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게맛살 사태
코로나19와 게맛살 사태
  • 허봉조 기자
  • 승인 2021.09.2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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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사흘 앞두고, 아파트가 밀집된 단지 중심에 위치한 슈퍼마켓에 장을 보러갔다. 25년 가까이 한 곳에 살다보니, 자주 다니는 슈퍼마켓의 어느 선반에 어떤 제품이 있는지 불을 보듯 환하다.

차례 상에 올릴 몇 종류의 과일과 육류와 채소류 등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리고 꼬치에 끼울 햄과 맛살을 챙기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맛살이 있어야할 자리에 맛살은 보이지 않고, 다른 제품들이 어설프게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추석을 맞아 물품 진열이 바뀌었나 싶어 다시 찬찬히 둘러보았다. 곳곳에서 두리번거리는 눈빛들이 마주치며, 두런두런 무언의 대화가 이어졌다.

‘아직 이틀이나 여유가 있으니, 다시 장을 보러 나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옆의 주부가 직원에게 물었다. “맛살은 어디 있어요?”라고. 기다렸다는 듯 답이 돌아왔다. “맛살 공장 직원이 코로나19 확진이 되는 바람에, 공장이 문을 닫아버렸습니다”라고 말이다. ‘언제쯤 들어오느냐’는 질문에는 대답이 시원치 않았다. 다만, ‘이 동네 어느 마트에도 재고가 없을 것’이라는 목소리만 확신에 찬 듯 크고 길게 울려 퍼졌다.

‘하필이면 명절을 앞두고 그런 일이 생길 것이 뭐냐’고, 한 마디씩 아쉬움을 토로하는 주부들에게 슈퍼마켓 직원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응수했다. 맛살은 색깔과 맛과 식감이 게를 먹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가공한 식품이다. 예쁜 색깔 때문에 구색 맞추기 용도로 자주 사용한다. 꼬치와 김밥, 냉채나 잡채, 샐러드나 무침을 만드는데도 당당한 몫을 한다. 특히 부드럽고 살살 녹는 맛 덕분에 어린아이들의 간식으로도 이용되니, 편리하고 고마운 식품임이 분명하다.

저녁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후문의 작은 가게에 들어가 보았다. 역시 맛살이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 하긴 가정에서는 조금 번거롭지만 다른 재료로 대체가 가능하다. 그러나 오색꼬치를 전문으로 만들어 파는 가게에서는 매우 지장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 모처럼 대목을 봐야하는 상인들에게는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닐 것 같다.

코로나19가 자신과 그 주변을 제외한 불특정다수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직원 한 사람의 확진으로 공장이 문을 닫게 됨으로써, 업체 관계자들의 피해는 말 할 필요도 없다. 그 상품을 주로 취급하는 도·소매업자의 매상에도 차질이 있을 것이다. 거기다 차례 상 준비를 하는 주부들과 꼬치를 기다리는 어린아이들에게도 아쉬움이 클 것을 고려한다면, 어느 분야보다 파급효과가 크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게맛살 사태가 정말 코로나19 확진으로 빚어진 것이 맞는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맛살 생산 업체가 한 군데만 있는 것은 아닐 텐데, 온 동네 맛살이 며칠이나 동이 났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곤란하다. 기업의 생산 중단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위생이나 환경, 시설이나 자재, 노무 등 대내·외적인 문제도 변수가 될 수 있다. 그런 중에도 가장 반문의 여지가 없을만한 것이 코로나19 문제라면, 소비자로서 대응할 길은 없다.

조금 미리 준비를 했더라면, 이런 의외의 사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하지만 냉장식품을 며칠씩 앞당겨 준비하는 것은 오히려 낭비요소가 될 수 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추석 연휴가 끝나는 날 다시 슈퍼마켓에 들러보았다. 맛살이 진열되던 선반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계란을 시작으로 채소와 우유 등 생필품 가격이 줄줄이 인상된데 이어 전기요금까지 인상된다는 소식에 서민들의 어깨가 더 무거워지고 있다. 설마 이 기회에 맛살까지 은근슬쩍 가격을 올리려는 속셈은 아닐는지?

일전에 어느 교육장에서 수강생들의 이목이 집중된 강사의 첫 마디가 귓전에 맴돈다. “마스크는 언제나, 꼭, 항상, 늘, 반드시 착용하셔야 됩니다”라는 당부의 말이었다. 생산시설과 개인위생 관리를 철저히 했더라면, 명절을 앞두고 이런 게맛살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과 함께 연중 소비량이 가장 많은 시기에 여러 맛살 공장에서 동시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을까? 싶은 의문이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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