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30)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30)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1.09.20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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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차한 그 목숨도 생명줄이라고 살고는 싶었던 모양이여!
달리 중재가 필요 없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다 지난 복날에 개 패듯 개를 떼려 잡는다고 오해를 살만한 울음이다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청죽처럼 사철 푸르러 꼿꼿하게, 청풍같이 은은하고 고요하게, 벽계수처럼 티 없이 맑게 살아온 삶이라 복을 받은 게지요! 아침상을 물려 대청마루에 목침을 베고선 누워 잠자듯 가는 것도 죽는 복 중 하나겠지만 아들이랑 딸과 며느리 그리고 사위를 죄다 불려 앉혀 일일이 얼굴을 확인하고 가는 길인데 오죽이나 축복일까?”

“맞아 그렇게 가는 복은 골안댁을 포함하여 아마 몇몇 없을 거야! 이건 비유에 좀 그럴지 모르겠지만 아무려면 어때! ‘박경리’씨의 소설 ‘토지’에도 나오잖아! ‘조준구’라고! 천하에 악독한 그놈 말이여! 만석꾼 최 씨 집안에 ‘서희’라는 무남독녀 애기 씨가 시퍼렇게 두 눈을 뜨고 버젓이 살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촌수조차 헤아리기 어려운 먼 외척의 어른을 핑계로 그 많은 재산을 한 입에 꿀꺽 삼켰으면 남부럽지 않게 잘 살던가 해야지! 아~ 이 인간이 인생을 어떻게 살았는지 사필귀정이라! 서희 애기 씨와 공노인의 농간에 놀아나다가 종내는 빈털터리로 털리곤 풍까지 맞은 모양이여! 돈도 없는 늙은이가 풍까지 맞았는데 누가 인간 취급이나 하간디! 그러니 어떻게, 오갈 데 없이 행려병자로 빌빌거리는데 문득문득 생각나는 것은 오로지 자식새끼뿐이라, 강탈하듯 빼앗은 재산을 돈방석처럼 깔고 앉아 서슬 시퍼렇게 살던 시절 알뜰살뜰 챙겼으면 누가 뭐라나! 평소 구박과 괄시로 일관하여 눈 깜짝 않고 쓰레기 버리듯 내다 버릴 때는 언제고 삶이 구차해지자 염치없이 절름발이 아들 ‘병수’를 찾았다지 뭐야! 짐승이 인간 탈을 쓴 모양으로 원래부터 인간이 아닌 게지! 양심에 털이 안 나곤 그럴 순 없는 거여! 벼룩도 낯짝이 있고 간이 있다는데...! 호구지책조차 어려워지자 온갖 욕설과 매질로 꾸역꾸역 내다버린 아들을 찾는걸 보면 구차한 그 목숨도 생명줄이라고 살고는 싶었던 모양이여! 그리고 보면 그 잡놈이 인생농사 중 지슥농사 하나는 잘 지은 모양이여! 그 인간 같잖은 애비도 아비라 척척 받아 주는걸 보면, 삼시 세 때를 꼬박꼬박 챙긴걸 보면 말이야! 하여간 그놈은 아비이기 전에 아들의 등골을 마른행주 지어 짜듯 짜서 먹어치우는 인간 찐드긴기라! 그래 마지막에는 방구석에 처박혀 똥오줌도 못 가리다가 죽었다지, 그러게 곱게 죽으려면 평소에 착하게 살아야하는 거여! 그러고 보면 나도 걱정이네 그저 때가 되면 교수형 당하듯, 회자수의 칼날에 모간지 떨어지듯 딸깍딸깍 명줄이 끊어져야 하는데 말이여! ‘조준구’그 빌어먹을 인간 맨치로(처럼의 방언) 벼름박(바람벽의 방언)에 똥칠을 해 놓고 맛있다고 찍어 먹지나 않을 란가 몰라!”

“왜~ ‘조준구’처럼 아들을 칠푼이 팔푼이로 몰아가는 것도 모자라 두 눈 질끈 감고서는 도외시하여 내다 버린 거여! 돈깨나 가진 친척들을 어르고 윽박질러 재산깨나 오비(긁어내다)낸 거여! 그도 아니면 우리 모르게 음으로 양으로 죄를 많이 진겨? 벌써부터 걱정이 늘어지게”

“뭔 소리여!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내가 죄를 짓기는 뭔 죄를...!”하는 동네 사람들의 속살거림이 저만큼 앞서가는 감골댁의 혼을 뒤따르는 듯 어둠 속으로 길을 잡는다. 때를 같이하여 살별하나가 길게 꼬리를 늘려 그믐달을 가로 질러 반짝이더니 두툼한 어둠 속으로 묻힌다.

골안댁은 평소 자신에게 엄격했으며 솔직 담백한 삶을 영위했다. 특히 어린들에게는 한없이 자상한 할머니였다. 고샅을 지나다가 동네꼬마들이 보일라 치며 일일이 불러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가진 과자부스러기가 있으면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다. 또 동네 사람들이 이해타산을 따져 반복하는 꼴을 못 봤다. 조금이라도 낌새가 보이면 불려 들여 손을 잡게 했다. 나이를 내세워 윽박지르는 우격다짐이나 막무가내 식은 아니었다. 순리에 따라 양쪽 모두에게 골고루 해명할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게 충분히 자신의 입장을 표명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는 극히 단순해 보일지라도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사실 동네 사람들 간에 틀어져봤자 극히 사소한 일이 대부분이었다.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80~95%이상 해결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달리 중재가 필요 없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나머지라 해야 연유를 안 이상 타협의 여지는 남아 있어 며칠 이내로 답을 찾아내고야 만다.

사람하나 들고 남에 따라 세상인심이 이렇게도 변할까? 재차 “성~님!”하고 부르는 할머니는 눈이 부시게 백련 꽃으로 하얗게 치장한 골안댁의 꽃상여가 나가는 날의 지노귀굿을 떠올리고 있었다. 장사진으로 좁다란 들녘 길을 따라 천천히 꼬리를 사려가던 형형색색의 만장이 바람에 팔랑팔랑, 붉고, 파랗고, 노랗고, 희고, 검은 나비로 화해 나풀나풀 눈앞으로 날아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 그 형님만 계셨더라면”하는 할머니는 그날 이후로 벌어진 사단에 대해서 원망 아닌 원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고 없는 사람을 찾아 원망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천천히 일어나 쌀을 뜨러 가는데 삽짝으로 아버지가 빈 지게를 지고 들어서는 앞으로 커튼을 내리친 듯 하얗게 비가 내린다. 아버지의 어깨 위로 어둠이 한아름 올라앉아다 여겼다. 저녁밥이 늦어서 일까? 뒷산 상수리나무가지에 깃든 소쩍새가 솥이 적다고 ‘소쩍소쩍’운다. 며느리도 없는 집구석에 왜 솥이 적을까? 보리쌀 한바가지를 펴서 부엌으로 향하는 할머니의 두 눈 위로 차가운 빗물이 넘칠 듯 가득 고인다.

사시사철 햇빛이 들지 않은 곡간처럼 암울한 세월이지만 돈은 여전히 장삼이사,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서 부지런히 돌고 돌아다녔고, 산은 예나지금이나 변함없이 늘 그대로지만 그 사이를 흐르는 물은 흐르고 흘러가는 중에 웅덩이는 메우고, 둔덕을 만나면 여울지고, 바위를 만나 에둘러 물결을 만들고 있었다. 있는 듯 없는 것 같은 세월은 시시각각 알게 모르게 끝없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따분하고 고독한 세월, 정지된 세월 같아 보였지만 흐르는 물처럼, 무당의 예언처럼 할머니의 신상을 향해서도 무언가 느릿느릿, 꿈틀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날은 늦더위가 유난히 기승을 부리는 날이었다. 이렇게 더운 날은 금방 지어 김이 오르는 따끈한 밥보다 김이 한풀 빠진, 좀 식어버린 것 같은 찬밥이 제격이라는 생각에 일찌감치 나선 걸음이었다. 그동안 달라진 점이라면 고모가 솜이불을 걷어내고 한층 얇은 이불을 찾았다는 것과 요강이나마 대소변을 혼자 가릴 줄 안다는 점이다. 한결 할머니의 어깨가 가벼워진 때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고모는 밥보다는 미음을 찾을 때가 많았고 간혹 미열이라도 오르기 시작하면 혼절하기 일쑤였다. 그런 까닭에 할머니는 여전히 살얼음 위를 걷는 듯 위태위태한 삶을 살고 있었다.

딱히 바쁜 것이 없는 할머니가 느릿한 걸음으로 정지(부엌)문을 열고 막 한 발을 내딛으려는 찰나였다. 그때 마당 가 삽짝 문 언저리에 드러누워 긴 하품 끝에 잠을 청하던 누렁이가 화들짝 놀라 일어서는가 싶더니 목줄을 길게 늘여 “왈~”하고 짖는다. 의외의 일이었다. 누렁이가 짖을 일은 가을철 타작 끝에 미처 줍지 못한 나락(벼의 방언)이삭 같은 낱알로 주린 배를 채우고자 날아든 참새나 뱁새 떼를 희롱할 때 또 멋모르는 암탉이 종종걸음으로 코앞을 ‘쪼르르’지날 때 보이는 ‘크르릉’하는 한갓진 짖음뿐이었다. 헌데 여느 날과는 달리 누렁이의 울음소리가 심상찮다 싶은 할머니가

“이 시간에 우리 집에 올 사람이 없는데...! 미친년 치맛자락 같은 꼬락서니 누옥에 누가? 아무도 올 사람이 없는데! 굶주린 거렁뱅이(비렁뱅이의 비표준어)가 허기가 지다보니 앞뒤 분간을 못해 길을 잘못 들었는가?”하며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삽짝으로 돌린다. 그때 할머니의 의문만큼 누렁이는 확연히 다르게 짖고 있었다. 아예 벌떡 일어나 목줄을 팽팽하게 늘여 맹렬하게 짖기 시작한다. 목이 쉬어버릴 듯 ‘으르르 컹컹’짖는다. 한동안 너무 조용해서 울대에 문제가 생겼나 여겨지기도 했지만 이를 단숨에 뒤엎고는 남을 만큼 앙칼지다. 숫제 동네가 떠나갈 듯 요란하다. 다 지난 복날에 개 패듯 개를 떼려 잡는다고 오해를 살만할 만치 처절한 울음이고, 일 년 내내 쌓아둔 울음을 한꺼번에 토해내는 듯도 보였다.

“저 놈의 개새끼가 못 먹을 걸 쳐 먹었나! 귀청 떨어지겠네! 조용히 못해”쏘아 붙이며 부엌으로 들어가려던 할머니가 뒤통수 당기는 듯 이상타 싶어서 돌아보는데 머리에 흰 수건을 질끈 동여맨 아낙하나가 황급히 삽짝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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