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39)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39)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3.10.23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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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구석에 산 짐승이라고 개를 키우니까! 아는? 밥 묵자! 개밥은? 자자! 요래 딱 네 마디지!
없는 사실이 실제 인양 소문으로 변신을 꾀해 자자하게 돌아다녀 난처한 지경에 봉착할지 누가 알겠는가?
오빠도 꼴에 머스마 자식이라고 이쁜 것은 알아서 지나가는 계집아이를 보듯 하찮은 희롱이나 하고
9월 22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9월 22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글쎄! 그놈은 머릿속에 영감탱구가 들어앉았는지, 뭐가 들었는지 당최 짐작이 안가는 놈이여! 애어른이라고 그 나이에도 벌써 사내를 흉내라고 미련하기가 곰탱이 멘치로 하는 짓이 매양 그렇지 뭐! 하여간 그놈은 제 아비를 쏙 빼닮아서 나중 자식새끼랑 지집년의 밥은 안 굶기겠지만 천상 경상도 머스마여! 모르긴 몰라도 가슴을 헤쳐보면 능구렁이가 서너 마리나 들어앉았을걸!”

“그러고 보니 그런 것도 갔네! 땅강아지처럼 흙을 파고 쉼 없이 꼼지락거려 부지런하기는 한데 그놈의 시꺼먼 속을 누가 있어 알꼬? 영희? 고년 고 가스나라면 어떻게 또 모르지! 그래도 이것 하는 확실할 거야! 나중 영희 든 어느 얼빠진 가스나 건 간에 시집을 들어 아기를 가지면 딱 세 마디만 할 놈이야!”

“어떻게?”

“뭐가 어떻게야! 시방 하는 짓거리를 보면 답이 딱 나오잖아! 아는? 밥 묵자! 자자! 호호호!”

“아니 아니야! 집구석에 산 짐승이라고 개를 키우니까! 아는? 밥 묵자! 개밥은? 자자! 요래 딱 네 마디지! 호호호!”

“고새 고걸 생각했어? 자네는 고런 쪽으로 머리가 뱅글뱅글 비상한 모양이네! 호호호, 하긴 무뚝뚝한 그 성깔머리는 어미라고 달라 그 어미에 그 아들이지! 그래도 영 정이 없지는 않은가 봐, 간혹 심드렁할 때도 있지만 또 다정할 또 얼마나 다정한데! 진짜 색시처럼 영희를 이뼈라 빤히 쳐다보며 알콩달콩 속삭일 때는 잉꼬부부가 울고 갈 판이드먼!”

“그래?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만 통나무 토막 같은 그놈에게도 그런 면이 다 있었구먼!”

“하믄! 풋사랑은 사랑이 아닌가비! 사랑에 눈이 멀 먼 바보가 된다더니 목젖이 다 보이도록 희멀겋게 웃을 땐 딱 눈먼 바보 같았어!”

“오호라 그래서 간을 빼듯 쓸개를 빼듯 고년, 고것이 안달복달로 졸졸졸, 꽁무니를 따라 다니며 정성인가 봐!”

“호호호, 좌우간 영희의 치기 어린 한때의 불장난은 그렇다 치고, 나중 철수가 신랑이 되든 말든, 아랫도리에 불알 달린 짐승으로 누구든 상판대기가 반반한 저 가스나 미모에 겁 모르고 홀라당 빠지면 삭신이 녹작지근하게 고생깨나 할거여! 안 봐도 삼천리라고 영희 저년 저것은 사내께나 후려잡아 울릴 년이야! 그러고 보면 지금 처지에서 철수엄마가 집고땡[화투(花鬪) 노름의 한 종류)의 판에서 사쿠라(‘벚꽃’의 비표준어) 광(光)과 팔 공산 광(光)을 잡은 듯 횡재한 거지 뭐!” 미래를 제멋대로 상상하고는 쥐락펴락 입에 올려 저울질이다.

그렇게 세인들의 구설 휘말리면 제아무리 영희가 영악한 요물이라고 해도 어쩔 수가 없다. 소문의 본질인 변화무쌍, 기문둔갑에는 두 손 두 발 들고서 항복이다. 근거도 불분명하고, 뚜렷한 형체도, 냄새도 없으며 다리도 없는 것이 천지를 분간 못해 훨훨 날아다닌다. 온갖 재주를 부려 공중제비다. 이 입에서 저 입으로, 이 사람서 저 사람으로, 사람 사이를 거칠 때마다 환골탈태, 새 생명을 얻어가며 거듭난다. 다시 돌아올 때는 그 변신이 무한하여 경이롭기까지 하다, 당사자와는 무관하게 필리아 사랑이 지독한 에로스 사랑으로 변신,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간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 그 누구도 결과를 예단하거나 단정 지어서 말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그것도 선(善)보다는 악(惡)의적으로 변신을 꾀하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다행히 아직 까지는 그 정도가 아니라는 것에서 위안이다. 하지만 앞날을 장담할 수는 없다. 언제 어느 날에 이르러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조그마한 것들이 나~ 원 참, 기가 차서 말을 꺼내기도 남세스러워라! 둘이 되바라져도 유분수지, 동네 창피하게 꼴값이지! 얌통머리(‘얌치’를 속되게 이르는 말)가 톡 까져 부끄럽지도 않은가 봐! 하여간 눈만 마주쳤다 하면 죽고 못 살아 으슥한 담장 밑에서 수시로 주둥아리를 부딪치고 입을 맞추어 ‘뽀뽀’ 라네!” 없는 사실이 실제 인양 변신을 꾀해 자자하게 돌아다녀 난처한 지경에 봉착할지 누가 알겠는가? 끝내 부모허락 없이 신접살림을 차렸다고, 시집 간지 석 달 만에 쌍둥이를 낳았다는 소문으로 떠돌지를 그 누가 부인하여 장담할 수 있을까? 생각을 거듭해 보는데 앞날이 미지수로 암담하기만 하다.

사태가 이 지경이면 양가 부모가 방패막이로 전면으로 나설 만도 한데도 낌새조차 안 비친다. 오히려 은근히 부추기는 모양새다. 첩첩산중의 두메산골에서 저만한 신랑 신붓감 어디 있느냐며 반색하여 묵인하는 듯하다. 때가 이르면 서로 모르는 처지도 아니고, 없는 형편에 이웃끼리 오순도순 모여앉아 막걸리 두어 단지 걸리고, 지짐이 몇 장에 국수 사발이나 넉넉하게, 가마솥 우둠지에 걸치도록 푸짐하게 삶아 놓고는 꼬꼬-재배(‘혼례식’의 방언), 작수성례로 끝낼 심산만 같다. 하여간 어머니와 영희어머니가 눈과 귀는 막고 입은 닫은 가운데 동네 아낙네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았다 하면 심심풀이 겸 영희의 미모와 더불어 나를 싸잡아 이야기의 주제로 삼는다.

굳은살이든 세 살이든 상관없이 덕지덕지 살을 붙여나간다. 그럴 때면 부인도, 싫지가 않은 중에 괜스레 얼굴이 붉어지는 까닭은 미상불, 이상야릇게 가슴이 설레는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그 세월에 편승해서 마냥 예쁘게만 보이는 영희의 볼우물이다. 입꼬리 부근에서 살푼, 수줍게 피는 볼우물이 볼 때마다 별세계를 보는 듯 신기하다. 설렁 그렇더라도 참아야만 했다. 마음속에서 은근하게 일어나는 호기심을 잠재워야 했다. 한데 붉은 곳에서는 빨갛게 물들고, 검은 곳에서는 흑색의 물이 스민다고 주위의 끝없는 부추임이 환상을 부른다. 삼인성호처럼 가스라이팅에 빠졌을까? 실제 신랑이라도 된 듯 착각 속에서 객기다.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이 주제를 모르고는 손을 뻗는 실수의 소용돌이다.

“영희야~ 저~ 기, 가~ 각시야~ 저! 저~기! 나~ 있잖아~ 네 얼굴에 그~ 그거 한번 만져 봐도 돼?” 발음도 시원찮게 더듬거리는데, 불쑥 내민 손모가지도 부끄럽게

“어~머~머~ 이게 다 뭐야!” 눈에다 새파랗게 날을 세운 영희가

“이 손 안 치워 그 더러운 손으로 어딜 만지려고? 오빠~ 아니 철수 너 미쳤니!” 눈을 시퍼렇게 흘기더니 찬바람이 쌩하게 돌아서서는 근 열흘씩이나 삐치는 통에 진땀을 뺐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서먹서먹한 둘 사이를 눈치를 챈 친구들이 너나없이 빈정거려 한마디씩이다.

“어제만 해도 영희랑은 죽고 못 산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당최 왜 그래?”

“철수야 밤새 안녕이라고, 너 지난밤 영희랑 원앙금침 아래서, 베갯머리 송사라고 무슨 일이라도 있었니?”

“그새 꽃 같은 각시랑 사랑싸움했어!” 생각을 비약, 밑도 끝도 없이 물어 올 때면 허허로운 마음에 하늘을 올려다보던가 풀이 죽어 땅을 내려다보는 정도가 고작이다. 어쩌다 고샅에서 바람처럼 마주치는 영희조차 벌겋게 얼굴을 붉히고는 잡아먹을 듯 입을 삐쭉거려 노려본다. 커다란 눈망울을 화등잔으로 치켜떠서는 앙앙불락이다.

“아주~ 죽이고 싶도록 미워 죽겠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가는 눈꺼풀을 파르르 떨어 발끝에다 고정, 독백을 겸하여 땅이 꺼지라고 원망이다.

“철수~ 아니 오빠야! 나 오빠를 그래 안 봤는데! 내가 오빠에 대해서 어떤 마음인지도 모르고? 그리고 철수 네가 진정 오빠라면, 내가 숙맥 같아 보이면 우야 든지 챙겨줄 줄 모르고 디기~ 디기! 나쁘다. 치사하다. 꼴에 오빠도 머스마 자식이라고 이쁜 것은 알아 그저 스쳐서 지나가는 계집아이를 보듯 하찮은 희롱이나 하고, 엉덩이에 뿔 난 막돼먹은 송아지 맨치(‘처럼’의 방언)로 억시(‘매우’의 방언) 엉큼하다. 나~ 오늘은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기왕에 만났으니 그렇다 치고 다시는 오빠랑 안 만날 거야! 피해 다닐 거야!” 찬바람으로 쌩, 등을 돌릴 때 아닌 게 아니라 자신에 대한 자괴감으로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그때도 역시 알사탕 두 알이 영희의 삐친 마음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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