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버킷리스트
나만의 버킷리스트
  • 허봉조 기자
  • 승인 2022.01.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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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적는 것’을 버킷리스트라고 한다. 어원은 ‘죽다’라는 뜻의 속어인 ‘킥 더 버킷(kick the bucket)’으로부터 따온 말로, 중세시대 교수형을 집행하거나 자살할 때 ‘올라가는 양동이를 걷어차는 의미’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10여 년 전, ‘버킷리스트’라는 제목의 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었다. 가난하지만 가정을 위해 헌신한 정비사 ‘카터’(모건 프리먼 분)와 괴팍한 성격의 백만장자 ‘잭’(잭 니콜슨 분). 생활 방식이나 가치관 등이 크게 달랐던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곳은 시한부 선고를 받고 입원한 병실이었다. 병원생활을 통해 가깝게 된 그들은 버킷리스트를 다섯 개씩 적고, 평소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보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성공하거나 실패한 항목들을 하나씩 지워가는 내용이다.

그 이후 ‘꼭 해야 할 일’ 또는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목록을 작성하는 것이, 버킷리스트라는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해가 바뀌면서 새 달력과 수첩이 도착했다. 새 수첩에 적어 넣을 ‘나만의 버킷리스트’는 무엇으로 하면 좋을까.

처음에는 코로나19로 오랜 기간 억눌려 있던 갑갑한 마음을 달래고자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여행에 대한 기대를 떠올렸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희망사항일 것 같다. 잠시 후 생활 속에서 정말로 해야 할 일이 있다는데 생각이 이르렀다. 평소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첫 번째 칸에 ‘하루 한 가지 이상 버리기’라고 적었다. 물질적으로는 불필요한 옷과 사용하지 않는 가전제품이나 주방용품, 가방, 신발, 책 등의 물건을 버림으로써 집의 공간을 넓히는 것이다. 그리고 정서적으로는 넘치는 기대와 욕심과 원망과 미움을 버리고, 마음의 그릇에 평화와 여유를 불어넣는 것이다.

‘연장을 잘 버리는 사람이 유능한 목수가 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에, 적지 않은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눈에 띄는 옷가지들을 하나둘 꺼내기 시작한다. 충동구매로 샀다가 보관만 했던 옷들이, 잘못을 나무라는 듯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하지만 특별한 의미가 있거나 선물로 받은 옷은 버리기가 어렵다. 책을 버리는 일은 더욱 어렵다.

두 번째 칸에는 ‘아들과 걷기 여행’이라고 적어야겠다. 나이와 체력에 걸맞은 적당한 활동과 표현을 잘 하지 않는 아들과의 소통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여행을 ‘길 위의 학교’라고 하는 것은, 길을 걸으면서 다양한 경험과 예상치 못했던 상황을 접할 수 있기에 하는 말일 것이다. 세대 차이가 있는 아들과의 여행이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조심스럽게 접근하려고 한다.

세 번째 칸에는 무엇을 적을까. 가장 아쉬움이 큰 어학공부를 계속해볼 생각이다. 다른 나라 언어를 터득하기 위해 빠르고 쉬운 방법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꾸준한 끈기와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새로운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것은 두뇌운동의 활성화와 치매예방에도 효과가 있다니, 은퇴자에게 꼭 필요하고 적당한 항목이 아닐까 싶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칸은 건강관리와 취미활동에 대한 내용이 될 것이다. 건강하지 못하면 취미활동이 어렵고, 취미가 없는 생활은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취미활동을 하지 못하면 고독하고, 우울해지기 쉬우며, 식욕부진과 무기력증 등으로 생활이 침체될 수밖에 없다. 결국 건강과 취미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친구 사이라고 해야겠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는 영화의 장면 중에는, 카터가 친구 잭에게 별 것 아닌 농담을 던지며 ‘눈물이 날 때까지 웃기’에 성공하는 모습이 있다. 그리고 잭은 먼저 세상을 떠난 카터의 권유로 딸과의 소원했던 부녀관계를 정리하면서,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어린손녀를 부둥켜안고 ‘세계 최고의 미녀와 키스하기’를 달성하는 감동어린 장면이 있다.

매일 아침 ‘오늘은 무엇을 버릴까’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지인이 있다. 주변이 얼마나 깔끔할지 상상이 되고도 남는다. 나도 지인의 습관을 따라해 보기로 마음을 다져본다. 부디 새해에는 불가능한 일에 매달려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찾아 하나씩 성취감을 느껴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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