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43)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43)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1.12.20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당장이라도 마당으로 옷 보따리가 던져 질 것만 같다
오냐! 고맙다. 낼 모래가 저승길인 이 시에미야 아무려면 어떠랴
범(호랑이)에게 좇긴 끝에 만장 낭떠러지 앞에 선 자신을 발견했다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쉬 잠자리에 들지 못해 뜬눈으로 꼴딱 새다 시피 든 토막잠이다. 그마져도 귀신이 뒤를 쫒아오는 듯 인시에 못 미쳐 잠을 깬 감골댁이 잠자리를 뒤척이다 봉창이 훤하게 밝은 다음에야 부엌에 들었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내를 지었는지 새벽공기에 으슬으슬 춥기까지 하다. 오한이 든 듯 몸이 떨리고 손과 마음이 따로 논다. 보리쌀을 씻어 밥솥에 앉힐 생각을 잊어버린 듯 살강 위를 더듬어 크고 작은 보시기를 만지작거려 떨거덕거린다. 늦었다는 생각에 마음만 바빠 떨리는 손길이 길을 잃어 헤매는데 진즉에 새벽기침을 한 시어머니가 한심하다는 투로

“너는 어제부터 칠푼이 팔푼이처럼 어째 그러나! 끝순네가 오늘 죄다 굶고서 껄괭인지 꺼시긴지 모를 약을 사다 먹으라고 안하더냐! 그런 판국에 넌 거기서 뭘 한다고 다 늦게 일어나 아침을 짓는다고 부산을 떨고 그러냐!”하는데 부끄럽고 죄송해서 몸들 바를 모를 지경이다. 당장이라도 마당으로 옷 보따리가 던져 질 것만 같아 안절부절 못 한다.

게다가 긴 하품 끝에 일어난 아이도 수대로 배가 고프다 보채고, 서방이라는 것도 눈치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아니면 몹쓸 여편네 같으니, 정나미가 떨어져 얄밉다고 의도적으로 그러는 건지 멀쩡한 농사꾼을 밥을 굶겨 논밭으로 내 모냐고 투덜투덜 째려보는 눈치가 심상찮다. 이래저래 가슴에 바람구멍이 숭숭한데 급기야 아이는 어제의 배 아픔은 까맣게 잊고는

“엄마 배고프다 아침은?”하고 볼멘소리로 칭얼거린다. 보다 못한 시어머니가

“어제는 죽는다고 독장을 치더니만 오늘은 살만한 갑네!”하더니

“이늠의 자슥 똥개야! 어제 끝순네 할미 말씀도 못 들었나! 언! 오늘 약 먹어야 된다고 안 카더냐 언! 맨날 먹는 밥 그거 한때 굶는다고 안 죽는다. 오늘 아적 한 끼만 참아라! 저녁 따배 이 할미가 사탕하나 주꾸 마!”하는 시어머니의 한마디에 아이는

“할메 그럼 한 개 말고 두 개!”하고는 검지와 중지, 손가락 두 개를 활짝 펴이곤 벙어리 냉가슴 앓듯 주린 배를 움켜쥐고는 퉁퉁 부운 얼굴로 입을 다문다. 하지만 평소 세심하게 가족의 건강을 살피지 못한 자신의 불찰로 일어난 사단이라 여긴 감골댁은 쥐구멍을 찾고 싶은 심정이다. 악에 받친 듯 고귀한 생을 험담으로 일관하느라 가족을 터부시한 죄 값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모든 것이 시시각각, 포승줄로 화해 자신을 단단히 옭아 메려드는 것만 같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집안 공기가 무겁다.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을 수는 없는 터라 터벅터벅 길을 나서는 감골댁이다. 현실을 도피하고자 일부러 일찍이 집을 나선지도 모른다. 없는 편두통이 도진 듯 이마를 짚어가며 겨우겨우 약방에 들려 할머니의 약방문을 빌어 증세를 설명하고 약을 구입한 감골댁의 발걸음이 더 없이 무겁다. 집안에 발을 들이기가 두려운 것이다. ‘소박’이란 단어가 오늘처럼 머릿속에서 맴돈 적이 있었던가? 울컥울컥 솟는 눈물이 추적추적 발길을 흐린다.

간신히 집에 도착한 감골댁은 시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는데 별다른 기색이 없다. 마음이 놓인 감골댁이 먼저

“저~ 어머님 약 드세요!”하며 물 대접과 함께 시어머니께 약을 드리자

“오냐! 고맙다. 낼 모래가 저승길인 이 시에미야 아무려면 어떠랴! 젊은 너나 얼른 먹고, 아범도 먹고 그래라! 그리고 다들 배고플 텐데 점심은 양껏 먹어야지!”하는데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른다. 며느리 훈육을 재대로 못한 자책으로 어제 저녁부터 문 밖 출입조차 않은 시어머니다. 스스로에게 죄를 묻고 있는 시어머니다. 평소 동네 사람들로부터 법 없이도 살 노인네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곱디곱게 늙어온 시어머니다. 세상 뭐 별것 있는 줄 아니! 우야든지 착하게 살 거라! 하시며 선한 끝은 있어도 악한 끝은 없다고 입버릇처럼 타이르시던 시어머니다. 그런 시어머니가 딸처럼 귀하게 여기던 며느리에게 모진소리를 했으니 그 속은 얼마나 아리고 아팠을까? 바늘로, 송곳으로 생살을 찔러 온들 어찌 그 아픔을 대신하랴! 그런데 대를 이어갈 금쪽같은 손자가 혼절하고 보니 눈이 뒤집어져 본심이 아니게 악담을 하긴 했으나 편치 못한 마음을 다스리고자 온 밤을 꼴딱 지새웠을 것은 불을 본 듯 명징하다. 이 모두가 시어머니의 가르침을 귓등으로 듣고, 시어머니의 당부를 휴지조각으로 여긴 죗값이다 싶다. 이 죄 값을 다 어찌할까? 머리는 현기증이 인 듯 어지럽고 발목이 겹질려진 듯 다리는 휘청거린다.

“예~ 어머님! 죄송합니다”하고 돌아 나오는데 뒤통수는 시어머니 방문을 떠날 줄 모른다. 그리고는 아들을 부른다. 서방을 찾는다 하여 식구 수대로 약을 먹는다. 회충약이라 본래부터 달달한 것인지, 당의정이라 그런지 달짝지근한 것이 생각보다 목 넘김이 쉬다. 그렇게 한 식경이나 지났을까? 뱃속에 든 아기가 발길질을 해오듯 뱃구레가 요동을 치는데 기분이 이상야릇했다고 했다. 남정네들은 몰라도 그들의 마지막 발버둥이 마치 산일을 코앞에 둔 만삭의 배 같았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그러니까 오늘 아침 통시(화장실의 사투리)에는 죽어 자빠진 회충이 허옇게 널브려졌다고 했다. 개중에 덜 죽은 것 두어 마리는 친구 따라 거름지고 장에 간다고 어떨 결에 따라 나와서는 억울하다고 고개를 쳐드는 통에 징그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런 땐 오동잎(오동나무 잎사귀)이 최고라며 겸연쩍게 “호호”하고 손으로 입을 가려 부끄러운 듯 웃더니 또 고맙다고 인사치례다. 할머니가 낯간지럽다고, 그만하라고, 손사래를 쳐도 성님 덕에 죽어가던 아들이 살았다며, 식구들이 죄다 살았다며 연신 고맙고도 고맙단다. 아닌 게 아니라 감골댁 자신도 간혹 이유 없는 배앓이에 시달렸던 터였다. 덧붙여서 감골댁이 울먹울먹 하더니

“잘 되면 내 탓이고, 못 되면 조상 탓이라고, 성님은 그동안 왜 그냥 계셨어요! 망부석처럼 왜 지켜보고만 계셨어요! 일이 이 지경에 이르고 보니 성님이 진정 원망스럽네요! 불러다 귀싸대기를 올려붙이던지 머리채를 잡아 길바닥에 패대기치지를 않고요! 장작개비로 등짝을 후려치질 않고요! 지는요 그날을~ 그날을 지는요! 이제 와서 거짓말 같지만 지는요...! 오늘 내일하고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사람이 못할 이 몹쓸 짓을 멈출 수 있게 왜 따끔하게 혼을 내지 않았어요! 성님은 심성이 너무 고와요! 너무 착하세요! 제가 성님을 두고 따따부따 따질 자격이나 있간디요! 그저 단매에 쳐 죽일 년인 데요! 조리돌림을 해도 시원찮을 년인 데요! 그런데 왜 성님은 그간 그냥 보고만 계셨어요! 왜? 왜요! 성님은요!”하더니 고개를 푹 떨군다. 어둠 속에서 감골댁의 가냘픈 어깨가 바람이 스친 나뭇가지처럼 바들바들 떨린다.

감골댁도 이제 예전의 감골댁이 아니었다. 머리만 돌리면 피안이라고 머리를 돌려보고자 그동안 나름대로 혼자 생각에 몸부림을 쳤지만 지난 과거가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 올무에 걸린 산짐승처럼, 수렁에 빠진 듯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더욱 깊이 빠져든다. 점점 숨통을 조여 온다. 급기야 시어머니는 들으라는 듯 면전에다 대놓고

“저 칠칠치 못한 년의 꼬락서니하고는...! 저 혼자 똑똑한 척 해도 알고 보면 헛똑똑이 인기라! 그저 남의 험담이나 방정맞은 입에 나불나불 일삼아 올리기나 하고...! 에이 몹쓸 년 같으니! 어째 저런 지독한 년이 내 며느리라 들어왔는지...!”하는 말끝에 모리배처럼 파당을 운운하며 ‘소박’이란 말을 입에 담을 때는 순사에게 쫒긴 강도가 막다른 골목에 몰린 형국이고, 범(호랑이)에게 쫒긴 끝에 만장 낭떠러지 앞에 선 자신을 발견했다. 눈앞이 캄캄했다. 게다가 동네를 감싸고도는 기루마저 예전 같이 않음을 느끼고 있었다. 동네 아낙들이 삼삼오오 모여 한창 재미있는 담소로 ‘하하~호호’하고 웃다가도 감골댁이 나타나는 순간 화제를 바꿔버리는데서 확연했다. 그런 날이면 감골댁은 까닭모를 악몽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오늘 새벽만 하더라도 밤새 가시밭길을 헤맨 끝에 인시에도 못 미쳐 잠을 깨질 않았던가? 그래도 그런 건 그런대로 참을 수가 있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