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할 때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들
부족할 때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들
  • 허봉조 기자
  • 승인 2021.07.19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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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주변 정보, 내용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 커
올여름 폭염과 열대야, 국지성폭우 등 어려움 극복 위해
전력수급상황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정보 제공이 중요

며칠 집을 비웠다가 돌아온 일이 있었다. 바로 다음날 새벽에 할 일이 있어 눈을 떴다가, 동틀 무렵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늦은 아침을 먹고, TV 시청을 하다가 세수를 하려는데 수돗물이 나오지 않았다. 싱크대의 수도꼭지에서도 쿨럭쿨럭 바람 빠지는 소리만 들릴 뿐, 물은 한 방울도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파트에서 물탱크 청소를 하는 날은 여러 차례 방송을 하고는 했는데…. 물티슈로 대충 먼지를 훔쳐내고, 양치질은 생수병의 물을 사용했다. 양손에 들려 아령 대용으로 동원했던 생수병의 수돗물이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이야. 그러나 양이 절대 부족했다. 점심때가 되어 컵라면을 먹으려고 무심코 뚜껑을 열고 스프를 준비하다가, 아차! 쓴웃음이 나왔다. 외출을 하려고 하나 얼굴은커녕 손을 씻을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하는 수 없이 마스크와 모자와 선글라스로 앞을 가렸다.

그날 아침에도 방송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깊은 잠으로 방송조차 듣지 못했다면, 참으로 달콤한 잠이었겠다 싶다. 이어폰과 필기구 등 준비물을 챙겨 자주 가는 카페로 향했다. 30분 정도 걸어서 도착한 로스팅(roasting) 카페에는 갓 볶아낸 신선한 원두의 향으로 무거운 기분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앉을 자리를 정해놓고, 화장실로 갔다. 손을 씻고, 눈에도 물을 묻혔다.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빗어 넘기며 거울을 들여다보다 피식 웃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건가? 싶었다.

어린 시절, 집집마다 매우 큰 용기에 물을 받아놓고 바가지로 물을 퍼 썼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는 아파트라는 주거형태가 보급되지 않았음은 물론 수돗물 역시 몇 가구에 하나 정도 있을까 말까였다. 저녁을 먹고 나면, 다음날 사용할 물을 위해 준비를 서둘러야 했다. 수돗물이 공급되는 시간도 제한이 있었으니, 절약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러나 요즘은 물이 흔해도 너무 흔하다.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물을 사용할 수 있으니, 따로 물을 담을 그릇이 필요하지 않다. 화장실도 그렇다. 공공건물이나 지하철, 백화점, 병원, 대형마트, 카페 등 길을 걷다가도 조금만 눈을 돌리면 적당한 곳을 찾을 수 있으니, 격세지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돌아오는 길에 확인해본 엘리베이터 내부에는 동별 물탱크 청소에 대한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터놓고 지내는 이웃이라도 있었다면, 비상용으로 받아놓은 물을 조금이라도 이용할 수 있었을 텐데.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핑계로 이웃과의 친밀한 교분을 쌓지 못했던 것도 부끄러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가족 중 누구도 엘리베이터에 게시된 안내문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이, 더 큰 문제였다.

부족할 때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 어찌 물 뿐이랴.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를 달리다 주유소를 찾지 못해 아찔했던 기억이 있다. 먼 길 외출을 하던 중 현금을 전혀 챙기지 못했을 때나 휴대폰을 빠뜨리고 나왔을 때 당황스러웠던 적도 있다. 장거리 여행길에 건강관리를 위해 밥 먹듯 챙겨야하는 약을 깜빡 잊었을 때도 곤란하기는 마찬가지다. 미리 준비하지 못했기에 겪는 어려움들이다.

올여름, 예년에 비해 더 덥고 국지성폭우도 잦을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다. 장마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폭염과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찌는 더위에 전력사용량이 급증해 전기가 뚝 끊겨버린다면, 어떤 사태가 발생할지 걱정이 앞선다. 물과 달리 전기는 가정에서 미리 챙겨놓을 방법이 없다. 아무리 가까운 이웃이 있다고 해도 전기를 나눠 쓸 수는 없지 않은가. 음식물을 보관하는 냉장고, 밥솥, TV, 냉방기기를 비롯해 컴퓨터 등 사무기기 역시 달리 손 쓸 재간이 없다.

전력사용량이 공급량을 초과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사전준비와 정보가 중요하다. 전력당국에서는 10년 전과 같은 순환정전(blackout) 등의 사례가 재현되지 않도록 미리 대비책을 세우고, 전력사용량과 공급량에 대한 정보를 국민들이 이해하기 쉽게 자세히 알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

전기를 사용하는 국민들에게는 아끼는 것 외의 묘책은 없는 것 같다. 이참에 새고 있는 전기는 없는지, 냉장고 정리와 얽히고설킨 전기코드도 둘러봐야겠다. 준비 없이 겪는 황당함보다 내용을 알고 있는 경우 대응하는 자세가 다를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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