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교량 기술의 집대성 경주 월정교(月淨橋)
신라 교량 기술의 집대성 경주 월정교(月淨橋)
  • 장희자 기자
  • 승인 2020.10.20 1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라시대 교각 특징 과학적 원리, 기술사적 의미 담은 목조 석조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다리
신라시대의 기술력 총동원한 웅장함과 견고함 자연과 어울림까지 고려한 건축미적 다리
사적 제457호로 형산강 8경으로 선정, 신라의 뛰어난 교량축조방법과 건축토목기술 재현
새로운 관광자원 가치 창출 모범사례, 2018 대한민국 국토대전’에서 대한건축학회장상 수상
징검다리에서 바리본 월정교와 반영이 남천(신라때 문천) 맑은물에 비쳤다. 장희자 기자

경주 월정교(月淨橋)는 삼국사기 경덕왕조(條)에 “월성의 남쪽 문천(蚊川) 상에 춘양교와 월정교 두 다리를 놓았다.”라는 기록에서 전하는 교량으로, 신라 천년 궁성인 월성 남쪽을 감아 돌며 자연적인 해자(垓子)역할을 하는 남천(문천의 현 명칭)의 서남단인 경주시 교동 274번지에 위치한다.

월성은 신라시대 궁궐이 있던 터이다. 지형이 초승달처럼 생겼다 하여 월성이라 불렸다고 전해진다. 남쪽으로는 남천이 흘러 자연적인 방어 시설이 되었고, 동쪽・북쪽・서쪽으로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넓은 도랑인 해자를 팠다. 동서길이 900m, 남북 260m, 둘레 2,400m, 성 안의 면적은 5만9천 평 정도였다.

월정교는 춘양교와 함께 신라 제35대 경덕왕 19년(760년)에 축조된 것으로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으며, 서라벌의 교통로로 기능했다. 원효대사가 요석공주와 연을 트기 위해 유교(楡橋)에서 강으로 뛰어내렸던 일화를 월정교와 연관있다고 하고, 김유신이 천관녀를 만나러 제매정 집에서 천관사 자리로 말을 타고 갈 때에도 월정교를 지나야 했다.

남쪽문루 김생의 글씨를 집자한 편액으로, 북쪽문루에는 최치원의 글씨를 집자한 월정교 편액이 걸려 있다. 장희자 기자

고려 제25대 충렬왕 6년(1280)에 경주부 유수 노경론이 중수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후 어느 시기에 불타 무너진 것으로 추정되며, 1986년 발굴조사 당시 교각(橋脚) 사이에서 불에 탄 목재조각과 기왓조각이 수습되어, 교각 위에 누각(樓閣)이 놓인 누교(樓橋)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 신라인의 뛰어난 교량 건축술을 보여주는 월정교는 신라왕경 남서쪽 지역의 주된 교통로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여, 신라왕경의 규모와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발굴단이 조사한 내용에 의하면 1300년 전 가장 규모(63m ⅹ13m)가 크고 거대한 다리였으며, 물살의 흐름에 대한 대비책으로 교각의 안정성 확보를 위해 아랫부분 기초석의 앞 뒷부분을 선형(船形)으로 했다. 교각 아래 기초석을 나비모양의 석재 이음쇠인 은장 및 철촉(상하 고정용 철못)을 사용하고,  교각 사이 하상 부분에 물살이 가해지는 현상을 막기 위한 하상 보호시설인 격자를 만들었다. 또 교대는 6도 정도 뒤로 들여쌓기하면서, 쌓아놓은 석재가 움직이지 않도록 돌못을 사용하는 등 과학적 원리와 이중삼중 안전장치를 사용하여 여러 가지 요소들을 사전에 치밀하게 고려하여 가장 안전하고 경제적인 다리를 만들었다.

성을 쌓고 무기를 만들던 신라의 기술력을 총동원한 신라 최대의 프로젝트 국책사업이었다. 안전도는 물론 외관까지 고려해 만든 가장 아름답고 가장 튼튼한 다리여서 국격을 한층 드높이고, 태평성대임을 국민에게 알리는 역할을 했다. 나라 전체로 보면 왕경 건설사업의 마지막 단계로, 신라왕경은 월정교 건설로 대미를 장식하면서 완전한 모습을 갖추게 됐다. 

또 당시 경덕왕은 백성들의 정신적 안정성과 왕권강화을 위한 연유에서 불교 중흥에 노력하여 황룡사(皇龍寺)의 종을 주조하였으며, 굴불사(堀佛寺)를 비롯하여 영흥(永興)·원연(元延)·불국(佛國) 등의 절을 세웠다. 경덕왕은 반월지 왕궁에서 자신이 그리던 이상세계인 천년 불국정토 남산으로 가기 위하여 속세와 불국정토를 연결해 주는 건축적, 신앙적, 정치권력적 다방면 중요성을 고려하면서 아름다운 월성교 다리 건설을 염원했다. ​
월정교에서 바라본 서편 징검다리 건너편 풍경. 선도산 쪽 하늘이 노을빛으로 물들어 있다. 장희자 기자

월정교 복원사업은 1975년 교각·교대 실측조사를 시작으로 1984년 석재조사, 1986년 발굴조사 등 관련 조사와 학술연구를 꾸준히 이어오다 2005년 월정교 복원 기본계획 및 타당성 조사 연구를 통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2008년 5월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의 하나로 경주 월정교(사적 제457호)의 복원공사에 착수했다. 이후 2011년 9월 상량식을 하고 2013년 1차 누교(樓橋) 길이 66.15m, 폭 13m, 높이 6m의 복원공사를 완료했다. 

2016년 4월 문루(門樓) 공사를 시작하여 남·북측 교대(橋臺) 위에 정면 5칸, 측면 3칸(17.7×9.6m), 최고높이 15.67m의 문루 2개 동을 건립하여 2017년 10월 문루공사를 완료했다. 문루는 중층 건물로, 주심포 양식에 팔작지붕 형태를 띤 한식 목조구조이다.

문화재청과 경주시는 월정교 복원을 통해 통일신라의 뛰어난 교량축조방법과 건축토목기술을 재현하는 한편, 이와 연계한 옛길 복원 등 새로운 관광자원으로의 가치 창출로 문화융성의 모범적인 사례로 만들어 갈 방침이다. 월정교는 사적 제457호로 2016년 형산강 8경으로 선정되었으며, 2018년 7월에는  우리나라 국토, 도시, 경관을 아름답게 가꾸는 잘된 사례를 평가해 시상하고 있는 ‘2018 대한민국 국토대전’에서 대한건축학회장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