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39)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39)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1.11.22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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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위로 하늘이 있다는 걸 알아야지! 죄를 받은 게야
설렁 횟배라 금방 죽지는 않더라도 매한가지다
상머리에 앉아 수저를 드는 아버지의 얼굴 위로 비웃음기가 가득하다
9월 22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9월 22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그때까지도 머릿속에서 혼이 달아난 듯 멍청하게 앉아 할머니의 일거수일투족을 뚫어져라 지켜보는 감골댁을 향해 시어머니가

“며눌아! 너는 지금 거기에 퍼질러 앉아 정신 나간 년처럼 뭘 그렇게 생각하고 있니! 끝순네가 설탕물을 타 오라 안 하더냐! 설탕이 없으면 꿀물이라도”하고 일깨워 재촉하자 그제야 꿈을 깬 듯 감골댁이

“설탕물~ 그렇지 설탕물이라 했지! 아니지 꿀물이라 했던가?”하며 부엌으로 향한다. 얼마나 경황이 없고 황급했으면 신발 따위는 필요 없이 맨발로 마당과 부엌을 오가는 감골댁이다. 어디서 사금파리를 밟았는지 발가락 사이로 핏빛이 끈적끈적하게 비치건만 개의치 않는 눈치다.

“저 칠칠치 못한 년의 꼬락서니하고는...! 저 혼자 똑똑한 척 해도 알고 보면 헛똑똑이 인기라! 그저 남의 험담이나 방정맞은 입에 나불나불 일삼아 올리기나 하고...! 에이 몹쓸 년 같으니! 어째 저런 지독한 년이 내 며느리라 들어왔는지...! 자식새끼 줄줄이 딸린 년을 다 늦게 소박을 놓을 수도 없고...! 머리 위로 하늘이 있다는 걸 알아야지! 죄를 받은 게야!”하고 말한 시어머니는 감골댁의 뒤통수에 아예 대고는 들으라고 작정을 한 듯 다시 사족을 단다.

“이럴 때 일수록 아 어~만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든가 해야지! 어~만라 카는게 저렇게 정신 줄을 놓고서야 어떻게 저승길로 접어든 지 새끼 혼을 잡아 올 수 있으려나? 무주공산에 든 잠자리처럼 천방지축으로 날뛰며 날아 댕기는 혼불은 또 어떻게 잡을 수나 있으려나?”하며 안쓰럽고 염려스럽다는 듯 중얼거린다. 그러다 문득 앓아누운 손자가 눈에 들어오는 지라 할머니를 향해

“이보게 이제 우리 손자는 이제 어떻게 되는가? 살 수나 있으려 나! 설마 이대로 영영 죽지는 않겠지!”하며 상체를 앞으로 구부려 할머니의 손을 잡고 묻는다. 그 애처로운 모습에 가슴이 철렁한 할머니가 막 입을 떼려는 찰라 감골댁이 설탕물이 든 대접을 할머니께 내민다.

그때 할머니는 잠깐만 하는 동작으로 손을 내젖고는 넘어질 듯 자빠질 듯 감골댁이 가지고온 설탕물을 앓는 아이의 입을 억지로 벌려 숟가락으로 조금씩 흘려 넣는다. 할머니의 얼굴도 어느새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땀을 훔칠 시간도 없이 생사를 가늠하는 시간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중에 아이의 얼굴 위로 고통이 줄어드는 기미가 확연하게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런 동작이 얼마간 반복되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남은 설탕물 한 대접을 후루루 들이킨 아이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부스스 몸을 일으킨다. 마치 먹고 싶을 걸 포식했다는 만족한 표정에 배를 쓰다듬어 빙그레 웃기까지 한다. 그때 할머니는 그러면 그렇지 하는 듯

“지금 이 눔아~, 야~ 뱃속에는 껄괭이(회충의 경상도 방언)들로 가득 찼네!”하자 감골댁이

“그럼 앞으로 어떡해야 하는가요?”하고 물었고 할머니는 그런 감골댁을 돌아보며

“내일 아침 날일 밝는 대로 약방이나 병원에 들려 식구 수대로 산토닌이든지 꺼시(회충)약을 사다가 빈속에 먹게! 돈 아낀다고 해인초는 달이지 말고! 저 놈들이 워낙 단 것을 좋아해서 우선 허기나 면하게 달래 놓은 것으로 이건 순전히 임시방편이네! 그걸 떠나서 저 놈들이 저렇게 많이 뱃속에 들어앉아 있으면 아픈 것을 둘째 치고 먹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먹는 족족 영양분을 다 뺐기서 아~가 지시(골다 등의 경상도 방언)가 들어 더 이상 크지도, 살도 찌지가 않네! 종내는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네! 하니 빠르면 빠를수록 좋네!”하고는 할머니는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그때서야 정신이 확연하게 돌아온 감골댁이 지옥이라도 갔다 온 듯 몽롱한 눈동자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아무것도 줄 것이 없다. 허리춤을 뒤집어도 먼지만 가득 들어앉아 빈 전대다. 당장 보답할 그 무엇이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끝순네! 아니 성님! 바쁘시지 않으시다면 여기 앉아 조금만 기다렸다가 같이 저녁이라도 한 술 뜨시고...!”하며 말끝은 흐린다. 하지만 할머니도 저녁을 해야 한다. 일 바구미의 아들이 들에서 돌아올 시간이 벌써 지났다. 벌겋게 펼쳐진 저녁놀이 하늘 가득 핏빛으로 물들이는 시각으로 보아 일각이 바쁘다. 갑자기 마음이 바빠진 할머니가 감골댁을 돌아보며

“나도 집에 밥해 먹일 아들이 있다네!”하며 미련 없이 자리를 툭툭 털어 일어선다. 그런데 뒤통수가 당긴다. 사실 그때 할머니 집에도 얼마간의 회충약이 있다. 상비약으로 보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 체

“나랑 같이 우리 집에 가세! 우리 집에 얼마간의 회충약이 있다네!”하는 그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병자를 돌보는 사람이라면 사심이 있으면 안 된다고, 이러면 안 된다고 마음을 다독이지만 발걸음마저 제 멋 대로다. 몸과 마음이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중에도 걸음걸이는 멈출 줄 모른다. 그렇게 갈등의 골이 깊어가는 동안 할머니는 벌써 감골댁의 집을 한참이나 벗어나고 있다. 아무려면 어때! 병만 고쳐주면 그만이지...!

미운 감정이 앙금처럼 가슴속 깊이 남아 여전했기에 하시라도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미련 없이 자리를 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건은 할머니 마음속에 이웃의 아픈 아이를 돌본 것으로 끝나리라 여겨 마음에 두지 않았다. 하지만 감골댁의 처지는 180도 달랐다. 좌우간 죽어가던 생 때 같던 내 아이가 살았다. 설렁 횟배라 금방 죽지는 않더라도 매한가지다. 그것도 그동안 틈이 날 때마다 뼈에서 살을 발리듯 갖가지 험담으로 멀쩡한 사람을 귀신 아닌 귀신을 만들어 오던 상대가 살렸다. 정확한 병명과 완벽한 치료 방법까지 제시를 한 할머니의 공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어머니고 인간이라면 그럴 수가 없다 여겼다. 시어머니조차 그 공을 원수로 갚지 말라고 누누이 당부하고 있질 않는가? 제대로 인간 구실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가 없다고 말이다. 만약 이 일마저 능구렁이 담을 넘듯 그렇게 어물쩍 넘어간다면 후일 생명의 은인을 들어 따지는 아들의 원망을 고스란히 감내해내야 한다. 게다가 지금껏 내편이라 여긴 동네 사람들마저 등을 돌려버릴 것 같은 예감이다. 진짜 인두겁을 쓴 괴물에 마녀는 감골댁이라고!

그 일이 있은 후 이틀이 지난 저녁 무렵 이었다. 그날따라 오전 나절 흩뿌린 소나기 때문인지 후덥지근한 것이 저녁노을은 유난히도 붉었다. 할머니는 유난히도 붉은 노을을 좋아했다. 도깨비에 홀린 듯 정신 줄을 놓고선 불 멍을 때리듯 바라보다 근자 십여 년 만에 없었던 밥까지 태운 날이기도 했다.

바람결은 습기를 잔뜩 품어 땅바닥으로 깔리 듯 무겁게 내려앉아 다리목을 휘감는 치맛자락처럼 끈적거렸고, 후끈한 늦더위의 기세는 여전하여 좀체 식을 줄 몰랐다. 이런 날은 모기가 유난히 극성스럽다. 미물이지만 마지막 남은 생을 정열적으로 불태우다 죽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인 모양이었다. 그런 까닭에 마당 한가운데다 말린 인진쑥을 쌓아 모깃불을 피웠건만 내미는 주둥이에 바짝 독이 오른 모기의 기세 역시 늦더위와 함께 식을 줄 몰랐다. 얼마나 지독한지 땀에 찌든 저고리를 뚫고는 피를 빨려고 덤벼든다. 어떻게 보면 감골댁의 모질은 입 같아 더욱 얄미웠다. 앵앵거리는 소리만 일어도 감골댁의 나불거리는 입이 떠올라 경기(놀란다)를 하듯 손부채를 ‘휘휘’내저어가며 할머니는 아버지랑 저녁상을 마주하고 있었다.

상차림이라고 해봐야 개다리소반 위로 꽁보리밥 두 그릇, 지렁(간장의 방언)한 종지와 날된장을 담은 그릇 하나, 노각을 썰어 넣은 챈물(채소를 썰어 넣은 냉채의 경상도 방언)두 대접과 졸이듯 자작자작 끓인 된장찌개와 풋고추 네 다섯 개, 삶은 호박잎과 콩 이파리 반 소쿠리, 밥솥에 넣어 찐 고구마 서너 개가 전부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먹는 게 얼마나 다행이나 싶은데 밥상머리에 앉아 수저를 드는 아버지의 얼굴 위로 비웃음기가 가득하다. 할머니의 얼굴을 곁눈질로 힐끔 훑어보고는 빙그레 웃는 듯도 하다. 할머니가 속으로 생각할 적에

“저놈아 저 새끼가 동네에서 떠도는 무슨 소문을 들은 게야! 그렇지 않고 서야 지 에미 얼굴을 쳐다보며 비웃을 띨 수가 없지!”라고 여겨졌다. 무슨 소문을 어떻게 들었을까? 감골댁에게 납치 되어가는 꼴사나운 모양새가 그새 풍문으로 떠돌고 있는 모양이라 여겼다. 절로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제 하다 하다가 아들에게조차 조롱거리로 전락했다는 생각에 맥이 탁 풀린다. 손에 든 먹다 남은 고구마 꽁지를 아들의 면상에 확 집어 던지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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