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32)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32)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3.09.04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때 고모가 품 안을 뒤져 꺼낸 것은 할머니가 늘 상 애용하던 손수건이었다
무람없이 부지깽이로 뒤적일 적에 산 그림자는 불청객으로 엉금엉금 기어들고
어떻게 보면 할머니의 치맛자락을 찾아 끙끙거리는 몸짓만 같다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엄~마 엄마~, 우리 엄마, 우리 엄마 이대로는 못 보내~ 원통하고 절통해서 이대로는 못 보내!” 울며불며 늘어진다. 진자리 마른자리를 안 따져서 통곡이다. 그 바람에 주위로 섰던 상두꾼들이 죄다 질겁이다. 두서없이 헝클린 머리하며 옷고름이 풀어헤쳐 진 상복의 옷매무새가 보기에도 딱해 상거지는 저리 가란다. 그때 하늘에서 시간을 헤아려 패철{일명 윤도(輪圖)}을 번갈아 보는 지관이

“허~ 그~것 참!” 낭패라는 듯 연신 헛기침이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하관 시간이 임박했다는 무언의 신호만 같았다. 하지만 고모의 악다구니와 같은 대성통곡은 여전하여 그칠 기미가 없다. 뚜렷한 비책이 없어 지관과 상두꾼을 포함한 일꾼들이 난감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볼 때다. 보다 못한 아버지가 나서서 기어이 한마디다.

“애~ 애! 끝순아 야~야 인자 그만치 하면 됐다. 네가 그카면 어머니의 저승길 발걸음이 무거워 어찌 떨어지겠니! 고만하고 일어나거라!” 다그쳐도 평소 아버지의 말이라면 거역을 모르던 고모가 이번만은 예외라는 듯 꿈쩍 않는다. 둘러선 문상객들조차 수군거려

“원래 모녀지간에 저리도 정이 깊었나! 네가 듣기론 14여 년 동안 온갖 병치레로, 죽을 고비를 수차례나 넘겨 가며 애를 먹였다 들었는데! 그래 그 죄 닦음으로 저리도 애달픈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듣기라도 한 듯 아예 커다랗게 입을 벌려서는 광중(壙中) 옆으로 퍼질러 앉는 고모다.

“불쌍한 우리 엄마! 오라버님도 이대로 엄마를 맥없이 보낼 거예요? 이 소녀는 그리 못하겠어요! 오라버니 어떻게 좀 해봐요! 예~ 오라버니!” 오지랖을 눈물로 헹군다. 결국에 고모는 일꾼들의 손에 의해 강제로 끌려 나오고서야 울음소리가 점차로 수그러든다. 짐짝처럼 끌려 나오는 고모의 어깨너머로

“취토요”하는 아버지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계곡 안으로 애절하게 젖어 든다. 그것도 잠시 서러운 세월에 비례하여 할아버지가 잠든 옆으로 동그란 봉분이 부지불식간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오른다. 그즈음 고모의 눈물 보따리에 어머니의 눈물 보도 덩달아 터진 모양이다. 버드나무 지팡이를 짚어 아버지의 뒤를 따르는 어머니 역시 옷고름을 접어가며 연신 눈 주위를 찍는다.

장례는 장지서 평토제에 이은 초우제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기 무섭게 반혼제로 이어졌다. 그리고 다음 날의 재우제 이어 5일째의 날을 맞아 산소를 살펴서 둘러보는 중에 삼우제가 끝난 오후 나절이었다. 고모의 손길에 의해 고샅이 끝난 성주댁 밭두렁 끄트머리에서 할머니가 즐겨 입던 무명치마저고리와 홑이불을 포함한 네댓 벌의 옷가지가 모닥불 위에서 시나브로 사윈다. 그때 언제 울었냐는 듯 불 옆에 쪼그려 앉은 고모는

“어디 입고 쓸 만한 것이 뭣이라도 좀 있으려나?” 뒤적거린 끝에

“살아생전에는 땡전 한 푼에도 벌벌 떨며 사는 지지리 궁상의 할망구가 당신 사후에는 구멍 숭숭한 옷가지만 남겨 땀을 범벅으로 찌든 쉰내뿐이네!” 뒤적이다가는 너무 많이 태우면 할머니의 저승길이 무겁다며 골라낸 옷가지 몇 점에 얼굴은 묻었다가는 품 안으로 차곡차곡 갈무리로

“휴~ 이 냄새! 엄마 냄새! 무슨 냄새, 무슨 냄새 그래도 나는 이 세상에서 엄마 냄새가 젤로 좋다. 눈물이 서려 있어서 좋고, 서럽도록 편안해서 최고다” 중얼중얼 시시콜콜 감독을 자처하다간 주위를 둘러 마지막 남은 고쟁이를 훌훌 던져넣고는 멍하니 앉아보는데 가관이다. 실밥 총총하게 겹겹이 누빈 것도 모자라선지 엉덩이 부분은 미진 끝에 뚫어져 동그랗다. 찌든 삶이 뭐라고 저걸 옷이라 입었을까? 색깔마저 잿빛으로 바랜 것이 흐린 눈길로 보는 가슴으로 들어와 까맣게 번진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어쩔거나! 무람없이 부지깽이로 뒤적일 적에 산 그림자는 불청객으로 엉금엉금 기어들고, 소슬바람이 시린 앙가슴을 스쳐서 지날 즈음에 사그라드는 화톳불에서 고쟁이가 빨갛게 몸을 틀어서 화염에 휩싸인다. 그도 잠시 길잃은 바람이 불어 들자 불티로 날아올라 하늘 끝으로 가뭇하게 머리를 푼다. 재로 화해 별빛으로 반짝인다. 그러자 때를 기다렸다는 듯 고모가 여린 손길로 품속을 뒤적거린다. 그때 고모가 품 안을 뒤져 꺼낸 것은 할머니가 살아생전 애지중지 애용하던 손수건이었다. 모란인지 능소화인지 이제는 형태조차 희미하고 손때만 거뭇거뭇하여 꼬질꼬질한 손수건이다. 행여나 바스러질까? 훌쩍이며 조심스럽게 펼쳐보던 고모가 이내 체념을 한 듯

“엄마 아무리 무거워도 이것이야 가지고 가겠지!” 회색빛에서 까무잡잡하게 사그라지는 불 위로 던져 넣는다. 거무튀튀한 무명천 아래위로 하여 붉은 꽃과 분홍색 꽃이 불 위에서 오그라드는가 싶더니 분홍색 불길에 휩싸여서 흔적을 지운다. 어느새 고모의 눈은 눈시울 가득하게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재차 품속을 뒤적거린 고모의 손에는 꽃무늬가 아름답게 수 놓인 손수건 한 장이 들려 있다.

“엄마~ 왜? 이 손수건은 왜? 왜? 싫었어! 정이 안가? 주야장천 헌 손수건만 고집하고, 남 보기 남사스럽지도 않았어! 하지만 이제부터는 이걸로 써! 남들 눈도 있고, 그리고 이것도 내가 만든 거잖아!” 던져 넣는다. 다시 불길이 파르르 일어날 적에 등을 돌려 앉은 고모의 어깨가 가볍게 흔들린다. 다음 날을 맞아 나를 보고는

“철수야 너는 좋겠다” 하는 고모의 진두지휘 아래 할머니가 쓰던 방에서 할머니의 흔적을 지우기 시작이다. 먼저 동네서 얻어온 누렇게 색이 바랜 신문지가 벽지를 대신하고 뒤를 이어 콩기름과 니스를 뒤집어쓴 돌가루푸대(시멘트포대)가 장판을 대신한다. 환기코자 문을 열어놓자 그동안 할머니에게서 은연중 풍기던 이상야릇하면서도 쾨쾨하던 냄새가 바람결을 뒤따른다. 그즈음 부지불식간에 주인이 떠난 탓에 온기마저 싸늘하게 식어버린 임자 없는 빈방으로 한 줄기 빛이 스민다. 문풍지를 헤집은 늦겨울의 볕뉘가 제집을 자처하여 방바닥을 지나 방구석까지 길게 몸을 뉜다. 그날 이후 나와 동생이 보금자리를 틀어서는 들어앉자 할머니는 망각의 세월 속으로 아스라이 묻힌다.

그리고 일 년마다 기일이라! 자시(子時:밤11시에서 새벽 1시 사이로 삼경)를 기해 만나는 할머니는 그간 내가 알던 할머니가 아니었다. 밥상이라! 제사상의 진설은 조동율서, 좌포우혜, 홍동백서, 접동잔서, 어동육서 등의 옛 법에 따랐다. 간혹 일면식도 없는 먼 친척이 제관이라 찾아와서는 대추 놓아라! 밤 놓아라! 다투는 것으로 보아 때때로 혼란하기는 한가 보다. 당최 뭔가 뭔 말인지 뭐가 뭔 뜻인지 알지를 못하다 보니 어떤 것이 정답이고 오답인지도 헷갈린다. 보면 볼수록 어렵고도 난해한 밥상이다. 해마다 차려 지지만 어른들조차 어렵다고 투덜거리다 보니 알쏭달쏭하기만 한 제사상이다. 그 한가운데 할머니가 계신단다. 직사각형의 길쭉한 한지 위로 ‘현비유인진주강씨 신위(顯妣孺人晉州姜氏 神位)’가 할머니라고 강변이다.

할머니가 천수를 누려 자리를 비운 때를 기다렸다는 듯 동네에도 작은 변화를 겪는다. 먼저 할머니를 따라서 백구가 죽었다. 할머니가 사후 백구는 무엇을 알기나 한 듯 식음을 전폐다. 할머니의 충실한 종으로 주인을 잃은 슬픔에 삶의 의지를 상실했는지 물조차 거부다. 기억은 할머니와 마당 끝으로 나란히 서서 앞산을 바라다보던 과거의 한때에 머물러 사는 듯 보였다. 어떻게 보면 할머니의 치맛자락을 찾아 끙끙거리는 몸짓만 같다. 기원이 끝나면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할머니의 손길을 언제까지나 묵묵히 기다리고 있는 모양새만 같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두고 볼 어머니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먹여 보려 평소 돼지 뼈라면 사족을 못 쓰길래 어렵게 구해와

“백구야 네가 좋아하는 뼈다귀야! 어서어서 먹어보려무나! 그렇게 안 먹고 고집만 부리다간 죽어! 어서어서 많이 먹고 기운 차려야지! 그래야지만 하늘에 계신 할머니도 좋아하실 거야!” 어르고 달랠 때면 힘겹게 일어나 두서너 번에 걸쳐 핥는 시늉이 전부다.


관련기사