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인의 뒷모습은 드러나지 않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과 같아
왁자지껄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들려온 곳은 할머니들이 윷놀이를 즐기는 근린공원 정자에서였다. 경쟁이라도 하듯 건너편 정자에서는 할아버지들의 장기판이 열기를 더하고 있었다.
아파트로 둘러싸인 동네에서 만날 수 있는 흐뭇한 풍경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을 때, 맞춤옷을 입은 청춘남녀가 나란히 걷는 모습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들의 밝은 기운으로부터 긍정의 바이러스가 상쾌한 바람결에 실려 온 것인지, 나도 어느새 그들을 따라 산책 인파가 많은 수변공원을 향해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보니 참새처럼 재잘거리는 정겨운 아이들의 명랑한 몸짓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가하면, 한 편에서는 외롭고 고뇌에 찬 무거운 발길을 옮기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무슨 사연이 있기에 저렇게 침울하고 쓸쓸할까. 앞선 사람들을 따라 걸으며, 나도 모르게 상상의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그래, 뒷모습에도 표정이라는 것이 있구나.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자세를 바르게 고쳐보았지만, 확인할 수 없는 나의 뒤태에 자꾸 신경이 쓰였다. 어깨가 한쪽으로 기울지는 않았는지, 머리카락은 제대로 정돈 되었는지. 타인의 모습을 바라보며 상상 속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과정은 재미있는 일이었건만, 막상 누군가 나의 뒤를 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슬며시 불편한 마음이 자리를 잡았다.
꾸밈없는 뒷모습을 통해서도 정서적 감정이나 상태가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지나치게 팔다리를 흔들어 주위를 산만하게 하거나 거만하게 보이는 사람을 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의 정서가 결코 차분하지 못하리라는 예측이 동반되고는 한다. 겉으로 드러난 자세는 정신적 또는 육체적 건강과 유기적인 관계가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걷는 자세를 바르게 해보는 것이 어떨까. 바른 자세로 걷고 싶다면 어깨, 가슴과 등을 곧게 펴고, 몸과 바닥이 수직을 유지해야 된다고 한다. 눈은 전방을 주시하며, 상체를 곧게 펴고, 턱을 가슴 쪽으로 가볍게 당기고 걷는 모습은 보기에도 좋다. 그러나 척추나 허리, 관절, 어깨, 발 등 건강에 문제가 있다면 자신도 모르게 자세가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 일정 연령이 지나고 해가 갈수록 키가 점점 줄어드는 현상도 자세와 깊은 연관성이 있음을 실감한다. 노화로 인해 둥글어진 모습이야 세월에 깎이고 닳은 연륜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 늙지 않은 사람의 뒷모습에서도 좌우 균형이 심하게 일그러지거나 상체가 앞으로 굽은 모습을 보면, 공연한 불안과 걱정이 앞선다.
‘자세를 보면, 그 사람의 건강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아울러 건강으로인해 사람의 성격이나 태도가 형성되기도 한다. 몸이 좀 불편해도 즐거운 기분으로 가볍게 걷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물에 젖은 스펀지나 쇳덩이처럼 다리를 들어올리기가 불편해 보이는 사람도 있다. 얼굴이야 화장이나 마스크, 모자, 선글라스 등으로 가릴 수 있다. 그것으로도 부족해 변장이나 성형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내면을 반영하는 표정까지 숨길 수는 없으니, 표정 또한 관리 대상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니 행복해진다’는 말은 의지와 노력에 따라 감정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뜻이리라.
어찌 눈에 보이는 것만 뒷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숨기고 싶은 사실을 다른 사람이 알고 이를 문제 삼는다면 그것 또한 뒷모습일 수 있다. 스스로 인식하지 못했던 건강문제와 숨기고 싶은 감정까지 표현하는 한 개인의 뒷모습은, 어쩌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보이지 않는 곳의 부실한 관리나 안일한 대처가 불러오는 안전사고 등도 가려져 있어 관심의 손길이 멀어진 것은 아닌지. 또는 잘 보이는 겉모양보다 드러나지 않는 기초와 내면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간과한 결과는 아닌지 새겨보아야 할 일이다.
옷이 점점 얇고 가벼워지는 계절이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앞부분도 중요하지만, 가려진 뒷모습이 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