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가 없었던 신라를 포교하기 위해 처음 세운 신라불교의 발상지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향(香)의 쓰임새를 신라에 최초로 전한 성인

도리사(桃李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이다.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와 도개면 다곡리 경계 지역에 있는 태조산(太祖山, 693m) 중턱인 경북 구미시 해평면 도리사로 526번지에 있다. 신라 제19대 눌지왕 때인 417년 고구려 승려인 아도화상이 불교가 없었던 신라를 포교하기 위해 처음 세운 신라불교의 발상지이다. 이는 불교가 527년(법흥왕 14년) 신라의 국교로 정해지기 110년 전의 일이다.
도리사 경내에서 약 4.5㎞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일주문에도 “해동 최초 가람성지 태조산 도리사(海東最初伽藍聖地太祖山桃李寺)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아도화상은 수행처를 찾다가 겨울인데도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활짝 핀 모습을 보고 상서로운 땅임을 알아보고 모례장자의 시주를 통해 절을 창건했다. 복숭아 도(桃)와 오얏 리(李)의 이름을 따 사찰이름을 도리사로 정했다.
처음의 절터는 태조산 기슭에 있는 옛 절터로 보고 있으며, 지금의 절이 있는 곳은 금당암(金堂庵)이 있던 곳이다. 1677년(숙종 3)의 화재로 대웅전을 비롯한 모든 건물이 불타 버린 뒤, 1729년(영조 5) 대인(大仁)이 아미타불상을 개금(改金)하여 금당암으로 옮겨 봉안하고 금당암을 도리사로 개칭하였다. 1807년(순조 7) 절을 중창하였고, 1823년 조사전(祖師殿)을 중수하였다. 1876년(고종 13) 극락전을 중건하였으며, 1922년 칠성각을 건립하였다.

1976년 6월 아도의 석상(石像)이 발견되었으며, 1977년 4월 세존사리탑(世尊舍利塔)을 해체, 복원하다가 금동육각탑 형태를 띤 사리구(舍利具, 국보 제208호)와 석가모니 진신사리(眞身舍利) 1과가 발견되었다.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하러 올 때 모셔온 진신사리는 새로 지은 적멸보궁에 모셔 놓고 있다. 금동육각사리함은 현재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인 극락전을 중심으로 태조선원(太祖禪院)·삼성각(三聖閣)·조사전·요사채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다포계 건물로 내부에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이 불상은 조선시대 양식을 띠고 있고 높이 129㎝, 무릎너비 92.5㎝로서 1731·1764·1876년에 개금하였다. 조사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건물이며 창건주 아도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470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을 비롯하여 아도화상 석상·세존사리탑·아도화상 사적비, 조선 후기의 탱화 등이 있다. 이 중 아도화상 석상은 높이 97㎝의 입상으로서 전면 넓이가 좁으나 조각의 윤곽이 뚜렷하다. 아도화상 사적비는 총 높이 296㎝, 비신 높이 197㎝로 그 뒷면에 자운비(慈雲碑)가 음각되어 있으며, 사적비는 1639년(인조 17)에, 자운비는 1655년(효종 6)에 새긴 것이다.

특히 세존사리탑에서 발견된 사리는 무색투명하고 둥근 콩알 크기의 큰 사리로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것 중 가장 가치 있는 사리로 평가되고 있다. 또, 1876년에 그린 후불탱화(後佛幀畫)를 비롯하여 1881년에 그린 신중탱화(神衆幀畫)·독성탱화(獨聖幀畫)·칠성탱화(七星幀畫) 등이 있고,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판목(板木) 24매가 보관되어 있다.
도리사는 목숨까지 내걸고 불교 불모지인 신라에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의 가르침을 잇기 위한 다채로운 선양사업을 펼치고 있다. 아도화상은 불교 뿐만 아니라 향(香)의 쓰임새를 신라에 최초로 전한 성인으로, 7일간 향을 피우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려 신라 성국공주의 병을 낫게 하여 불교를 전할 기회를 얻었다고 한다.
아도화상에게 향공양을 올리면 병이 낫는다는 전설이 내려져 오고 있어, 도리사 참배객이라면 누구나 ‘아도화상 성상’앞에서 향공양을 올리면서 무병장수와 평온을 기원하고 있다. 또 관음전옆 솔숲에는 커다란 자연석 바위 4개 위에 고인돌처럼 더욱 큰 바위를 올리고 그 위를 편편하게 다듬어 놓은 아도화상 좌선대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