시시콜콜한 사연 따위는 감골댁의 안중에 없었고 본인의 머릿속에 든 소설 같은 이야기가 세치 혓바닥을 통해 진실로 변하는 것이다. 따라서 좋을 때는 모르겠거니와 평소 사람들 모두가 쉬쉬하여 기피하는 그런 여인네 중 한사람이었다. 그 감골댁에게 할머니와 고모가 걸려 든 것이다. 감골댁이 볼 때 고양이 앞의 쥐처럼 할머니는 더 없이 좋은 장난감이며 감칠맛 나는 먹이 감이었다. 조건이 아주 신나게 만들었다. 그즈음 할머니와 고모, 모녀지간의 하루하루는 감골댁의 입장에서 볼 때 임금님의 수랏상처럼 육, 해, 공의 요리를 두루 갖춘 가운데 24첩 밥상처럼 진수성찬이나 다름없었다. 모녀지간이 공히 전생에 마녀가 아니면 이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을 죽인 흉악범이 아니면 이럴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도 연쇄살인범 정도라야 가능하다며 잔칫상을 차리듯 그럴싸한 온갖 죄를 뒤집어 씌워서는 요리 질이다. 한 눈에는 모자라 그 중 가장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골라 잘근잘근 씹고 또 씹다보니 어느새 걸레쪼가리처럼 너덜너덜 헤져서 나가떨어진 할머니였다. 고모는 그저 덤으로 악녀에 천하에 몹쓸 년으로 덤터기로 넘어 간 것이다.

골안댁의 사후 감골댁이 동네를 쥐락펴락 휘젓고 다니며 억지춘양 격으로 만들어낸 소문과 유언비어들로 인해 동네 사람들이 하나같이 할머니와 인연을 끊어 발걸음을 돌려 등진 것이다. 감골댁이 일으킨 치맛바람에 할머니는 광풍대왕의 입김에 손오공이 날아가 듯 하늘 높이 날다가는 힘이 다해 떨어지는 중에 시궁창에 처박힌 꼴이었다. 생각할수록 괘씸하고 얄미운 여편네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나타나서

“집에 있어서 다행이라”며 밑도 끝도 찾는다. 온 몸으로 소름이 싸하게 돋았다. 생각만으로도 진저리가 쳐지는데 눈앞서 보는 그 심정이 오죽이나 했을까?

생각 같아서는 구정물함지박을 머리 위에 덮어씌워 무안을 주고 소금을 한바가지 얼굴에다 확 뿌려주고 싶은 할머니다. 나아가 머리채를 양손으로 후려잡아 마당 한가운데로 패대기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것이다. 손아귀에 든 파리를 힘 까짓것 패대기쳐서 묵사발을 만들 듯 땅바닥에 패대기치고 싶은 것이다. 그런 불같은 마음을 간신히 억눌러 내린 할머니지만 가는 말에는 결코 가시를 뺄 수는 없어

“아가리를 찢고 가랑이를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년 같으니! 왜? 언제는 내가 삼두육비에 뿔이 셋 달린 악마며 사람고기를 날로 뜯어 먹는 식인종에 달콤한 꿀을 빨 듯 사람의 피를 빨아 먹는 흡혈귀이라며”하고 할머니는 끓어오르는 부아에 따라 감골댁을 향해 소리소리 지르고 싶었다. 그것은 단지 생각뿐으로 할머니는 짐짓 지나가는 말투로

“자네 말대로라면 이 집에 사람은 없고 괴물만 산다며, 사람들로만 골라서 잡아먹는 고약하고 성깔 더러운 이무기가 산다며, 그런 내 집에 어째 사람을 찾으려 왔는가? 잘못 찾아 온 것 같으니 예서 그만 돌아가게! 내 이대로 동네 사람들과 남은 평생을 척을 지고 살았으면 살았지 자네와 하시라도 얼굴은 마주하고 싶지 않네!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가 없네! 오장육부가 뒤집어 지고 피가 거꾸로 솟을 지경이네!”하며 쏘아붙이고는 도끼눈으로 치켜떠서 노려보다가는 부엌으로 들어가려한다.

마음에 품어 오매불망 기다리던 임이라면 버선발로, 맨발로 한걸음에 맞겠지만 미운털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테트로도톡신을 품은 듯 고슴도치처럼 독침이 가득하다보니 어지럽게 마당에 쌓이는 발자국조차 삽으로 파내고 싶은 것이다. 아예 대패로 싹싹 밀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결국 감골댁의 얼굴에서 귀신을 본 듯 치를 떨던 할머니가 이유를 불문곡직 등을 돌린 것이다. 그러자 기겁을 한 듯 놀란 표정에 감골댁이

“끝순네! 이보게 끝순네 내가 다 잘못 했네! 이제 와서...! 지금 이 자리에서 용서해 달란 말은 않겠네! 하지만 우리 집 큰 놈 좀 살려주게! 아니 못 살리더라도 이마라도 한 번 짚어주게! 그게 내, 아니지 천하에 몹쓸 년의 염치없는 소원일세! 그리만 해준다면 이 자리에서 머리채를 몽땅 뽑아 미투리를 삼으라면 삼겠네! 아니지 아예 중이 되라면 이 길로 머리를 깎고 절로 가겠네!”하며 샘솟듯 눈물을 흘린다.

“미투리를 삼고 머리를 깎고 절로 가?”하며 할머니는 꼭 집어서 되묻고 싶었지만 진정 그럴 수는 없었다. 독하지 못하고 물러 터져 그렇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언제는 진실인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던 감골댁인가? 나잇살이나 더 먹은 내가 참아야지 하며 마음을 다잡는 할머니다. 어떻게 보면 숙맥 같다 할 수 있었다. 반면에 저리 고운 입에서 어째 내뱉는 말마다 거짓말뿐이고 흉계가 가득할까 싶었다. 같은 이슬도 산삼 잎에 깃들면 사람을 살리는 진귀한 약초가 되지만 독사의 입안에 녹아들면 사람을 죽이는 독이 된다고, 예쁜 여자일수록 품은 흉계가 많고 악독하다고 하더니 몸소 겪어보니 참말인가 싶어 갈피를 못 잡는 할머니다. 손톱 밑으로 찔러드는 시무꼬투리보다 더 아프다 여겨졌다.

그것과는 달리 감골댁은 간절한 눈으로 할머니를 쳐다본다. 무언가 진실로 갈망하는 눈! 최소한 그때만큼 눈가를 적시는 눈물 만큼은 진실이 가득해 보였다. 할머니가 한 눈으로 봐도 애절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어 보였다. 나도 옛날에 저런 모습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밑도 끝도 없이 자식을 살려 달라고 덤비는 감골댁의 속사정을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아픈 사람이 있으면 의원을 찾던가? 아니면 무당을 찾던가 해야지 예 와서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이러면 어떡하자는 건가?”하며 할머니는 어깨를 들썩이며 울먹이는 감골댁을 향해 딱하다는 표정으로 넌지시 바라다보며 엉거주춤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낭패한 표정이다. 그때 감골댁은 눈물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그저 한다는 말이 끝순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